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화양서원 사제문 금상 계묘년(1783, 정조7) 〔御製華陽書院賜祭文 今上癸卯〕
아득한 황제의 영령을 僾僾皇靈
만동묘의 하늘에 모셨도다 萬東之霄
계림에서 순 임금을 제사하고 桂林享舜
초나라에서 주 소왕(周昭王)을 제향하였지 楚鄕祭昭
인정에 따라 의를 세웠으니 緣情義起
백대 뒤에라도 의심할 것 없어라 俟百無疑
배신을 서원에 제향하고 陪臣院享
그 사당을 가까이 두었네 隣近其祠
공은 세상에 드문 기상을 타고나 公維間氣
동방의 대현이었으니 大賢東方
의리는 춘추대의를 주장하고 義則春秋
학문은 주자(朱子)를 존숭했네 學則紫陽
무너진 윤리와 끊어진 학문이 淪彝絶學
공에게 힘입어 실추되지 않았으니 賴以不墜
내 실로 흠모하는 마음으로 予實興慕
묘정에 배향하고 묘비를 세웠네 配廟題隧
덕적이 선대의 음덕을 빙자하여 德賊藉蔭
가문의 명성에 욕을 끼쳤는데 玷辱家聲
잘못 불러 우대해 등용하였으니 誤加虞旌
도리어 도적에게 병기를 준 격이었네 反資寇兵
권간과 표리가 되어 表裏權姦
사주를 받고 투서를 자행하여 受嗾投匭
나의 내치를 방해하고 讎我內治
나의 대계를 저해하였네 沮我大計
도리어 네 글자의 주를 달아서 反註四字
사람들을 속이고 선동하여 以訛以煽
서로 모여 통문을 발하니 聚首發通
이 서원을 더럽힐 뻔하였다 幾汙斯院
주모자를 섬멸하고 종범을 용서하였으나 殲魁赦從
어떤 이는 감격하고 두려워하지 않아 罔或感憚
택홍이 흉계를 드러내고 澤泓逞凶
인경이 난을 도모하였네 仁京謀亂
천 갈래 만 갈래로 어지러워도 千岐萬徑
모두 동일한 자취였으니 同湊一轍
공이 세상에 살아 있었다면 公而在世
손수 먼저 처단하였으리라 手先剿絶
우산이 난을 일으켰으나 禹山作逆
박륙은 부끄러울 것이 없고 博陸無愧
탁주가 나라를 어지럽혔으나 侂胄亂國
위공에게야 무슨 누가 되겠는가 魏公何累
더구나 내가 공을 존중하고 숭상하는 마음은 矧予尊尙
시종 변함이 없으니 終始無斁
속마음을 이에 다 기울여 中心是罄
밝으신 혼령이 이르길 바라노라 明靈庶格
[주1] 아득한 …… 모셨도다 : 화양동은 일찍이 우암이 은거하며 학문을 강론하던 곳인데 명나라가 망하자 마지막 황제 의종(毅宗)의 ‘비례부동(非禮不動)’ 4자의 필적을 구하여 화양 계곡의 암벽에 새겨 놓고 친히 ‘대명천지 숭정일월(大明天地 崇禎日月)’이라고 각자(刻字)하여 존명대의(尊明大義)를 밝혔고, 후에 만동묘(萬東廟)를 세워 명나라 황제를 제사하였으므로 황제의 영령을 모셨다고 말한 것이다.
[주2] 덕적(德賊)이 …… 끼쳤는데 : 덕적은 우암의 현손인 송덕상(宋德相)을 말한다. 1779년(정조3) 후계 문제를 언급한 〈청광저사소(請廣儲嗣疏)〉로 인하여 탄핵을 받고 역적으로 몰렸다. 특히 이 상소에 소주(小註)로 달린 “모양도리(某樣道理)”라는 네 글자는 홍국영이 끼워 넣었다고 하는데, 은언군(恩彥君) 이인(李䄄)의 아들 이담(李湛)을 원빈(元嬪)의 양자로 삼아 완풍군(完豐君)에 봉하고 왕의 후계자로 삼으려고 한 일을 의미한다 하여 논란이 되었다. 《果菴集 卷14 年譜》
[주3] 권간(權姦) : 홍국영(洪國榮)을 말한다.
[주4] 택홍(澤泓) : 대본에는 ‘澤弘’으로 되어 있는데 《홍재전서》 권20 〈화양서원 치제문(華陽書院致祭文)〉에 근거하여 ‘弘’을 ‘泓’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이택징(李澤徵)과 권홍징(權泓徵)을 말한다. 1782년 5월 이택징이 상소를 올렸는데, 송덕상을 비호하였다는 죄로 친국을 당하였다. 또 7월 공산(公山)의 업유(業儒)인 권홍징이 상소를 올리고 친국을 당하자 이택징과 전후로 호응하였다고 자백하였다. 《正祖實錄 6年 5月, 8月》
[주5] 인경(仁京) : 문인방(文仁邦)과 이경래(李京來)를 말한다. 문인방은 이택징의 인척이며 송덕상의 제자로, 인척인 이경래와 함께 송덕상을 위해 기병하기로 역모를 꾸미다가 발각되어 친국당하였다. 《正祖實錄 6年 11月, 12月》
[주6] 우산(禹山) : 한나라 때 곽우(霍禹)와 곽산(霍山)을 말한다. 곽우는 곽광(霍光)의 아들로 선제(宣帝) 때 우장군에 임명되고, 곽광 사후에 대사마에 올랐다. 곽산은 곽광의 증손자로 곽광의 공으로 낙평후(樂平侯)에 봉해졌다. 이들은 뒤에 모반을 꾀하다가 모두 죽음을 당하였다. 《漢書 卷68 霍光傳》
[주7] 박륙(博陸) : 박륙후(博陸侯)로, 한나라 곽광을 말한다. 무제의 유조(遺詔)를 받들어 소제(昭帝)를 잘 보필한 공으로 대사마 대장군에 임명되고 박륙후에 봉해졌다.
[주8] 탁주(侂胄) : 송나라 한탁주(韓侂胄)로, 명재상 한기(韓琦)의 증손이다. 평원군왕(平原郡王)에 봉해져서 전횡을 일삼았으며, 도학(道學)을 위학(僞學)이라 배척하여 많은 선비를 해쳤으며, 후에 공을 세워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려고 금나라를 칠 것을 주장하여 전쟁을 일으켰다가 패하자 그 죄로 죽음을 당하였다. 《宋史 姦臣列傳 韓侂胄》 훌륭한 조상을 두었으나 자손은 대역죄로 죽음을 당한 사례로 우암과 송덕상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인용한 것이다.
[주9] 위공(魏公) : 송나라 한기의 봉호(封號)이다. 당시에 범중엄(范仲淹)과 함께 훌륭한 재상으로 명망을 나란히 하였고, 위국공(魏國公)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충헌(忠獻)이다. 《宋史 卷312 韓琦列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