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중 이맘때가 등산하기가 가장 내키지 않는다. 꽃이 핀 것도 아니고, 나무에 잎이 푸른 것도 아니고, 높은 곳에 올라가면 얼음이 녹아 질퍽이고, 날씨까지 흐리면 더 휑하고 을씨년스럽다. 이 모든 게 산에 가지 않으려는 핑계일지도 모른다.
일찍 깬 잠에 뒤척이다 일어나 오이도행 전철에 오른다. 대부도 입구로 가는 버스를 반대 방향으로 타서 30분 허비하고 8시가 한참 지나서야 오이도박물관 앞에 선다.
[서해랑길 92구간]
하늘은 흐리고 바다는 잿빛이고, 그 너머 육지는 더 흐릿해 보인다. 긴 방조제 멀리 제부도가 아스라하다. 그래도 꽤 괜찮은 수묵화가 그려진다. '바다의 기별'이 희미한 냄새로 다가온다.
해안길을 버리고 산길로 올라서 오이도선사유적지를 둘러본다. 아주 먼 먼 옛 기억의 흔적을 들추어 내려 한다. 주말마다 산야를 헤매는 건 내 유전자 속에 남아있는 수렵채집인의 본능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유적지 내부를 살펴보면 좋으련만 박물관도 이곳도 개방 시간은 10시부터이다. 아쉬웠다.
다시 해안으로 내려선다. 오이도의 명물, 빨간 등대는 가까이서 보니 그리 감동적이지 않다. 그보다는 조개를 형상화한 조각작품이 더 인상적이다.
바다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걷는다. 갯벌 건너 송도의 높은 건물들이 인상적이다.
옥구공원 앞에서 길을 망설이다 옥구산으로 올라선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더 드넓고, 곰솔누리숲의 푸르름이 매우 인상적이다. 그리로 가자.
[곰솔누리숲]
옥구공원에서 신길온천역 인근까지 약 4km로 이어진 곰솔누리숲은 언제와도 걷기에 좋은 명품 숲이다. 시화호에서 오는 오염물질을 막으려 조성항 흙 언덕에 나무를 심은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전화위복의 표상이다.
직선으로 길게 이어져 시선을 먼 곳까지 이어지게 만드는 나무들의 도열이 참 인상적이다. 꽃피는 봄이 더 기대되는 것이다.
이제 고인이 된 가수 이동원의 노래를 들으며 걸었다. 이별노래, 애인, 내 사람이여..... 예전엔 그저 느끼하게만 다가왔는데, 미처 몰랐던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시적인 가사에 점점 빠져든다. 그의 노래도 이 숲 만큼이나 명품이다.
정왕역에서 걸음을 멈춘다. 약 10km, 3시간의 오롯이 나만을 위한 걷기가 기분 좋게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