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는 가을의 전령사이며 노래꾼이다. 곤충 중에 입으로 소리를 내지 않고 날개나 울림통으로 소리는 내는 곤충이 많은데 매미와 귀뚜라미가 대표적이다. 만약 입으로 소리를 그렇게 낸다면 하룻밤이면 지쳐 쓰러지고 말 것이지만 다행히도 많이 울기 위하여 자연은 그런 능력을 주었다. 짝을 찾기 위한 수단으로 소리를 내지만 사람이 들었을 때는 처량하기가 그지없고 계절의 슬픔에 젖게 한다. 예로부터 그런 자연을 노래한 묵객들의 작품도 많이 전해진다. 시인은 그보다 한 걸음 더 나가서 삶에서 얻은 기지를 발휘하여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이명으로 표현하는 묘기를 부렸다. 재치와 위트가 넘친다. 귀뚜라미 소리를 수평으로 방울 굴리는 소리라는 표현은 참으로 특이한 발상이다. 선비가 시를 읊듯이 품격의 운율로 가을을 연주하는 귀뚜라미, 세사의 소리를 전부 모아 둥글려 격조 높게 소리를 내는 가을의 전령사를 참으로 아름답게 묘사하였다. 그 소리는 사뭇 그리움을 불러내고 세상의 잡음을 모조리 흡수하여 오직 그 소리만 진리로 들린다. 그럴 때 심정의 하소연은 저절로 나타나게 되며 눈물을 흘리든가. 아니면 따라서 노래하게 된다. 그런데 시인은 자신의 귓속에 자리 잡은 이명으로 표현한다. 이명은 노후가 되면 찾아오는 청각의 질병이다. 시인은 그런 이명을, 귀뚜라미와 대비시키고 아름다움으로 웃어넘겨 안정을 찾는다. 무슨 질병이든 고민하면 커진다. 낙담으로 키운 병은 고쳐질 수가 없다. 이처럼 아름답게 표현하고 낙천적인 마음가짐을 갖는다면 그 어떤 병마도 이기는 것이다.[이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