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타 선인
점사에 이은 아시타의 등장은 점사들이 예언한 바의 전륜성왕과 붓다라는 두 가지 가능성 중에서 전륜성왕으로 인식한 것을 반대의 붓다로 일통하는 측면에 근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점사에 의한 측면이 정반왕에 의한 다분히 관(官)주도적인 경향을 가진다면, 아시타는 정반왕과는 별개의 자유사상가이자 수행자의 측면을 함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아시타에 오게 되면 태자가 붓다가 되는 것은 확고한 가치가 되며, 이로써 정반왕이 태자의 출가를 막으려는 의도 역시 보다 굳건해 진다.
1.아시타의 예언과 필연성
아시타의 예언은 전적으로 점사들이 예언한 태자의 두 가지 가능성에 대한 측면과 그 결과로서 전륜성왕을 도출시키는 것을, 반대로 붓다라는 측면의 한 가지로 압축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아시타의 역할은 점사들보다 크고, 또한 점사와 성격적인 면에서 상호 중첩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작은 불전들에서는 점사의 측면이 생략되고 아시타에 대해서만 언급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불설보요경>에서 점사에 해당하는 석가족들이 아이두(阿夷頭, 아시타)를 추천하는 역할로만 등장하고 있는 것이나, <방광대장엄경>에서 정반왕이 아시타와 대화하는 측면 안에서만 점사가 등장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생략의 경향을 잘 드러내고 있는 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시타의 불전 출현 빈도는 점사보다 많고, 거의 모든 불전에 걸쳐 고르게 등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시타의 예언에 관한 측면은 대표적으로 <불본행집경>과 <불본행경>, 그리고 <방광대장엄경>과 <수행본기경> 및 <불설보요경>과 <숫타니파타(sutta-nipāta)> 등의 불전에 상세히 나타나 보이고 있으며, 또한 <불소행찬>과 <대지도론>에도 비교적 잘 드러나 있다. 이러한 전적들에 나타나 있는 아시타의 예언에 관한 측면을 고찰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첫 번째, <불본행집경>의 [상사점간품 하]에서 아시타는 전륜성왕이 되기를 기대하는 정반왕에게 "몸에 32장부상과 … 겸하여 80가지의 미묘한 종호(種好)가 있습니다. 대왕이여 이러한 모든 상은 전륜성왕의 종자가 아닙니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점사들과는 달리 80종호를 더 들고, 이 같이 32상과 80종호를 아울러 겸비한 경우에는 전륜성왕을 초월하여 붓다가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두 번째, <불본행경>의 [이결결의품(夷決決疑品)]에는 아시타가 "(이 태자는) 온몸에 두루 32가지 묘한 상호가 원만하니 반드시 붓다가 될 것이요, 그 선(善)이 세상에 뛰어나다."라고 단언하고는 혹시 전륜성왕이 될 가능성에 관해서 묻는 정반왕에게 다시금 "내가 상을 관찰한 것으로는 그 용모는 욕락의 뜻이 없고, 중생들에게 멸도의 뜻을 드러내니, 마땅히 붓다의 용모이다."라고 하여 아시타의 추론 동기는 다름 아닌 32상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주고 있다. 즉, 여기에서는 32상만을 가지고 곧 붓다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방광대장엄경>의 [탄생품]에는 정반왕이 석가족이 모인자리에서 태자를 전륜성왕을 만들겠다고 공포하고 이를 이어 아시타의 예언이 등장하고 있다. 아시타는 "대왕이여, 베다(韋陀論) 가운데에 기록된 바로는 왕의 태자는 틀림없이 전륜성왕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32대인상이 극히 분명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여 정반왕의 관점을 수정해 주고 있다. 그리고 이를 이어서 80종호에 대해 설명하고 "대왕이여, 이것이 바로 거룩한 태자의 80가지 모습인데, 만약 사람으로서 이와 같은 80가지 모습을 이룩하면 집에 있는 것은 타당하지 않고 반드시 출가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얻을 것입니다."라고 하여 32상을 근거로 붓다가 될 것을 주장하고 이를 80종호를 통해 보다 분명하게 하고 있다.
네 번째, <수행본기경>의 [강신품]에서는 아시타가 태자의 몸에 드러나 있는 32상과 80종호를 보고는 "모두가 비기(秘記), 참서(讖書)에서와 같구나. 반드시 붓다가 되리라. 나는 의심함이 없다."라고 하여 역시 붓다가 될 것에 관한 확실성을 부여하고 있다.
다섯 번째, <불설보요경>의 [욕생시32서품]에는 태자의 장래에 관해서 궁금해 하는 정반왕이 석가족들에게 태자가 국왕이 될 것인가, 혹은 출가하게 될 것인가를 묻자, 석가족들이 그러한 대답의 적임자로써 아시타(阿夷頭)를 천거한다. 이렇게 해서 등장하게 되는 아이두는 정반왕에게 "나의 관상하는 법에서는 왕으로 아들을 낳아 32대인상(大人相)을 지닌 이가 나라에 있으면 장차 전륜성왕이 되어 자연히 7보와 천(千)의 아들이 있고 4천하의 군주가 되어 바른 법으로 다스릴 것이요, 만약 나라를 버리고 출가하면 자연히 붓다가 되어 중생을 도탈한다고 되어 있습니다."라고 답변해 준다.
여기에서의 아이두는 곧 아시타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 경에서는 붓다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주장하지 않고, 다만 두 가지의 가능성에 관해서만 언급하고 있을 뿐인데, 이는 아이두의 등장 이전에 점사에 관한 측면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아이두가 점사의 담당 부분까지 겸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사료된다. 이는 내용의 축약에 의해서 그 존립 근거가 다소 약해진 상태로 드러난 경우라고 하겠다.
마지막 여섯 번째, <숫타니파타>의 [날라까경(nālaka-sutta)]에서 아시타는 태자의 인상을 살피고 난후 "이 왕자는 최상의 깨달음을 얻어 가장 으뜸가는 청정을 보고 … 법륜 굴릴 것입니다."라고 하여 반드시 깨달음을 얻어 법륜을 굴리게 될 것을 확증하고 있는데, 그 근거는 태자의 상호(相好)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미래의 법륜까지도 언급되어 있어 그 확실성의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이상의 여섯 경전들을 통해서 살펴 볼 수 있는 것은 앞선 점사의 경우가 두 가지 가능성에 관해서 주로 언급하고 이를 전륜성왕으로 귀결시키고 있는 것에 반하여, 아시타는 반드시 붓다가 되어야 하는 필연성에 그 무게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2.아시타의 행동
태자의 탄생과 관계되어 점사들이 정반왕과 관련된 관(官)주도의 인물로써 전륜성왕이라는 이상향을 제출하고 있는 것과 달리 아시타는 위정자와 관계되지 않는 수행자로써 민중의 의지를 대변하고 있는 인물로 붓다라는 이상향을 제출하여 상호 대립되는 측면을 연출한다. 이러한 아시타의 경향성은 그의 일련의 행동양식을 통해 분명하게 확인된다고 할 수 있다.
불전에 나타나 있는 아시타의 행동은 앞서 언급한 예언에 관계된 측면 이외에 크게 4가지로 나누어 질 수가 있는데, 첫째는 그가 비범한 존재라는 것이고, 둘째는 잠들어 있는 것 같은 태자가 실상은 잠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 그리고 셋째는 태자를 보고 슬프게 운다는 것이며, 마지막 넷째는 자신의 제자에게 붓다가 출세하면 제자가 되라고 지시하는 것이다.
첫 번째, 아시타가 비범한 존재라는 측면은 아시타의 등장 배경과 관계되는 것으로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경전의 명칭 | 아시타의 비범한 측면 |
1 | <불본행집경> | ①33천에서 안거함 ②신들과 대화할 수 있는 대등한 관계임 ③신족이 있음 |
2 | <불본행경> | ①높은 수행을 쌓았음 ②새의 소리를 앎 ③신족이 있음 |
3 | <방광대장엄경> | ①5통신선으로 설산에 삶 ②천안과 신족이 뛰어남 |
4 | <불설보요경> | 설산에 살며 학식이 높고, 천안과 상법(相法)에 능함 |
5 | <수행본기경> | 향산에 살며 신족이 있음 |
6 | <숫타니파타> | ①33천에서 신들과 대화할 수 있는 대등한 관계임 ②신족이 있음 |
이 도표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아시타는 신통을 갖춘 높은 수행자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정반왕과는 상호 필연적인 관계가 성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잠들어 있는 태자가 깨어 있다고 말하는 대목은 자못 의미심장한 부분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사건은 아시타가 태자를 처음 상면할 때, 태자가 잠들어 있다고 말하는 정반왕의 진술에 대한 아시타의 반응으로 아시타가 상을 보기 이전에 이미 태자는 반드시 붓다가 될 것이라는 내적인 확증을 가지고 있는 것을 외부로 표출시키는 부분이라고 하겠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경전의 명칭 | 잠들어 있는 태자가 깨어 있다고 말하는 측면 |
1 | <불본행집경> | "우리들은 비록 깨어 있어도 마치 잠자는 사람과 같으나 대왕이여, 동자는 오래전부터 잠을 끊어 없애 주야로 항상 모든 중생을 위하여 안락을 얻게 하고자 하며, 크게 이익 되게 하려고 선정에 듭니다." |
2 | <방광대장엄경> | "정사(正士)는 자기 성품을 깨달은지라 본래 잠이 없습니다." |
3 | <불설보요경> | "헤아릴 수 없는 겁으로부터 부지런히 덕행을 쌓아 깨치어 온지가 오래고 머니(久遠), 어찌 또 잠을 자겠습니까" |
4 | <수행본기경> | "대웅(大雄)께서는 늘 스스로 깨닫고 깨닫지 못한 이를 깨우쳤으며, 겁을 지나면서 누워 잠이 없었거늘 어찌 잠을 잔다 하겠습니까" |
이 도표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태자는 이미 수행의 결정체로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잠을 여의었다는 것으로 이는 아시타의 예언 방향과 일치한다. 즉, 붓다야말로 잠든 자 중에 진실로 깨어 있는 자인 것이다.
세 번째, 태자를 상면하고서 근심하여 슬피 운다는 것은 아시타가 이미 나이가 많고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아 태자의 성도를 통한 교화에 참석할 수 없음을 슬퍼한다는 것으로 대단히 극적인 장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관한 내용은 <불본행집경>, <불본행경>, <방광대장엄경>, <불설보요경>, <수행본기경>, <불소행찬> 등에 고르게 나오는 것으로 내용적으로는 대동소이하다. 그 의미적인 측면은 붓다가 될 것이 확실한 태자의 교화를 못 받는다는 것으로 이는 네 번째, 자신의 제자에게 태자가 성도하면 반드시 붓다의 제자가 되라고 지시하는 측면과 연결된다.
또한 아시타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부분에 대하여서도 <불본행집경>에서는 아시타의 죽음이 직접 언급되어 있으며, <수행본기경>에서는 태자의 예언을 시행한 7일 후에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불소행찬>에는 아시타는 스스로 죽어 3난천(三難天)에 나게 된다고 자술하고 있어 그 최후를 밝혀 주고 있다. 이러한 측면들은 아시타의 예언에 무게를 실어 주는 부분에 다름 아니라고 하겠다.
마지막 네 번째, 아시타가 제자에게 태자가 성도하여 붓다가 되면 제자가 되라고 지시하는 내용에 관한 구체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 경전의 명칭 | 아시타가 제자에게 태자가 붓다가 되면 제자가 될 것을 지시하는 측면 |
1 | <불본행집경> | 시자인 나라다(那羅陀)에게 붓다의 출세를 알려주고 후에 출가할 것을 지시함 |
2 | <불본행경> | 제자에게 태자에 의탁하라고 지시함 |
3 | <방광대장엄경> | 외족인 나라(那羅)에게 태자가 붓다가 되면 출가하라고 지시함 |
4 | <숫타니파타> | 조카인 날라까에게 '세존'이라는 말을 듣게 되면 가서 출가하라고 지시함 |
이 도표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아시타에게 있어 태자의 붓다 성취는 자못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불운을 한스러워 하면서 자신의 제자에게 태자가 성도하여 붓다가 되면 출가하라고 지시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상의 총 4가지 아시타의 행동은, 첫째 아시타의 비범함을 전제로 해서 둘째에서 넷째에 이르는 전반에 걸쳐 태자의 붓다 성취를 확신하는 것으로 구조되어 있다. 즉 아시타는 태자라는 부분에 있어서의 붓다라는 측면을 너무나 완벽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붓다 탄생의 예언에 관한 고찰/ 정암(염중섭) 동국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