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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와 겸손을 되새기게 해 준 지리산 종주 길
1. 일자 :
2. 장소 : 지리산 (성삼재-거림)
3. 행로 및 시간
[성삼재(03:48) -> 계단 갈림길(04:14, 1255m) -> 노고단 산장(04:30, 천황봉 25.9km, 노고단 고개 0.4km) -> 노고단 고개(04:41) -> 돌무덤(05:29, 돼지평전) -> 전망터(05:50) -> 피아골 삼거리(06:01, 1338m) -> 임걸령(06:12) -> 고사목(06:32) -> 노루목(06:44, 1498m) -> 반야 봉 갈림길(06:58) -> 삼 도봉(07:07) -> 550 나무계단(07:24) -> 화개 재(07:34, 반 선 9.2km, 연하 천 4.2km, 노고 단 6.3km) -> 토끼 봉(08:05, 1534m) -> 지부 01-20(09:04) -> 계단 길(09:19) -> 연하 천(09:25) -> (조식 20분) -> 음정 갈림길(09:57) -> 삼각고지(10:01, 1480m) -> (바위 협곡) -> 형제 봉(10:34) -> 바위 전망대(10:59) -> 백소령(11:17) -> 공터(11:43, 세 석 5.2km) -> (낙석지대) -> 선비 샘/덕평봉(12:13, 1532m) -> (큰 배낭 여인) -> 칠선봉(12:50, 1576m) -> 바위전망대(13:03, 세석 2km) -> (계단, 정상부 전망) -> 세석 산장(14:00) -> 세석교(14:36) -> (간식) -> (무명교,북해도교,천팔교) -> 샘터(15:05, 거림 3.9km) -> 폭포(15:28) -> 16:23(거림 매표소)]
4. 동행 : 홀로, 숲향산악회
5. 준비물 : 35리터 배낭, 물 2리터, 랜턴, 김밥 2줄, 수박, 초콜렛, 여분의 옷, 지도 등
< 지리산 산행을 준비하여 >
지난 현충일 거림-한신계곡 등산 이후 지리산 종주가 실현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해지던 차에, 휴가를 맞이하여 성삼재에서 출발하는 종주길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등산을 좀 한다는 축에 들려면 지리 종주와 설악 공룡이 인증서 마냥 따라 다니는 것을 여러 글에서 목도한 바, 비록 먼 길의 길동무는 구하지 못했지만 혼자라도 길을 나선다.
심적으로 보다 편안한 산행을 위해 지난 주는 업무의 속도를 내어 주요한 일들을 마무리 지었고, ‘세종 벤치마킹(평범한 백성들의 삶을 위한 군주의 비범한 노력)’이라는 주제로 팀원들을 상대로 세미나도 개최했다. 숙제를 다 한 자만의 여유로움으로 금요일 저녁을 맞는다.
오랜 시간 지리 종주길을 연구해 왔지만 막상 다시 지도를 펴니 경험해 보지 않은 길이라 막막하다. 가뜩이나 자신 없는 과목의 시험 전날 다시 책을 펴 들었을 때 새로움에 낭패감이 든 경험을 누구나 해 보았을 것이다. 경험으로써 체득한 앎이 아닌 상상으로의 추정은 언제나 힘겹다. 지도에는 각 구간마다의 거리와 길의 난이도, 예상 소요시간을 꼼꼼히 기록해 두고, 머리에는 삼도봉 3시간, 연하천 3시간, 벽소령 4시간 30분 정도의 소요시간의 얼개만 집어 넣고 단순한 생각으로 성삼재의 새벽을 기다린다.
< 희망사항 >
지리산은 크다. 높고, 넓고, 깊다 한다. 그 넓이가 1억 4천만 평이라 하니 장엄한 산덩이의 크기가 가름이 되지 않는다. 또 지리산에는 1400m급 봉우리의 숫자만도 20개가 넘는다 한다. 그 좋다는 칠선계곡과 불일계곡은 가 보지 못했지만, 맛만 본 한신계곡과 거림골 만으로도 그 골의 깊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성삼재에서 출발하는 오늘 종주 능선길에서는 노고단, 삼도봉, 토끼봉, 명선봉, 형제봉, 덕평봉, 칠선봉, 영신봉을
경험할 것이고, 몸 컨디션이 좋으면 촛대봉, 삼신봉, 연하봉을 거쳐 장터목에 닿을 것이다. 그 이후
여행은 길을 떠나 다시 길 위에 놓이는 일이라 했다. 오래된 길을 걸으며 인내와 겸손을 다시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고 바래 본다.
새로 온 등산 잡지에 등산 시 10가지 보행 법에 관한 기사가 실렸는데, 그 주요 내용은 ‘1.무게를 줄인다 2.발바닥 전체로 걷는다 3.발끝 무릎 명치를 일치시킨다 4.레스트 스텝을 한다 5.계단 등산로를 피한다 6.산행 전 워밍업을 한다 7.오를 때 들여 쉬고 내릴 때 내쉬는 보행시 호흡법을 익힌다 8.스스로 길을 찾아가라(주도적으로 걷기) 9.세컨드 윈드로 페이스를 조절한다 10.스틱을 사용하고 알파인 보행법을 익혀라’ 이다. 새겨둘 말한 정보고 실천해 보고 싶은 등산의 지혜다. 말로야 쉽지만 역시 습관이 되어 있지 않아 이번 등산에서 적용하기가 어려울 듯하다. 마음으로 세겨 두고 천천히 실천해 보기로 하자.
< 성삼재 가는 버스 안에서 >
퇴근을 일찍 해 잠깐이나마 잠을 청해 보지만 쉽지 않다. 역시나 습관이 문제다. 9시 30분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선다. 붉은색 로우알파인 베낭은 줄이느라고 줄였지만 묵직하다. 양재 버스 정거장에 내리니 건너편에 ‘한아름관광’ 버스가 서있다. 서둘러 길을 건너는데 동명의 버스가 여러 대 또 오고 있다. 오늘 밤 5대의 같은 회사 버스가 지리산로 들어 간다 한다. 휴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니 산꾼들의 마음도 들썩이나 보다.
고속도로 초입 길이 몹시 정체된다. 또다시 잠을 청해도 쉽지 않다. 늙수레하고 수염이 많은 등반대장이 코스 안내를 한다. 오늘 코스는 종주와 백무동-천왕봉-중산리 코스로 나뉘고, 성삼재 3시 10분 출발 기준 11시까지 세석에 도착하지 못하면 거림으로 탈출하라 한다. ‘탈출’이란 단어가 불명예처럼 다가 온다. 인도어 클라이밍에서 살핀 바에 따르면 정상적으로 걸어도 세석까지는 10시-11시간이 걸리는데, 8시간은 내겐 좀 무리다 싶어 ‘탈출’이 아닌 아예 하산 길을 거림 하산으로 잡는다. 마음이 조금 편해 진다.
3시가 다 되어 반선 뱀사골 입구에 도착하여 이른 아침을 먹는다. 맛이 형편 없는 된장찌개와 조리한지 오래된 밑반찬들이 놓인, 정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밥상, 늘 느끼는 것이지만 유원지 입구에서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기는 참으로 힘들다. 다시 버스에 올라 한참을 고갯길을 달려 3시 50분경에 성삼재에 도착하였다. 예상보다 40여분 늦은 시간이다. 등반대장은 그래도 11시 세석 집결의 원칙은 변할 수 없다고 고집한다. 가능한 일을 이야기 하는지 모르겠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등반대장의 등산객 입장에서의 배려가 아쉽다.
사위가 어둡다. 주차장 우측 언덕으로 휴게소의 불빛과 함께 ‘라푸마’ 아웃도어 샵이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이 멀리에도 매장이 생겼으니 바야흐로 아웃도어 장비의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임에 틀림없다.
버스에서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등산객들은 워밍업도 없이 바로 길을 오른다. 오늘은 들머리에서 워밍업을 하리라 굳게 마음 먹었는데 무리에 휩싸이다 보니 또 틀려 버린 것 같다. 배낭을 뒤져 헤드렌턴을 머리에 쓴다. 올 초 새로 산 것이 말썽을 부린다. 예전 것을 대신 쓰는데 어제 밤 건전지를 새로 교체했는데도 불빛이 시원하지 않다. 사전 점검의 중요성을 새삼 교훈으로 삼는다.
< 성삼재에서 연하천 대피소 >
안개에 젖은 포장도로를 말없이 걸어 오른다. 재작년 가족과 함께 경험한 길이다. 주위가 너무 어두워 렌턴 불빛 만으로 발 밑의 사물의 존재만을 겨우 확인한다. 뒤를 돌아 보니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외계인 전사마냥 머리에 모자를 쓴 산꾼들이 내게로 터벅터벅 걸어오는 것 같다. 일순간 두려움을 느낀다.
시각의 의존도가 떨어지니 계곡의 물소리가 더욱 세차게 들려 온다.
< 임걸령에서 가는 길에 >
4시 14분 노고단으로 향하는 계단 갈림길에 도착했다. 우측 도로를 따라 가면 전망대가 나오고 화엄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날 것이다. 과거의 짧은 경험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어인 연유일까? 그리고 가면 코저 갈림길이 있었지.
나무데크를 따라 계단 길을 오른다. 뒤따르던 사람들의 인기척이 없어 진다. 어둠 속에서 두려움 마저 든다. 잠시 기다려 다시 무리 속으로 끼어든다. 4시 30분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한다. 대피소 식당 앞이 사람들로 붐비고, 음식 냄새와 연기가 세어 나온다. 사람 사는 모습은 특히 산에서는 늘 반갑고 새롭다.
대피소 위로 난 길을 400m 정도 가면 노고단 고개에 닿는다 한다. 이제부터는 처음 접하는 길이다. 새로운 도전의 의지를 불태우며 어둠 속에서 발을 내딛는다. 길은 가파른 오르막 계단 길로 시작되었다. 잠시 후 도착한 노고단 고개. 높이 1502m, 원추리 군락이 유명한 곳인데. 어두워 주변 분간도 힘들다. 진행 방향 뒤편으로 노고단의 심벌인 원추형 돌탑이 있을 것인데, 어둠으로 사위 분간이 어렵다. 노고단 운해도 지리십경 중 하나인데, 구름이 아닌 안개만이 자욱하다. 이정표에 천왕봉 25.5km라는 글귀가 종주의 서막을 알리고 있다.
노고단에서 임걸령까지의 길은 그야말로 ‘비단길’이라 들었고, 오죽했으면 노고단에서 임걸령으로 화살을 쏘고 말을 타고 달렸더니 말이 화살보다 더 일찍 도착할 정도라 한다. 그러나 이른 새벽 어둠 속에서 간간이 있는 발 밑 돌에도 힘겨워 속도가 나지 않는다. 랜턴 불빛이 다른 사람에 비해 현저히 조도가 낮다. 기다시피 하며 걸으니 시간이 많이 지체된다. 동틀녁이 가장 어둡다 했나? 하늘은 여전히 컴컴하고 안개가 짙게 내려와 있어, 더욱 기분은 가라앉고 몸은 벌써 힘겨움을 느낀다. 5시 30분경 하늘이 뿌여케나마 열리고, 조그만 돌무덤 앞을 지난다. 돼지평전 부근이 아닌가 싶다. 앞사람의 랜턴 빛을 겻째며 가려면 휴식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이렇게 힘겹게 길을 걸은 결과 5시 50분 작은 쉼터에 도착했다. 동은 텃지만 안개로 주변은 여전히 희미하다. 처음에는 이곳이 임걸령인줄 알았다. 이곳에서 10여 분을 더 가니 피아골 삼거리가 나왔다. 이제는 날이 훤해져 있다. 길가를 따라 들꽃들이 자주 눈에 뜨인다. 반가움에 연신 셔터를 누른다. 빛이 부족하고 새벽에 부는 바람결에 흔들려 사진이 제대로 나오지 않지만 오기로 계속 시도한다. 시간이 많이 지체된다. 연하천에 도착할 때까지 야생화 촬영이 계속된다. 왜이리 들꽃에 집착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노력에 흔적을 한 곳에 모아 펼쳐 본다.
< 지리산의 여름 야생화 >
6시 12분 임걸령에 도착했다. 예정보다 20분 이상이 늦었다. 어둠과 들꽃이 길을 지체시켰다. 이곳까지의 지리산은 그저 초록의 육중한 덩어리로만 느껴졌다. 지리산은 특히 품이 넓은 산이라 한다. 후미져서 깊고 아늑하고 풍요롭다 했으나, 내 몸이 피곤하니 그 너른 품을 안을 여유가 없다.
임걸령은 조선시대 ‘임걸년’이라는 도적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곳으로, 이곳부터 아침이 밝아옴을 비로소 체감한다. 사진 한 장으로 그간의 힘겨움을 보상받고 다시 길을 나선다.
6시 30분 커다란 고사목이 있는 길을 지난다. 다른 산에서 흔하게 보아오던 주목 고사목도 시간과 위치를 달리하게 명품으로 보인다. 완만한 오르내리막이 반복되는 길이 지겹지만, 그래도 어둠이 거친 것이 얼마나 큰 도움을 주는지 모르겠다. 새로운 기분으로 또 다른 길을 맞는다.
< 임걸령에서 / 연하천 가는 길의 고사목 >
6시 44분 노루목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조그만 바위 언덕이 있는 곳이다. 완만하지만 계속되는 오르내림에 에너지 소모가 많다. 사진을 찍고 보니 안개 속 모습이 힘겨워 보이는 데도 표정은 밝다. 7시경 반야봉 삼거리를 지나 삼도봉에 도착했다. ‘반야봉’. 도상에서 그리고 수 없는 산행기에서 꿈꾸던 지리산의 2인자. 낙조가 일품이라는데 안개 낀 새벽녘에 낙조를 언급 하다는 것도 맞지 않고 시간도 허락지 않고 해서 모습도 확인하지 못한 체 그냥 지나간다.
7시 7분.‘삼도봉’에 도착했다. 머리 속에 넣어 두었던 첫 이정표다. 3시간이 넘는 힘든 오름 짓에 대한 보상을 경치로 보상받으리라는 희망은 새벽 안개로 인해 날아가 버렸다. 다른 삼의 삼도봉보다 크기가 작은 그래서 더욱 인상적인, 삼도의 경계가 나뉘는 삼각봉 낮은 표지판 앞에서 사진 한 장 찍고, 부근 돌에 앉아 처량하게 김밥을 꺼내 허기를 달랜다. 이 놈의 안개 이제는 지겹다. 주위를 살피니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온 일행이 여러 있다. 힘들어 하는 아들의 신발을 벗겨 주무르고 있는 아비에게서 희생과 희망을 함께 본다. 가기 싫어하는 아들을 꼬드겨 산에 올랐지만 막상 힘들어 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프고, 그래도 묵묵히 걷는 어린 것을 보면서 속으로 그와 자신의 미래에 대한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문뜩 아직 집에서 자고 있을 큰 놈늘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 오지만, 한편으로는 보고픈 마음이 든다. 그게 부모 자식의 관계인가 보다.
< 삼도봉에서 연하천 >
쉼 없이 걸었는데도 계획보다 20여분이 지체되었다. 마음이 급해진다. ‘들꽃’이 문제였다. 이미 사진기에 담았는데도 올라갈수록 그 빛깔과 상태가 선명한 것들을 보며 걸음을 멈춘 것이 화근이 되었다.
누가 쫓아 오는 것도 아니고 천왕봉 종주를 할 것도 아닌데 괜실이 무언가 할 일을 안 할 것 같은 불안감이 찾아 든다. 성격 참! 산에서도 여유를 못 찾고 쫓기고 있네. 불쌍하게시리!
< 삼도봉에서 / 화개재 하산 길 550 계단>
마음을 다잡고 다시 길을 나선다. 오가면서 보니 이른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 아들 이외에도, 엄마와 아들, 부부간 함께 산행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부러운 생각이 든다. 우리 아들 딸과의 비교가 아니더라도 건전하게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보는 것은 언제나 즐겁고 부럽다. 이번 지리 등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주중에 가족들을 데리고 가까운 근교산을 다니며 물오른 여름 산하를 경험하게 해야겠다.
< 화개재에서 / 토끼봉 >
화개재까지의 길은 긴 계단길로 이어진다. 누군가 ‘550 계단’이라 명명했듯이 끝없이 계단이 이어진다. 아직은 힘이 남아서 인지 내려가는 길의 발걸음이 가벼우나 반대편으로 올라오는 이들의 얼굴에 힘겨움이 묻어 있다. 화개재를 지난다. 안개가 다시 시야를 가린다.
토끼봉까지의 길은 긴 오르막이다. 오전 코스 중 가장 힘들다는 곳인데, 각오를 해서 그런지 오를 만 했다. 8시가 조금 지나 토끼봉 이정표에 닿았다. 전망이 좋다는 곳인데 오늘은 아니다. 근사한 봉우리를 기대했는데 평평한 나대지의 느낌이 든다. 시야가 트였으면 지나온 노고단의 경치가(운해가 있으면 더욱) 좋았을 텐데 아쉽다.
사람의 행동 가운데 95%는 습관의 영향을 받고 그 습관 속에서 자질이 조금씩 길러진다 한다. 내 산행 습관은 어떠한가? 목표를 정하고 인도어 클라이밍을 통해 코스 주요 지점과 소요시간을 미리 가름해 보는 것은 분명 좋은 습관이다. 반면에 도착해서부터 죽기 살기로 쉼 없이 오르는 것은 평소 급한 성격을 반영한 것으로 결코 바람직하지 않음에도 쉬이 고쳐지지 않는다. 남들보다 속도도 빨리 내지 못하면서 마음만 급해진다.
< 연하천 가는 길 / 연하천 대피소 >
연하천 대피소까지 긴 길을 나선다. 내리막, 오르막, 평지와 계단이 반복되는 평범한 길이다. 노고단에서 연하천까지의 길은 지리산 종주의 전반부 길로 1350m에서 1550m 사이의 고도 차는 크지 않으나 오르막과 내리막 평지 길이 단조롭게 반복되고 있다. 산에서 길이 편하다는 것은 단순히 고도의 차를 말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반복에서 오는 단조로움이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삼도봉 출발 2시간 20분만에 연하천에 도착했다.
대피소에서 우연히 신선의 오대장 만났다. 오랜만에 본 반가움과 그를 두고 다른 산악회를 따라 다니는 미안함이 교차한다. 그는 최근 지리산 2박 3일 정통 코스를 전문으로 안내한다 했다. 문득 그가 군말 없이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대피소 한쪽 귀퉁이에 앉아 아점을 먹는다. 피로가 몰려와 눞고 싶었으나 많이 뒤쳐진 시간을 감안하여 다시 길을 나선다. 연하천 대피소는 생각보다 규모가 작았으며, 대피소 아래 편 길가에 자리잡은 커다란 화장실이 산장보다 더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을 듯하다.
< 연하천에서 벽소령 >
10시경에 음정 하산 길을 만난다. 공단에서 만든 일률적인 밤색 표지가 아닌 누군가 만들어 건 붉은 페인트 글씨다. 색다름을 느낀다. 벽소령까지는 2.9km가 남았다 한다. 잠시 후 외로운 고사목 한 그루가 햇살에 온 몸을 내놓고 서 있는 공터에 도착한다. 형제봉을 지나 벽소령을 거쳐 세석에 닿으려면 족히 4시간은 더 걸릴 것인데, 이 길을 11시까지 도착하라 하니 오늘 대장은 제정신이 아닌가 보다. 아니면 내가 고수들의 등산 세계를 알려면 아직 멀었던가?
형제봉으로 향하는 길은 이제까지와는 많이 다르다. 우선 오르내림의 경사도가 심해지고 바위지대가 자주 나타난다. 보통은 삼도봉에서 토끼봉까지가 힘들다 하는데, 난 형제봉 오르내림이 더욱 벅차다. 10시 30분경 암갈색의 커다란 바위지대를 거쳐 모퉁이를 도니 예사롭지 않은 암봉들이 눈에 들어 온다. 형제봉이다. 변화 없는 능선길을 타박했더니 산신령이들으셨나 보다. 바위 사이로 제법 협곡의 기운이 느껴진다. 시원한 바람이 한 줄기 분다. 다리는 힘들지만 눈은 다시 호강한다.
< 형제봉 에서 >
돌아 나오며 다시 올려다 보는 형제봉의 모습이 근사하다. 지리에서 흔치 않은 암봉이다. 산의 놓임새가 중요함을 새삼 느낀다. 차별화 이론이 산에서도 통하나 보다. 점차 구름이 걷힌다. 이는 구름 사이로 간간이 모습을 드려내는 지리 영봉들의 모습이 장관이다. 11시경 바위전망대에 올라 안개가 거치는 지리의 모습을 한참이나 내려다 본다.
< 뒤돌아 본 형제봉 / 안개가 거치는 지리 영봉들 >
험한 오르내림 끝에 11시 17분 벽소령에 도착했다. 연하천 대피소에 비해 한결 한적하고 주변 경관도 시원하다. 모름지기 산장은 이래야 하나 보다. 붐빔보다는 한적함이, 평지보다는 올려다/내려다 보는 경치가 시원해서 벽소령이 더 좋다. 대피소 앞 벤치에 잠시 앉는다. 일행인 듯한 산꾼들이 농을 주고 받으며 정겹게 대화를 하고 있는 모습이 부럽다. 혼자만의 한적한 산행도 좋지만, 다시 인파에 휩싸이니 사진도 찍어주고 간식도 나누어 먹으며 지나온 여정을 복기 해보는 동행이 그립다. 문득 지난 달 설악 대청봉에서 안개가 솟아오르는 공룡능선을 보며 함께 감격해 하던 직장 동료들이 그립다.
11시가 지났으니 세석에서는 종주팀과 탈출팀이 나뉘게 될 것이다. 몇 명이나 종주에 나설까 심히 궁금하다. 이런 생각의 이면에는 무리한 일정에 못 맞추어 모두 거림으로 하산하지 않은까 하는 못 먹는 감 찔려나 보자는 심사가 깔려 있다. 그만큼 나는 여기까지 힘겹게 왔다. 10시간이 넘는 장거리 산행은 아직 내게는 과한 숙제인가 보다. 몸도 마음도 더 단련해야겠다.
< 벽소령 대피소에서 >
벽소령, 아름다운 산장의 빨간 우체통과 이제 막 시야가 트이는 지리의 산하를 내려다 보며 다시 눈도장을 찍고 다시 길을 나선다. 시간상으로 볼 때 2시까지 세석에 도착해야 거림 입구까지 4시 30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몸도 마음도 바빠진다. 다행히 벽소령 지나 초입 길이 평지 길이라 속도를 낼 수 있었다. 20분만에 공터를 지나 낙석이 위험한 길(떨어진 돌의 색깔로 볼 때 최근에도 낙석이 잦았다 보다. 그러고 보니 이 일대는 과거 지리산 빨찌산 토벌을 위해 작전도로를 만들었던 곳인데 이 험한 곳에 도로를 만들며 여러 사람이 화를 당했음에 틀림없다. 조심스레 길을 지난다)을 지나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니 선비샘을 도착했다. 출발 8시간 만에 샘을 만난 것이다. 토끼봉, 임걸령 등 인구에 회자되는 행선지에도 정작 여기가 어딘지 알려 주는 것에 인색한 지리의 표지판 인심이 이곳 선비 샘에서만은 예외인가 보다. 커다란 판에 갓쓰고 도포 입은 선비의 그림과 함께 샘의 유래를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으니 말이다. 도중에 임걸령샘 총각샘 등을 지났겠으나 어딘지는 모르며 지나쳐 왔다. 선비샘은 길가에 바로 있고 커다란 안내판도 있어 놓칠 수가 없었다. 선비샘 위가 덕평봉이나, 둘러볼 여유가 없다.
< 선비샘 / 큰 배낭 여인 >
산허리를 돌아 칠선봉으로 향한다. 덕평봉에서 칠선봉을 지나 영신봉까지가 지리 종주 산행 최고 난코스라 한다. 아니나 다를까 가파른 오르막이 곳곳에 나타난다. 힘겹게 걷고 있는데 커다란 배낭을 맨 사람이 앞서 지나간다. 초등학교 3/4학년으로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 2명이 동행하고 있었는데, 뒤에서 보며 “저 사람 참 힘들겠다. 저 무거운 걸을 지고.애들도 대단한데” 하고 지나치는데 앞에서 보니 남자가 아니라 여자다. 놀랍다. 체구도 크지 않은 분이 아이들 둘을 데리고 저 무거운 배낭을 메고도 힘겨워 하지 않는다. 새로운 고수를 만났다. 예전 오케이마운틴에 명 산행기를 올리던 ‘산녀’라는 필명의 여인도 큰 배낭을 메고 다녔다 하는데 혹시 아닐까 생각해보나, 그녀는 당시 미혼이라 했으니 아닐 것이다. 그녀의 용기에 기죽으며 한편으로는 자극이 되어 다시 힘을 내어 본다. 구름 사이로 하늘이 드러난다. 지리 천왕봉으로 향하는 능선길이 드디어 열린다. 영신봉 부근의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천왕봉은 구름에 가린다.
< 영신봉 부근의 전경 / 칠선봉 전망대에서 >
칠선봉을 지나며 고도가 1600m를 넘어서고 있다. 고도 값을 하느라 길도 조금씩 험해지더니 바위 암벽길이 나타난다. 이어 긴 계단 오르막도 나온다. 계단이 놓여지기 전에는 난코스로 이름을 날렸던 곳이었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능선에서 다리가 힘들면 눈은 호사를 즐긴다. 이제 완연한 여름날의 날씨를 되찾은 능선 오르막에서 구름 사이로 천왕봉의 모습이 언듯보인다. 험한 길에 대한 보상인 냥 한참을 바라본다. 백무동이나 중산리에서 오르며 는 볼 수 없는 선물이다.
< 바위 이정표에서 / 구름이 흘러가는 천왕봉의 모습 >
햇살이 따가워지고 있다. 고산지대라 기온은 크게 오르지는 않지만 거칠 것 없는 햇살이 무차별 적으로 얼굴과 목을 공격한다. 이제까지도 그냥 왔고 눈 앞에 다시 숲이 보이는데 썬크림을 꺼내기는 싫고 모자를 썼다 벗었다 하며 햇살을 피해 본다. 긴 계단 오르막을 넘어서서 한참을 가서야 영신봉이 나왔다. 멀리서 볼 때는 험해 보이더니 막상 올라와 보니 지나온 여느 봉우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강렬한 햇살을 주체 못해 사진 한 장만 찍고 얼른 길을 나선다. 멀리 지리능선들이 파노라마 치고 있다. 사람이라는 것이 간사해 오전 안개에는 파란 하늘이 그립다가, 파란 하늘이 나오자 햇살을 저어한다.
< 영신봉 길의 계단과 바위 / 영신봉에서 천왕을 바라보며 >
세석은 이제 길어야 20분이다. 얼추 2시를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길가에 이정표가 ‘1-40’을 넘어 가고 있다. 이미 도상으로도 20km를 넘게 왔다는 것이다. 멀리 촛대봉의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1-42’ 표지를 지나 드디어 세석에 도착했다. 남들은 뭐라 하던 간에 내게는 길고도 먼 길이었다. 초반의 자만은 어디로 가고 이제 초라함에 더해 인내 끝에 겸손의 마음이 솟는다. “그래 내가 해냈어. 허나 진정한 산꾼이 되려면 아직도 멀었어”.
눈 아래 세석 대피소의 아름다운 모습과 그 뒤 30만평 규모가 된다는 세석평전의 모습이 그만이다. 이전 카메라를 잊어버려 이곳에서 찍은 사진을 아쉬워했는데 오늘 드디어 내 손으로 다시 세석의 모습을 담는다.
< 세석가는 길의 전경 / 세석 대피소에서 >
< 세석에서 거림 >
세석대피소는 언제나 인파로 북적 인다. 대피소 밑 샘에서 식수를 보충한다. 오늘 하루 3리터 정도의 물을 마신 것 같다. 대피소에서 세석교로 향하는 길이 돌 반 물반이다. 질척이고 미끄럽다. 작은 개울에서 세면을 한다. 한참을 닦아도 소금기가 가시질 않는다. 온 몸이 끈적인다. 배도 고파온다. 다리 밑에서 철퍼덕 앉아 남은 김밥으로 허기를 달랜다. 일행 중 한 무리가 앞서 간다. 내가 마지막이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이 찾아 든다.
< 세석평전 모습 / 거림 매표소 부근 >
오를 때와는 다르게 음식을 섭취해도 에너지로 바로 변하지 않는다. 다리가 천근만근이다. 지난 6월 손쉽게 올랐던 거림 계곡 길이 험하기가 이를 데 없다. 북해도교를 지나고 천팔교를 지나도 이놈의 돌 길은 끝날 줄을 모른다. 계곡의 물소리가 시원함을 지나 소음으로 변한다. 네 다리로 기다시피 하여 하산 길을 재촉한다. 지난번 점심을 먹었던 길가 샘을 지나도 아직 3km 정도의 거리가 남아 있다. 4시 30분까지 거림으로 하산이 불가능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폭포를 지나서도 길 사정은 매양 한 가지다. ‘뾰족한 돌길’. 한계를 느낀다. 뒤에 오던 이들에게 계속 추월 당한다. 안되겠다. 마지막 힘을 내보자 하는 심정으로 배낭을 바짝 메고 들고 뛰듯이 걷는다. 이제까지 500m당 15분이 소요되는 속도가 10분으로 빨라진다. 4시 20분이 지나 저 아래 소바구산장의 기와 지붕이 눈에 들어 온다. 멀고 험한 거림의 하산 길이 끝나 가고 있다. 힘겹다. 길을 떠나 산으로 향하는 것이 등산이라면 나는 오늘 아직 진하게 길과 한판을 했다. 도상으로 장장 30km의 거리 실제로는 50km 이상을 걸었을 것이다.
< 에필로그 >
새벽에 성삼재에서 출발하면서 지리 능선을 걸으며 인내와 겸손을 다시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다짐했었다. 그때는 건방과 오만이 묻어 있는 지껄임이었다. 지금, 거림에 다시 서니 소금이 진한 얼굴에 진실성이 베어 나온다. ‘인내와 겸손’의 참뜻을 알 것 같다.
비록 완전한 종주는 아니지만 12시간 이상을 산에서 보내고 내려온 심정은, 육체적 힘듦과 함께 정신적으로 무언가 진한 허전함이 남는다. 오늘 내가 지나온 길에는 노고단, 피아골 단풍, 반야봉 낙조, 벽소령의 달, 세석의 철쭉 등 소위 말하는 지리산 십경에 속하는 상당한 명승지가 있었는데도 그것들을 보기는커녕 그곳을 지나는 순간에는 그 존재마저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오늘도 자연을 즐길만한 여유도 없이 단순히 걷기만 한 것이다. 반성의 기분으로 오늘 산행을 복기해 본다.
버스의 지체로 예상보다 40분 늦게 성삼재에서 산행을 시작했었고, 따라서 종주자들은 약 7시간 만에 세석에 도착해야 한다고 했을 때, 등반대장이 안내하기 귀쟎은 종주보다 짧은 거림으로의 하산을 강요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산 후 10명 이상의 인원이(그들은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그 중에는 여자분도 있었다) 천왕봉을 거쳐 중산리로 하산해 있었다. 믿기지 않았지만 사실이다. 같은 길을 걸으며 나보다 세석에 3시간이나 일찍 도착한 것이다. 우선 놀랍고, 존경스럽고, 내 자신이 일순간 작아짐을 느꼈다. 나는 12시간 30분 만에 거림에 겨우 도착했는데 그들은 13시간 만에 천왕봉을 거쳐 중산리로 하산한 것이다. 산에는 참으로 고수가 많다.
종주 능선길에서는 경험한 노고단, 삼도봉, 토끼봉, 명선봉, 형제봉, 덕평봉, 칠선봉, 영신봉의 모습이 눈앞으로 빠르게 지나 간다. 임걸령까지의 어둠은 빛의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 주었고, 새벽을 여는 들꽃들 덕분에 눈은 즐거웠으나 지나친 집착으로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고, 힘들 것이라 마음 단단히 먹은 화개재 토끼봉 길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지날 수 있었다. 형제봉 주변의 암봉들의 전경과 구름 속에서 제 모습을 드려내는 지리 영봉들의 모습은 한폭의 그림이었다. 벽소령 대피소의 자연과의 조화로움이 세석 대피소에 뒤지지 않았으며, 칠선봉/영신봉 오름막의 고비는 세석평전의 화려함을 위한 시련이었을 것이라 믿고 싶다.
남들 다 하는 지리 종주를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호들갑 떤다고 하는 이들도 있겠으나 오늘 산행은 나의 힘과 정신을 다 바친 산행이었다. 작은 디테일 한 행동들이 습관을 만들고 습관 속에서 자질이 조금씩 길러지고 통찰력이 생긴다 하였다. 오늘 지리 종주길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나의 내면을 살찌우게 할 것이다.
오늘 이 등산이 내 등산의 한계를 더 높고 길고 멀리 향상시키고 언제나 인내와 겸손의 자세로 산에 임하라는 교훈이 되었으면 한다.
먼 길 오르내리느라 힘겨웠던 내 다리와 배낭의 무게를 이겨 준 내 어깨에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면 긴 오늘을 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