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퍼온글입니다 삼다(三多)의 섬 남해, 두모마을 앞바다에서 카약을 타다(남해안시대)

[램브란도홍성윤]

파도에 몸을 맡기며 스릴을 만끽하자!

삼다(三多)의 섬 남해, 두모마을 앞바다에서 카약을 타다

2011년 06월 02일 (목) 21:08:43

임종욱 소설가, 번역가 webmaster@namhaea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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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물을 무서워한다. 수영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도 있지만 어릴 때 시골 물가에서 놀다가 제대로 덴 뒤부터 공포증이 생긴 탓이 크다. 내 고향은 경북 예천이지만 어린 시절은 옆 동네 문경 동로에서 자랐다.(그래봤자 초등학교 1학년 때 서울로 올라왔는데, 지금도 동로는 별로 변한 게 없어 가면 옛 모습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다.) 동로에는 낙동강 지류(본류인가?)가 흐르는데, 여름이면 그곳에서 살다시피 놀았다. 강을 건너면 강물이 맴도는 곳에 꽤 높은 낭떠러지가 있었고, 그곳은 애들이 다이빙을 하며 신나게 시간을 보내는 장소였다.(내가 감히 다이빙을 했던 기억은 없다.)

하루는 더위를 먹었는지 싫증이 나서 먼저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강을 다시 건너려면 큰 바위가 물에 연이어 잠겨 있는 자연 돌다리를 건너야 했다. 그날따라 웬일인지 돌다리가 위태로워 보였다. 조심하며 발을 디뎠지만 아니나 다를까 그만 미끄러져 물에 빠지고 말았다.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다가 겨우 서덜 하나를 붙잡아 천신만고 끝에 물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정말 죽다 살아난 기분이었다. 이때 이후로 물귀신이라도 씌었는지 물은 영 나와 인연이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오죽하면 나는 목욕도 자주 하지 않는다.)

남해 노도 앞바다에 카누와 카약을 즐길 수 있는 시설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내가 설마 그것을 타게 되랴 생각했었다. 수영장 물에서도 오금이 저리는 내가 여울이 일렁이는 바닷물 속에서 노는 것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다 지지난주 행사 때문에 진주에 들렀다가 남해에도 가게 되었다. 나중에 글을 쓰는데 필요해 용문사 일대를 답사할 계획이었는데, 나를 안내해 줄 지인은 카약을 남해에 처음 소개한 고병국 남해카약클럽 대표에게 그날 오후 나와 함께 가겠다고 약속을 했다지 뭔가? 이 기회에 한 번 타보라는 것이었다. 전부터 벼르고는 있었어도 속부터 울렁거렸지만 약속을 잡아준 성의를 생각하면 가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바다하면 영화 ‘타이타닉’이나 ‘백경’에 나오는 거대한 태풍부터 먼저 떠올리는 나로서는 과연 바다 속에 몸을 한 발이라도 들이밀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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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맞춰 노도가 멀리 보이는 두모마을 앞 바닷가에 도착했다. 우리 일행 말고도 여러 분들이 벌써 나와 카약을 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더구나 군수님까지 휴일을 맞아 가족과 함께 나와 있었다.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가리지 않고 다들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뭐랄까? 함께 거센 바다로 나간다는 상황이 일종의 동지애를 느끼게 만들었다.

일행 중에는 외국인들도 적지 않았다. 남해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들부터 어떻게 오게 됐는지 저 멀리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온 사람들까지 동참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짐바브웨는 아프리카 대륙 남부에 있는 내륙국이었다. 그들 역시 바다에서 카약을 타는 일은 처음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 사람들과 남해 바닷가에서 조우하다니, 지구촌이라는 말을 여기서도 실감했다.

간단한 기본 교육을 마친 우리는 만처럼 바다가 안으로 들어선 수면이 잔잔한 곳으로 카약에 몸을 싣고 출항(?)했다. 카약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는데, 길이는 4미터쯤 되고 폭은 가운데가 몸 하나 들어갈 정도였고 양끝으로 가면서 점점 가늘어졌다. 배안에 몸을 앉히고 두 다리를 배 몸체에 밀착시킨 뒤 양쪽으로 날개가 달린 노를 번갈아 저으면 카약은 수월하게 앞으로 나갔다. 하늘이 도왔는지 물결이 거울처럼 잔잔해 물살 빠른 냇가보다 더 편안했다. 과연 저 단순한 구조물이 나를 안전하게 실어 나를지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표정을 들키기는 싫어 조심스럽게 노를 저어나갔다.

그러나 생각보다 카약은 타기 어렵지 않았다. 동물에게는 선천적으로 몸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본능이 있고, 무리하게 몸을 비틀지 않으면 큰 위험은 애초부터 일어날 까닭이 없었다. 배를 바다 안으로 조금씩 밀고 나가면서 두려움은 사라졌고 물결의 율동에 흔들리면서 느끼는 쾌감이 커져갔다. 아주 능숙해졌다면 거짓말이지만 10분도 되지 않아 편안하게 방향을 바꿀 정도로 나와 카약은 일심동체가 되었다. 노랗고 파랗고 빨간 다양한 색상의 카약이 수면을 아름답게 수놓은 장면은 그것만으로도 즐거운 구경거리였다.

그날의 목표는 만을 빠져 나와 노도까지 한 바퀴 도는 것이었다. 노도가 작은 섬이라지만 일주하는 데는 거리나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릴 듯했다. 과연 처음 타본 솜씨로 바다 물살을 가르고 일주한 뒤 돌아올 정도로 실력이나 체력이 될지 걱정이 앞섰다.(나중에 알고 보니 노도를 일주하는 것이 아니라 노도 선착장까지 갔다 돌아오는 것이었다.)

카약은 안전한 배이긴 했지만 자기 신체에 맞는 것을 골라야지 너무 크거나 작으면 뒤집힐 수도 있다.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있어 뒤집히더라도 가라앉을 염려는 없다 해도 자기 체격에 맞는 크기의 카약을 선택하는 일은 중요하다. 이런 교훈을 알려주려는 듯 한 사람이 그만 카약을 몰다가 바다 가운데서 전복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역시 3만 군민의 살림을 도맡은 분답게 군수님께서 모범을 보이셨다.

군민이라면 대개 아시겠지만 풍채가 좋은 군수님에게 카약이 조금 작았나보다. 카약이 뒤집혔다고 떠들썩하기에 노를 저어 가보니 군수님께서 바닷물 위로 목만 내민 채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배가 뒤집혀도 카약을 바로 세울 수 있는 기술만 있으면 다시 올라탈 수 있는 모양인데, 처음 카약을 타보는 우리들로서는 무리였다. 어쨌거나 군수님은 관리인의 도움으로 카약을 바로 세웠다. 그 모습을 보자니 새삼 긴장감이 몰려왔다.

드디어 우리 일행은 파도가 춤을 추는 바다를 향해 등정에 나섰다.

그날은 카약을 타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라고 했지만, 역시 바다는 바다였다. 수면이 코에 닿을 듯 카약은 낮게 미끄러져 나갔고, 덩달아 작은 파도라지만 여울은 어깨까지 넘실거렸다.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는 것처럼 열심히 노를 저었지만 파도가 한번 몰아치자 쓰러질듯 카약은 기우뚱거렸다. 처음 겪어본 일이라 눈앞이 아득해졌다. 어릴 때 강물 속에서 당한 여울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힘이 뼛속까지 느껴졌다.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군수님의 액땜 덕분인지 어떤 카약도 뒤집히지 않았다. 물결 위에 뜬 나뭇잎처럼 카약은 물결 따라 출렁거렸지만 신통하게 제 몸을 잘 지탱했다. 노를 저을 때마다 파도의 흐름과 관계없이 카약은 앞으로 파도를 헤집고 나갔다. 대담해진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씩 파도를 맞으면서 배를 전진시키는 요령이 생기자 카약을 타는 묘미가 서서히 몸을 휘감았다. 주변의 동지들도 파도가 카약을 칠 때마다 환호성을 질렀다. 2인승 카약은 훨씬 빠르게 물살을 가르고 나갔다. 파도와 싸운다는 짜릿한 쾌감과 역시 인간은 자연 앞에 무력하다는 아찔한 순간을 번갈아 만끽하면서 우리 일행은 무사히 노도 선착장에 닿았다.
알다시피 노도는 서포 김만중 선생이 남해에 유배 왔을 때 머물렀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개인적으로 서포의 유배지는 용문사 부근일 것으로 믿지만, 이곳에는 서포가 살았다는 집과 그의 허묘(虛墓) 등 유적지가 남아 있다. 기왕 왔으니 그곳까지 가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되지 않아 지금은 폐교가 된 초등학교 분교까지만 올라갈 수 있었다.

자그마한 운동장에서 바라본 남해는 맑은 햇살과 푸른 바닷물이 어울려 멋진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시인이 아니더라도 절로 시심이 동할 만한 아름다운 정취가 감돌았다. 서포가 이곳에서 줄곧 지내지는 않았더라도 이런 명승을 알았다면 결코 놓치지는 않았을 듯했다. 이 언덕에 올라왔던 서포는 과연 무슨 상념에 젖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오면서 한 번 겪은 바다는 갈 때는 한결 수월할 거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위험이란 겪어본 사람이 제대로 아는 법이다. 물살의 위력을 알지 못하고 올 때보다 갈 때가 내게는 더 두렵게 느껴졌다. 한편으로 물살을 알게 되니 물살을 타는 즐거움도 늘어났다. 나는 제법 힘의 강약을 조절하면서 배의 방향도 적당히 조정하며 다소 느긋하게 카약을 몰아 뭍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한 시간을 조금 넘긴 짧은 탑승이었지만 내게는 훨씬 더 길게 느껴졌다. 파도가 힘차게 일렁일 때마다 몸으로 체감되는 떨림과 울림이 메아리처럼 오래 가셔지지 않았다. 뭍으로 나오니 다시 카약을 타고 바다로 나가고 싶은 열망이 벌써 몸과 마음을 달뜨게 만들었다. 그 스릴과 열망을 일행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지만, 오전에 한 분 귀인을 만나느라(이번 주 나의 독서일기를 참조하기 바란다.) 용문사를 가보지 못해 할 수 없이 먼저 자리를 떠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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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즐겨본 만화영화에 ‘바다의 왕자 마린보이’가 있었다. 거기서 마린보이는 돌고래를 타고 바다 물살을 가르며 악당들을 물리치곤 했다. 내게 돌고래 등에 올라 바다를 질주할 기회는 오지 않겠지만, 카약은 돌고래를 타는 것만큼이나 신나는 모험이었다. 매일 카약을 탄다는 사람의 말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가족들과 함께 와 이 즐거움을 나누어주어야겠다.

남해는 바다와 산악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치[多景]와 인심 좋고 풍류도 아는 사람들[多仙], 다양한 레저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多樂] 시설이 두루 갖추어진 하늘이 내린 보배 같은 섬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남해 역시 삼다(三多)의 섬이라고 말하고 싶다. 공자는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고 했다. 남해 가까이 사는 분들은 물론이려니와 먼 곳에 사는 분들이라도 짬이 나거나 휴가 때면 이곳 남해에 와서 맛과 멋을 흠뻑 즐기시라고 자랑스럽게 그리고 주저없이 권하련다.

역시 첫 경험은 긴장감도 짜릿하고 잊지 못할 추억도 남겨 오래토록 지워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