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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1장 1-8절.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열매 맺음
1. 골로새서는 바울 사도가 로마 감옥에서 AD 61년에 기록한 것입니다.
(1) 사도행전 28장에 기록한 대로, 바울 사도는 AD 61년에 로마 감옥에 갇혔습니다.
감옥에 갇힌 이유는 사도행전 22-26장에 자세히 기록된 대로, 유대인들이 바울의 복음 전도를 못 하게 하려고, 총독에게 바울을 고소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총독 벨릭스에게 바울을 죽여달라고 고소했습니다.
그리고, 후임 총독 베스도에게도 바울을 죽여달라고 고소했습니다.
재판에서 바울이 사형받을 죄인이 아님이 밝혀졌습니다.
그래서, 총독은 바울을 무죄 석방하고자 했으나, 그냥 석방하면 유대인들이 폭력행사로 바울을 암살하기로 맹세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로마에 있는 네로 황제에게 재판받게 해달라고 상소했습니다.
(2) 그래서, 바울은 죄 없는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호송되어, 네로 황제의 재판을 받기까지 3년간 투옥되었습니다.
본 골로새서는 로마 감옥에 투옥된 첫해인 AD 61년에 기록한 것입니다.
2. 골로새서를 기록하게 된 동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바울 사도는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자기를 지키는 군사들이나 죄수들에게 서슴없이 전도했습니다.
그런데, 이 감옥 안에서 ‘오네시모’라는 죄수를 전도했습니다.
오네시모가 바울의 전도로 예수 믿고, 회개하면서 간증하는 내용을 들어보니, 감옥에 투옥된 죄목이 노예로서 주인의 집 재산을 도둑질하여 로마로 도망했다가 잡혀 온 것이었습니다.
(2) 그런데, 오네시모의 주인은 골로새 교회의 장로님인 빌레몬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골로새 교회의 장로님인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용서해주고, 오네시모가 훔친 돈은 자기가 갚아주겠노라고 편지를 썼습니다.
이 편지가 <빌레몬서>입니다.
(3) 그런데, 빌레몬 장로에게 편지를 쓰면서, 바울 사도는 그 장로님이 시무하고 있는 골로새 교회에도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이 편지가 오늘부터 보게 될 <골로새서>입니다.
3. 골로새서의 핵심적인 내용
(1) 골로새서의 내용은 먼저 1장에서, 골로새 교인들이 믿음 소망 사랑 가운데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감사하는 내용입니다.
바울의 복음 전도로 신앙 생활하게 된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것이 감옥 생활을 하고 있는 바울에게는 커다란 위로와 기쁨이 되었습니다.
(2) 그러나, 한편 2장에서, 바울 사도는 자기가 개척한 골로새 교회에 이단이 침투한 것을 강력하게 경계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에서 3년간 전도하면서 목숨의 위험을 무릅쓰면서 간접적으로 세웠던 골로새 교회에 이단이 침투하여, 교회를 빼앗아 가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3) 그리고, 3-4장에서는,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이 세상에 살 때, 하늘나라를 소망하면서 살 것과, 성도들 간에 사랑하고,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며 살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4. 오늘은 먼저 1장 1-6절에서, 골로새 교인들이 복음의 말씀을 듣고 깨달은 후부터, 교회에서 믿음 소망 사랑의 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것과 교회 밖으로도 전도의 열매를 잘 맺히고 있는 것을 감사한다는 내용입니다.
5. 오늘의 내용은 세 가지로 되어 있습니다.
1-2절은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에게 문안 인사하는 내용입니다.
3-6절은 골로새 교인들이 복음 진리를 듣고 깨달은 후부터 교회 안에서 믿음 소망 사랑의 생활을 잘하고, 열매 맺는 생활 하는 것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7-8절은 골로세 교회 목회자인 ‘에바브라’가 지금 바울에게 와서 골로새 교인들의 사랑을 전달해준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내용입니다.
6. 오늘 설교의 제목은 <믿음 소망 사랑으로 열매 맺자>입니다.
먼저 바울 사도가 골로새 교인들에게 문안 인사하면서,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축원하는 내용입니다.
1절.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New American Standard Bible: Paul, an apostle of Jesus Christ by the will of God, and Timothy our brother,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Παῦλος ἀπόστολος Χριστοῦ Ἰησοῦ διὰ θελήματος Θεοῦ καὶ Τιμόθεος ὁ ἀδελφὸς
Paul apostle of Christ Jesus by will of God and Timothy the brother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이란 바울이 열두 사도와는 다르게 사도가 된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열두 사도는 원래 예수님을 수행하고, 부활을 목격한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사도행전 1:21-22).
그러나 바울은 예수님을 수행했던 사람이 아니었고, 오히려 교회를 핍박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다메섹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갔을 때,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극적으로 만나서 사도가 된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9:1-5)
그 후로 16년만인 AD 48년경에 안디옥 교회에서 성령님의 지시로 선교사로 안수를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13:1-3)
열두 사도 외에 바나바도 사도라고 일컬어졌습니다. (사도행전 13:42)
2. ‘디모데’는 루스드라 출신이고 (사도행전 16:1), 아버지는 헬라인이었으나 어머니 유니게는 경건한 신앙인이었고, 외할머니 로이스도 경건한 신앙이었습니다. (디모데후서 1:5)
디모데는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고치면서 전도할 때 예수님을 믿었고, 바울이 2차 선교여행을 할 때, 바울에게서 할례를 받고, 바울의 전도 여행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6:1-3)
디모데는 바울의 빌립보와 데살로가와 베뢰아 전도에 동행했고, 고린도 전도에도 동행했으며, 3차 선교여행에도 동행했고,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을 때는 바울을 대신해서 에베소 교회에서 목회했고, 바울이 2차로 로마 감옥에 갇혀 있을 때는 바울에게로 오라는 서신(디모데후서)을 받고, 가죽 성경과 겉옷을 가지고 순교 직전의 바울에게로 갔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를 영적인 아들로 불렀습니다(디모데전서 1:2, 디모데후서 1:2).
2절.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o the saints and faithful brethren in Christ who are at Colossae: Grace to you and peace from God our Father.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τοῖς ἐν Κολοσσαῖς ἁγίοις καὶ πιστοῖς ἀδελφοῖς ἐν Χριστῷ·
to the in Colossae saints and faithful brothers in Christ
‘편지하노니’란 번역은 원문에는 없으나, 옳게 첨가한 번역입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χάρις ὑμῖν καὶ εἰρήνη ἀπὸ Θεοῦ Πατρὸς ἡμῶν.
grace to you and peace from God Father of us
‘있을지어다’는 동사가 원문에는 없으나, 번역상 잘 첨가한 것입니다.
1.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이란 골로새 교회를 가리키는데, 골로새는 뤼커스(Lycus) 강 남쪽 계곡에 있고, 에베소로부터 내륙 쪽으로 160킬로 떨어져 있습니다.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3년간 전도할 때(행 20:31) 에바브라가 바울의 전도를 받고, 고향 골로새에 가서 설립한 교회였고, 에바브라는 가까운 라오디게아 교회와 히에라볼리 교회도 설립했습니다. (골로새서 4:13)
이 교회에는 빌레몬이 장로로 있었고(빌레몬 1:1), 빌레몬의 종 오네시모가 주인의 재산을 도둑질하여 로마로 도망갔다가 로마 감옥에서 바울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AD 61년경에 골로새 교회의 목회자 에바브라가 로마 감옥에 있는 바울에게 선교헌금을 가지고 갔을 때,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이단이 침투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이 골로새서를 써 보냈습니다.
이 때 에바브라는 바울이 빌레몬 장로님에게 보내는 빌레몬서를 소지하고 빌레몬 장로님에게 전달하고, 에바브로디도를 빌레몬 장로에게 데려다주었습니다.
그 빌레몬서의 내용은 바울이 빌레몬 장로님에게 오네시모를 용서해달라는 것이었고, 도둑질한 것은 바울이 물어주겠다는 것이었고, 다시 오네시모를 바울에로 돌려보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2. 골로새 교회에 침투한 이단이란 유대교의 율법주의(Jewish legalism), 헬라철학의 신비주의(Greek mysticism), 헬라철학의 금욕주의(Greek asceticism),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영지주의(gnosticism) 등이었습니다.
다음의 성구가 그것들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1:15-17. 그리스도의 선재(先在)성을 부인하는 사람들
2:8. 인간적인 철학과 헛된 속임수
2:16. 먹고 마시는 것, 절기, 초하루, 안식일 문제
2:11, 3:11. 할례 문제
2:10, 15. 사신 숭배
2:18. 일부러 겸손함, 천사 숭배
2:21, 23. 금욕주의자
3. ‘은혜’(χάρις: grace)란 헬라 사회에서 사용한 인사법이었고, ‘평강’(εἰρήνη: peace)이란 유대인들의 인사법(שָׁל֣וֹם: 샬롬: peace)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1. <은혜>란 무엇입니까?
은혜란 죄와 지옥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구원받은 것에 대한 기쁨입니다.
우리가 부모님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도 기쁩니다.
부모님은 우리가 잘하든 못하든 그냥 용서하시고 사랑해주시기 때문에 기쁩니다.
또,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좋은 선물을 받았을 때, 우리는 기쁩니다.
내가 잘해준 것도 없는데, 그냥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귀한 선물을 주니까, 기쁜 것입니다.
(2)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원수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귀한 독생자를 주시고, 나 대신 죽고 지옥의 저주를 담당하셨기 때문에, 이 큰 은혜를 기뻐하고 감사한 것입니다.
2. <평강>이란 무엇입니까?
‘평강’이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결과로 마음에 누리는 영원한 평안을 가리킵니다.
이 평강이란 육신이 건강하거나, 경제적으로 안정되거나, 가정이 평안한 데서 오는 외부적인 평안만이 아닙니다.
이 평강이란 비록 육신적으로는 고달프고, 감옥에 갇혀 있더라도, 주님을 마음속에 모시는 데서 오는 참 평화를 가리킵니다.
<찬송가 495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짐을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록 이 세상 험하고, 거친 세파에서 실패했더라도, 천국 구원의 은혜와 주님(성령님)이 마음에 주시는 평화 속에서, 참된 행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3-6절에서, 바울 사도는 골로새 교인들이 신앙생활을 잘해가는 것을 보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3절.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e give thanks to God, the Father of our Lord Jesus Christ, praying always for you,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Εὐχαριστοῦμεν τῷ Θεῷ Πατρὶ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we give thanks to the God Father of the Lord of us Jesus Christ,
‘감사하노라’(Εὐχαριστοῦμεν)는 현재형으로서(we give thanks) 항상 감사하고 있다는 뜻이고, 여기서 주어가 ‘우리’(1인칭 복수)인 것은 소위 ‘서신적 복수’(epistolary plural)로서 ‘내가 감사한다’(I thank)는 뜻이고, 한편 바울과 디모데가 함께 감사한다는 뜻에서 실제적인 복수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Linguistec Key. 564.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πάντοτε περὶ ὑμῶν προσευχόμενοι,
continually for you praying
직역하면 ‘너희를 위해서 끊임없이 우리가 기도하면서’ (감사한다)는 뜻입니다.
‘기도할 때마다’에서 동사(προσευχόμενοι)는 현재분사이고(praying) 역시 의미상 주어는 일인칭 남성 복수(우리. NMP)입니다.
1. 바울은 골로새 교회를 위해서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감사 기도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기도할 때마다 감사함으로 아뢰라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실제로 골로새서에도 각장 마다 감사의 내용이 있습니다.
1: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것은 성도로서 얻을 수 있는 기업이 있다는 것 때문에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2:6-7.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으로 넘치게 하라.
3:15-17.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15절)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16절)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17절)
4:2.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바울 사도는 또한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8)
2. 바울 사도는 골로새 교인들을 생각할 때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우리도 감사의 생활을 하려면 기도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 나의 죄를 회개하여 청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 삶의 불안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함께 하셔서 참된 평안을 주십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감사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는, 잘 아시는 대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기도했고 감사했습니다.
원래 ‘기도’란 하나님 앞에 들어가고 나오는 것을 가리킵니다.
성도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내 진정을 토하면, 마음에 시원함을 얻습니다.
원래 사람이란 어린 이에게라도 이야기를 하고 나면, 답답하던 마음이 시원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물며 나를 죄와 지옥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독생자를 내주어 죽게 하신 사랑의 아버지 앞에 무엇을 아뢰지 못할 것이 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기도하러 들어갈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즉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믿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도한 후에 사죄와 천국 구원의 은혜가 가득하고, 우리가 비록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는 감격이 가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날마다 기도하시는 성도님들 되셔서, 감사가 넘치는 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4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ince we heard of your faith in Christ Jesus and the love which you have for all the saints;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ἀκούσαντες τὴν πίστιν ὑμῶν ἐν Χριστῷ Ἰησοῦ, καὶ τὴν ἀγάπην ἣν ἔχετε εἰς πάντας τοὺς ἁγίους
having heard of the faith of you in Christ Jesus, and the love that you have toward all the saints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τὴν ἀγάπην ἣν ἔχετε εἰς πάντας τοὺς ἁγίους)은 직역하면 ‘모든 성도들에 대해 너희가 가지고 있는 사랑’(the love that you have toward all the saints)이란 뜻입니다.
‘너희가 가지고 있는’(ἔχετε)은 현재형입니다(you have).
‘들음이요’(ἀκούσα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heard) 과거에 확실히 들은 것을 가리킵니다.
1. 바울이 기도 때마다 감사한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째는 예수님께 대한 골로새 교인들의 믿음 때문에 감사하고, 둘째는 골로새 교인들이 성도들에게 베푼 사랑 때문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믿음’이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서 우선 처음 예수님을 믿은 믿음을 가리키고, 또한 예수님 안에서(ἐν Χριστῷ Ἰησοῦ: in Christ Jesus) 살아가는 믿음 생활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기도하여 성령님의 인격적인 감동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사랑’이란 예수님을 통해서 죄 용서를 받은 무궁한 사랑을 체험한 성도가 성도와 이웃에 대해 사랑의 마음과 행동을 갖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성도가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가질 때, 서로 신뢰하는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 안에서 이루어지는 상하 수평적인 관계를 가리킵니다.
이 사랑은 사회 계층 간의 차별을 초월한 사랑입니다. (골로새서 3:11)
그런데 이 믿음과 사랑은 서로 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라고 했습니다(야고보서 2:18-20, 요한일서 4:20)
그러나 이 이웃 사랑은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부어주셔야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마음속에는 근본적으로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고, 오직 부부와 자녀와 손자에 대한 사랑뿐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바울은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같이 묶어서 말씀한 곳이 많습니다.
골로새서 1:4-5.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데살로니가전서 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데살로니가전서 5: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고린도전서 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2. 바울 사도는 골로새 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 감사를 드렸습니다.
골로새 교인들이 원래는 우상 마귀를 믿고, 세상 임금을 믿고, 돈을 믿고, 자기를 믿는 불신자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 되심을 믿고, 영원한 지옥에서 영원한 천국으로 구원해주신 주님이심을 믿었습니다.
당시에 세상에서는 로마의 황제를 주님으로 섬겼습니다.
그런데, 골로새 교인들은 세상 왕을 무서워하지 않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섬겼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섬기는 것은 세상 불신자들과 불가피하게 충돌을 갖게 마련입니다.
우선 영적으로 마귀와 예수님을 겸하여 주인으로 섬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정에서도 부모님이나 남편을 주인으로 섬기다가 예수님을 주인이요 왕으로 믿고 섬기니 충돌이 없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10장 36절에서, ‘집안 식구가 원수리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또, 가장 친한 친구 사이에도, 어떤 경우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하는가, 친구의 말을 따라야 하는가, 양단간에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생깁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섬기려면, 세상 친구와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골로새 교인들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섬기는 모범적인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확실하게 가져서, 예수님을 주인으로 나의 임금님으로 믿고 섬기시기를 축원합니다!
3.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의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 때문에 감사했습니다.
(1) 유명한 사회학자 <홉스>(Thomas Hobbs. 1588-1679)는 “사람이 사는 것은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에 대한 투쟁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사람은 서로 생존 경쟁자이고, 모든 사람은 서로 원수라는 것입니다.
학교에서부터 다른 학생을 이겨야만 내가 산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어린아이들에게도 일등 의식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동물의 세계도 서로 먹이를 차지하기 위해서 무섭게 싸웁니다.
또, 서로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서 수놈들끼리 무섭게 싸웁니다.
그래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서 생존경쟁을 합니다.
심지어는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픕니다.
그런데, 골로새 교인들은 형제를 위해서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형제를 위해서 기도해주고, 형제를 위해서 물질로 돕고, 형제를 위해서 병들 때 돌보았습니다.
골로새 교인들이 형제를 사랑한 것은 집단 이기주의를 위해서 당을 지어 상대방과 크게 싸우려고 그리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적으로는 아무런 이해타산이 없는 형제라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한 것입니다.
어디에서 이런 사랑을 배웠습니까?
학교에서 배운 것이 아닙니다.
학교에서 민족주의를 가르치는 것도 크게는 민족적 집단 이기주의에 해당합니다.
자기 향토를 사랑한다고 해서, 자기 향토에 원자력 발전소를 못 세우게 하는 것도 지역적 집단 이기주의에 해당합니다.
(2) 그런데, 골로새 교인들은 아무런 이해타산이 없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출처는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로마서 5장 8절 말씀대로,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이고 원수이지만, 가장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 죄인을 대신하여 죽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요한일서 3장 16절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시키신 데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알고, 우리도 이웃을 이처럼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요한일서의 말씀대로,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있고,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그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깨닫고, 그 사랑을 가지고 이웃을 사랑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5절.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ecause of the hope laid up for you in heaven, of which you previously heard in the word of truth, the gospel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διὰ τὴν ἐλπίδα τὴν ἀποκειμένην ὑμῖν ἐν τοῖς οὐρανοῖς,
because of the hope the being laid up for you in the heavens
‘쌓아둔’(ἀποκειμένην)은 현재분사 수동태로서(being laid up) 현재 하늘에 쌓여져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ἣν προηκούσατε ἐν τῷ λόγῳ τῆς ἀληθείας, τοῦ εὐαγγελίου
which you heard of before in the word of truth, the gospel
직역하면 ‘이것은(이 소망은) 진리의 말씀 즉 복음 안에서 너희가 전에 들은 것이다’란 뜻입니다.
‘들은 것이라’(προηκούσατε)는 부정과거로서(you heard) 과거에 확실히 들은 사실을 가키고, 원형(προακούω)은 ‘앞에’(πρό)라는 전치사와 ‘듣다’(ἀκούω)라는 동사의 합성어입니다.
1. 신앙의 제 3 요소인 ‘소망’은 앞 절의 ‘믿음’ ‘사랑’과 함께 신앙의 삼 대 요소입니다.
그런데 이 소망이 중요한 이유는 아무리 믿음과 사랑이 갖추어졌다고 하더라도, 장차 하늘나라에서 완성된 완전 구원의 소망이 없다면, 그것은 한낱 현실주의와 인간 수양이나 도덕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2. 불신자들은 장차 천국 소망이 없는 자들이요(살전 4:13), 궁극적으로 헛되고 헛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전도서 1:2).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이란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을 위해서 하늘나라에 쌓아두신 영생 축복을 가리킵니다.
이 하늘나라는 질병도 없고 죽음도 없고, 이웃과의 싸움도 없고 성령 충만한 복된 세상입니다.
찬송가 237장. 저 건너편 강 언덕에 아름다운 낙원 있네. 믿는 이만 그 곳으로 가겠네. 황금 문을 들어가서 주님 함께 살리로다. 너와 날 위해 황금 종 울린다. 저 울리는 종소리와 천사들의 노랫소리. 영광일세 할렐루야 기쁘다. 빛나는 저 강 건너편 아름답고 영원한 곳. 너와 날 위해 황금종 울린다.
3.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믿음, 사랑, 소망을 갖게 된 것은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골로새 교인들은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깨달아서(6절) 믿음과 소망을 갖고 사랑의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은혜를 깨달았다’는 것은 자기의 율법적인 생활로 천국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믿음으로 천국 구원을 얻게 된 그 은혜를 깨닫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은혜를 깨닫고 열매를 맺어 자란다’(6절)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의롭게 되어 화목한 마음을 갖게 된 것이고, 또한 날마다 성령님과 말씀의 인도를 받으며 복된 생활을 해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Herbert M. Carson)
이처럼 은혜를 깨닫고 복된 열매를 맺는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비단 골로새 교인들만이 아니라, ‘온 천하에서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진리란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들만 특별한 구원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이단들을 잘못된 것입니다.
4.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을 보고 감사한 것은 그들이 천국을 <소망>하면서, 천국을 위해서 많은 상을 쌓아두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성경 마태복음 6장에는, 우리가 세상 나라에서 살 것을 위해서만 동분서주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하라고 했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이 세상은 잠시 잠간입니다.
인생은 70이고 건강하면 80이고, 아침 안개와 같고, 풀과 풀의 꽃 같고, 그림자 같고, 나그네같이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서 살게 될 천국은 영원한 곳입니다.
이 세상은 천국을 준비하는 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잠에 깊이 취해서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천국을 소망하면서, 날마다 깨어 있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두 사람이 맷돌을 갈다가 한 사람은 주님 만나서 천국에 들어가고, 한 사람은 세상에 취해서 살다가 멸망을 받습니다.
다섯 처녀는 날마다 깨어서 기도하다가, 신랑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 들어가고, 다섯 처녀는 세상 잠에 취해서 살다가 천국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로마서 13장 11절에는 “이제는 마땅히 자다가 깰 때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재림과 천국 구원이 가까웠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재림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세상을 언제 떠날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늘 깨어서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주님을 대신하여, 당부하오니, 제발 좀 세상 잠에 취해서 자지 말고, 날마다 깨어 기도하시고 주님과 천국을 사모하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6절.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ich has come to you, just as in all the world also it is constantly bearing fruit and increasing, even as it has been doing in you also since the day you heard of it and understood the grace of God in truth;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τοῦ παρόντος εἰς ὑμᾶς,
the (one) being present unto you,
직역하면 ‘이것이 너희에게 이르매’란 뜻인데, 한글 번역은 의역한 것입니다.
‘이르매’(παρόντος)는 현재분사로서(being present) 현재 이르러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καθὼς καὶ ἐν παντὶ τῷ κόσμῳ ἐστὶν καρποφορούμενον καὶ αὐξανόμενον, καθὼς καὶ ἐν ὑμῖν,
just as also in all the world it is bearing fruit and increasing, just as also among you
직역하면 ‘온 세상에서와 같이 너희에게서도 그것이 열매를 맺으면서 자라고 있다’는 뜻입니다.
‘열매 맺어 자라는도다’(ἐστὶν καρποφορούμενον καὶ αὐξανόμενον)에서 맨 앞의 동사는 현재형이고(it is) 두 번째 동사(καρποφορούμενον)는 현재분사 중간태로서(bearing fruit) 복음이 스스로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을 강조하고 있고(the middle empasizes that gospel bears fruit of itself), 분사는 끊임없이 자라고 있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empasizing the continuity of the process).
마지막 동사(αὐξανόμενον)는 현재분사인데(increasing) 앞의 동사가 개인적이고 내적으로 활동하는 것(inner working)을 가리는 것에 반해서 마지막 동사는 외적인 확장(outward expansion)을 가리킵니다. Linguistic Key. 564.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ἀφ’ ἧς ἡμέρας ἠκούσατε καὶ ἐπέγνωτε τὴν χάριν τοῦ Θεοῦ ἐν ἀληθείᾳ·
from the day you heard and you knew the grace of the God in truth
직역하면 ‘너희가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듣고 알게 된 날부터’란 뜻입니다.
‘듣고’(ἠκούσατε)는 부정과거로서(you heard)는 과거에 확실히 들은 사실을 가리킵니다.
‘깨달은’(ἐπέγνωτε)도 부정과거인데(knew) ‘기동의 부정과거’(ingressive aorist)로서 ‘알게 된’(you came to know)이란 뜻이고, 원형(ἐπιγινώσκω)은 ‘위에’(ἐπί)라는 전치사와 ‘알다’(γινώσκω)란 동사의 합성어로서, 완전히 아는 것을 가리킵니다.
‘참으로’(ἐν ἀληθείᾳ)는 직역하면 ‘진리 안에서’란 뜻으로서 ‘(너희가 듣고)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된 날부터’란 뜻입니다.
1. 본 절은 복음을 듣고 깨달은 사람은 열매 맺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을 듣고 깨달은 사람은 성령의 열매를 맺고, 육신적인 복된 열매들을 맺고, 전도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매를 맺을 뿐만 아니라 자란다고 했습니다.
즉 성령님 안에서 말씀의 은혜로 계속 영적인 성장을 하고, 육신적으로도 더 풍성한 복을 받고, 교회적으로도 구원받은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열매 맺고 자라나는 신앙생활은 빌립보 교회만이 아니라, 전체 세계 그리스도인들에게 보편적인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단들이 일시적으로 있다 사라지고, 지역적으로 있다 사라지는 현상과 대조됩니다.
2. 골로새 교인들은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열매를 맺는 생활을 했습니다.
(1) 바울 사도는 골로새 교인들이 예배당을 멋있게 지어서 감사하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 사도는 골로새 교인들이 돈을 많이 벌고 헌금을 많이 모아두어서 감사하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 사도는 골로새 교인들이 출세해서 높은 고관이 되었다고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성도들이 세상에서도 잘 되는 것이 주의 종들의 감사와 기쁨인 것은 사실입니다.
바울 사도도 성도들의 건강을 위해서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요한삼서에는 영혼만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육신도 강건하고, 범사에 잘 되는 것을 주님이 원하신다고 했습니다.
(2) 그러나, 여기서 바울 사도가 감사한 것은 골로새 교인들이 복음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깨닫고, 그 복음 신앙으로써 아름다운 <열매 맺는 생활>을 하기 때문에, 감사했던 것입니다.
① 성경은 도덕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경제학책도 아닙니다.
성경은 정치학책도 아닙니다.
성경은 의학책도 아닙니다.
성경은 역사책도 아닙니다.
물론 성경에 이런 요소가 다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본질적으로 구원의 복음 진리를 말씀한 책입니다.
이 구원의 복음 진리란 우리 인간이 모두 지옥 갈 죄인인데, 하나님이 우리 죄인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려고, 당신의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서 우리 대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써,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지옥에서 천국으로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바로 이 복음 진리, 구원의 진리를 가르치는 책입니다.
천하 인간에 예수님 밖에는 구원 얻을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는데, 바로 성경에만 이 예수님의 구원의 복음 진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② 그런데, 똑같이 성경을 읽고, 성경으로써 설교를 들어도, 복음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있고, 깨닫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 진리를 깨닫고 예수님을 믿는 것을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혜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야고보서 2: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베드로후서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③ 그런데, 믿음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님은 이 시간에도 성령으로 찾아오셔서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면서, 여러분들의 마음 문을 열라고 하십니다.
요한계시록 3:20.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조용히 여러분들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조용히 마음 문을 여시고 주님(성령님)을 마음속에 모셔 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날마다 주님(성령님)을 모시고 살아서,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골로새 교인들처럼 복음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셔들여서, 구원의 기쁨으로 오늘 <성찬 예식>에 참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7-8절은 골로새 교회 목회자인 에바브라가 지금 바울에게 와서 골로새 교인들의 사랑을 전달해준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내용입니다.
7절.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New American Standard Bible: just as you learned it from Epaphras, our beloved fellow bond-servant, who is a faithful servant of Christ on our behalf,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καθὼς ἐμάθετε ἀπὸ Ἐπαφρᾶ τοῦ ἀγαπητοῦ συνδούλου ἡμῶν,
just as you learned from Epaphras the beloved fellow servant of us
‘배웠나니’(ἐμάθετε)는 부정과거로서(you learned) 과거에 확실히 배운 사실을 가리킵니다.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ὅς ἐστιν πιστὸς ὑπὲρ ὑμῶν διάκονος τοῦ Χριστοῦ,
who is faithful for you servant of the Christ
‘일꾼이요’에서 동사(ἐστιν)는 현재형입니다(is).
1.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에바브라’는 골로새 사람으로서, 바울이 3년간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에서 복음을 전할 때(사도행전 19:9), 에베소에 가서 바울 사도를 통해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은 다음에, 자기 고향 골로새에 가서 교회를 세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에바브라는 골로새 교회에서 목회하는 주의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골로새 교회가 근본적으로 바울을 통해서 예수 믿고 세워진 교회이기 때문에, 골로새 교회는 바울 사도가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서, 선교헌금을 걷어서, 목회자인 에바브라를 통해서 로마 감옥에 있는 바울에게 가지고 가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 골로새서를 쓸 당시, 골로새 교회의 목회자인 에바브라는 바울과 함께 로마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2.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에바브라’는 신실한 목회자로 칭찬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리 골로새 교회가 바울 사도의 전도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설립되었다고 해도, 목회자인 에바브라가 바울을 시기하여, 교회에서 자기의 권위를 내세우려고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바브라는 골로새 교회가 바울을 통해서 입은 복음 전도의 은혜에 감사해서, 교인들에게 선교헌금을 거두어다가, 에바브라가 직접 로마 감옥에까지 가서 바울에게 선교헌금을 전달하고, 얼마 동안 바울과 함께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참으로 안 보일 때, 주님과 바울에게 감사할 줄 알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신실하게 목회한 에바브라의 충성심이 여실히 엿보이는 모습입니다.
부교역자나 교회 직원들이나 심지어 선교사들조차도, 담임 목사나 장로들이나 파송교회가 보지 않은 곳에서는 불충성할 수 있는데, 에바브라는 사람이 안 보여도 주님 앞에서 충성한 참으로 신실한 일꾼이었습니다.
종말이 되면, 주의 종들이 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고 싸우면서 외식할 것이지만, 신실한 종이 되어 주인의 집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종은 복되도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45-46.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8절.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알린 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he also informed us of your love in the Spirit.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알린 자니라.
ὁ καὶ δηλώσας ἡμῖν τὴν ὑμῶν ἀγάπην ἐν Πνεύματι.
the (one) also having made known to us the your love in Spirit
‘알린’(δηλώσας)은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made known) 과거에 확실히 알게 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1. ‘에바브라’는 바울에게서 예수님의 희생적 구원의 사랑을 받았고, 이 구원의 복음을 골로새에 전해서 교회를 설립했고, 골로새 교회와 에바브라는 로마 감옥에서 고난을 당하고 있는 바울 사도에게 자신들이 받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선교헌금으로써 나타냈습니다.
아직 골로새 교인들은 직접적으로 바울 사도를 보지 못했으나, 성령 안에서 예수님과 바울의 사랑을 체험했고, 이제는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 안에서 선교헌금을 전달함으로써 주의 사랑을 바울에게 표현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신령한 것으로 사랑을 받았으면, 육신의 것으로 보답하는 것이 참 좋은 일입니다.
고린도전서 9:11.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에바브라와 골로새 교인들은 은혜에 보답하는 것을 아는 참 신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즉 신령한 은혜를 입었으니 육신의 것으로 보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들도 주님의 은혜와 부모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보답할 줄 아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좋으신 주님이 성도님들의 일생과 자손 대대로 큰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