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관 시가 있는 시론 4, 73 나의 젊은 청춘을 불사는 공덕을 폄하는 자들에게 응징을 하려고 나는 오늘 사전 투표하려 간다.
나의 청춘을 불사는 공덕을 폄하는 자들에게 응징을 하려고 나는 오늘 사전 투표하려 간다.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다면 투표로서 결정할 수밖에 없다. 표로서 막말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표를 줄 이유가 없다. 30-40대는 논리가 아니라 거대한 무지와 착각이라는 발언으로 젊은이들을 폄하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한 표라도 주어서는 아니 된다. 그들에게 국회에 보낸다면 역사에 죄악을 짓는다는 사실이다.
절은 시절을 눈물로 보낸 군에서 역경을 참고 견딘 정신을 송두리 빼앗아간 군사문화정권에서 젊은 시절에 그 악몽에서 탈출하려고 했던 민주화운동을 수행하는데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오늘의 막말을 해도 용서해줄 줄 알고 막말을 하고 있는 이들을 생각하면 군사정권에 희생당했던 열사들의 피눈물로 이 땅을 적시게 한다.
오늘에 젊은이들에 의하여 민주화운동을 실천했던 그 역사를 망각하려고 하는 이들이 감히 막말로 보수파들에게 표를 얻고자 한다면 그들에게는 역사에 죄인이다. 아무리 민중들 앞에 고개를 숙인다고 해도 그들의 본색은 변함이 없다는 사실이다. 여우꼬리를 진흙땅 속에 묻어두었다가 꺼내어도 여우꼬리는 여우꼬리로 밖에 볼 수 없다. 그들은 분명히 말하자면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갈 여우 꼬리떨이지 사자 꼬리털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민중 앞에 고개 속인다고 해도 그들에게 있어서 심장은 악행이 흐르는 피 이기에 아무리 맑은 피로 전한한다고 해도 그 피는 약행의 피가 흐르고 있을 뿐이다. 더러운 피는 씻어도 그 피는 더러운 피로 흐르고 있는데 민중들에게 잘못했다고 고개를 숙여도 승냥이의 눈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세월호 가족들에게 막말을 하고 있는 이들이 국회에 등장한다면 그것은 바로 민중에 죄인을 국회에 보내는 민중의 직무를 바르게 실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민중들이 바르게 성찰해야 한다. 세월호 가족들에게 아픔을 준 그들이야 말로 인간으로는 그러한 발언을 국민들 앞에 할 수 없다. 그런 말을 하고 있는 이들이나 그런 말을 하고 있는 이들을 두둔한다면 그들과는 이 땅에서 인간이라는 공동체 사회를 형성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특히 정치에서 가장 민주화운동에 불꽃을 피우게 했던 부마 민주화운동과 일본 식민지 시대 가장 위대한 투쟁을 하였던 대구는 오늘에 그날 이룩했던 민족의 위대한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부산과 마산에서 군부독제를 청산하려고 나선 그 정신을 한시도 잊을 수 없는 것은 그날에 피흘려죽은 이들의 영혼을 욕되게 하는 막말을 하는 자들을 그대로 용인한다면 군부독재를 찬양하는 세력과 다름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