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별천리
강 동 구
깊은 숲속 동물들만 모여 사는 평화로운 마을에서 가을 운동회가 열리는데 특별한 달리기 경주가 있다고 하기에 얼른 가보았더니 어! 말도 않되, 여러 동물들이 함께 달리기 경주를 하지 않고 토끼와 거북이가 단둘이 달리기 경주를 하려나 봐요.
경주는 실력이 비슷한 상대끼리 해야 하는데 토끼와 거북이의 달리기 경주는 호랑이와 강아지가 권투시합을 하는 것보다 더 무모한, 결과가 너무나 뻔한 경주이기에 오히려 더욱 흥미가 발동하네요.
이 말도 안 되는 경기를 주최한 주최 측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 궁금증이 커지지만 필경 관중들이 알지 못하는 주최 측의 깊은 뜻이 반듯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겨 끝까지 지켜보기로 했어요. 아마 경주가 끝나면 궁금증이 곧 풀리겠죠?
토끼는 흰 운동복 거북이는 검은 운동복을 입고 출발하기 전 각자 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준비운동을 하면서 코치로부터 작전 지시도 받는 듯합니다. 물론 토끼의 코치는 토끼고 거북이의 코치는 거북이예요. 무슨 말을 하는지 그들만의 언어로 대화를 하니 내가 알아들을 수는 없었죠.
어느덧 출발 시간이 되어 토끼와 거북이는 출발선에 섰습니다. 토끼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몹시 궁금했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물어볼 수가 없어 나 혼자 토끼의 처지에서 상상을 해 보았어요.
아마 토끼는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것 같아요. 왜 안 그렇겠어요. 경주상대가 강아지나 고양이 정도라면 몰라도 거북이라니 차라리 굼벵이하고 경주를 시키지 그랬냐고 주최 측에 항의하고 싶었을지도 모르죠.
토끼에게 이렇게 모욕을 주어도 되느냐고 항변하고 싶었겠지만 우승하는 동물에게는 상금이 어마어마하여 상금을 생각하니 경주를 차마 포기하지 못하여 알량한 자존심은 잠시 토끼 굴에 묻어두고 눈 딱 감고 경주에 출전했다고 관중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탕!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가 나자 토끼는 눈 깜박할 사이에 관중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어요. 정말 총알보다 빠른 것 같아요. 저 멀리 산꼭대기에 있는 큰 소나무를 돌아오면 되는데 저 정도 속도라면 30분도 걸리지 않을 거라면서 관중들은 저마다 토끼의 당연한 승리를 예상하며 이 어이없는 경주를 지켜보고 있었지요.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토끼가 돌아올 예정시간 30분이 훨씬 지나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도 토끼의 모습은 보이지를 않고 저 멀리 조그마한 검은 물체가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보이네요.
검은 물체가 좀 더 가까이 다가오니 거북이가 땀을 뻘뻘 흘리고 다리를 절뚝거리며 결승선을 향하여 다가오고 있지 뭐예요. 관중들은 너무나 놀라 일제히 일어나 손뼉을 치고 환호하면서 거북이의 승리를 축하해 주었어요.
주최 측이 거북이에게 토끼가 어디쯤 오냐고 물어보니 토끼는 지금 나무 그늘 밑에서 낮잠을 자는 것을 보고 깨울까 말까 하다가 밥 먹을 때 하고 낮잠 잘 때는 개도 건드리지 않는다는 옛말이 떠올라 그냥 왔다고 해요.
토끼는 설마 하고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여 거북이를 무시하고 방심하는 바람에 엄청난 상금을 놓치고 말았어요.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설마가 토끼를 잡은 격이 되어버리고 말았어요.
이 경주를 지켜보면서 어쩌면 우리네 인생사도 이와 같다는 생각이 불쑥 드네요. 거북이처럼 파별천리(절름바리 자라도 천리를 간다)의 정신으로 꾸준히 정진하면 세상에서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확신이 들어요.
자신의 능력과 힘을 믿고 자만에 빠지는 어리석은 토끼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러 가지 신체적 어려움과 악조건 속에서도 거북이처럼 승산 없는 경주지만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오직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 결국은 인간 승리를 이루어 내는 사람들도 있지요.
일본의 할머니 시인으로 유명한 시바타 도요는 아들의 권유로 구십 이 세에 시를 쓰기 시작하여 구십 육 세에 첫 시집 “약해지지 마”를 출간하고 두 번째 시집은 자신의 백 세 생일을 기념하여 “백 세”라는 제목의 시집을 출간하였어요. 정말 대단한 인간 승리가 아닐 수 없죠.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했는데 연세가 조금 드신 분들은 어떤 일을 도전해 보려 하지도 않으시고 내가 이 나이에 무슨, 하고 미리 포기해 버리시는데 시바타 도요 시인의 용감한 도전을 생각해 보면 용기가 불끈 솟을 것 같아요.
불편한 육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전신이 마비되어 입으로 그림을 그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구족화가가 있는가 하면 시각 장애인이 마라톤 선수가 되고 피아니스트도 되고 두 다리가 없는 사람이 의족으로 달리기 선수가 되는 놀라운 일들이 사람들을 감동하게 하죠.
인류의 역사는 도전과 반응이라고 하지 않던가요. 원인이 없으면 결과도 없듯이 도전이 없으면 위대한 인간 승리도 없겠지요. 인생의 황혼기를 보내는 시니어 여러분! 노둔한 거북이처럼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여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 되어보지 않으시렵니까? 도전은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것이니까요.
첫댓글 파별천리跛절뚝발이 파, 鱉자라별,千里-절름발이 자라도 천리를 간다. 꾸준히 공부하면 성공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鼈 자라별이 둘다 쓰네요. 고기어, 거북구,ㅎ 좋은 사자성어를 일러주어 감사합니다.ㅡ순자 권학편에 나오는 고사이지요.ㅎ
강작가는 동화에도 천부적인 소질이 엿보이니 동화도 한번 써보시길, 이 글의 2/3를 읽으며 동화인 줄 알고 읽었지요.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새로운 내용을 창작하면 대성할 것 같아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