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 영의 훈련을 위한 기초/ † 영에 속한 일을 하게 하시는 주님의 목적은 무엇일까?
요6:63절은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의 영은 성령을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즉각적으로 주시는 살아있는 말씀인 레마이다. 우리가 우리의 영을 사용하여 그분의 말씀을 받을 때(성령께서 우리 영 안에서 하시는 말씀, 곧 레마), 우리는 생명이신 성령을 얻는다.
예수님은 성령이 되실 것을 말씀하셨다(고전15:45). 이제 그분이 영이시므로 그분을 취할 수 있고 먹을 수 있다. 오! 주 예수님!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나 누구든지 성령 안에 있다(고전12:3).
예수는 이름이고 성령은 인격이다(롬10:13). 요14:26절에 의하면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으로 보혜사 성령을 보내신다. 그러므로 성령을 얻는 최상의 길은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부를 때마다 우리는 성령을 얻는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영에 속한 일을 하게 하시는 목적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니라 사람의 영에 생명을 얻게 하고, 이미 생명을 얻은 영을 온전케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교회나 믿은 이들이 명심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에 속한 일을 하게 하시는 목적이, 우리 사람 안에 가장 깊은 “영”을 주의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의 일은 조금도 영적인 가치와 효력이 없다는 것이다.
죄인에게 필요한 것은 그럴듯한 사상이나 세상에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투쟁이 아니라 바로 생명이다! 믿는 이에게 필요한 것도 더 많은 성경 지식이나 교리가 아니라, 바로 믿은 이들의 영에 생명을 먹이는 그것이다.
만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고작 지식수준의 말씀이나 어설픈 세상적인 관심이나 인간의 편의로 만든 교리에 불과하다면, 우리는 사람들의 생각에 또 한 가지의 사상을 더한 것뿐이요, 사람의 감정에 한 차례의 자극을 준 것일 뿐이며, 사람의 의지에 또 한 번의 규정을 가한 것뿐이다.
믿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이나 사상이나 철학으로 겉 사람(혼)이 온전케 되는 것이 아니다. 믿는 이에게 부족한 것은 그의 영을 자라게 하는 더 풍성한 생명이다! 만일 우리가 전적으로 사람의 겉 사람(혼)만을 주의하고 그의 속 사람, 곧 사람의 영을 잊어버린다면 우리의 모든 일은 온전히 절대적으로 시종 헛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이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나쁜 것일 수도 있다. 사람은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리며, 잘못을 자백하며, 교리를 깨닫고, 속죄받아야 하는 이유를 시인하며, 종교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결심하고 회개하고 맹세하며, 성경을 읽으며 기도하고 기쁨을 얻으며 간증까지도 하면서도, 그의 “영”은 전과 같이 여전히 죽어 있고, 그의 “영”에 아직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조용히 당신 주위의 믿는 이들을 둘러보라. 왜냐하면 그들 중 많은 이는 영이 죽어 있어 살아 있는 것과 무관하다. 왜냐하면 사람의 혼, 곧 사람의 생각, 감정, 의지로도 믿음을 흉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들을 멸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예배를 드린 후에, 믿는 이들의 영이 살아나지 않았다면, 이것들은 뿌리가 없는 풀잎에 지나지 않아서 햇볕의 쬠이 통과할 때 완전히 마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은 그 사람 가장 깊은 곳인 “영”에서 하나님을 알고, 그분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새 생명을 영접한 것이다. 만일 당신의 영이 부활하여 직감으로 하나님을 모른다면, 당신이 영적인 것이라고 믿고 지금 열심인 모든 일들은, 조금의 영적인 효과도 거두지 못한 것이다.
당신 주위의 교회에 열심인 형제자매들을 관찰해 보라! 그들이 그들의 “영”에 대하여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알 것이다. 우리는 ‘거짓 믿음’과 ‘거짓 거듭남’이 가능한 일임을 알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깨달음과 믿음을 혼돈한다. 깨달음은 생각 안에 어떤 교리가 일리가 있고 믿을 만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은 성경에서 연합의 뜻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께서 날 위해 죽었다는 것을 믿었다는 것은 자신을 주 예수의 죽음에 연합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장 주의하는 것은 사람이 자기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이것이다.
많은 이들이 속죄의 도를 믿고, 속죄하신 구주를 믿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거듭남도 역시 가장(假裝)할 수 있다. 가장하는 그들의 생활이 참되게 거듭난 자와 거의 똑 같지만, 교회의 간부도 하고, 봉사 활동도 모범적이고, 빠짐없이 교회를 다닌다.
그러나 그들이 주 예수님을 구주라고 말하지만, 그들에게 근본적으로 결여된 것은 직감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그들도 하나님에 대해 듣고 논할 수 있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모른다. 성령의 실재(reality)를 만지지 못했으므로 하나님에 대한 주관적인 인식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요10:14-16절에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나니…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라고 말한다.
주님을 모르고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사람은 주님의 양이 아니다.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거듭남에서 시작하고 사람의 영 안에 있으므로, 우리의 모든 일은 마땅히 이 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단순히 열심을 내고 그 사람 없이는 일이 되지 않을 정도로 교회 내의 인정을 받는 사람들 중에도 사실은 그의 모든 일 속에 하나님께 속한 것이 조금도 없다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지금 영의 위치를 알았다면 우리의 일에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는 아무런 목표없이 우리가 선(善)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좇아 행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사람의 “영”을 세우는 것이다. 비록 전에는 타고난 것들을 주의했을지라도 이제는 하나님의 영에 속한 것을 주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영적인 일은 다름이 아니라 영으로 말미암아 일하는 것이고 생명의 공급으로 사람의 영을 살리는 것이다. 다른 일은 영적인 일이 전혀 아니다. 만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사람에게 생명을 줄 만한 어떤 것도 없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는 평상시에 너무 혼(생각, 감정, 의지)에 의지해 사는 것에 습관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 영의 무력함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이제 혼의 도움이 사라지고, 영의 능력을 전적으로 의지하게 될 때, 비로소 우리 자신의 영적 생명이 그리 자라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요1:13절은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고 말한다.
만일 우리가 다시는 사람의 생각에 이해를 돕거나, 감정에 감동을 주려고 하거나, 의지의 결심을 돕지 않고, 다만 사람의 영에 생명을 공급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결코 사람들에게 생명을 줄 수 없음을 발견할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그들을 낳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결코 그들을 낳을 방법이 없다.
이때 비로소 우리는 모든 일을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된다. 우리는 공허한 그릇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안에는 사람을 거듭나게 하는 어떤 것이 없고 사람들 속에도 자기 자신을 거듭나게 하는 것이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에 의해 그분의 생명을 사람들에게 부어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영을 통로로 성령, 곧 그분의 생명을 사람들에게 부어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적인 일은 다름이 아닌 하나님 자신이 하시는 일이다. 하나님이 하시지 않는 일은 모두 영적인 일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자칫 “죽은 행실”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도록 그분께 구해야만 한다.
물론 많은 경우 하나님께서 은총을 주심으로 우리가 하는 일에 합당한 효과를 보게도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더욱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이 어느 부흥회의 뜨거운 분위기나 사람을 매혹시키는 환경이나 낭만적인 사상이나 시적인 상상이나 이상적인 안목과 정열적인 감동이나 흥분된 의지나 항구적인 열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만일 영적인 일이 실제가 아닌 꿈에 지나지 않는다면, 심리적이거나 체면과 같은 방법들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영적인 일이 실지로 사람의 영을 거듭나게 하고 살리며 새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라면, 주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다.
만일 우리가 사람들에게 준 것이 하나님의 생명이 아니라면 우리가 한 일은 하늘에서 칭찬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성령이 내주하는 사람의 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그 일은 사람에게 생명을 주지 못한다. 우리의 목적이 사람에게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사용하는 능력은 반드시 하나님의 능력이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혼의 능력, 곧 우리의 타고난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사용한다면 곧 실패하게 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혼은 살아 있는 것이지만(창2:7), 그것으로는 사람을 살릴 수 없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요6:63),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다”(고전15:45). 그러므로 마땅히 혼생명을 죽음에 넘기고 영의 생명으로 일을 해야만 사람을 거듭나게 할 수 있다. 타고난 생명으로, 곧 옛 창조는 결코 새 창조의 일의 근원이 될 수 없다.
만일 믿는 이들이 성령의 계시를 받고 영의 능력으로 일한다면, 믿는 이들은 반드시 회개하는 가운데 성령의 능력으로 그의 영이 살아날 것이다. 그러나 반면에 만일 오늘날의 설교나 우리가 전하는 말이 인간의 여러 사상과 이론과 감정을 말씀에 적당히 빗대어 들려주는 수준이라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은 믿는 이들에게 선악과를 먹게 하는 것이며, 일시적인 자극은 될지 모르나, 생명의 변화는 전혀 얻지 못할 것이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생명이지 이상이나 자극이 아니다. 비록 거짓된 영의 능력도 비슷한 결과를 가져오지만, 사람들의 죽은 영은 그것으로부터 생명을 얻지 못한다. 다른 것은 다 얻었다고 하더라도 영적인 일의 목적은 이루지 못한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만일 우리가 참으로 혼(자아)을 잃어버리고 영을 의지한다면,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 입에서 나온 말씀이 곧 “영이요 생명인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이것이 나의 모든 것이요 나의 모든 기도임을 고백한다!
할렐루야! 아멘!
첫댓글 아멘감사르 ♡♡♡
영으로 모든일을 행하게 하소서!!!
살리는 것은 영이시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