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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8 주일설교
“사랑의 띠”
(골 3:12~14)
1. 유기체
개구리와 자전거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다릅니다. 이름도 다르고 크기도 모양도 다르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개구리는 살아있는 유기체이지만 자전거는 유기체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자전거는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하면 멀쩡히 굴러가지만 개구리는 분해하면 죽어버립니다. 살아있는 유기체는 뭐든지 나누면 죽습니다.
곤충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드릴게요. 저는 곤충에 대해 잘 몰랐는데 라디오에서 곤충 전문가에게 들었습니다. 곤충의 정의는 다리가 세 쌍(6개)이고 몸은 머리와 가슴과 배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 벌레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거미는 곤충이 맞을까요? 개미는 곤충이지만 거미는 곤충이 아닙니다. 거미는 다리가 네 쌍이고 ‘머리/가슴 + 배’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어떤 선생님이 곤충에 대해 시험문제를 냈습니다. ‘곤충은 세 부분으로 나누면 ( ), ( ), ( ).’ 그랬더니 한 어린이가 이렇게 답을 썼습니다. 곤충을 세 부분으로 나누면 (죽) (는) (다). 그 어린이는 곤충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유기체의 이치는 잘 아는 아이입니다. 생명체 즉 유기체는 절대 나누어지면 안 됩니다. 꼭 붙어있어야 너도 살고 나도 살 수 있습니다.
제가 개구리와 곤충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교회의 특징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개구리나 곤충처럼 교회도 유기체입니다. 교회 즉 성도는 예수님을 머리로 삼은 몸의 각 지체입니다. 그러므로 각 지체는 머리되시는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하고 또 지체끼리도 밀착해서 붙어 있어야 합니다.
2. 정체성
교회의 정체성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12절에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너희’라는 말은 골로새교회 즉 골로새에 사는 성도들에 대해 말합니다. 여기에는 교회의 정체성이 3가지로 표현되어 있는데 모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생겨났습니다. 교회 즉 성도는 1)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입니다. 2)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신 자입니다. 3)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들입니다. 이 세 가지 특징은 성도 개인이나 우리 공동체 모두에게 적용됩니다. 하나님은 아무 가치 없는 우리는 택하여 주셨고 아직 거룩하지도 않은데 거룩한 자라는 신분을 주셨고 사랑받을 자격도 없는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런 감지덕지한 은혜를 입었습니다.
여기서 “자처럼”이라는 말은 그렇지 않은데 그런 척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답게’ 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책하신 자답게, 거룩한 자답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답게. 새로운 신분, 새로운 자격을 가졌으니 성도답게 행동해야 하는 것이죠. 사람은 신분에 걸맞게 살 때 아름답습니다. 경찰답게, 의사답게, 선생님답게, 아버지답게, 비서답게 살 때 아름답습니다. 성도는 성도답고, 교회는 교회다워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성도가 성도다워질 수 있을까요?
3. 새 옷을 입고
성도가 성도답게 사는 첫 번째 단계는 옷을 갈아입는 것입니다. 군대에 가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옷을 갈아입는 것입니다. 겉옷 뿐 아니라 속옷까지 모두 군용으로 갈아입습니다. 그리고 사복은 모두 집으로 배송해줍니다. 부모들은 그 옷을 받아놓고 눈물 한 방울 흘리죠.
사람이 아파서 입원하면 신분과 관계없이 환자복을 입힙니다. 그리고 즉시 신분이 바뀌고 호칭도 바뀝니다. 목사님, 사장님, 교수님 그런 거 없습니다. 모두 OOO환자님이 됩니다. 그때부터 흰 옷 입은 의사와 간호사에게 착한 환자가 되어야 합니다.
의사의 가운, 경찰의 제복, 신부의 드레스, 학생의 교복 등 사람은 신분에 따라 정해진 옷이 있습니다. 성도들도 정해진 옷이 있습니다. 이 옷은 모두 5가지로 이루어졌습니다. 12절에서는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을 옷 입으라고 말씀합니다.
군복을 입기 전에 사복을 벗어야 하듯이, 성도의 의복을 입기 위해서 먼저 더럽고 찢어지고 냄새나는 누더기 옷을 벗어야 하는데 9절과10절의 연결부분에 보면 성도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은 존재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걸치고 있는 누더기가 어찌나 많은지 5가지씩 두 번이나 말합니다. 5절에서는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을 죽이라고 합니다. 또한 8절에서는 분함, 노여움, 악의, 비방, 부끄러운 말을 버리라고 합니다.
이 5대 악덕목록 두 종류와 5대 미덕목록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설명하겠고 오늘은 이 중에 ‘오래 참음’에 대해서는 잠깐 말하겠습니다.
‘오래 참음’은 헬라어로 mακροθυμία(마끄로튀미아)입니다. 여기서 mακρο(마크로)는 크다, 길다의 뜻입니다(micro는 작다는 뜻). θυμία(튀미아, 원형: θυμος)는 감정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mακροθυμία(마끄로튀미아)는 크게, 길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눈앞의 것만 생각하면 참을 수 없다가도 크게 생각하면 참을 수 있습니다.
우리교회 건축할 때 500만원 준 목사님 이야기를 전에 해 드렸죠. 그런데 만일 500만원이 아니라 5억 원을 준 사람이 있다면 새벽 3시에 전화해서 빨리 오라고 불러도 불평하지 않고 달려갈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은혜를 받았는지 생각하면 오래 참을 수 있습니다. 나 뿐 아니라 내가 오래 참기 힘들게 만드는 사람이 있을 때 하나님이 그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생각하면 참기 힘든 사람을 향해서 참을 힘이 생깁니다. 성도는 바로 그런 ‘오래 참음’이라는 옷을 입어야 합니다.
4. 불만이 있거든
어떤 부인이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내 인생에서 로또야.’ 기분이 좋아진 남편이 내가 당신에게 그렇게 대박이냐고 물었더니 부인이 대답했습니다. ‘아니, 안 맞아.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아.’ 그렇게 좋아하고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도 함께 살다보면 처음에는 좋지만 가까워질수록 서로 잘 안 맞는 것이 발견되고 불만이 생깁니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직장에서나 사람이 함께 지내다보면 서로 불만이 생깁니다. 그러나 그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같이 살 가족이 없고 다닐 직장이 없고 출석할 교회가 없습니다. 더불어 살면서 생기는 불만을 해결하지 못하면 산 속에 들어가서 이렇게 외치게 됩니다. ‘나는 자연인이다.’
13절에서 바울은 불만이 있거든 떠나서 산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용납하고 피차 용서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서로’라는 말과 ‘피차’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리스도인은 결코 홀로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성도는 서로 서로 더불어 사는 존재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혼자 사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은 나에게도 같이 살자고 하시고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녀, 우리 목사, 우리 성도 모두에게 같이 살자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같이 살자고 선택하고 불러들인 사람이기에 불만이 있어도, 너무 안 맞아도 같이 못 산다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고 용납해야 합니다. 그런 불만은 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서로 갈라서라는 것이 아니라 서로 서로 용납하라고 하십니다.
그때 생각해야 하는 것이 바로 주님이 나를 용서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천국에 데려가서 영원히 함께 살고 싶어서 예수님을 보내어 주시고 십자가에 달리게 하셨는데 나는 아직도 하나님께 순종을 못하는 유치한 수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에게 벌써 거룩한 자라는 신분을 주셨습니다. 저나 여러분은 죄를 지어도 성도(聖徒)입니다. 유치한 짓을 해도 성도(聖徒)입니다. 하나님 영광을 손상시켜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결코 버리지 않고 다 용서하십니다.
우리가 기억력이 안 좋은 것이 다행입니다. 내가 얼마나 부끄러운 죄인인지 잊어버리니까 웃으면서 교회에 나올 수 있지 다 기억한다면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한 죄를 다 용서하십니다. 그리고는 기억하지 아니하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뭐든지 다 기억하시는 분이신데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 용서를 생각하면서 피차에 용서하고 용납하시기 바랍니다.
5. 묶어주는 띠
하나의 가족으로 살기 위해서는 용서하고 용납하라고만 해서는 안 되고 끊어지지 않는 끈으로 묶어야 합니다. 그 끈의 이름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온전하게 매는 띠입니다(14절).
여기서 ‘띠’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συνδεσμος(순데스모스)인데 골로새서 2:19에서 ‘힘줄’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몸에서 힘줄은 엄청나게 중요합니다. 힘줄이 약해지거나 끊어지면 사람이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힘줄 즉 인대는 뼈와 뼈를 묶어주고 잡아 당겨서 움직이게 합니다. 전에 우리 아들이 손 등에 있는 인대와 인대를 연결해주는 작은 인대 하나가 끊어졌을 때 두 달간 손을 쓸 수 없었습니다.
사랑의 띠 즉 συνδεσμος(순데스모스)는 συν과 δεσμος의 합성어입니다. 즉 συνδεσμος는 함께 묶는 끈입니다. 이 끈은 우선 그리스도와 교회를 연결합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와 성도 하나 하나를 연결한다는 뜻입니다. 결국 그리스도를 통해 성도와 성도가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 이런 상상을 해 봅시다.
포도송이가 하나 있습니다. 포도 가지에 달린 포도송이는 꼭지가 굉장히 질겨서 손으로는 끊어지지 않고 가위로 잘라야 합니다. 그 질긴 줄기에 포도알이 하나씩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포도알이 하나씩 꼭지에 붙어 있으면 당연히 옆의 알맹이와 함께 연결됩니다. 우리 성도의 모습이 이와 같습니다. 포도알이 꼭지에 붙어 있는 한 옆의 포도알과 함께 있듯이 우리가 예수님에게 붙어있는 한 다른 사람과도 붙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절대로 버리지 않는 것처럼 내 옆의 형제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이 나와 형제를 끊어버리지 않으신다면 나도 옆의 형제를 버릴 수 없습니다.
6. 붙어있는 사람들
그러면 예수님과 연결되어 결국 나와 함께 연결된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사랑으로 꽁꽁 묶어야 하는 συνδεσμος(순데스모스)는 어디에서 실현되어야 할까요? 교회에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날마다 만나는 바로 그 현장입니다. 18-19절에서는 아내-남편을 사랑으로 묶으라고 합니다. 20-21절에서는 자녀-아버지에게 말합니다. 그리고 22절부터 4:1에서는 종과 상전에게 명령합니다. 아내와 남편, 자녀와 아버지, 종과 상전에게 각각 명령한 내용은 굉장히 의미 있고 또한 유익한 내용들인데 다음 기회에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이렇게 명령하는 이유 두 가지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첫째는, 아내든지 남편이든지, 자녀이든지 부모이든지, 종이든지 자녀이든지 사랑하며 순종하며 성실하게 일하며 의와 공평을 베풀어야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즉 이 모든 사람들의 머리가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머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머리를 통해 단단하게 연결된 존재들입니다.
둘째는, 이것이 그 당시의 교회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교회가 대 저택을 중심으로 모이는 가옥교회였습니다. 골 4:15에도 그 증거가 있습니다. 당시의 교회는 가옥을 중심으로 유지되고 있었기에 아내-남편, 자녀-부모, 종-상전의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이 또한 교회를 든든히 세우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초대교회와는 다른 형태로 발전되었지만 교회 안에는 젊은이와 장년이 있고 각각의 직분과 직책이 있습니다. 이 모든 직분과 직책 사이에도 사랑과 복종과 의와 공평과 성실과 충성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그렇게 예수님과 단단히 묶고 성도와 단단히 묶고 또 함께 살아가도록 붙여주신 가족과 동료들과 사랑으로 묶어서 살 때에 예수님이 여러분을 기뻐하시며 천국에서 큰 상을 주실 것입니다.
7. 상 받을 소망
마지막으로 천국의 상에 대해 조금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천국에 가면 상이 있을까요? 분명히 있습니다. 예수님도 천국의 상에 대해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상을 많이 받은 사람은 자랑스러워하고 못 받은(혹은 조금 받은) 사람은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세상과 똑같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천국의 상은 모두가 만족하고 감사하는 상입니다. 그러면 어차피 똑같은데 굳이 충성을 다할 필요가 없을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정확한 것은 천국에 가 보면 알 수 있지만 한 가지만 예들 들어 봅시다.
어떤 사람이 직장 다니는 아들에게는 승용차를 사 주고 갓난아기 손자에게는 유모차를 사 준다면 손자가 불만할까요? 혹은 아들이 손자에게 가서 무시하면서 자랑할까요? 아닙니다. 아들이건 손자건 둘 다 만족하겠죠. 그러나 둘이 받은 상이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여러분은 승용차와 유모차 중에 어떤 선물을 받는 사람이 되고 싶으세요? 이 말이 이해가 되시면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순종하여 더 큰 상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 주신 말씀은 머리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단단히 붙으라고 하십니다. 옆에 있는 성도와 가족과 동료를 사랑의 띠로 온전히 매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이 땅에서 천국을 실현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