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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원고 김○○(환자)은 이 사건 치료의 중단으로서 인공호흡기를 제거할 의사가 있다고 판시하여 원고 김○○의 주장을 의제함. 나. 치료를 중단함으로써 곧바로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경우 생명보호의 원칙상 환자 본인도 치료중단을 요구할 권리가 없음. 따라서 의사는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는 환자의 요구에 원칙적으로 응할 의무가 없음. 다. 생명연장치료가 식물인간 상태로 무의미한 생명연장을 강요하여 인간의 존엄을 해하는 경우에 한하여 환자는 치료중단을 요구할 권리가 있음. 따라서 이 경우 의사는 인공호흡기의 제거 요구를 거부할 수 없음. 라. 의사가 환자의 치료중단의 요청을 거부할 수 없는 경우에 관하여 입법으로 규정함이 바람직하지만 구체적 입법이 없더라도 환자의 자기결정권 및 죽음을 맞이함에 있어 존엄을 추구할 권리에 기하여 최소한의 요건이 설정될 수 있음. 마. 회복가능성 및 의학적 무의미성에 관한 판단은 환자의 치료를 담당한 병원 뿐만 아니라 제3의 중립적 의료기관에 의한 의학적 진단을 토대로 규범적 판단이 되어야 하며 원고 김○○에 대한 인공호흡기 부착의 치료행위는 의학적으로 무의미함. 바.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기한 치료 중단 의사는 원칙적으로 그 치료 중단 당시 명시적으로 표시되어야 유효하나, 환자가 의식불명인 경우 진정한 의사를 추정하여 그 추정된 의사에 기한 자기결정권의 행사가 가능하며 원고 김○○은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고자 하는 의사를 가지고 표시하였을 것으로 추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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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치료의 중단은 환자의 자기결정권 행사에 근거를 가지는 것으로 환자의 가족들이 환자에 대한 생명연장치료로 인하여 경제적ㆍ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에 관한 입법이 없는 한 타인의 생명을 단축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치료 중단을 청구할 독자적 권리를 가진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위 원고들 역시 독자적으로 원고 김○○(환자)에 대한 이 사건 인공호흡기의 제거를 청구할 권원을 가진다고 보기 어려움. 나. 진료계약은 위임계약으로서 보호자가 환자를 위하여 제3자를 위한 계약의 형태로 체결될 수도 있으며 계약당사자가 이를 언제든지 해지할 수 있다고 할 것이나, 제3자를 위한 진료계약에서 보호자 등 계약당사자가 계약을 해지한다고 하여 바로 환자인 제3자에 대한 의사의 치료의무가 소멸된다고 보기는 어렵고 치료의 계속 및 중단은 여전히 환자 본인의 의사에 따라야 할 것인데, 원고 이○○(환자가족)의 의사표시로 이 사건 진료계약이 해지되었다고 하여 피고의 원고 김○○에 대한 치료의무가 바로 소멸되었다고 볼 수 없음. |
Ⅳ. 항소심 판결의 주요 내용
항소심 판결은 피고의 항소를 기각하였는 바 결론은 1심과 동일하지만 판결의 주요 논리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1심 판결은 환자가 응급의료에관한법률상의 응급환자에 해당함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이와 달리 항소심은 원고가 일단 생명의 급박한 위험에서 벗어나 더 이상 응급환자의 지위에 있지 않고 이후로는 통상적인 의료행위의 대상으로 전환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또한 회생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연명치료 중단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근거한 자기결정권의 행사에 의하여 곧바로 가능하다고 할 것이므로, 실정법적인 근거를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서 찾을 필요는 없다고 판시하였다.
1심 판결과 달리 항소심은 개개의 사례들을 모두 소송사건화하여 일일이 법원의 판단을 받게 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판시하고 별도로 ‘연명치료 중단의 요건’과 그 ‘판단주체’를 언급하고 있다. 즉 항소심은 연명치료 중단의 요건으로서 ① 회생가능성 없는 비가역적인 사망과정에의 진입, ② 환자의 진지하고 합리적인 치료중단 의사, ③중단을 구하는 치료행위의 내용, ④의사에 의한 치료 중단의 시행 등 네 가지를 들고 있다. 항소심은 1심 판결과 달리 비가역적 사망과정에의 진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용어는 독일 판례에서 차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항소심은 회생가능성 없는 비가역적인 사망과정에의 진입 여부의 판단에 대하여 회생가능성 판단에 있어 담당의사의 의견이 존중되어야 하고, 병원윤리위원회와 같은 기구의 심의도 필요하나 제3의 중립적 의료기관에 의한 판단 역시 어떤 형태로든 필요하다고 판시하였다. 제3의 중립적 의료기관의 판단이 필요한 근거로서 환자 또는 가족과 담당의사 사이의 신뢰가 깨어진 경우도 흔히 상정할 수 있는 점을 들고 있다.
또한 환자의 진지하고 합리적인 치료중단 의사와 관련하여 기본적으로 제1심의 판단과 다르지 않지만 중요한 여러 가지 정당화 논리를 제시하고 있다. 우선, 환자가 의식을 상실한 경우 환자의 주관적 의사의 확인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자칫 불가능한 요건을 요구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고 판시하고 환자의 의사는 유사한 치료행위에 관한 견해 등을 포함한 환자의 평소 언행과 생활태도, 인생관 및 종교관 등을 통하여 환자가 현재의 상태에 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았다면 표시하였을 진정한 의사를 구체적으로 추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환자의 추정적 의사를 판단함에 있어 회생가능성의 정도 등을 함께 고려하지 않을 수 없으며 만약 회생가능성의 정도가 매우 낮거나 장기간에 걸친 연명치료를 해온 경우 등이라면 환자의 의사를 다소 완화하여 추정할 수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중단을 구하는 치료행위의 내용과 관련하여 중단하는 치료행위에 환자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한 치료나 일상적인 진료 등이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고 판시하고 있다. 중단을 구할 수 있는 치료는 환자 상태의 개선이 아니라 환자의 연명 즉 사망과정의 연장으로서 현 상태의 유지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또한 치료행위에 드는 비용의 문제도 함께 고려하여야 하며 그 치료행위에 드는 비용이 과다한 경우라면 이러한 점은 환자 본인과 가족의 경제적인 부담 뿐 아니라 의료자원의 균형적 배분이라는 사회적인 관점에서도 그 중단 여부를 결정하는 데에 참작사유가 될 수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의사에 의한 치료중단의 시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즉 연명치료 뿐 아니라 그 중단행위도 의료행위로서, 의료행위는 의료인이 아니면 이를 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Ⅴ. 상고이유서의 주요내용
1. 환자의 상태
환자는 지속적 식물상태이며 뇌사 상태는 아니다. 일반적으로 일정한 선행조건을 충족한 후에 다음의 판정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경우 뇌사 판정을 내릴 수 있다.
(1) 외부자극에 전혀 반응이 없는 깊은 혼수상태일 것
(2) 자발호흡이 되살아날 수 없는 상태로 소실되었을 것
(3) 두 눈의 동공이 확대·고정되어 있을 것
(4) 뇌간반사가 완전히 소실되어 있을 것
다음의 반사가 모두 소실된 것을 말한다.
(가) 광반사(light reflex)
(나) 각막반사(corneal reflex)
(다) 안구두부반사(oculo-cephalic reflex)
(라) 전정안구반사(vestibular-ocular reflex)
(마) 모양체척수반사구역반사(cilio-spinal reflex)
(바) 구역반사(gag reflex)
(사) 기침반사(cough reflex)
(5) 자발운동·제뇌강직·제피질강직 및 경련 등이 나타나지 아니할 것
(6) 무호흡 검사 결과 자발호흡이 유발되지 아니하여 자발호흡이 되살아날 수 없다고 판정될 것
(7) 재확인 : (1) 내지 (6)에 의한 판정결과를 6시간이 경과한 후에 재확인하여도 그 결과가 동일할 것
(8) 뇌파 검사 : (7)에 의한 재확인 후 뇌파검사를 실시하여 평탄뇌파가 30분 이상 지속될 것
환자는 의식이 없으며 자발호흡이 간간이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인공호흡기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다(2, 6번 요건의 충족). 그러나 통증에 대하여 반응하며(1번 요건 결여), 두 눈의 동공이 확대되지 않은 상태로 고정되어 있으며(3번 요건 결여), 뇌간반사 중 안구두부반사, 구역반사 등이 살아 있으며(4번 요건 결여), 자발운동이 있으며(5번 요건 결여) 뇌파검사상 평탄뇌파가 아니라는 점에서(8번 요건 결여) 뇌사 상태는 아니다.
환자는 2008. 2. 18. 사고일 이후 2-3주 후까지는 상태가 가장 안 좋은 상태였으며 각막 반사, 전정안구 반사 등 뇌간 반사도 거의 소실된 상태였다. 그러나 2008. 6. 3. 시행한 신경학적 검사에서는 각막반사, 전정안구 반사 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가 2008. 10. 15. 감정의사 이○○이 검진 당시에는 각막반사, 전정안구 반사가 모두 소실되었으며 항소심 변론 종결일인 2008. 1. 20.경에는 각막반사는 소실되었으나 전정안구 반사, 미약한 구역반사 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 전체적으로 커다란 상태 변화는 없지만 범주적으로는 여전히 지속적 식물상태이다.
환자의 뇌파검사상 광범위한 뇌손상 소견을 보이는 것은 사고일 이후 별다른 변동이 없으며 뇌 CT 촬영 결과 저산소성 뇌손상 소견을 보이는 것도 사고일 이후 별다른 변동이 없다.
환자의 활력징후 및 주요 투약 상황은 다음과 같다. 2008. 2. 18. 사고 후 저혈압, 발열 때문에 항생제를 수차례 사용하였다. 동년 3월 이후 체온은 정상으로 되고 감염도 호전되었다. 그러다가 동년 4월 이후 중심정맥과 관련된 발열이 의심되어 메로펜, 반코마이신 등의 항생제를 사용하였으며 동년 10월 이후 다시 감염이 호전되었다. 이후 발열 때문에 동년 11월경 반코마이신, 2009. 1.경 실라페넴 등의 항생제를 사용하였으나 2009. 2. 1. 이후 감염이 호전되어 아무런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사고일 이후 혈압상승제, 수혈, 수액 보충 등을 목적으로 삽입되어 있는 중심정맥관은 현재 수액 투입을 목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상태이다. 혈압은 처음에는 저혈압 상태를 보여 소량의 스테로이드 제재를 사용하기도 하였으나 2008. 11. 이후 혈압이 잘 유지되어 스테로이드 제제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현재 혈압은 주로 정상이며 간혹 잠깐씩 감소되었다가 저절로 회복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영양공급은 초기부터 지금까지 비영양관으로 하고 있으며 잘 유지되고 있다. 배후 질환과 관련하여 2008. 2. 20. 혈액검사상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 시사하는 면역 단백인 Ig G 증가(4,050 mg/dl, 정상 700~1,600 mg/dl), 카파 라이트 체인 증가(1330mg/dl, 정상 170~370 mg/dl) 소견을 보였으나 골수 조직검사는 보호자가 거절하여 시행하지 못하였다.
환자의 상태를 요약하면 환자는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대뇌의 인지 기능이 상실되고 의식이 없고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지속적 식물상태이며 더 나아가 자발호흡이 거의 없는 상태로서 인공호흡기의 도움 없이는 호흡을 유지할 수 없는 심각한 상태이나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 일부 뇌간 반사의 유지, 자발운동의 존재 등으로 볼 때 범주적으로는 여전히 뇌사 상태는 아니다. 또한 비영양관을 통한 영양공급은 잘 유지되고 있으며 현재는 아무런 항생제나 승압제를 사용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혈압, 체온 등 활력징후가 비교적 잘 유지되는 상태로서 현재 환자의 기대 생존기간은 적어도 4개월은 될 것으로 추정된다.
2. 회생가능성 없는 비가역적인 사망 과정에 진입하였는지의 여부
1심은 감정 의사 이○○의 견해에 따라 환자의 기대 생존기간이 식물상태가 발생한 날인 2008. 2. 18.부터 1년 이내, 즉 2009. 2. 18. 정도라고 판시하였다. 이에 대하여 1심에서 담당 의사 박○○은 원고의 기대 생존기간이 식물상태가 발생한 날인 2008. 2. 18.부터 1년 내지 2년까지 될 수 있다고 하였으며 원심 변론기일에서도 소송 대리인을 통하여 환자의 기대 생존기간이 앞으로 6개월 정도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런데 환자는 식물상태가 발생한 날인 2008. 2. 18.부터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존해 있다. 현재 환자의 상태는 인공호흡기로 호흡이 유지된다는 것 이외에 혈압, 체온, 맥박 등 신체활력징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현재에도 환자의 기대 생존기간은 적어도 4개월은 될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렇듯 상당한 정도의 기대 생존기간이 남아 있는 환자가 비가역적인 사망 과정에 진입하였다고 판단한 원심의 판단은 환자의 기본권인 생명권을 침해한 헌법위반으로서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고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이렇게 기대 생존기간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연명치료가 의학적으로 무의미하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다만 원심을 선해하면 환자의 기대 생존기간이 상당기간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일상적인 진료라 할 수 없는 인공호흡기에 의해 생존이 유지되는 상태이므로 이를 비가역적인 사망과정에 ‘진입’하였다고 판단하였을 수 있다. 만일 그렇다면 ①일상적 진료와 특별한 진료의 구별기준이 무엇인지, ②인공호흡기가 인공 영양과 달리 특별한 진료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 ③ 일상적 진료가 아닌 특별한 진료에 의해서만 생존이 유지되는 경우라면 비록 기대 생존기간이 일정 기간 남아 있더라도, 즉 죽음이 임박해 있지 않더라도 이를 비가역적인 사망과정에 ‘진입’하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인지 혹은 더 나아가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치료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등으로 판시가 구체화되어야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3. 인공호흡기 제거에 관한 추정적 의사가 인정되는지의 여부
원심은 회생가능성 없는 비가역적 사망과정에 진입하였다는 전제하에 인공호흡기 제거에 관한 추정적 의사가 인정된다고 판시하였다. 만일 원심의 판단과 같이 비가역적 사망과정에 진입하였다면 환자의 자기결정권의 행사는 요구되지 않는다 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하였듯이 환자는 비가역적 사망 과정에 진입하였다고 보기 어려우며 환자의 기대 생존기간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연명치료가 의학적으로 무의미하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환자의 진지하고 합리적인 치료중단 의사가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물론 원심이 인정하고 있듯이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추정적 의사에 기하여 행사가 가능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추정적 의사라 함은 일반적ㆍ추상적 의사가 아니라 특정한 상황에서의 구체적인 명백한 의사를 의미하며 특히 환자의 생명 단축을 초래하는 결정에 있어서의 추정적 의사는 엄격한 요건 하에 인정하여야 하며 ’의심스러울 경우에는 생명의 이익으로(in dubio pro vita)‘라는 원칙에 따라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원심은 환자가 3년 전 남편의 임종 당시 기관절개술 거부를 결정한 것으로 판시하고 있으나 환자의 남편 고 이◇◇에 대한 연명치료 포기 요청서, 심폐소생술 포기 요청서는 환자가 아닌 환자의 며느리 정◈◈가 사인한 것으로서 환자가 이를 결정하였다고 볼 만한 아무런 증거가 없으며 더 나아가 자신에 대하여도 그러한 연명치료를 바라지 않는다는 명시적 의사를 표시한 바 없으며 오로지 환자 가족들의 진술 뿐이다. 물론 연명치료 중단에 있어 환자 가족의 의사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보라매 병원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환자 가족의 의사를 환자의 의사로 바로 등치시킬 수는 없다.
따라서 가족이 아닌 제3자의 보강 진술 혹은 외부인사의 참여가 보장된 병원윤리위원회의 심의 등 일반적인 기준 혹은 절차적 기준을 제시하고 이 사건이 그 기준을 충족하는지 혹은 그 기준을 충족하지는 않지만 법원의 심리 결과 환자의 추정적 의사가 인정된다는 등의 형태로 판시가 구체화될 수 있다면 의료현장의 혼란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이러한 요건이 충족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의사를 무리하게 추정한다면 이는 환자의 기본권인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헌법위반으로서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고 할 것이다.
Ⅵ. 대법원 판결의 주요 내용
2009. 5. 21. 대법원은 처음으로 연명치료 중단의 일반적 요건과 절차를 제시하였다. 즉 ①의식의 회복가능성이 없고 ② 생명과 관련된 중요한 생체기능의 상실을 회복할 수 없으며 ③ 환자의 신체상태에 비추어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이 명백한 경우에 회복불가능한 사망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환자가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대법원은 사전의료지시서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소송이 제기된 경우가 아니라면 회복불가능한 사망 단계 여부는 병원윤리위원회의 판단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대법원 판결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연명치료 중단의 일반적 요건과 절차에 관한 판단
가. 회복불가능한 사망 단계에 진입한 환자에 대한 진료중단의 허용 요건
의학적으로 환자가 의식의 회복가능성이 없고 생명과 관련된 중요한 생체기능의 상실을 회복할 수 없으며 환자의 신체상태에 비추어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이 명백한 경우(이하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라 한다)에 이루어지는 진료행위(이하 ‘연명치료’라 한다)는 원인이 되는 질병의 호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질병의 호전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에서 오로지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이루어지는 치료에 불과하므로, 그에 이르지 아니한 경우와는 다른 기준으로 진료중단 허용 가능성을 판단하여야 한다.
환자가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진입한 경우, 환자는 전적으로 기계적인 장치에 의존하여 연명하게 되고, 전혀 회복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결국 신체의 다른 기능까지 상실되어 기계적인 장치에 의하여서도 연명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므로, 의학적인 의미에서는 치료의 목적을 상실한 신체 침해 행위가 계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이는 죽음의 과정이 시작되는 것을 막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는 이미 시작된 죽음의 과정에서의 종기를 인위적으로 연장시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른 후에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하여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연명치료의 중단이 허용될 수 있다.
나. 사전의료지시서와 관련하여
환자가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르렀을 경우에 대비하여 미리 의료인에게 자신의 연명치료 거부 내지 중단에 관한 의사를 밝힌 경우(이하 ‘사전의료지시’라 한다)에는 비록 진료 중단 시점에서 자기결정권을 행사한 것은 아니지만 사전의료지시를 한 후 환자의 의사가 바뀌었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전의료지시에 의하여 자기결정권을 행사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사전의료지시는 진정한 자기결정권 행사로 볼 수 있을 정도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따라서, 의사결정능력이 있는 환자가 의료인으로부터 직접 충분한 의학적 정보를 제공받은 후 그 의학적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의 고유한 가치관에 따라 진지하게 구체적인 진료행위에 관한 의사를 결정하여야 하며, 이와 같은 의사결정 과정이 환자 자신이 직접 의료인을 상대방으로 하여 작성한 서면이나 의료인이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위와 같은 의사결정 내용을 기재한 진료기록 등에 의하여 진료 중단 시점에서 명확하게 입증될 수 있어야 비로소 사전의료지시로서의 효력을 인정할 수 있다.
환자 본인의 의사에 따라 작성된 문서라는 점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의료인을 직접 상대방으로 하여 작성하거나 의료인이 참여한 가운데 작성된 것이 아니라면, 환자의 의사결정능력, 충분한 의학적 정보의 제공, 진지한 의사에 따른 의사표시 등의 요건을 갖추어 작성된 서면이라는 점이 문서 자체에 의하여 객관적으로 확인되지 않으므로 위 사전의료지시와 같은 구속력을 인정할 수 없고,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의 하나로 취급할 수 있을 뿐이다.
다. 사전의료지시서가 없는 상태에서 환자 의사의 추정과 관련하여
한편, 환자의 사전의료지시서가 없는 상태에서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진입한 경우에는 환자에게 의식의 회복가능성이 없으므로 더 이상 환자 자신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여 진료행위의 내용 변경이나 중단을 요구하는 의사를 표시할 것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환자의 평소 가치관이나 신념 등에 비추어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환자의 최선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인정되어 환자에게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연명치료의 중단을 선택하였을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경우에는 그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사회상규에 부합된다.
이러한 환자의 의사 추정은 객관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가 있는 경우에는 반드시 이를 참고하여야 하고, 환자가 평소 일상생활을 통하여 가족, 친구 등에 대하여 한 의사표현, 타인에 대한 치료를 보고 환자가 보인 반응, 환자의 종교, 평소의 생활 태도 등을 환자의 나이, 치료의 부작용, 환자가 고통을 겪을 가능성,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르기까지의 치료 과정, 질병의 정도, 현재의 환자 상태 등 객관적인 사정과 종합하여 환자가 현재의 신체상태에서 의학적으로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는 경우 연명치료 중단을 선택하였을 것이라고 인정되는 경우라야 그 의사를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라. 병원윤리위원회의 중요성 언급
환자 측이 직접 법원에 소를 제기한 경우가 아니라면, 환자가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르렀는지 여부에 관하여는 전문의사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 등의 판단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2. 이 사건에 대한 판단
가. 회복불가능한 사망 단계에 진입한 것인지 여부
원심은 거시 증거를 종합하여 원고에 대한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에서 뇌가 전반적으로 심한 위축을 보이고 대뇌피질의 요철이 단지 가느다란 띠 형상으로 보일 정도로 심하게 파괴되어 있으며 기저핵 시상(視床)의 구조가 보이지 아니하고 뇌간 및 소뇌도 심한 손상으로 위축되어 있는 사실, 원고의 담당 주치의는 원고에게 자발호흡은 없지만 뇌사상태는 아니며 지속적 식물인간상태로서 의식을 회복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5% 미만이라는 견해를 피력하였으나, 진료기록 감정의는 원고가 자발호흡이 없어 일반적인 식물인간상태보다 더 심각하여 뇌사상태에 가깝고 회복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하고 있으며, 신체감정의들도 모두 원고가 지속적 식물인간상태로서 회생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취지의 견해를 밝히고 있는 사실, 자발호흡이 없어 인공호흡기에 의하여 생명이 유지되는 상태인 사실을 각 인정한 후, 원고가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진입하였다고 판단하였다. 원심의 판단에는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은 의료행위의 재량성에 대한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없다.
나. 환자 의사의 추정과 관련하여
원심은 거시 증거를 종합하여 원고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15년 전 교통사고로 팔에 상처가 남게 된 후부터는 이를 남에게 보이기 싫어하여 여름에도 긴 팔 옷과 치마를 입고 다닐 정도로 항상 정갈한 모습을 유지하고자 하였던 사실, 텔레비전을 통해 병석에 누워 간호를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 “나는 저렇게까지 남에게 누를 끼치며 살고 싶지 않고 깨끗이 이생을 떠나고 싶다”라고 말하였던 사실, 3년 전 남편의 임종 당시 며칠 더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기관절개술을 거부하고 그대로 임종을 맞게 하면서 “내가 병원에서 안 좋은 일이 생겨 소생하기 힘들 때 호흡기는 끼우지 말라. 기계에 의하여 연명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고 말한 사실 등 일상생활에서의 대화 및 원고의 현 상태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원고가 현재의 상황에 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았을 경우 원고에게 현재 시행되고 있는 연명치료를 중단하고자 하는 의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원심의 판단에는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은 헌법위반이나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없다.
Ⅶ. 앞으로의 과제
인터넷상에서 일부 국민들은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이 진료 수입 때문에 연명치료 중단을 거부한다는 견해를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중환자실은 병원운영에서 적자가 큰 곳이며 인공호흡기 외에 특별한 처치가 요구되지 않는 환자를 장기간 입원시키는 것은 더 큰 적자를 유발한다. 차라리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새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사회적 오해를 유발시키지 않는 편한 길이었다.
그러나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은 생명존중의 의식과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규범을 정립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어려운 길을 선택하였다. 결국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은 소송에서는 패소하였지만 대법원은 연명치료 중단의 일반적 요건과 절차를 제시하였다. 이러한 일반적 요건과 절차가 생명존중의 의식을 확산시키고 의료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하여는 다음과 같은 일들이 필요하다.
우선 대법원이 제시한 연명치료 중단의 요건과 절차를 구체화해야 한다. 즉 회복불가능한 사망 단계라는 개념을 다듬고 사전의료지시서를 보편화시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 또한 병원윤리위원회 규정을 정비하고 외부인사의 참여를 보장하여 절차를 투명화해야 한다. 그리고 대법원이 사법부라는 한계 때문에 결정할 수 없었던 부분에 대하여 사회적 합의와 입법을 도모해야 한다.
이러한 작업에 있어 사회적 의사소통은 매우 중요하며 의료계는 이러한 과정에서 ‘간사’ 역할을 맡아 이러한 의사소통을 촉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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