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문단 신인상 당선작
제목 : 김준호
박새롬
[시작부터 불행한.]
나는 ‘한’까지 적고 샤프로 꾸욱 온점을 찍었다. 힘겹게 종이에 붙어있던 샤프심이 투둑하고 부러지며 책상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온점 옆에는 샤프심의 파편이 남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칠판대신 멀끔한 화이트보드가 매끄러운 글씨들을 새기고 있다. 개인적으로 화이트보드는 눈이 불편한 것 같다. 햇빛이 바깥에서 비치면 반사가 되어 앞이 하나도 안 보이는 느낌이다. 형광등 불빛도 그렇게 반사된다. 낮이든 저녁이든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마이크를 들고 하는 교수의 설명이 멀게만 느껴진다.
그래도 그 손톱만한 고시원에 틀어박혀 있는 것보단 여기가 확실히 괜찮을 거다. 에어컨도 빵빵하고. 바짝 정신 차리고 있을 수도 있고. 내가 사는 고시원 방은 한 달 삼십 오만원에 주택가에 위치해 있고 치안이 좋다. 주위에는 비싼 아파트들이 즐비해서 이른 아침 바깥을 다니다 보면 이름도 모르는 외제차들이 으르렁대며 앞질러가는 모습이 꽤 보인다. 부모님은 밥을 못 먹고 다닐까봐 걱정했지만 이 고시원은 아침마다 새 밥을 해놓는다. 물론 본의 아니게 선착순이라 늦게 가면 밥통이 텅텅 비어있다. 그래서 아침에 밥을 푸러 갈 때 한 이인분 정도를 퍼 나른다. 비겁한데 어쩔 수 없다. 주말엔 술집 알바를 한다. 야간 수당이 좋다. 예쁜 여자애들도 오고 우리 과 애들도 종종 본다. 그리고 최원영도 본다. 우리 술집에 식품배달을 하는 애다. 그리고 내 고시원 주변의 주택가에 사는 애다. 남자답고 얼굴도 잘생겼고 성격도 좋다. 이 앨 만난 건 작년 겨울의 내 고시원 앞 과일가게에서였다. 나는 바깥에 진열된 귤을 고르고 있었고 그 놈은 옆에서 묶어 파는 과자를 이리저리 들어보고 있었다. 우리 둘 다 신중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죄송한데요.
내가 귤을 사고 뒤돌아서 바깥 좌판에 나갈 때까지 최원영은 서 있었다. 회색 츄리닝 차림에 패딩점퍼를 걸치고,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서 발을 동동 구르는 채로.
네.
제가 지갑을 안 들고 와서요…
네.
돈 좀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꼭 갚을게요.
나는 대답대신 봉지에도 넣지 않고 안고 나온 내 빨간 그물망의 귤 묶음을 쳐다보았다.
얼만데요?
이천 원요.
나는 천 원짜리 한 장과 오백 원 하나, 백 원 세 개와 십 원 열 개, 오십 원 두 개를 손에 떨어뜨려 주었다. 그래도 내 주머니엔 백칠십원 정도가 있었다. 하나하나 세며 남의 손바닥에 동전을 쏟아 붓는 느낌이 겨울에 내쉬는 차가운 입김 같았다.
감사합니다. 꼭 갚을게요.
눈이 휘어지도록 방글방글 웃으며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최원영을 보고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저 몸을 돌려 앞에 있는 고시원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정말 갚으러 온 건 뜻밖이었다. 두세 달 쯤이 지나서야 최원영이 고시원으로 찾아왔다. 나는 겨울에 종종 귤을 사러 저녁에 내려가곤 했다. 사실 귤만큼 편한 과일은 없다. 그냥 껍질만 슥슥 까서 먹을 수 있고 오래 방치해도 괜찮고.
내려오셨네요.
찾아왔다기보다, 그냥 이 애가 고시원 입구에 서 있었다는 말이 옳겠다. 그 때 난 최원영을 까맣게 잊고 있어서 아는 척을 하며 오는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 하고 한참을 바라봤다. 해맑게 웃으면서 파카주머니 안에서 꺼내는 지폐 이천 원을 보자 나는 생각이 났다. 최원영은 이천 원 말고, 사과도 건넸다.
겨울 사과가 맛있대요.
네에….
나한테는 과도가 없다. 검은 봉지를 열어보니 사과 세알이 나란히 몸을 굴리며 있었다. 가로등 불빛 때문인지 반질반질 빛이 났다.
여기 사는 건 아는데, 들어가도 되는지 몰라서요.
외부인 출입 금지예요.
나는 사과를 보고 갑자기 기분이 나빠져서 잘라 대답했다. 내 대답에도 최원영은 그렇구나. 하고 별 말 하지 않았다. 옆구리에 무언가 끼여 있어서 흘끗 보니 묶음으로 파는 과자들이었다. 빵빵한 과자봉지 묶음을 옆구리에 걸치고 서 있는 모습이 괴상하기 짝이 없었다.
많이 당황하셨죠, 그때.
괜찮습니다. 그만 가보세요. 날도 추운데.
전처럼 맨발에 슬리퍼 차림인 그를 보고 말했다. 사실 이때 이 사람이 좀 이상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운동화라도 구겨 신고 나오면 될 것을. 그리고 나는 살가운 이 사람이 귀찮았다. 나는 공부를 해야 하고, 장학금을 타야했다. 엄마와 아빠는 말도 못할 깡 촌에서 농사를 지었고 할머니를 모셨다. 나는 중학교 때 서울로 올라왔는데, 다니는 콩알 만 한 학교가 육학년 끝물에 폐교되었기 때문이었다. 말도 못할 깡 촌에서 자란 우리 집은 말도 못하게 가난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 억지 같은 학비를 대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친척집은 눈치가 보이진 않았지만 참담하기 그지없는 심정을 맛봐야 했다. 나는 더럽고 괴상하게 구질구질했다. 그게 내가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이때의 최원영이 나에게 사과를 건넨 것이 의도든 아니든. 이런 이유처럼.
나는 귤을 사고 올라갔다. 사과는 옷가지에 팽개치고 빨간 그물망을 찢어 귤껍질을 깠다. 사과의 처리가 난감해서 아침에 한 알씩 버스나 지하철을 타러 가며 야금야금 먹었다. 한겨울에 먹는 사과는 손이 시려 썰릴 것만 같았다. 게다가 아침밥을 안 먹고 먹은 탓에 속이 쓰려 강의 중 뛰쳐나와 화장실에서 몽땅 게워내야 했다. 씨발. 나는 땀과 타액으로 축축해진 손을 뜨거운 물로 씻으며 화장실 문을 발로 걷어찼다.
그 이후로 최원영을 만난 적이 없다. 나는 착실히 장학금을 받았고 겨울 방학엔 아르바이트를 했다. 부모님께는 전화하여 일일이 먹을 것을 부치지 말라고 했다.
둘 데 없어요. 쌀이며, 김치며, 여기서 다 살 수 있어요. 다 있으니까 그러지 마세요. 제발. 이제 좀.
처리하기도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자취하는 친구들에게 퍼다 주는 것도 한계가 있었고 고시원 냉장고는 콩알 만 하기 짝이 없어서 그냥 일반 생수 두어 병과 작은 락앤락 통 두세 개, 가끔 여름에 넣는 아이스크림 한두 개 빼고는 자리가 없는 협소한 공간이었다. 티비만도 못하게 작아서 구실이나 할까싶은 의심스러운 냉장고였다. 전화기 속 할머니는 앓는 소리를 했다.
집에라도 내려와서 몸보신이라도 하고 가라.
일해야 돼요.
집에라도, 라니. 중학교 때부터 집 없이 살았던 나에게 생소한 말이었다. 나는 거지같았어도 아무것도 모를 때의 우리 집이 좋았고 그 아무것도 몰랐을 때 계속 살았다면 나는 이렇게 구질구질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통화가 길어질수록 나는 돌에 몸이 묶여 가라앉는 물속에서 발버둥 치고 있는 기분이었다. 어금니가 빠진 할머니의 목소리는 발음이 뭉개져서 입 안에 나한테 보내준 쌀이며 장아찌 같은 것을 한껏 넣고 우물거리는 기분이었다. 내가 받아 주변에 나눠준 음식들이 다시 이 사람들 입으로 돌아가 삼켜진 게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올해 눈이 너무 와서 네 아비가 힘들어해.
그렇겠네요.
그때 서울도 눈이 많이 왔다. 나는 눈 이야기를 하는데 문득 그 최원영을 떠올렸다. 당시 내 머릿속에 ‘이상한 사람이 틀림없다’로 각인된. 추운데도 맨발에 슬리퍼를 끌면서 나와 발을 동동 구르며 서 있던 모습을.
여기도 그래요. 나는 덧붙여 대답했다.
최원영은 고졸이랬다. 배우고 싶은 게 없어서요. 돈이나 벌면서 그냥 살아요. 밑으론 쌍둥이 남매 동생이 있었고 부모님이 있었다.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난 최원영이 먼저 아는 척을 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여기에 항상 식품을 배달하고 성실해서 다들 두루두루 친하다고 했다. 대뜸 서빙을 다하고 돌아오는 날 보고 이천 원! 이천 원! 하면서 방방 날뛰는 모습에 이게 뭔가 했다. 결국 계속 얼굴이 마주치게 되어서 말도 트고 이야기도 속속 했다. 성격이 서글서글하게 좋았다. 동생 이야기, 부모님 이야기, 기르는 개 이야기까지 조잘조잘 잘도 꺼냈다.
형은 언제부터 그 고시원에 살았어요?
대학 들어가고.
집에서 나온 거?
어.
집은 이미 중학교 때 나왔지만.
혼자 살기 힘들겠다. 난 절대 자취는 못 하겠던데.
난 최원영만 보면 속이 쓰렸다. 말을 많이 섞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많이 섞어서 친해지고 싶지도 않았다. 그 겨울에 먹은 사과가 다시 꾸물꾸물 기어오르는 느낌이 항상 들었는데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난 그것 때문에 삼일 내내 화장실에서 먹은 것도 없는 사과조각 뿐인 내 속을 봤어야 했으니까. 하지만 최원영은 살갑게 형, 준호 형, 하며 퇴근도 같이 하고 그랬다. 오토바이를 태워준다고 했을 때 한사코 거절했다. 소름끼치기 짝이 없는 말이었다.
무서워요? 여름에 타면 시원하고 좋아요.
됐어. 너랑 안타. 더워.
그럼 준호 형, 빙수 먹어요. 저기 앞에 팥빙수 진짜 맛있는데.
됐다니까.
고시원은 난방은 잘 됐지만 구조상 통풍은 힘들어 여름에는 더웠다. 그래서 나는 올라가는 계단 창가에 쭈그리고 앉아 차가운 대리석에 몸을 찰싹 붙이고 있었다.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다. 건물 자체가 금연구역이 되기 전까진 창가에서 담배를 태우거나 꼭꼭 닫아서 마치 빈방 같았던 문을 슬그머니 열어놓고 있거나……. 서늘하게 담배 연기가 목을 꽉 채우면 그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방문을 여는 것이다. 별수 없지, 하고.
이제 과일 안사요?
응.
오토바이 헬멧을 쓰는 최원영을 보며 과감하게 버스를 탔다. 최원영이 버스 뒤꽁무니를 보는 모습이 창문에 반사되어 비추었지만 나는 아까부터 연신 진동하던 핸드폰을 들었다. 엄마다. 엄마는 무더운 날씨에 집안에만 틀어박혀서 티비만 보고 있다가 서울 이야기가 나와 나한테 전화를 했다고 했다. 특유의 느릿느릿한 말투로.
등목을 하고 런닝을 입고 선풍기를 돌리고 있는데 벌이 날아와서 갈려 죽더라. 저 시체를 어떻게 하니. 모기가 들끓는데 거긴 어떠니? 이야기가 넘쳤다.
딸기도 맛있게 익었고 수박도 물이 많아 참 달다.
응.
아랫집 혁이 삼촌 기억해? 이번에 결혼한다던데 동남아 여자더라고. 눈이 땡그래서 흰자에 파란 끼도 안 가신 게 곱고 어린데 시집살이나 제대로 할까 싶더라고.
하겠지, 잘.
그래. 심성은 고와 보이던데. 넌 괜찮니?
그만하세요. 제발.
지난겨울에 내가 할머니에게 온갖 말을 삼키고서 겨우겨우 어른스럽게 내뱉은 말 이후로 나에겐 쌀이나 멸치 같은 게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비어가는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마시며 안심했다. 모든 게 제자리야. 머릿속에 물이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일도 할 만하고 괜찮아.
일도 좋지만 재밌게 놀기도 해. 돈 모자르면 부쳐 줄 테니까.
돈 많네. 엄마.
너 놀 돈 한 푼 못 주겠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엄마는 마지막에 언제 내려오니? 라고 물었다.
일한다고 했잖아.
주말에도?
그래.
준호야. 보고 싶어.
응.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사실은 잘 모르겠다.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사람이 보고 싶은 적이 없어서. 봄에 한 번 내려가긴 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직접 사람을 찾아오지 않는 이상, 그 찾아가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일인지 모른다. 그건 즐거움의 여정이 아니다. 불행이 샌드위치 된 가운데의 좋은 허울이지. 부모님과 할머니는 서울을 모른다. 내가 얼마나 더더욱 치열해질 것도…. 늘 그랬듯이. 전화를 끊고 뜨거운 귀를 창가에 붙였다. 에어컨에 젖은 어깨가 식어 등이 서늘했다. 나는 무거운 물 안으로 빠져드는 느낌을 받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보이는 파랗게 썬팅 된 버스 창이 물로 보였다.
-
형.
아이스크림을 고르던 도중에 뒤에서 누가 아는 체를 했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어서 그냥 응, 하고 말았다. 그런데 옆에 조그마한 무언가가 찰싹 붙었다.
오빠. 나 콘 먹을래. 바닐라 맛으루.
나도 바닐라.
응응.
지난번에 말했던 쌍둥이 동생인가 보다. 겨우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로 보이는 애들 둘이서 열심히 뒤적거리고 있었다.
쌍둥이 동생이야?
네. 여자애가 진아구요, 남자애가 진영이. 야야, 인사해. 오빠 아는 형이야.
안녕하세요!
그래.
쌍둥이는 순식간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최원영에게 달려갔다. 나는 메론맛 아이스크림 두 개를 들고 그 모습을 봤다.
형 것도 사줄게요. 내가.
됐어.
저 오늘 월급 받아서 부잔데. 제가 쏘는 거예요.
애들한테 고작 아이스크림 사주고 땡?
그럼 과자도 추가로?
익살스럽게 말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와 픽 웃었다. 결국 동생들은 손에 과자를 나란히 들고 내 아이스크림과 계산을 끝냈다. 나오는데 아이스크림을 고르느라 시선이 닿지 않았던 좌판 구석, 딸기와 포도 옆에 사과가 보였다. 가격이 비교적 쌌다. 여름 사과는 단단하지 못하고 서걱거려 맛이 없으니 잘 팔리지도 않을 것이다. 뒤를 돌아보니 동생들은 쓰레기통을 둘러싸고 껍데기를 버리는 중이었다.
형. 아이스크림 요.
어.
다음엔 형이 사주는 거죠?
나 가난해.
헐….
너보다 더 가난할 걸.
메론맛 아이스크림 하나를 뜯어 핥아먹으며 무심하게 최원영을 봤다. 최원영은 내 대답에 멍청하게 날 보고 있었다. 동생들이 뒤에서 신이 나 최원영에게 매달렸다. 하얀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꽈배기 되어 오른 모습이 가로등에 빛나 자르르 윤기가 났다. 나는 그새 녹는 아이들의 아이스크림을 보고 아직까지 냉기가 풀풀 피어오르는 내 아이스크림에 차근차근 이빨자국을 냈다.
가난하니까 너한테 아이스크림도 구걸하잖아.
저도 가난한데. 그래서 아이스크림이 땡이잖아요.
그렇네.
말은 이렇지만 요즘 밥값이랑 아이스크림 값은 동등하다. 나는 당연한 듯 받아들였다. 피서 같은 달콤함이 원래 더 비싼 법 아닌가. 물가가 오르는 건 마치 나이를 먹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다. 문득 나는 이런 아이스크림조차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잘 먹을게.
내 고시원에서는 아이스크림이 녹는다. 별 수 없는 일이다.
-
여름이 빠르게 가열되고 있었다. 서늘한 에어컨 바람과 상극으로 바깥은 모두 증발되어 버릴 기세로 타올랐다. 날도 더운데 사람들은 시원하다며 술을 마셨고 열기에 취해 픽픽 쓰러졌다. 나는 야간으로 뛰던 아르바이트의 날짜를 조절했다. 월요일에서 수요일까진 쉬었고 나머지는 전부 일을 했다. 여름이라고 가게는 서비스로 계란찜 대신 팥빙수가 나갔다. 그래봤자 얼음에 팥과 우유를 붓고, 시리얼만 뿌린 겉만 번드르르한 밍숭맹숭한 팥빙수였다. 나는 설거지도 했다. 서빙보다 설거지가 더 편했다.
따뜻한 물로 해라. 기름 때 깨끗하게 빼야한다.
사장님이 내가 설거지를 하는 모습을 보고 해주신 말이었다. 나는 이 여름에도 착실히 따뜻한 물로 그릇을 씻었다. 고무장갑을 끼지 않고서. 나중에 느낀 것이지만 손이 거칠거칠해져 있었다. 위생상 늘 하는 소독제도 한몫을 한 것 같았다. 최원영은 한여름에도 목장갑을 끼며 식품 박스를 날랐다. 반팔과 장갑 사이에서 땀이 강처럼 길이 들었고 가끔 쉬었다 가라며 내주는 팥빙수로 찹찹 땀을 식혔다. 원영이의 팥빙수에는 후르츠 칵테일도 들어갔다.
너 엄청 탔다.
복날이 가까워져 오니까 진짜 더워요.
밤인데도 식지 않고 목덜미도 팔도 발갛게 익어있었다. 원영이가 배달하는 장소들 중 우리 가게가 마지막이라고 했다. 그래서 여기서 한가롭게 앉아서 땀도 식히고 이야기도 하다가 갈 수 있는 거라고 그랬다.
복날이 언젠데?
내일이 초복이잖아요.
나는 오늘 아침에도 어제 비겁하게 퍼다 나른 이인분의 밥과 깻잎지 통조림을 따서 먹었다. 봉지 김치를 먹었고 생수를 마셨다. 나는 별 감흥 없이 그러려니 하고 카운터에서 턱을 괴었다. 안쪽 테이블들이 왁자지껄했다.
형. 내일 약속 있어요?
아니.
그럼 우리 집 올래요?
왜?
나는 괴던 턱을 풀며 말했다. 이런 표현하면 이상하기 짝이 없겠지만 애한테 호감을 얻으려고 애쓰는 어른을 보는 기분이었다.
내일 복날인데 닭이나 먹으려구.
가족들이랑 먹어.
에이씨. 우리 엄마아빠 여행 갔어요.
그럼 동생들이랑 먹어.
동생들이 형도 불러서 같이 먹 쟤요.
나는 표정을 구겼다. 에어컨 바람이 고개를 돌려 내 쪽으로 왔다. 방금까지 따뜻한 물에 설거지를 한 손이 메마르게 식어갔다. 치킨과 콜라를 사들고 갈 거라고 했다. 내가 대답하지 않는 걸 괜찮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문득 지난번에 최원영이 산 아이스크림 두 개가 떠올랐다. 먹지 않은 하나는 그 허울만 좋은 냉장고 안에 꽁꽁 얼려져 있다.
같이 먹으면 좋잖아요.
몰라.
문득 고등학교 때가 생각이 났다. 친척 네 집에는 나랑 동갑인 남자애가 있었다. 같은 고등학교였지만 반이 달랐다. 초봄에 나란히 수학여행을 갈 때 난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를 타려면 새벽같이 학교로 가서 버스를 타고 출발해야 했는데 그때 당시의 나는 아침잠이 무척이나 많은 편이었다. 일찍 자도 잠이 쏟아졌다. 휴대폰 알람을 제일 시끄러운 걸로 맞추고 잠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자는데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내 방문은 아니었다. 내 바로 옆 방, 그 애 방이었다. 일어나야지. 일어나야지. 하는 소리에 내가 눈을 떴을 때 어슴푸레하게 밖이 파랬다. 그 앤 잠을 뒤척이며 웅얼거렸다. 어서 씻으라며 몸을 잡아끄는 소리와 바깥 거실과 화장실 스위치가 올라가는 소리, 그 애가 화장실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계속 숨을 죽이고 있었다. 바깥 거실과 함께 있는 부엌에서 가스렌지를 올리는 소리와, 냉장고가 열리며 안에 있는 병들이 짤랑이는 소리가 났다. 화장실에 있는 애의 물소리는 뒤늦게 서야 쏟아졌는데 아마 화장실 안에서 서서 졸은 듯싶었다. 나는 알람을 먼저 내렸고 계속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등에 점점 그 푸르스름한 빛이 닿을 때마다 소름이 끼쳤다. 손가락이 하나하나 어깨에 걸치는 기분이었다. 어린 말이지만 무섭기까지 했는데, 왠지 나갈 수가 없어서 꼼짝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 애가 나오는 타이밍에 맞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문을 열었다. 걸어가서 문고리를 돌리던 그 느낌이 내 등을 훑었던 그 파르스름한 느낌과 똑같았다. 나는 닿지도 않는 손잡이를 한껏 잡아 내린 기분이었다.
형. 올 거죠?
문을 연 거실은 스위치를 올린 형광등 때문에 한 낮이었다. 친척은 깬 날 보면서 놀라며 말했다. 어머, 깼니? 그 애는 씻고 나오고도 비몽사몽 걸었다. 마치 이곳의 취한 사람들처럼 머리를 휘적휘적 돌리면서.
아니.
같이 먹어요.
됐어.
너랑 같이 먹으면 토할 것 같아. 할 수 없는 말이었다. 눈만 둥글둥글하게 뜨고 있는 최원영과 눈이 마주쳤다. 동시에 벨이 울려 나는 카운터를 나갔다. 팥빙수 리필 주문이었다. 왜요. 다시 돌아온 내게 애가 끈질기게 되물었다. 내가 낄 자리 아니야. 말하려고 입을 달싹이다 말았다.
나 바빠.
-
재수가 없으려니 정말 없었다. 이상하게 유독 손님이 많아 추가로 한 시간을 더 뛰고 돌아오는 길에 최원영의 쌍둥이 동생 둘을 만났다. 피곤하진 않았지만 밤더위 때문에 몸이 바닥에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남동생은 콜라를 들고 여동생은 거스름돈을 세고 있다가 나한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어! 우리 집 오는 형이다!
안녕.
나는 짧게 인사하고 고시원으로 올라가려 했다. 컴컴한 대리석 계단 입구로 들어가니 몸이 시원했다. 여기서 올라가는 삼층까진 이렇게 계속 시원할 것이다. 뒤를 도니 쌍둥이들이 우두커니 서서 날 보고 있었다.
거기 시원해요?
응.
그러자 쪼르르 와서 같이 컴컴한 대리석 계단 입구에 선다. 남동생이 안고 있는 콜라는 그새 송송 방울이 맺혔다. 컴컴한 데서 눈들만 반들반들 빛이 났다. 입구 바깥에는 아슬아슬하게 가로등이 걸쳐져 있었다.
오빠가 곧 지나갈 거예요.
나한테 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같이 가요.
땀 때문에 진덕하게 살이 달라붙었다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쌍둥이들 때문에 올라가지도, 그렇다고 바깥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가운데에 끼어서 힘겹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뱉었다.
덥다. 형 언제 오는 거야.
콜라를 안고 있는 남동생이 중얼거렸다.
배고프다.
내가 말했다.
-
컵에 달그랑달그랑 얼음을 넣는 모습을 보며 난 땀에 젖은 옷을 펄럭였다. 사방의 창문이 다 열려있고 바로 옆에서 선풍기가 회전한다. 멀쩡한 소파를 두고 바닥에 앉아 치킨포장을 뜯는 최원영을 보면서 나는 쓰러지듯 소파에 머리를 뉘였다.
오빠. 오빠랑 오빠 기다렸어.
치킨을 들고 고시원 앞에서 마주친 여동생이 최원영을 보고 한 말이었다. 최원영은 그 말에
그래? 잘했어. 라고 말하며 나에게 치킨 하나를 건넸다. 마치 꼭 내 것인 양. 사실 따라왔긴 하고 배고프다고 말도 했지만 나는 씻고 자고 싶었다. 그리고 냉장고에 있는 생수를 마시고 싶었다. 아이들이 콜라를 가득 담아 내 앞에 놓아주었다. 치킨은 순살 치킨이었다. 후라이드와 양념. 나무젓가락이 짝, 하고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나란히 네 명의 젓가락이었다.
형, 먹어요.
나는 건네주는 젓가락을 받았다. 최원영이 웃었다.
식기 전에 먹어요.
동생들은 이미 입 안에서 한껏 닭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남동생은 양념 치킨을 입에 물고 다닥다닥 기어가 티비를 켰다. 나는 티비를 사실 꽤 오랜만에 본다. 고시원에는 티비가 없기 때문이었다. 왁자지껄한 액션 영화가 나왔다. 선풍기 바람이 젖은 내 두피까지 닿아왔다. 영화 속 배경은 연신 얼음이 보였고 눈이 휘날렸다. 주인공으로 나온 동물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눈을 밟고 눈바람을 맞았고 얼음산을 건넜다. 콜라가 담긴 컵을 집자 탄산이 튀는 느낌이 손끝으로 전해져왔다. 나는 지쳐 소리를 들을 수도 없을 것 같았다.
남의 집이라니. 끔찍하게 싫다. 나는 컵에서 손을 떼었다.
형.
어.
닭 싫어해요?
딱히 싫어하는 음식은 없었지만 딱히 좋아하는 음식도 없었다. 나는 후라이드 한 조각과 양념 두 조각을 먹은 상태였다. 콜라엔 손을 대지 않았지만.
뜬금없네.
왜요?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서.
지금은 몇 시 쯤 되었을까. 열두시 반? 새벽 한시?
나는 후라이드 하나를 맨손으로 집어 들었다.
됐어. 신경 쓰지 마.
분명 나는 돌아가면 이 닭을 게워내게 될 것이다. 그게 학교에서인지, 아니면 당장 돌아가는 내 고시원 방에서인지 내일 아침 비겁하게 들고 온 냉장고 안의 밥덩이를 열었을 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것이 아니었으니 나는 분명 토하게 될 것이다. 이 애랑 먹으면 꼭 토할 것 같으니까. 나는 열린 주택가 특유의 베란다 문을 보았다. 언제 두었는지 초록색 모기향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전화해서 모기가 많은데 괜찮냐고 물었을 때, 나는 도시에는 그런 것이 없다고 했다. 엄마. 아파트나 그런데는 그런 게 없어. 거미나 심바리 같은 건 나오지. 바퀴벌레나. 근데 잘 눈에 안 보이게, 컴컴한 데서나 기어 다니잖아. 컴컴한 데서 컴컴한 곳만 골라서 더 기어 다니잖아. 잠 잘 때 꼭 내 밑으로 슬금슬금 기어 다니는 것 같기도 해. 괜찮아. 보이면 죽이고 안 보이면 잘 모르거든. 그 벌레들이 기어 다니는지 날아다니는지 내가 알게 뭐야. 내 방은 삼층이다. 종종 벌레들을 볼 때 휴지로 눌러죽이며 용케도 올라왔구나싶었다.
여긴 벌레가 많겠네.
주택이라 쥐도 있어요. 고양이도 있고.
형광등이 한 낮처럼 밝았다. 형광등은 항상 한 낮처럼 밝다. 나는 들고 있는 후라이드 조각을 해치우고 동생들의 영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린 뒤 고시원으로 돌아갔다. 대리석 계단은 그새 더 싸하게 변해 있었다. 천천히 불도 켜지지 않는 계단을 올라가서 신발을 벗다 말고 주저앉았다. 열린 문 때문에 복도에 냉한 공기가 들어왔다. 늦은 시간 때문인지 빠끔히 문을 연 방들도 없었다.
준호 학생. 기다렸어.
늦게까지 티비를 보시던 총무님이 내 뒤에서 말했다. 나는 신발을 정리하고 문을 닫았다.
택배 왔더라구. 문 앞에 가져다 놨어.
택배요?
응.
내 방은 복도 끝이었다. 밥을 가지러 가는 부엌에서 가장 먼 방이어서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 방이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문 앞에 서서 형체도 보이지 않는 박스를 발로 툭툭 찼다. 박스는 묵직하기 짝이 없었다. 조심스럽게 핸드폰 후레쉬를 키고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주소지가 집이었다. 포장을 뜯어보니 한약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고 편지가 나왔다. 여름이 식고 가을에 올라갈 거라고, 보고 싶다는 편지였다. 한약은 꼬박꼬박 아침저녁으로 먹어라. 나는 한약 봉지에 머리를 파묻었다. 아까 먹은 닭과 한약 내가 섞여서 속이 메스꺼웠지만 도무지 일어날 힘이 나지 않았다. 끝이 까끌까끌한 한약봉지 하나를 만지면서 나는 목만 들어 올려 문을 열었다. 후덥지근한 방 안 공기가 얼굴을 덮었다. 별 수 없었다. 나는 팔과 발을 한껏 늘어뜨렸다. 뺨에 눅진하게 눌러 붙는 먼지에 가려운 볼의 느낌이 꼭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았다. 나는 차라리 벌레가 되었으면 했다. 그리고 더 어두운 곳에서 더 어두운 곳으로 아무것도 모르고 파고들 수만 있다면.
내가 가장 아는 어두운 곳은 형광등이 없는 곳에서 내 눈이 눈을 감는 곳이었다. 나는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게 트림이 났다.
국제문단 신인상 당선소감
박새롬
살면서 누군가가 주는 상이나 칭찬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요컨대 있으나마나하게 평범했다는 뜻이다.
단상에 올라가는 사람을 동경해 그곳에 가고 싶다는 꿈을 꿔본 적은 없었으나 단지 내가 원하는 걸 잘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그 욕심도 얼마나 가게 될지, 스스로를 의심하는 날이 너무도 길어져 여기까지 왔다.
당선 전화를 받은 날에도 스스로를 의심하는 게 좋을지 기대하는 게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아마 계속 이렇게 자신을 알 수 없다 말하며 살 것 같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내가 원하는 걸 잘했으면 하는 욕심은 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를 발전시킨 건 이게 아닐까 싶다.
왜냐면 쓰는 게 재미있으니까.
시작했으니 더 나은 무언가가 되길 스스로에게 바라본다.
가족들과 본인의 일처럼 기뻐해준 친구들이 스친다. 한결 자랑스러운 사람이 된 것 같다.
글을 읽어주신 심사위원 분들과, 이 자리를 빌어 손정숙 선생께 감사하다는 말도 드리며 한해의 끝이 허무하지 않은 이 순간을 계속 기억하고 싶다.
올 겨울이 춥지 않기를 모쪼록 바란다.
박새롬 :
1989년 부산 출생
부산여자대학 졸업
현 거주지 : 경남 양산시 중앙우회로 82-1 (1층) / 우:5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