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지 아십니까? 먹을 수 없는 떡과 먹을 수 있는 떡이 있습니다. 삼형제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머리에 부스럼투성이와 코흘리개와 눈꼽쟁이 삼형제가 살았습니다. 어머니가 떡 한시루를 주면서 병신짓을 안하는 형제가 먹으라 했습니다. 참을 대로 참다가 부스럼쟁이가 이야기를 끄집어 냈습니다.
“산에 갔더니 머리에 뿔이 여기도 나고 저기도 난 사슴이 뛰어가더라”머리를 긁습니다. 코흘리개가 손등으로 휑하니 코를 닦으며 말합니다.“총이 있으면 땅 하고 잡을텐데” 눈꼽쟁이가 눈가에 붙은 파리를 쫓으며 한마디 합니다. “쓸데없는 소리들 말어, 총도 없는데 그 빠른 짐승을 무슨 재주로 잡어?” 그래서 결국 그 떡은 세 형제가 나눠먹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눈앞의 떡은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먹을 수 없는 떡도 있는 모양입니다. 먹을 수 없는 떡도 있고 먹을 수는 있어도 맛없는 떡도 있지요.
떡 타령을 했으니 떡 그림 몇 점 보여드리겠습니다. 여기서 어떤 떡이 먹을 수 있는 떡인지, 먹을 수 없는 떡인지, 먹을 수 있다면 어떤 떡이 맛있는 떡인지 맛없는 떡인지 알아 맞춰 보시기 바랍니다.
무이구곡도
고산구곡도
소상팔경도
관동팔경도 무이구곡도 고산구곡도 소상팔경도 관동팔경도입니다. 무이구곡도와 소상팔경도는 중국, 고산구곡도와 관동팔경도는 조선의 풍광을 노래합니다. 당시 교통 관광의 사정이 좋지 않았으니까 먹을 수 없는 떡이었지만 우리 조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을 수 있는 떡으로 만들었습니다.
무이구곡도부터 볼까요?
1.무이구곡도
武夷九谷圖.-사임당
무이구곡도입니다. 중국 복건성 무이산 계곡의 아홉 절경입니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가 1183년, 54세때 무이산 30리 되는 곳에 무이정사를 짓습니다.
위에 제발이 보이지요. 그건 주자가 다음해인 1184년에 지은 9편의 칠언절귀의 서문에 해당합니다. 위에는 무이산 아래 무이군이라는 신선이 노닙니다. 가운데는 주자가 무이정사에 앉아 있고요, 아래는 배타고 유람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이 그림은 좀 특이합니다. 그냥 선묘로만 그려지고 있지요. 채색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자세히 보면 종이도 한지나 장지가 아니고 선이 그려진 부분에 연필자국이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이런 자국이 생겼을까요? 이 그림은 모본-그러니까 다른 그림을 그리기 위한 대본입니다. 그림 그릴 종이위에 이 모본을 얹고 연필로 눌러 선을 그립니다. 연필은 일제시대에 이 나라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니까 이 연필자국은 1900년대 이후에 그려졌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 그림은 철저히 중국의 것입니다. 주자도 정사도 구곡에 묘사된 승진동 옥녀봉 선기암 금계암 영적? 선장봉 석당사 고루암 신촌? 등 지명도 중국의 것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이 조선에서 그려졌습니다.
조선왕조는 국가의 건국이념을 주자의 성리학에서 찾았습니다. 안평대군은 서울의 북문 밖에 무이정사를 짓고 천하의 좋은 서화를 모았습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성리학의 대가인 퇴계는 도산서원을 세우고 도산12곡을 지었습니다. 이를테면 유학찬가입니다.
그런데 이런 그림이 민화에서 그려진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서민들이야 어찌 성리학을 알겠습니까? 그래서 소상팔경처럼 한국화한 중국풍물이 그려지기도 합니다.
2. 소상팔경병
溯湘八景圖
4폭1조
강천모설
동정추월
어촌석조
원포귀범
-송완당
소상팔경도
소상팔경가2.
소상퍌경을 그린 그림입니다. 소상은 중국 호남성에 있는 소강과 상강이 합쳐지는 곳을 말합니다. 소상의 경치 중 여덟 경승을 그린 것이 소상팔경입니다.
1078년 송적이 처음 팔경도를 그렸구요. 오늘날에도 팔경으로 전해져 내려옵니다. 한국에는 고려 명종의 어명으로 이광필이 소상팔경도를 그렸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보입니다. 일본에도 무라마찌 시대에 소상팔경도가 유행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얼마나 유명했으면 이토록 동양인들의 칭송을 받았을가요? 그런데 이 소상팔경도를 자세히 따져보면 이상한 점이 눈에 띕니다. 소강과 상강의 합류점이라 했는데, 실제 동정호의 남남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그 합류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화제가 문제입니다.
그림을 볼까요? 소상의 밤비, 동정호의 가을 달에는 지명이 있습니다만 어디라고 지적은 하지 않습니다. 강에 내리는 저녁 눈, 산동네 맑은 바람, 어촌 저녁놀, 산사의 저녁 종, 포구의 돛단배, 백사장의 기러기... 등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한국의 어느 산골을 그린 듯한 소상팔경도가 그려집니다.
어릴 때 꿈에서 실컷 외국여행을 하고나서 깰 무렵이 되면 그 외국이 바로 자기 동네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허망함 같은 것일까요?
이화중선의 소상팔경가를 들으면서 소상팔경 그림 감상할까요? 중간에 연사모종이 황룡애원으로 바뀝니다. 그러나 그게 문제입니까? 송적의 소상팔경시도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소상팔경도도 범중엄의 악양루사에서 따온 것인데요...
이렇게 엉성한 화제와 그림이기 때문에 동양삼국의 공통화제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3.관동팔경도 -
關東八景圖
통천 총석정,
고성 삼일포,
삼척 죽서루,
평해 월송정,
울진 망양정
3.관동팔경도라 되어 있습니다. 바다 속에 섬들이 떠있고 멀리 산이 보이는데 빼어난 절경 속에 폭포, 정자, 암자 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관동팔경이라니까 관동팔경으로 부르지만 그림이나 그림안의 글씨로 봐서는 관동팔경이나 혹은 금강산 중에서도 외금강 내금강 해금강 신금강 등에 보이는 지명은 아닙니다.
단지 하나의 단서가 있다면 관동제1정이라 되어 있으니 관동팔경이 아닌가 하는 모양입니다. 관동팔경을 그린 낱장 그림들 몇 점 볼까요?
통천 총석정, 고성 삼일포, 삼척 죽서루, 평해 월송정, 울진 망양정이군요. 이 그림들에는 양양 낙산사, 강능 경포대, 간성 청간정이 빠져있습니다. 사실 여기에도 억지로 꿰어 맞추니까 관동팔경이지 팔경이라 하여 소상팔경처럼 팔폭 병풍이 의젓하게 그려지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소상팔경 민화는 구체적인 지명이 없는 대신 따로 그려지는 경우가 드물고, 관동팔경은 지명과 명승이 명기되면서도 함께 그려지는 경우가 드뭅니다. 왜 그럴까요.
소상팔경도는 주로 기방이나 사랑방에 붙인다 했습니다. 그러나 관동팔경은 특별히 어디에 붙인다거나 어떤 때 사용한다거나 등의 이야기가 붙지 않습니다. 문만 열면 설악이 보이는 곳에 사는 사람이 설악산 대형사진을 벽에 붙이겠습니까? 아무래도 언제나 볼 수 없는 풍광이라는 점이 이러한 그림을 그리게하는 동기가 되었다고 보아야겠지요. 그러니까 이국정서를 느낄 수 있는 소재로서 오늘날 나이아가라 폭포 사진 붙이듯 붙였을 테죠. 또는 중국의 경관을 보면서 호탕하게 통 크게 즐기라는 의미에서 아마 기생방에 붙였던 모양입니다.
기본적으로 무이구곡이나 소상팔경은 팔경이라는 형식이 확정된 후에 이 나라에 전파되었습니다. 한국인에게는 사실 어떠한 형태이건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먹을 수 없는 떡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떡처럼 그려야 했습니다. 시루도 고물도 팥도 빠지면 먹음직한 떡으로 보이겠습니까? 요즘 말로 하면 패키지 투어가 되는 것이지요.
가기 싫어도 보기 싫어도 가고 그려야 했던 것이 소상팔경이었습니다. 반면에 관동팔경은 먹을 수 있는 떡이었습니다. 아무 때나 괴나리봇짐에 짚신 두어 켤레만 매어달면 떠날 수 있는 반도에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관동팔경에 가지 위해 억지로 패키지 여행권을 구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관서팔경 영주십경 등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관광엽서를 사서 관광을 한 후 돌아올 때엔 엽서를 쓰레기통에 버리고서 명승의 인상만 가슴에 담고 돌아오듯 그림을 그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보다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금강산은 관동팔경처럼 들르고 싶은 곳만 들어도 되는 곳인데도 언제나 함께 그려집니다. 이유를 생각해 볼까요? 무슨 떡 좋아하세요? 아무 떡이나 제일 맛있는 떡이 금강산이라 생각하세요.
그럼 관동팔경은요? 그건 먹을 수 있는 떡에서 제일 맛없는 떡이라 생각하십시오. 개떡이라도 좋고 개떡 만들어 주면서 맛있게 먹으라고 들이미는 마누라라도 좋고...
어쨌건 관동, 관서팔경은 금강산에서도 짜투리 땅이고 개떡지비 같은 것입니다. 다음 시간을 놓치지 마십시오. 떡은 뜨끈뜨끈할 때 먹어야 맛있습니다.
혹시 다음 시간을 놓치시면 화로를 준비하십시오. 둘러치나 메어치나 뜨끈뜨끈하게 구어 먹는 맛도 감칠맛이니까요.
-2017년 보유補遺
비디오수록분에서 누락된 소상팔경의 내력은 순舜임금과 이비二妃의 이야기에서 성론詳論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