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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장 18절로 25절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
오늘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날을 기념하는 성탄절입니다.
1. 예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인간세계에 오셨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지려고, 뭍에 있는 사람이 물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2. 죄에서 구원하러 오시려고, 죄 없으신 예수님이 처녀의 몸을 통해서 오셨습니다.
(1) 마리아는 당시 열 여섯 살이었습니다.
처녀라도 죄가 있습니다.
단지, 성령으로 잉태되었으므로 죄가 없으십니다.
18절.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2) 정혼한다는 것은 법적인 부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결혼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동거하지는 않는 육신적으로 처녀 총각입니다.
그래서 당시에 처녀가 아기를 배면,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런데도, 마리아가 하나님의 아기를 배겠다고 순종한 것은 큰 믿음이었습니다.
(3) 당시에 마리아가 나사렛에서 살아가는 것은 큰 고통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나사렛 마을을 가난했고, 마리아의 집도 가난했으며, 로마는 군사들이 돈과 처녀들을 빼앗아 갔고, 헤롯왕도 잔인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나 모든 서민들은 세상이 뒤바뀌어서 새로운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때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너에게 온 세상의 구주를 잉태하게 해주겠다고 하니까, 마리아는 죽음을 각오하고 그렇게 해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마치 에스더가 자기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한 것과 같이 마리아도 구세주를 잉태하기 위해서 그런 큰 믿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4) 아기가 잉태되자, 마리아는 먼저 외갓집 이모되는 엘리사벳에게 갔습니다.
엘리사벳은 당시 최고의 권좌에 있는 대제사장 사갸랴의 아내였습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에게 인사를 하자, 엘리사벳 배속에 있던 세례 요한이 마리아의 뱃 속에 있는 아기 예수님을 보고, 기뻐 뛰놀았습니다.
그러면서, 엘리사벳은 성령의 감동으로, 마리아의 태중에 있는 아기가 메시야라고 노래했습니다.
이처럼, 당시 최고 권력자인 대제사장의 아내가 마리아를 보고, <주의 어머니>라고 했으니, 마리아는 사회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대제사장 사갸랴도 기적으로 세례 요한을 잉태했기 때문에, 마리아가 천사의 말을 믿고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가졌다는 사실을 거짓말이 아니라고 믿을 수 있었습니다.
(5) 그런데, 막상 결혼 당사자인 요셉이 정혼한 마리아가 임신한 것을 보고, 깊은 고민에 빠져있었습니다.
요셉이 마리아의 아기는 자기 아기가 아니고 불륜의 씨앗이라고 하면, 마리아는 돌에 맞아 죽게 되었습니다.
또한 마리아의 아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해도 사람들이 거짓말이라고 하면서 죽일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서, 가만히 마리아와의 결혼을 파혼시키려고만 했습니다.
19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 삼지 않고 조용히 덮어간다는 것입니다.)
나같은 성질에는 화가 나서 욕하고 싸우면서 파장을 만들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불쌍한 사람을 도우려는 의롭고 참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혼인을 없는 것으로 파혼하려고만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20절 말씀대로, 천사가 꿈 속에 찾아와서, 마리아가 잉태된 것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20절.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1) 그러면서, 마리아를 아내로 데려오라고 말씀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천사의 분부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마리아를 아내로 데려왔습니다.
(2) 이처럼 요셉이 마리아의 남편으로서, 태중의 아이가 자기 아이라고 보증해주는 것은 마리아의 아기를 보호해주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마리아가 나사렛을 떠나서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과 애굽으로 갔다오는 길에서 마리아와 아기를 보호해주는 역할을 요셉이 했기 때문입니다.
아기를 임심한 여자 혼자 힘으로 베들레헴에 가고 애굽을 피난 가서 산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요셉이 보호자가 되어주었습니다.
24절.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왔으나
요셉이 마리아를 데리러 오는 것이 마리아에게는 큰 기쁨이고 자기가 살 길이었습니다.
만일 요셉이 데리러 오지 않고 내버려둔다면, 마리아의 아기를 사회적으로 버림을 받게 됩니다.
이처럼 요셉이 마리아를 데려와서 함께 살았으나, 아기 예수를 낳기까지는 마리아와 동침하지 않았습니다.
25절.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이렇게 해서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입니다.
이처럼, 마리아가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요셉이 처녀인 아내를 희생하는 희생이 없었더라면, 아기 예수님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가족이 다 구원받으시고,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을 통해서 구원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3.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온 인류의 다 합친 것 보다도 더 귀중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보다 소중한 예수님을 희생시켜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에 감사를 드립시다!
4. 예수님이 인간 세상에 탄생하시므로,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 하시게 되었습니다.
임마누엘입니다.
23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1)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최대의 축복입니다.
세상에 부자가 찾아와도 복입니다.
세상에 높은 분이 찾아와도 복입니다.
세상에서 유명한 스타가 찾아와도 복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것이 얼마나 놀라운 복입니까?
(2) 막상 아기 예수님이 탄생했을 때, 세상의 권력자들과 부자들은 축하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목동들은 천사의 지시를 받고, 마굿간에 누워있는 아기 예수님을 찾아가 경배했습니다.
이것까지는 초라한 생일 축하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동방의 박사 세 사람이 찾아와서 경배하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바칠 때에, 영광스러운 축하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성탄절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함께 하시기 축원합니다!
4. 우리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실 분이십니다.
21절.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1) 예수님은 병에서나 가난에서나 싸움에서 구원하러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형제간의 유산싸움에 재판장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유대나라와 로마나라의 싸움에 개입하시는 분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긍극적으로 전문적인 의사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지만, 궁극적으로 예수님은 의사가 아니십니다.
만일 그랬다면, 의사들이 데모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궁극적으로, 죄인들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말씀에,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5. 그러면, 예수님이 구원하려는 죄는 어떤 죄입니까?
예수님이 구원하려는 죄인은 어떤 죄인입니까?
(1) 우리나라 법률에는 <범죄>에 대해서,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범죄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첫째, 범죄에 대한 분명한 의사, 고의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의사와 고의성이 없는 어린아이나 정신병자는 책임성이 조각됩니다.
둘째, 분명한 실제적 범죄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의사만 가지고, 실제 행동을 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습니다.
셋째, 처벌한 법조문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사회에 해악을 끼쳤어도, 처벌한 근거 법규가 없으면, 처벌할 수 없습니다.
(2) 이러한 세 가지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면, 경찰이나 판검사가 처벌할 수 있습니다.
아침 일찍 환경미화원이 거리의 쓰레기를 치웁니다.
병원에서는 의사들이 환자에게서 병균을 없앱니다.
이처럼, 경찰과 검사들은 사회에서 범죄를 소탕하려고 애를 씁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이런 분들의 수고를 통해서, 평안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3) 그러나, 아무리 경찰들이 범죄자들을 소탕하려고 애를 써도, 인간의 본성에 있는 죄성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손발을 다쳐서 피가 흐르면, 다니는 곳마다 방바닥이고 벽이고 온통 피를 묻히고 다닙니다.
아무리, 핏자국들을 닦아도, 근본적인 해결이 안 납니다.
손발의 상처가 아물어야 피가 묻어나지 않습니다.
이와같이, 인간의 본성에 죄가 물들어 있는 한, 사회적인 범죄를 아무리 소탕하려고 해도, 계속 범죄는 발생합니다.
(4) 성경에는 우리가 사회적인 범죄를 행하지 않았더라도, 인간은 모두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3장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5장에는, 사람의 마음 속에서 나오는 것은, 살인과 간음과 도적질과 우상숭배와 거짓말과 사기와 온갖 종류의 죄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 이후, 우리 인간은 모두 예외 없이 죄인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죄로 물들어 있습니다.
이처럼, 마음이 죄로 물들어 있기 때문에, 우리의 말과 행동이 온통 죄악투성이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5 :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5) 저는 일전에 경찰서 서장과 직원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여러분 중에 마음 속으로 음욕을 한번도 품어보지 않으신 분들은 손들어보세요?
한 분도 손을 못 들더라고요.
그래서, 여러분들 중에 마음 속으로 한 번이라도, 음욕을 품어보신 분들은 다 손을 내리세요!
그랬더니, 모두 손을 내리더라고요.
한 사람도 손을 올리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무슨 말씀입니까?
간음죄를 짓는 사람을 잡아가두는 경찰도, 마음속으로 간음죄를 안 지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즉, 살인범, 강간범, 강도, 사기범, 온통 범죄자들을 잡아가두는 경찰들도, 마음 속으로 그런 죄를 안 지는 사람은 한 분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 앞에 죄인들입니다.
6.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범죄를 다루기 위해서 두 가지 일을 하셨습니다.
(1) 하나는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이란, 사회적 법률과는 달리, 마음 속에서부터 죄를 짓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그런데, 이 무서운 율법을 통해서, 사람들은 죄를 안 지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서운 율법을 받고서도, 사람들은 죄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2)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 죄인을 대신하여,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모든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로마서 3장 24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7. 저는 빅토를 위고의 <제 미제라블>이라는 책을 좋아합니다.
장발장 이야기입니다.
(1) 장발장은 당시 가장 흉악범이었습니다.
17년간을 교도소 생활을 하다가, 나왔습니다.
돈을 가지고 음식을 사먹으려고 해도, 음식을 팔지 않습니다.
돈을 가지고, 여관에 가려고 해도, 재워주지 않습니다.
구걸을 하려고 해도, 총을 가지고 죽이려고 합니다.
(2) 그런데, <미리엘> 목사님 댁에 찾아갔습니다.
돈 안 받고 저녁 식사를 걸게 차려주었습니다.
그날 밤 장발장은 목사님 집에서 은쟁반을 도적질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경찰에 잡혀서 끌려왔습니다.
미리엘 목사님은 금촛대도 주었는데, 왜 안 가지고 갔냐고 합니다.
(3) 너무나 감동한 장발장은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후로 평생 착한 일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꼬자크>라는 고아소녀를 데려다가 훌륭하게 길러줍니다.
(4) 그런데, <자벨>이라는 당대 최고의 형사가 장발장을 다시 감옥에 넣으려고 끈질기게 쫓아다닙니다.
그러다가, 형사 자벨이 혁명군에게 잡혀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혁명군 대장이 바로 장발장의 양녀와 결혼할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장발장이 원수인 자벨을 맡아서 처리하겠다고 하고서, 살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벨은 양심의 가책과 법에 투절한 정신 때문에, 세느강에 자살해버리고 맙니다.
(5) 이것은 사랑으로 원수를 이긴 장면입니다.
(6)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를 처벌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을 보내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할렐루야!
7. 이제 우리는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모셔들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모셔들인 사람은 죄 용서와 영생 천국을 얻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거절하면, 무서운 형벌과 지옥이 기다립니다.
8. 미국 버지니아 주에 <스미스>라는 청년이 살았습니다.
당시 주지사는 <죤>이었습니다.
그런데, 스미스가 광산에서 일하다가, 살인을 했습니다.
그래서, 버지니아 주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이제 사형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을 주민들과 교회 성도들이 청년 스미스에게 한 번의 기회를 주라고, 탄원서를 수 없이 주지사에게 제출했습니다.
그래서, 주법원에서 다시 심리하여, 주지사가 사면을 해주기로 결정했습니다.
드디어 주지사가 사면장을 가지고, 감옥에 있는 스미스를 찾아갔습니다.
당시 죄수의 면회는 목사만이 하게 되어 있었으므로, 주지사는 목사의 까운을 입고, 스미스의 감방에 들어갔습니다.
스미스: 목사님 가십시오. 더 이상 필요 없어요
주지사: 어이 스미스 나랑 애기 좀 하세.
스미스: 필요 없어요, 어서 가요.
주지사: 단 1분이면 되네. 이야기 좀 하세.
스미스: 가요. 꺼져. 어서 꺼지라니까!
주지사: 그러면 이 종이나 받게.
스미스: 이 새끼야 꺼져! 죽여버릴테니까!
그러면서, 종이를 박박 찢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주지사는 감방을 쫒겨나서 황급히 가버렸습니다.
그러자, 간수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습니다.
간수: 야 스미스, 너 지금 무슨 짓을 했어?
스미스: .......
간수: 이놈아 지금 왔다가신 분은 주지사님이셔. 너에게 사면장을 주려고 오신 거야!
그래서, 스미스는 사형집행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집행검사가 최후의 진술을 하라고 했습니다.
스미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여러분! 저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시방 죽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죽은 것은 사면장을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부디 하나님의 사면장인 예수님을 거절하지 마십시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면장이십니다.
예수님 믿으면, 모든 죄가 용서받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구주로서 세상에 오셨는데도, 사람들은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1. 마리아는 아기 예수님을 배 속에 잉태하여, 잔뜩 배부른 채로 고향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고향에 여관이 있는데도, 고향 사람들이 만삭되어 아기를 낳게 된 마리아에게 여관방 하나를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2장 7절.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2) 세상에서 권세를 가진 임금이나, 돈 많은 부자나, 힘 있는 사람이 여관 방을 달라고 했다면 얼른 내어주었을 것입니다.
아마 이미 방에 들어가 있는 사람도 내어쫓아냈을 것입니다.
(3) 그러나, 만왕의 왕이시고,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시고, 죄악과 지옥에서 구원하실 구주가 오셨는데도, 여관방 하나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4) 마리아와 요셉은 여관 방 사람들에게 사정사정 했을 것입니다.
배 속에 있는 아기는 세상을 구원할 자 예수시라고 전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임이니라.
(5) 당시에 여관에는 아기 예수님을 맞이할 빈방이 없었습니다.
권세를 누릴 자, 돈으로 향락할 자, 육신의 정욕을 즐길 자, 노름 할 자들은 많이 차 있어도, 구세주 아기 예수님을 모셔드릴 방은 없었습니다.
(6) 요한복음 1장에는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7) “그러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① 여러분의 마음 속에는 예수님을 모셔드릴 빈 방이 있습니까?
② 우리 마음 속에는 여러개의 방들이 있습니다.
어떤 방에는, 가정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의 방이 있습니다.
또, 어떤 방에는 직장과 사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의 방이 있습니다.
또, 어떤 방에는 향락을 즐기는 마음의 방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모실 방은 있습니까?
③ 사실 우리의 마음의 방에는 여러 가지 욕심이 가득차 있을 수 있습니다.
옛날 국민학교 때, 본 그림 중에 기억에 남는 그림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방들을 그린 그림입니다.
④ 어떤 방에는 욕심꾸러기 돼지가 들어 있습니다.
어떤 방에는 싸움하는 사자가 들어 있습니다.
어떤 방에는 거짓말하는 뱀이 들어 있습니다.
어떤 방에는 자랑하는 공작새가 들어 있습니다.
⑤ 이러한 세상 욕심들로 우리 마음의 방이 가득차 있으면, 우리 마음은 평화가 없고, 어두울 뿐입니다.
⑥ 그런데, 우리의 마음의 방에는 가장 중요한 방이 하나 있습니다.
이 방은 영원을 사모하는 방입니다.
이 방에는 예수님을 모셔들여야만 마음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방입니다.
⑦ 우리가 마음의 가장 중요한 자리인 왕좌에 예수님을 모셔들이기만 하면, 우리의 마음에 어둠과 더러움이 물러가고, 참된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게 됩니다.
⑧ 비록 우리의 마음이 마굿간처럼 어둡고 더러울지라도, 예수님만 모시면, 밝고 깨끗한 마음이 됩니다.
예수님을 모시면, 어두움의 마귀 권세가 물러갑니다.
예수님을 모시면, 더러움의 죄악이 씻어집니다.
예수님을 모시면,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않은 참된 평화가 임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에서,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주노라.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않는 참 평안이니라”. 예수님을 모시면, 참된 만족이 생깁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4장에서, “세상이 주는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 마르지 아니 하리라.”
2. 아기 예수님은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1) 나의 마음이 마굿간 처럼 더럽고 냄새나는 곳이라도, 예수님은 영접하는 자에게 찾아오십니다.
(2) “주여 내 마음이 비록 더럽고 추할지라도, 주님 내 마음에 오십시오” 하면, 주님은 내 마음에 찾아오십니다.
① 베드로처럼, 세리처럼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면서, 주님을 모시기를 원하면, 주님은 내 마음 속에 찾아오셔서,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나의 주님이 되어 주십니다.
② 주님 찾아 오셨습니다.
모시어 들이십시다.
<찬송가> 주님 찾아 오셨네 모시어 들이세
③ 주님은 바로 이 시간에 여러분의 마음에 구주의 주님이 되시기 위해서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보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④ 그러므로, 바로 이 시간 예수님을 마음 속에 모셔들이시기 바랍니다!
잠간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하십시다.
“예수님. 내 마음은 여러 가지 욕심으로 가득찬 죄인입니다. 지금까지 나는 어두움과 더러운 죄악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려고 세상에 오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 시간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모셔들입니다. 내 마음의 왕좌에 들어와 주십시오. 이제부터는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겠습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이 내 모든 죄를 씻으시고, 참된 평화와 기쁨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천국 갈 때까지,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인도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아기 예수님을 모시고 살면 천군 천사의 보호를 받습니다.
1. 누가복음 2장 13-14절. 아기 예수님이 계신 곳에 천군 천사가 함께 합니다.
2. 원래 천군과 천사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받들어 섬기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어디든지 천군 천사들이 따라갑니다.
창세기 28장 12절. 천사들이 하늘과 땅으로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수행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28장 15절.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즉 예수님을 모시고 살면, 어디로 가든지, 천군 천사가 항상 호위를 하기 때문에, 보호받고 형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3. 그래서 모든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섭리하시고,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입은 성도들에게는 만사 형통하는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32절에는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8장 28절에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신다고 했습니다.
4. 저는 생활 중에 실제로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사는 것이 만사 형통이고 행복임을 늘 체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농사 지으면서도 하나님 모시고 살아갑니다.
매일 기도하면 이웃을 사랑하며 살 수 있습니다.
선한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 수 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평화로다
1.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선을 행하면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런데 예수님 목숨 버려서 영 죽을 죄인을 구원하셨으니 이 보다 더 큰 선행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모신 사람들은 평화요, 참된 기쁨과 행복이 이루어집니다.
2. 우리들도 예수님을 본 받아서 이웃들에게 선과 평화를 선물해야 하겠습니다.
성탄절에 사람들은 선물을 주고 받습니다.
그래서 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독일군과 연합군이 대치해 있는 전쟁터에서도 성탄 찬송을 하면서 서로 평화로운 성탄절을 보낸 역사적 사건이 있었습니다.
3. 최춘선 할아버지는 예수님에게 빚진 마음을 가지고, 재산을 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고, 신발 신은 것조차 부담스러워서 맨발도 전도했습니다.
4. 이름 모를 외국인은 예수 믿고 구원의 은혜가 너무도 감사해서 우리나라의 무당들을 찾아가서 전도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성탄절을 맞이하여 예수님을 모심으로써 기쁨과 평화가 가정과 사회에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