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고개 임한천 77세(홍천 한계리 식당에서)
강옆으로 비탈길이 작은 말고개, 저 산 중턱으로 올라서 가는 오솔길이 쿤 말고개다
전쟁이 10살때 난는데 처음에는 잘 몰랐지~
작은 삼마치고개로 부모님따라 피난 갔는데 이미 북한군이 고개에 와 있더라고~
그래서 돌아가라해서 돌아왔는대 작은 말고개 하단에 탱크가 곤두박칠해서 있기도
하더라고~
산에는 당시 인민군과 아군이 죽어 있었지~
두촌면 샘재일대가 가장 피해 많이 났다
1.4후퇴시 말고개에서 중공군이 수없이 죽음
얼마나 총질을 하는지 "총알이 총알을 막는다!"고 이야기 했다
그러다 봄에 미군이 들어왔는데 죽으니까 전투화를 보이도록 묻고 후퇴하더라고~~
대부분 중공군이 수없이 죽어 나뒹글고 있었고 나중에 미군은 유해찾으러 왔지~~
윤용득 74세 (와수리 농약사에서~)
금성으로 처음에는 피난, 인민군따라 감
어려서 잘모르지만 남대천근방에서 전쟁함
그러다 봄에 국군과 미군이 왔는데 차에 테우고 서울까지 갔는데 고무다리 타고 천호동으로 피난 감.
한강변인데 피난민이 엄청 와 있더라고~~
어리니까 뭐 어떻게 살았는지, 풀죽도 먹고 배급나오는 옥수수 죽도 넉고 우유덩어리도 먹고 그때는 밀가루도 귀했다고~~
수복후에 고향이라 돌아와 국민학교 뒷산에 나무심으러 울력 나가면 구덩이 파다 유해가 나오기도 함
생창리일대도 모두 전쟁터고 중공군이 많이 죽어있었다고 들었지만 지금 너무 변해서~
윤희남 77세(철원 잔곡리 방화동)
독재봉에 주로 중공군이 엄청 있더라고
탄피캐고 나물찾으러 가보니 신발창 보면 알지 ~~
상해봉 광덕산 국망봉에도 그때는 깔려 있어
전쟁은 가평 상판리에서 만났지
1.4후퇴시에는 집에서 국군 90여명이 묶고~
4명이 부상자(동상)인데 떠나면서 남겨놓고 가서 아버지가 치료하다 다 죽음
1명이 노무자인데 이 사람은 목발을 만들어 주고 가라했는데 근처가 집이라 살았을 수도
있겠지~~~
죽은 세사람을 밤에 옮겨 대충 일동으로 넘어가는 길 옆에 묻어주었지
내가 땅을 파고 아버지가 지고오고~~
8년전인가 수가사 군병력이 와서 알려주었는데 허벅지 뼈등 3점을 찾았다고 해, 길이 늘어나서 해쳐진거야~~
3월에 미군하고 국군이 와서 차에다 실고 천호동에 내려놓고 가버려
15일만에 걸어서 들어오니 집안이 온통 뒤집혀 있더라고~~
한국군이 이상한짓 가르쳐 동네 아낙들이 많이 피해를 봤지~
인민군하고 살아보니 그놈들은 나쁜짓 안해요. 누가 하냐면 지역 빨갱이 하고 빨치산들이 온갖 못된 짓 다 했어~
원래 고향이 평강 마옥이라는 곳인데 일본놈 시절에 몰수패 맞아서 머슴살이 했어요 그러다 해방되면서는 완장찬 남들에게 당하고~
큰집에 배다른 큰아버지가 빨갱이 되어 얼마나 날뛰는지, 피도 눈물도 없다더라고~
할아버지가 살곳이 못된다고 야밤에 도망쳐서 온 곳이 바로 하오고개 우측 계곡 언저리에 화전 했어요, 그러다 가평 간거에요
가평에 의열단이 있었는데 어느날 할머니가 와서 밥좀 달라고 해 주었는데 가만히 보니까 할머니가 아니고 젊은 여자야~
"머리에 서캐가 실어서 하얗게 보인거야~~!"
내가 몰래 달려가 의열단 대장, 이달삼에 신고해서 의열단이 출동해서 추격했어
도망가던 여자가 넘어져 잡으려는 순간 총을 들고 쏘아 총질이 벌어지고 잡혔어요
오른 손 팔꿈치가 나가떨어졌는데도 항복 하지 않아, 지독하더라고~~
의열단 사무실에서 취조했는데 직접 서서 보았지, "죽여라, 죽여라" 그리고 죽더라고~
6.25전에 귀목고개일대까지 인민군이 와서 이장집 소를 잡아다 먹고 못된짓 다 했다고 하더라고
동네에 숯굽는 곳이 많은데 그래서 불쌍한 양민도 있고 나쁜짓한 사람도 있고 몇십명 밀어넣고 죽여버리는거야, 전쟁중에 더 함.
"밤에는 나쁜 짓, 낮에는 잠자고 5일 지나면 눈이 빨개지고 비린내가 나요~"
왜냐하면 사람을 창으로 찔러죽이니, 의열단도 그랬고 빨갱이도 그랬고~~~
아버지가 산속에 숨어 있는데 눈 내리는 겨울에는 밥도 못갔다줘요, 발자국이 걸리니
하오고개에 오니 27사단등 3개사단이 위생사업 하더라고(나무 잘라 파는~)
산에다 불놓아 화전 일구고 숯굽고 84년까지 춫구워 팔았어요
오른쪽 어깨 인대가 나가 지금은 쓸수도 ~~
배우지도 못했고 간디스토마로 군에도 병들어 못가고~~~
앞산에도 교통호와 개인호있어요
철모도 보이더니 요즘은~~~
옛날에는 해골 뭐 대수롭지 않았지
먹고 살기 힘든데~~~
풀죽먹고 배급받아 연명하던 시절이
"아, 40된 막내아들놈이 라면이라도 먹지 왜 굶느냐고 하니~~~"
"요즘 너무 몰라요, 공산당이란 허울을~~"
55년 3월9일에 다시 하오고개로 들어옴
평강에 빨리 가려고~~~
하오고개 좌측계곡에도 중공군이 엄청 묻혀 있은데 길나고 화전으로 ~~
상해골에도 있었는데~~
이상원 82세(방화동)
원래 연천 백학 왕진면에 살았다
수복지역인데 살 수없어 덕정에 영국군부대 들어가 있다 의정부 미군부대에 40년 근무
이곳에는 20년전에 들어와 살고 있다
앞산에도 철모 턴피등이 많았다
지금은 우거져서 보이지도 않해요
51년 5월에 북한군 후퇴시는 7일간 따라서 북으로 피난가다 돌아옴
오니까 할아버지가 혼자서 모내기 하고 있음
동네 사람들 다 도망가거나 숨어버리고~~
그리고 다시 미군들 트럭이 와 태우고 처음에는 초성리 밑에 창말에 가더니 온 몸에다 DDT 뿌리고 다시 태우고 천호동에 내려놓고 가버림
수복되어 가 보았지만 붙여먹고 살 곳이 없어 덕정에 가서 영국군 부대 들어가게 된다
가정이 어려워 형편상 군에도 못 가고 밍갱이 풀먹고 얼굴붓고 소원이 "보리밥이라도 한그릇 실컷 먹는 것"이였다
5남매를 책임졌다, 말로는 다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