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망에 이르는 죄와 이르지 않는 죄 (요일 5:13-21)
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14.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15.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16.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17.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18.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19.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2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21.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13절-17절: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우리에겐 영생이 있고 아들의 생명을 가졌다. 고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손님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다. 바로 당신의 아들이다. 그래서 아들과 아버지는 인격적으로 통하는 것이지 명령 강권이나 몽둥이로 통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했으니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가 뜻을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격의 세계이다.
‘뜻’ 하면 하고자 하는 것이고 기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결심과 의지에서 나온 것이고 소원 목적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가 그의 뜻, 곧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알려면 먼저 예수님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해답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에게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제 마음대로 세상구경 온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보내심을 따라 온 것이다. 사명이고 책임완수로 오신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 아버지가 하고자 하는 것 원하는 것 기뻐하는 것을 행한 것이다.
행할 때 예수님의, 즉 아들의 마음속에 거부감이나 불평감이나 원망감이 있었을까?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한 것은 원망감이 아닌, 아니면 선하고 거룩하고 옳고 의로운 것이라면 하나님과 똑같이 자원적 능동적 마음으로 행했을까?
①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는 것.(구원기도 할 수 있다)
② 말씀을 깨닫게 하는 것.
③ 성품을 입히는 것.(사건 존재 종 사도 동원)
④ 서로 사랑하는 것.(진리를 주고 받고 진리로 성령으로 교통)
이런(선하고 거룩하고 옳고 의롭고 한 것) 등등의 것을 당신은 좋아하시고 선지 사도들의 입을 통하여 우리에게 권고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부족하면 행동 활동적으로 구해야 한다.
이것을 보면 전부는 인간의 영적이며 성품적이다. 그렇다면 이제 당신의 뜻이 무엇이며 무엇을 주고 싶어 하며 무엇을 구하라고 하는 것인지 알만하다.
사람마다 원하는 것을 구하기 마련인데 그런데 문제는 내가 위에서 말한 그런 것을 원하느냐가 문제이다. 원하지 않으면 안 구할 터이고, 욕심이 안 나면 달라는 말이 안 나올 테니까!
자기가 자기를 위해서는 구하기 싫더라도 내 형제를 위해서 성도를 위해서 구할 마음은 없는가? 형제의 구원을 위해서 구하면 하나님이 형제를 구원하도록 무언가를 주신다.
오늘날 타락된 기독자들은 에덴동산의 환경을 많이 구하고 있다.
에덴동산을 왜 빼앗겼느냐? 왜 쫓겨났느냐?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에 생명과의 가치를 몰랐다. 말씀의 뜻을 몰랐다.
죄의 몸으로 에덴동산을 구하면 주겠느냐? 타락된 몸으로 에덴동산을 구하는 것은 누리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 자들에게 준들 다스릴 수 있느냐? 생명과는 못 따먹고 계속해서 선악과를 따먹게 된다.
우리에게 왜 이 말씀을 하실까?
14절: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는 모르더라도 당신이 척척 알아서 주시면 되지 않겠느냐? 왜 귀찮게 구하라고 하느냐? 약 올리려고? 우리로 하여금 최고의 신령하고 좋은 것을 주시고 싶어서! 욕심나게 해서 가지게 해서 다른 형제들을 구하게 하고 사랑케 하고 천국을 맛보이게 하려고, 악한 세상을 이기게 하려고, 형제를 살리려고! 그러므로 우리가 구할 것이 많다.
15절: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주의 뜻대로 구한 것은 1시간 후든 10시간 후든 계약적으로 주신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신령한 것을 얼마든지 받을 수 있다는 욕심이 생긴다.
사망에 이르는 죄와 이르지 않는 죄.
16절-17절: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사망에 이르는 죄를 어떤 이들은 불신자들의 죄이고,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는 성도들이 짓는 죄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불신자들의 죄는 사망이 아닌 곳에 있었는데 죄를 점점 크게 지으므로 수렁에 빠지듯이 점점 살아나오지 못할 사망에 이르는 것인가? 불신자들도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는가? 모든 것이 사망적인데! 불신자들은 아예 사망권 안에, 죄 아래 놓여져 있는 것이다.
본문을 보면 ‘형제’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성도에게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가 있다는 것이다.
성도에게 있어서 사망에 이르는 죄는 무엇이며,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가 무엇일까? 우리는 사망에 이르는 죄를 위해서 기도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헛 기도를 말아야 되겠다.
①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 몰라서 부주의로 되는 죄.(레4: 민15:22-31)
② 사망에 이르는 죄: 하나님과 완전히 끊어지는 것. 대 심판 멸망밖에 없다.
좀 더 구체적으로 상태적으로 살펴보면.
① 인간 내 편에서 위해드리는 것.(시은자. 주관성이 강하다-하나님 편에서 고역이다)
이것도 죄이다. 이런 나나 성도를 볼 때 기도해야 한다.
② 그 분의 의사와 뜻대로 한다고 하기는 하는데 빗나가는 것.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알지 못하고 어렴풋이 알고서 자기 주관성으로 하는 것. 이런 자타를 위해 기도할 것.
①과 ②는 부지런함에 속한다.
③ 믿기는 믿는데 아무 것도 안 하는 것.
하나님이 물질 존재 사건을 줬는데 안 한 것이므로 죄이다. 이런 자타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③은 나태에 속한다.
④ 믿는다고 하면서 우상을 섬기는 것. 이런 자는 맞아야 한다.
⑤ 진리도 알고 양심의 악도 깨닫고 말씀도 의사도 아는데 옳은 줄 알면서 행치 않는 것. 살릴 수도 있음에도 죽도록 놔두는 것. 이런 자는 몽둥이감이다.
④와 ⑤는 같은 죄이지만 알고도 하지 않으니 더 큰 벌을 받아야 한다.
⑥ 주님을 믿고 신비스러운 경험을 다고 했는데 이제는 주님을 안 믿는 자.(히: 성령의 비췸을 입고) 이런 자는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한다. 이런 자는 불신자보다 더하므로 몽둥이보다 더한 심판감이다.
⑦ 하나님과 단절하고 우상까지 섬기는 것. 이런 자도 역시 심판감이다.
개개인마다 이런 신앙정도와 상태가 있지만 사실은 이 모두가 우리 속에 조금씩은 다 들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기도해줘야겠구나’ 하는 것과, ‘이것은 하나님께 맡겨야하겠구나’ 하는 것이 있다.
진리도 깨닫고 한 사람이 타락을 해서 오히려 대적자가 되면 기도해 줄 필요가 없다. 그러나 믿음이 약해서 하느라고 했으나 잘못되었으면 기도해야 한다. 자기 은혜도 있고 깨달음도 있고 하나님의 응답을 체험한 자다.
사망에 이르는 죄를 꼭 지옥 천당을 염두에 두고 말할 필요는 없다. 불신자들의 죄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불신자는 아예 세상에 있는 것이다. 형제에게 한 말이다. 구약에서도 도피성에 피했다고 해도 고의적인 범죄자는 끌어내어 죽였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
18절-19절: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누구냐?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성도들의 중생된 영이다.
이 중생된 영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본질과 단일이고 성분적으로도 하나님과 단일성이고 성령이 내재해 계신다.
중생은 하나님의 예정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진리와 성령의 역사로써 되어 있다.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인데 하나님이 이 영을 중생시킬 때 마귀가 와서 중생을 시키지 말라고 훼방하거나 방해하거나 대립을 못하는 것이다.
물론 간접적인 방해는 하겠으나, 즉 성도를 위한 복음을 훼방하거나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는 등은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성도의 구원 면에 하등의 간섭을 받지 아니하고 마귀의 시험을 오히려 구원에 더 잘 이용을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진하게 나타낸다.(우리 인간 편에서 볼 때)
또 성도의 영을 중생을 시킨 후에도 마귀는 그 중생된 영에게 죄악을 감염시키거나 포로로 잡지도 못하고 그 영을 도로 죽이지도 못한다. 성도의 중생된 영은 질적으로 하나님의 것과 똑같으며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 중생된 영은 육신을 가지고 있는 성도가 옛사람 육이 주격이 되어 성화구원이 중단되고 범죄가 되더라도 징계는 받지만 죽지는 않는 것이다. 이러한 중생된 영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소속이 되었다는 보증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죄를 지었다가도 쉽게 회개가 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된다.
지각을 주었다.
20절-21절: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 하라.
언제든지 영의 일을 생각하여 의를 행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세속에 물들지 않는 자들은 영이 중생된 자요 하나님께 속했으니 하나님께로 난 자들이다. 모두 영적으로 산 자들이다.
그런데 19절에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들었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먼저 어떤 세상이 있는지 세상을 알아보자.
1.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자연물 그대로의 세상. 인간 두뇌의 고안에서 나온 건설된 세상.
2. 정신적인 세상:
① 기독교 신앙적인 세상.
② 불신세상.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든 것이며, 악한 자의 관할권의 세상은 하나님을 저버리고 인간들의 힘으로 세상을 건설하고 지배하고 누림성으로 사는 불신세상이다.
이 불신세상에 대해 마귀가 말했다. 눅4:6에 세상권세 영광 만국을 다 자기에게 주었다고! 고로 세상이 아무리 발전되고 호화찬란해도 그것은 마귀 것이니 돌볼 필요가 없다.
이것이 탐이 나면 마귀에게 절만 하면 된다. 절하면 얻을는지 모르지만 그것도 자기보다 절을 많이 하고 많이 엎드리는 자가 있으면 그 자가 그것을 가져가게 된다.
이것을 얻을 양으로 주님을 믿으면 안 되겠느냐? 자기 속지 주님은 안 속는다.
그러면 ‘예수 잘 믿으면 덤으로 준다’고 하는 것은? 안 믿으면 안 줄 것이고?
천국은 이 세상보다 더 좋은가? (계시록)
예수는 불신세상에서 죽였다. 불신자들이 죽였고. 우리도 세상에 대하여 죽었고, 세상이 나에게 대하여 죽었다. 그래서 산 예수는 불신세상에서 만날 수 없고 찾을 수 없다. 다시 강조하는 것은 세상적인 교훈에서 절대로 예수님을 찾을 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에게 지각을 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통찰력과 상상을 동원해서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믿음의 가치성과 성도의 존귀성을 알 수 있고, 세상이 어떤 것인지, 우리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성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우리에겐 아들이 있고 아버지가 있고 영생이 있고 예수를 깨달을수록 영생에 대한 느낌성이 진하고 세상이 아무리 으리으리해도 악한 자 안에 든 것이고 잠깐이라는 것을 안다.
불신세상은 자기들이 지어놓은 것이 하나님처럼 숭상되고 천국처럼 여겨지지만 성도가 볼 때는 그것이 우상이다.
우상은 생명이 없는 것이고, 또 그런 교훈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흐르지 않는다. 그러니까 세상은 별 것 아니다.
성도가 세상을 하나님처럼 쳐다보고 그것을 부러워하고 하나님보고 그것 안 준다고 원망 하고 불평하면 안 된다.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