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속(風俗)의 편린(片鱗)을 찾아서
고대에 위대한 왕은 나라 안팎에 방(榜)을 붙여서 세상의 기인(奇人)을 불러 모은다. 남다른 재주가 있는 사람은 왕국의 기인열전(奇人熱戰)에 참여하라는 것이다. 열전의 상(賞)은 왕의 외동딸과 차기 왕권을 내어주는 것이다. 단, 시답잖은 재주로 덤벼들었다가 망신을 당하는 자는 목숨을 내어놓든지 왕국의 노예로서 평생을 봉사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심지어, 국경을 넘어서 재주꾼들이 왕성(王城)으로 모여든다. 이 기인열전의 참가자 무리에 초라하고 볼품없는 한 사내가 있었으니, 저자에서 생선을 파는 장사꾼이다. 이를 알아본 한 재주꾼이 놀려댄다. “빌어먹을 재주도 없는 자가 열전에 참여해서 비린내를 풍긴다.” 또한 완력 있고 성급한 자는 생선 장수의 멱살을 쥐며 “괜한 짓 하지 말고 생선 나부랭이나 가서 파시지. 왕국의 노예커녕 내 손에 죽는 수가 있어.” 이때, 생선 장수는 한마디 말할 기회를 청한다. 그리고 자신의 재주에 대하여 소개한다. “저는 대대로 생선을 파는 집안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이 생선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주변사람들이 저를 재주꾼이라고 일컫습니다. 저는 작은 비늘 조각 한 장으로도 그 비늘의 임자, 물고기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답니다.”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을 다니면서, 함께한 한국학 연구자 모임의 뒤풀이에서 주워들은 ‘비늘 조각’, ‘편린(片鱗)’의 내력이다. 사소한 듯하지만, 작은 것을 소중히 하고 열과 성의를 다하면 한자리에서 보람찰 것을 믿는다.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가업, 배운 것도 가진 것도 많지 않지만 사랑하는 부모님이 자신을 낳고 기르는 데 삶의 방식으로 택한 생선장수, 그는 어떤 마음으로 일에 임했을까? 편린을 재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기까지 자신의 업에 어떤 맘가짐으로 어떤 몸가짐으로 임하며 자신을 다독였을까? 그런 그에게 정치학이면 정치학, 경제학이면 경제학, 사회학이면 사회학을 배울 기회가 주어진다면 왕국의 미래는 어떨까?
생선장수, 편린의 이야기 끝은 아무도 마무리 짓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 누가 무엇이라 토를 달지 않아도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나름의 답을 가지고 있었으리라 여겨진다.
이하 작업은 ‘조선후기 풍속의 재구성’이라는 표제로 시작된다. 부제는 ‘풍속의 편린을 찾아서’이다. 18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조선시대 후기, 예술 속에 나타난 작은 편린을 모아서 당시 풍속의 일면을 확인하고자 한다. 조선후기는 판소리, 사설시조, 소설, 야담, 풍속화 등 다채로운 예술이 시정(市井)에서 꽃을 피웠던 시절이다. 당시 민의 정서와 기호, 삶의 모양새를 확인하는 데에 당대 예술만한 것도 드물 것이다. 예술 속에 담겨진 풍속의 편린을 찾아서 민의 생동하는 삶을 재구하고자 한다. 이 작업은 조선후기 풍속의 이해뿐만 아니라 시대 너머 사람살이의 일면을 이해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문성
http://news.donga.com/3/all/20090204/8691666/1
풍속을찾아서.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