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70을 고희(古稀)라고 한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고희라는 의미가 유명무실 해졌다고 할까?.
인생 70세를 넘겼는데도 직장생활을 영위하는 분이 부지기수다.
그 와 관련해서 유행하는 말 또한 60~70세를 일컬어 중장년 세대라고 부르기도한다.
세상이 발전하면 할수록 인간 수명도 연장한다.
따라서 80 ~ 100세를 노년세대 즉 노인으로 인정하는 추세다.
다시말해 고희라는 뜻은 옛날에는 일흔살까지 산다는것은 드문 일로 그 의미 역시 인생칠십 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에서 유래한 말이라고도 한다.
며칠 전 건강 검진을 받아보려고 모 의원에서 진료 대기중 70대 중장년의 파란만장했던 인생 역정을 들어봤다.
그 분은 70년전 대가족시대 9남매 중 맏아들로 태여났다고 한다.
그 시절 허물어져가는 초가집에서 양친 부모님과 우리 형제 모두 11명은 초근목피로 근근히 연명하면서 살았다고 말했다.
당시 "아버님은 48세로 자식들 키우랴, 동분서주 바쁘게 살아가시면서 당신의 건강은 챙길 여력이 없이 하루하루 힘들게 사시다 젊은 인생을 마감하셨다."고 그 당시를 회고했다.
부친께서 단명으로 세상을 떠나시던 그 해 맏아들인 제 나이는 23세로 아버님을 대신해서 동생들을 보살펴야 하는 처지로 삶이 막막했었다고 말했다.
우선 주거의 터전 초가집 허술한 곳을 보수해서 가족이 살 수 있도록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덮는데, 어린 동생들과 같이 했다면서 의식주가 먼저라서 초등학교도 못갔다고 실토했다.
다행스럽게도 저는 남달리 손재주가 있어서 목수일을 할 수 있었던지 어린 나이에도 남의집에 건축 품팔이를 하기도 했다며 웃음으로 대신했다.
당시 40대 어머님께서도 자식들을 위해 농삿일과 품팔이로 궂은일도 마다않고 무엇이든 다 하셨지요. 일이 없는 날에는 산에서 산나물을 뜯어 반찬으로 혹은 국으로 끌여먹고 살았다고 말했다.
그 후 수년이 지난 1978년 중동(사우디아라비아) 붐이 일어 건축 근로자로 차출되였고 가족생계를 위해 외국으로 떠났습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돈벌이를 위해서 무엇이든 했으며 국내 어머님께 송금하여 동생들 학비를 지원하고 어머님은 알뜰히 절략 저축하셔서 집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몇년이 지났을때 어머님께서는 "넌 맏 아들야!. 이제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어야지"라는 권유를 받고 귀국을 결심 하게되였습니다.
귀국 후 어머님 주변 지인들은 맏아들인 저를 보며 근면성실함을 인정하고 중매를 자청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결국 자천타천 지인의 소개로 결혼을 했으며 궁핍한 살림살이에 불평없이 따라준 아내가 나의 인생을 일깨워줘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 부부는 동생들 뒷 바라지 8명의 결혼 등 모든 책임은 어머님과 우리 부부의 몫이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부부의 당면한 과제 가족계획에 관한 의견을 서로 나누어 보았지요.....
국민 대다수가 가부장적 체제로 살던 시절이라 우리 두사람 어께가 천근만근임을 인지하고 자식은 하나만 낳아 잘 키우려고 작심했습니다.
때마침 정부에서도 산아 제한 정책으로 "아들 딸 구별말고 하나 낳아 잘 키우자".란 구호로 떠들썩한 시절이었습니다.
흔히 하던말이지만,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아내 역시 공감해 주었으며 결국 계획한 바와 같이 아들 하나를 낳고 국가 정책에 따랐죠.
그후 아내는 아들을 키우면서 홀로된 시어머니 부양하랴, 시누이, 시동생 건사하랴 열심히 살아줬습니다.
또한 어머님도 "내 자식을 낳은죄" 라며 혼신을 다해 열정으로 키워주셨는데,
58세 되던 해 어느날 갑자기 중풍으로 건강이 악화되여 자식들 뒷 마무리를 못다 이루시고 가셨습니다.
그후 우리 부부는 우리 가족의 이끌어가야 할 막중한 책임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넷째부터 아홉째까지 6명 동생들 결혼을 성사시키고 자립으로 살아가도록 맏형 역할을 다 했으며, 내 자식 외동이도 굳건하게 키웠지요.
아내 역시 형수,언니로 시동생, 시누이 결혼을 앞장서서 준비하여 친척들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이였답니다.
오죽하면 동네방네 마당발 어머니로 소문이 자자하여 애, 경사 매니저로 불려가는 사람이며,자원 봉사자로 이름을 올렸어요.
어느덧, 세월이 흘러 내 나이 60대로 아들이 성장하여 결혼 적령기였어요.
자식이 마땅한 며느리를 얻어야 하는데 부모 입장에서 고민이 되였죠!.
왜냐하면 자식의 행복이 곧 부모의 행복이며, 부모가 불행하면 자식 또한 불편한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요!.
그런데, 어느날 자식이 분위기를 틈타 넌지시 말했어요. 아버지, 어머니 저 결혼을 하겠습니다. 라고......
"그래, 반가운 얘기다, 누구랑 결혼 할건데," 하고 물어보니, 어디 어디에 사는 누구라고 했죠.
그렇구나!. 하고 모처럼 듣는 소식이라 반갑기도 했지만 즉답을 피하고 자식한테 말했어요.
"너,결혼이 장난이 아니란다."
"인륜대사인데 좀더 심사숙고 해서 결정하라." 라고 말한 후 자식 몰래 지인을 통해 알아봤죠.
마침 그 동네 사는 친구를 통해 자세히 알아보니, 아버지 없이 홀 어머니와 자란 두 형제 중의 맏딸이였어요.
부모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썩 달갑지 않았지요. 내 자식을 위해서 가능하면 양친부모 슬하에서 성장한 며느리를 얻고 싶었으니깐요!.
하지만, 자식 이길 부모가 어디 있답띠까?.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리더군요.~~
할 수 없이 승락을 한후 여유자금을 총 취합하여 결혼식을 올려주고 아파트를 구입하여 신혼 살림을 꾸려줬다 아닙니까?.
결혼 이후 수년이 흘렀지만, 둘사이에 손주 소식은 없었고,서로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기만 바랬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자식 내외간 불편한 소식이 들려왔어요.
무슨 내용인지 자식을 불러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장모가 사위 카드로 무엇을 사고 딸, 사위보고 갚으라고 했다. 며 불평을 털어 놓았습니다.
그 소리를 듣던 순간, "그래. 그렇지만, 네가 너그럽게 이해 해라 !. 장모님도 친 부모님과 다를바 없다. 오죽 어려웠으면 딸 자식, 사위에게 손을 벌렸겠니 하고 달랬죠"....
어느댁이고 가정사엔 돈이 문제입니다. 돈 때문에 살고 돈 때문에
죽는일도 비일비재하지요.
그 일이 있던 이듬 해 아들이 또 싸웠다는 소식이 들려 왔어요. 정말 잘들 살아가길 바랬는데....
며느리 한테는 말 할 수 없어서 아들한테 물어봤습니다. "너, 도대체 무슨일이 또 있었니?" 하고,
그랬더니 대답을 않더군요!.
잠시 후 자식은 어머니한테 말하길 "엄마 저 이혼해야 겠어요?".
순간 청천벽력 같은 소리로 들렸죠. 가슴이 찢어질것 같은 심정이였습니다.
외 아들 한놈 정성으로 키웠는데 있는재산 없는재산 다 긁어모아 살게 해줬거늘 이게 무슨 날 벼락인지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그 이튿날 우리 부부는 속상해 술 한잔 을 먹고 아들을 불러 솔직한 심정을 들어봤습니다.
너희들 무슨 일이 있길래 이혼얘기가 나오는거냐?. 네 얘기를 듣고싶다. 말해봐라고 다그쳤더니,
지난번 장모님이 제 카드로 물건을 사고 결제건은 아버지 말씀대로 제가 갚아드렸습니다. 사위도 자식이니 당연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장모님은 저 몰래 딸 하고 속삭여서 또다시 큰 금액을 통장에서 인출 사용했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아무리 사정이 어려워도 저하고 상의하셔야지요." 하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랬더니 저 한테 엄청 퍼부었어요. 심지어 욕설까지 정말 있을 수 없는 막말을 하더랍니다.
그 말을 듣고 우리 부부는 참을 수 없는 분통이 터져서 작심하고 아들 장모댁에 찾아갔습니다.아들 처가에 도착해서 서로 겸연적게 인사를 나누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죠.
아니, 어떻게 된 사실입니까?.
장모는 기다렸다는듯이 "사실 우리가 어렵게 살아가는 입장을 잘 알고 계시죠?. "
"너무 너무 힘들어서 남의 돈을 빌려 셋방살이를 하는데 빌린돈을 깊으려고 딸하고 의논하니, 은행 예금이 있다길레 찾아서 빌린돈을 갚았어요". 급한 불부터 끄려구요....
"그리고, 좀 여유가 있게되면 돌려줄 생각이구요. "
물론 사위한테 사전에 얘기 안했던 점은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말 끝에 제가 "그런데 왜 격한 말로 아들과 싸웠습니까?. "
장모는 "감정이 폭발하면 싸울 수도 있지요. 처가집 형편을 모르고 큰 소리로 대하길레 같이 맞 대응했습니다. "
그리고 "이혼 예기도 했다면서요?."
"네, 처가집을 몰라주는 사람 전 그런 사위는 싫습니다."
정말 기가 막힐지경이였습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 딸을 시집 보낸 친정엄마라는 사람이...
울화가 치밀어서 감정이 폭발 할것 같았지만, 자식을 위해 참아야지 괴로운 심정을 달래며 돌아 왔어요.
그리고 자식한테 말했지요. "우선 네가 양보해라. 처가집 사정이 그렇다고 하니, 어떻게 하겠니.... 네 처의 입장을 생각해서 아버지가 도와주마," 하고 다시한번 설득했어요.
정말 제 인생은 산전수전 다 겪은 셈이죠 !.제 팔자가 그런가 봅니다.
그로부터 몇달이 지났을때 자식은 이혼을 하고 헤여졌습니다.
자식마저 왜 그런 팔자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됩니다. 부전자전 일까요?.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아들 말에 의하면, 여자 동창생을 한번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눈 사실밖에 없는데 장모는 이것을 트집잡고 바람피웠다며 이혼을 강하게 요구했다고 하더군요.
정말 인간답지 않은 여자였어요. 알고보니 장모라는 사람은 사기꾼이였습니다.
딸이 이혼을 하면 빌려쓴 돈도 갚지 않아도 되고 새로 사위를 얻으면 가정 형편에 도움이 된다고 역 수작을 노린것 같았습니다. 참 세상에 이런 여자가 다 있구나 하고 포기했습니다.
결국 아들은 40대 나이에 조그만 아파트에서 혼자 의미없이 살고 있습니다.
옛말에 "무자식 상팔자" 라더니 자식 한명 키우는데도 너무 힘이 듭니다.
그런 세월을 지나 60~70세가 되니 내몸도 망가질 때로 망가져 병원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8년전 전립선 비대증 수술을 했고 재작년 허리 통증 협착증 수술도 했습니다.
혈압약을 복용하며 관절약 이것 저것 몇알씩 복용하니 몸에서는 거부반응을 잃으키는지 가끔 기억력도 희미해지고 몸이 부어요.
그래도 어이합니까?. 약을 안먹을 수도 없고, "옛말에 우환이 도둑",이라 카더니, 그 말이 맞아요!... 돈 벌면 약값으로 많이 지출합니다.
내일도 또 일하러 갑니다. 제가 인테리어를 평생 했으니,여기저기 아우들이 불러줘요,
고맙지요...
그 때 마침 원장의 질료 호출로 인생상담을 마치고 헤어졌다.
~~인생 이야기,~~
우연한 기회에 생면부지의 70대 중장년의 인생상담을 마치고 많은것을 느꼈다.
보통상식으론 딸자식을 출가 시키면 친정부모는 딸,사위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늘 노심초사 걱정을 하면서 살아간다.
또한 자녀도 많아야 세명.,두명, 한 명으로 사위도 친자식처럼 인정하며 사위 또한 부모님으로 호칭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가한 딸을 앞에두고 사위와 장모님과의 싸움 별난엄마 별난세상이다.
필자인 저를 비롯해서 많은 부모님들은 (내리사랑)이란 말을 많이 듯고 살아왔다.90세의 노인도 70세의 아들을 사랑하며 보듬어 준다고 한다.
오늘 글을 쓰면서 세상에 이런 엄마도 있구나. 무었을 생각하며 딸을 키웠을까?. 묻고 싶다. 웬지 마음이 씁쓸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