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선묵에 있는 그림들 중 몇개를 골라보았다. 색채감이나 붓글씨 솜씨가 놀랍다 .스님께서 얼마나 치열하게 일생을 사셨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감히 법정 스님책을 보고 뭐라고 말하면 안되지만 나 사후에 나의 자손들이 보기를 바라며 싣는 책 소개니 무슨 말은 못하리 .아주 두꺼운 책인데 싣지 못한 작품은 나중에 천천히 실어야겠다.
법정스님께서 김거사 라는 분에게 하사하신 부적을 보고 놀랐다.어머니 살아계실 때 어머니께서 절의 신도들에게 준다고 부적을 그리시곤 하는 걸 봤다.어머니와 같이 조계사 옆에 불교 용품 판매상에 가서 부적을 그릴 때 쓰는 인주 (?) 같은 걸 사오기도 했다. 이름이 그 붉은 색 인주같은 것 . 경면인것 같다 어머니께서 조계사 옆 가게에 들러서 경면을 사다가 부적을 만들어 신도들에게 나눠주셨다.절에서 기도를 하신 후 효험이 나도록 기도를 하신 후 주셨다. 어머님은 절에서 불공 드릴 떼는 멸치,고기 ,새우젖 등 일체 비린걸 잡숫지 않았고 이가 안좋으셔서 국을 끓인 후 국물만 잡숫고 기도에 매진하셨다. 그래서 건강이 많이 나빠지고 허리도 안좋으셨던 것 같다 법정 스님의 부적 그림을 보니 어머니의 부적이 생각났다.어머님이 그리신 부적을 버리는게 아니었는데 챙겨둔다는게 그만 잊어버렸다. 아휴 아까워라 .법정 스님께서 부적을 주신 분은 아주 소중한 유품을 받은 것이나 다름 없다.
법륜사에 가서 스님 법문을 듣던 일이 아련히 생각난다.
문학평론가인 오빠네 집에 가면 시집이 아주 많았다. 오빠가 시 평론을 주로 하셨기 때문에 한국의 웬만한 시인들 책은 다 있었고 그 집엘 가면 오빠방 서가에서 시집을 주로 많이 읽곤 했다. 소설책은 오빠가 대학생 시절 방학 때 집에 올 때마다 책을 가저와서 초등학생 중학생 시절에 국문과 대학생이 보던 책을 다 읽었다. 고등학교 땐 읽을 책이 없는 것 같았다. 대락생이 되었을 때 주로 싸르트르나 카뮈등 실존주의 철학가들의 책을 읽으며 단편소설을 써서 대학교 주최 단편소설 대회에서 상도 탔었다. 뭐라고 되지도 않는 글을 썼었는지,,,,오빠가 문인들을 많이 아니까 혹시나 하고 오빠에게 부틱을 했었다. 나도 수필가가 되고 싶다고. 했더니그 때 오빠는 단칼에 거절을 했다.
법정스님이나 천경자 같은 분들 모두 수필가 아니라면서 각자 자기 일을 열심히 잘 하고 그 때 글을 써도 된다고 하셨다. 어린이집 하는 거나 열심히 잘 하라고 하셨다. 오빠말대로 한 것이 잘한 짖인지,,, 오빠 말대로 음대를 가기 위해 피아노를 배우고 합창반에서 노래하고 하다가 다시 미술대학에 가라고 해서 미술 대학에 갔고 ,,그런데 인생 모두 후회만 남았으니 ,,,,
법정 스님의 서 있는 사람들과 무소유가 가장 흥미로웠던 것 같다. 산속에서 수행자로 사시는 분이니까 그 이후 나온 책들은 좀 심심한 것 같기도 하고 ,,,스님께선 대학 다니다가 출가를 하셨고 효봉 스님 상좌가 되어 산속에서 두 분이 수행하시던 이야기가 책에 있다. 출가하실 때 보던 책 몇권을 가지고 가셨다고 한다. 그런데 효봉스님께서 책을 모두 버리라고 하셔서 책들을 아궁이에 넣고 불태웠다고 하셨다. 하하하
평생 無자 화두를 읊으며 참선을 하신 분이니 당연한 말씀이다 .불교를 깨닫고 해탈하는데 책이나 다른 사람들의 가르침은 모두 방편일 뿐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 ,중국의 선승이 한 말인 것 같다
경전은 밑닦는 휴지에 지나지않는다 -임제록
부처 중생 그리고 마음 이 셋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야마천궁 보살 설게품
불교에 대해 공부하면 할 수록 나도 그런 생각이 든다 . 불교대학을 다니신 것도 아니고 참선을 많이 하신 것도 아닌데 어머니께서 모든걸 보고 아신던 걸 생각하면 불경도 불교 공부도 그 모든 것은 방편일 뿐이라고 나도 생각한다. 내가 절로 어디로 답을 찾아 헤매다녔지만 그 모든 것은 방편에 불과하고 내 스스로 불경에 미치던 참선에 미치던 해야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40여년 전부터 법문 들으러 다니고 불교대학도 다녀보고 참선도 해보고 불교 서적도 열심히 읽어보고 했지만 이제와서 드는 생각은 그 모든 것은 방편일 뿐이다 임제록이나 다른 說들이 말하는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