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장,
정화는 처음부터 하나씩 가르친다.
모든 것이 생소한 지수는 정화가 가르치는 대로 최선을 다하며 배운다.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나자 지수는 많은 것을 배우고 나름대로 열심히 집안일과 음식에 맛을 낼 줄 알게 된다.
워낙에 솜씨가 있고 눈썰미가 있는 지수로서는 정화가 가르치는 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받아드리게 된다.
“미스 고!”
“네, 사모님!”
정화는 지수를 함부로 이름을 부르지 않고 꼬박 미스고라는 명칭으로 부르고 있었다.
“오늘부터 운전학원에 다녔으면 좋겠어요.”
“운전학원에요?”
“여기 내가 이미 등록을 해 놓았으니 운전면허를 취득을 하세요.
앞으로는 사장님 심부름도 있을 것이고 미스고 혼자서도 쇼핑을 해야 할 것들이 많을 겁니다.
그때마다 택시를 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는 없을 것이니 면허를 취득해 놓으면 편리할 것이에요.“
정화는 등록증을 준다.
“낮 시간대로 잡아 놓았어요.
사장님이 출근을 하시고 나면 오전시간에 집안청소를 끝내고 나서 점심을 먹고 가면 시간이 충분하겠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정화는 지수가 마음에 든다.
어떤 것을 가르쳐도 바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참으로 조용하고 성품이 온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더욱 마음에 든다.
이제 자신이 집안을 비운다 해도 어느 정도 마음이 놓인다.
정화는 다시 윤수를 고치기 위해 전국을 가보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다니곤 한다.
허나 윤수의 상태는 조금도 호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무당한테 가봐?”
정화는 심한 갈등을 느낀다.
지금까지 무당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살아온 정화로서는 선뜻 발걸음이 내 디뎌지지 않았다.
“그래, 내 자식은 낳게만 해 준다면 무당한테 가 보지 못할 것도 없다.”
정화는 이곳저곳을 수소문해서 장안에서 용하다는 무당을 찾는다.
소문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들어가면서 번호표를 받아 기다리고 있어야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대로 발길을 돌리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자식을 위하는 길이다.
이 정도로 참지를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기다리기로 마음을 정하고 번호표를 받는다.
정화의 번호표는 다음날 이른 아침이라는 말을 듣는다.
“내일 아침 일찍 오십시오.
오늘은 이미 선녀님께서 이 번호까지는 보시질 못하십니다.“
정화는 별수 없이 그곳을 나온다.
참으로 마음이 착잡하다.
그리고 다음날 남편이 출근을 하고 나서 곧 바로 집을 나선다.
이미 벌써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정화는 자신의 번호를 기다리며 사람들의 표정을 살핀다.
하나같이 근심과 걱정으로 표정들이 무거운 사람들이다.
세상의 근심은 자신만이 안고 있다고 생각한 정화는 그 사람들이 표정에서 자신만 힘든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정화의 번호에 불이 들어온다.
정화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들어선다.
곱게 화장을 하고 하얀 한복을 입고 단정하게 앉아 있는 젊은 여인네가 바로 선녀라는 여인이다.
선녀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정화를 본다.
“쯧쯧쯧..........
그렇게 호되게 당하면서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이제야 찾아?“
“네?”
“어리석은 것!
네 아들을 살리고 싶으면 네가 신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어?“
“무슨 말씀이신지요?”
“넌 신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
네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신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너 때문에 네 아들의 고통이 끝나지 않는다.“
“............................”
“이 어리석은 것아, 네 아들의 고통을 보면서도 깨달음이 없느냐?
네 몸신이 질투로 화가 상당히 많이 나 있다.“
“선녀님!
제가 무당......“
“그래, 우리처럼 무당이 되어야 한다.
너의 조상신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
”아!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어떻게 제가................“
“아직도 덜 혼난 모양이구나.
네 아들은 죽지도 살지도 못한다.
아무리 온갖 약을 써 봐도 또 현대의학으로도 네 아들의 병명조차 알 수 없을 것이다.
어서 가봐!“
선녀의 말은 얼음장보다 더 차갑다.
정화는 그곳을 나서면서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넋이 나간다.
자신이 무당이 될 팔자라니 믿어지지 않았고 믿고 싶지 않다.
정화는 용하다는 무당들을 찾아다닌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같은 말들이다.
자신의 피할 수 없는 길이라는 말들뿐이다.
아들 재윤과 함께 신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재윤은 반드시 신의 제자가 되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안 돼!
절대로 그 길을 가게 할 수도 없고 갈 수도 없어!“
정화는 부정을 한다.
절대로 받아드릴 수 없는 현실이다.
정화는 만신들의 말을 무시하며 버티어 낸다.
그러나 재윤이의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되어 가고 있었다.
“재윤아!
어서 아 하고 이것을 좀 먹어!“
재윤이는 음식을 거부한다.
아무리 먹여보려고 해도 입을 꼭 다문 채 입을 열지 않는다.
“재윤아!
엄마가 이렇게 빈다.
이것만 먹어, 응?“
재윤이는 눈도 뜨지 않고 그저 헐떡이며 힘겨워한다.
좋다는 약을 모두 먹여 봐도 아무런 효과도 나타나지 않는다.
“여보!
이제 우리 재윤이 어떻게 하죠?
이대로 두 손을 놓고 지켜 볼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이태민은 아내의 호소에 답변을 할 수가 없는 자신이 답답하다.
열 살이 넘은 아들의 모습은 참으로 두 눈을 뜨고 볼 수가 없다.
살아 있는 목숨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피골이 상접해 있는 모습이 눈살을 찌푸려들게 하고 가슴이 미어지게 한다.
“방법이 없어요.
이제는 그 어떤 방법도 찾을 수가 없어요.
무당들의 말대로 굿이라도 아니, 그보다 더한 것이라도 해서 우리 재윤이가 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다 하겠어요.“
”그럼, 당신이 정말 무당이라도 되겠다는 말이오?“
태민은 놀라면서 아내를 바라본다.
이제 정화는 굳은 결심을 한다.
“무당 아니라 무당할미라도 우리 재윤이만 살릴 수 있다면 못할 것이 어디 있겠어요.
우리 재윤이를 이대로 눈뜨고는 차마 볼 수 없어요.“
”그래도 당신이 무당이 된다는 말만은 하지 마!“
”누가 그러고 싶어서 그래요?
이젠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정화는 굳은 결심을 하면서 집안일을 모두 지수에게 맡긴다.
“미스고!
미안한 일이지만 내가 없더라도 맡아서 해 줄 수 있지요?“
“사모님!
아직은 미력하지만 열심히 노력을 하겠습니다.“
그동안 지수는 면허를 따고 운전연습을 통해서 이제는 웬만한 곳은 차를 운전해서 쇼핑을 하곤 한다.
그것은 정화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대로 재래시장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고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 쇼핑을 하는 것이 정화의 생활이었다.
정화는 지수를 데리고 쇼핑하는 법을 가르쳤고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는 장소를 알려주었다.
이제 재래시장은 갈 수도 없고 재래시장의 물건이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정화가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지수는 정화의 말대로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구입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정화는 지수에게 작은 소형 승용차를 내어준다.
쇼핑을 다니기 위해서는 필수품인 것이다.
남편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좋은 물건을 사야하고 고급품으로 구입을 해야 하는 것임을 정화는 강조를 한다.
지수는 이곳에 온 것이 반년이 넘는다.
그동안 지수의 모습은 상당히 변해 있었다.
정화의 말대로 집안에서는 바지보다는 간단한 원피스를 입고 그 위에 앞치마를 입고 있는 모습이 사랑스러운 여인의 모습이다.
정화는 지수를 위해 간단하고 여성스러운 원피스를 서너 벌 마련해 주었다.
이제 가난한 모습의 지수가 아니다.
참으로 여성스럽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변해있는 지수의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이 집안의 딸이나 동생쯤으로 보인다.
지수는 잠시도 게으름을 부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한다.
집안 구석구석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쓸고 닦으며 윤기가 흐르게 한다.
거의 매일은 외출을 하는 사모님 대신에 자신이 이 집안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잠시도 일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커다란 집안은 지수의 손길로 온기가 흐르고 윤기가 난다.
정화는 이제 집안일보다는 재윤이의 일로 해서 집안을 돌볼 사이가 없다.
이따금씩 지수가 묻는 것을 알려주고 가르쳐주는 정도로 집안일에 손을 댈 시간과 정신이 없다.
“미스고!
어쩜 앞으로는 내가 며칠 씩 집을 비울 수가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미스고가 있어서 안심을 하고 집을 비울게요.“
“사모님!
최선을 다해서 집안을 살피겠습니다.“
“사장님의 스케줄도 미스고에게 알려질 것이에요.
스케줄에 따라 사장님의 코디도 해 줄 수 있지요?“
정화는 남편의 모든 시중까지도 지수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사모님!
그것은 아직 자신이 없습니다.“
“아니요!
미스고의 안목이라면 충분히 해 낼 수 있어요.
생각보다 미스고의 안목이 아주 세련되어 있고 보는 수준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정화는 가끔 쇼핑에서 지수의 안목에 대해서 놀라곤 했다.
지수는 모든 것을 보는 안목이 세련되어 있었다.
남편의 넥타이 하나를 고르는데 정화는 지수의 도움을 얻는다.
생각했던 것보다 지수는 세련된 감각과 뛰어난 안목으로 정화를 놀라게 하기도 한다.
이제 음식 맛은 거의 정화의 솜씨를 흉내 낼 정도로 따라오고 있었다.
살아왔던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지수의 뛰어난 솜씨와 감각인 것이다.
그것은 아무리 가난한 생활이었어도 지수를 아무렇게나 키운 것이 아니라 모든 정성을 다해서 제대로 가르치고 키웠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정화는 미영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없는 사람이었지만 비굴하고 초라하게 보이지 않는 나름대로 지킬 것은 지켜가며 사는 품위를 엿볼 수 있었다.
“미스고!
사장님 속옷과 양말 그리고 손수건과 넥타이는 일 년에 두어 번씩 모두 새것으로 바꾸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요.
내가 신경을 쓰지 못하더라도 미스고가 알아서 새것으로 바꾸어 넣고 쇼핑을 할 때 넥타이나 손수건 등을 사다 넣어두는 것이 좋을 것이에요.“
정화는 그동안 입었던 속옷을 모두 꺼내어 놓는다.
또한 양말과 손수건과 넥타이 등도 모두 교체를 해 놓는다.
그것은 지수가 보고 배우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쓰레기봉투에 담아 내 놓으세요.”
“모두 버리는 것입니까?”
“그래요.”
“사모님!
버리시는 물건이면 제가 가져가도 될까요?“
“미스고가 뭐하게요?”
“동생들과 이모부를 드리고 싶습니다.”
지수는 숨김없이 솔직하게 말을 한다.
글: 일향 이봉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