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는 중학교 때까지 투수였다. 하지만 중학교 때 어깨를 다쳐 공을 못 던지게 됐다. 그렇게 타자로 전향하게 되었지만 그는 아랑곳 않고 타자로서 멋지게 발돋움했다. 신일고등학교에 진학한 그는 2005년 청소년 국가대표에 발탁됐고, 같은 해 전국대회에서 최고 타율을 기록한 고교 타자에게 주어지는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했다. 야구 선수로서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두려울 것은 없어보였다.
굴욕의 2006 신인 드래프트, 그의 선택은?
2006년 신인 드래프트, 고등학교 때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김현수의 이름은 끝까지 호명되지 않았다.
“솔직히 야구하기 싫었죠.” 할 만큼 다 했는데 안 된걸 어떻게 하냐며 부모님께 야구하기 싫다고 말했다는 그. 당시 김현수를 지명하지 않은 구단은 그에게 ‘근성이 없고 수비가 약하며 발이 느리다.’며 한 번 더 그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이에 대해 김현수 선수는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도루를 많이 하는 선수가 아니잖아요. 근데 발이 느리다 그런 이야기는 좀 그랬죠. 근성이 없다는 건, 제가 그렇게 보이게끔 행동을 했는지 몰라도, 사실 그 말은 저를 지명하지 않은 구단에서 둘러댄 핑계라고 생각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를 해오면서, 어디서 야구 못한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 김현수. 그런 그에게 신인 드래프트 결과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지금까지 잘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지명되지 않은 것보다 더 상처가 된 건 김현수에 대한 박한 이야기였다. 김현수뿐 아니라 가족 모두가 많이 속상해했다. “지명 안하고 그냥 ‘우리 팀에 이런 선수가 많아서 필요가 없었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으면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괜히 저를 깎아내리면서 그러니까 기분이 좀 그렇더라고요.”
신인 드래프트가 끝난 후 여기저기 김현수를 찾는 곳이 많았다. 대학교뿐 아니라 여러 구단에서 김현수에게 신고 선수 제의를 했다. 대학 진학에 관심이 없었던 그는 신고 선수로 프로에 입단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던 중 당시 두산 베어스의 2군 코치였던 양승호 감독에게(현 롯데 자이언츠) 연락이 왔고, 집과 가까운 서울 팀이 좋을 것 같다는 가족들의 의견에 두산 베어스에 입단하게 되었다. “입단 당시 저는 길게 생각 안했어요. 딱 3년. 3년 안에 1군 무대를 밟자.”3년 안에 승부를 보기에 당시 두산 베어스는 조건이 괜찮았다. 같은 서울 팀인 LG 트윈스에는 당시 젊은 유망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신인 드래프트 때의 상처로 오기가 생길 법도 하지만, 김현수는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가졌다. 지나친 오기와 욕심은 자기 자신을 깎아내리기 때문이다. “3년 안에 1군 무대 밟으면 야구 계속 하고, 못 밟으면 군대 갔다 와서 다른 일 찾는 거고요. (웃음) 그냥 그런 생각으로 편하게 들어왔어요. 근데 그 3년만큼은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신고 선수로 입단, 이제는 두산에 없어선 안 될 선수
2006년 프로데뷔 첫 해, 그는 1군 경기에 출장했다. 단 한 경기였고 안타도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그에게는 의미 있는 타석이었다. ‘3년 안에 1군 진출’이라는 목표가 무색해지리만큼 그는 빠르게 성장해나가고 있었다. “2006년 9월 1일에 신고 선수에서 정식 선수로 등록돼서 올라 왔어요.” 청주구장에서 한화 이글스의 신주영 투수를 상대로 대타로 기용된 그는 레프트 플라이를 쳤다. “레프트 플라이 치고 나간 그대로 들어왔어요. (웃음) ‘아 드디어 1군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데뷔 초, 김현수는 김경문 감독(현 NC 다이노스 감독)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김현수가 김경문 감독의 양아들 아니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김현수에 대한 김경문 감독의 신뢰는 대단했다. “잘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실망은 사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몸이 부서져라 뛰었어요. 정말 감사했죠. 저를 열심히 키워주셨거든요.” 김현수 기용에 대한 부정적인 말들이 많았던 시기, 김경문 감독은 본인이 욕을 먹어가면서까지 그를 믿었다. “자주 연락은 못해도 명절 땐 꾸준히 안부전화 드리고 있어요.”
프로데뷔 3년차인 2008년, 김현수는 팀의 전 경기에 출장해 0.357의 타율로 타자 부문 3관왕에 오르며, ‘수위 타자상’, ‘최다 안타상’, ‘최고 출루율상’을 거머쥐었다. 이듬해인 2009년 역시 0.357의 타율로 ‘최다 안타상’을 받았고, 2010년, 2011년까지 4년 연속 3할 이상의 타율을 유지하며 엄청난 기량을 선보였다. 어느새 팬들에게 김현수는 3할 이상 치는 것이 당연한 선수로 인식되었다. ‘김현수는 4할은 쳐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3할타자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사실 너무 힘든 거거든요. 3할타자가 되는 게. 하지만 이게 너무 당연하게 돼버린 거죠. 근데 정말 힘들어요.”
가장 내세울 수 있는 건 ‘건강함’
그는 자신이 꾸준히 고타율을 유지하며 이만큼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 자신이 가장 내세울 수 있는 것에 ‘건강함’을 꼽았다. 특별히 다른 선수들보다 연습을 많이 한 건 아니지만,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아프지 않았고, 하루도 운동을 쉰 적이 없다. “저는 한 번도 안 아팠어요. 조금 하려고 하면 어디 다치고, 아프고 그런 적이 없어요. 그냥 꾸준히 운동한 거죠. 아프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파도 조금 참고 할 수 있는 선수가 가장 좋은 선수인 것 같아요.”
하지만 작년과 올 시즌 초반, 김현수는 약간의 부상을 입었다. 금방 회복했지만, 1군 등록 후 ‘아파서’ 벤치에 앉은 건 처음이었다. 다행히 그가 부상으로 출장하지 못했던 시기에 두산 베어스가 괜찮은 성적을 내고 있어서 큰 부담은 없었다. “그때는 팀이 잘 나갔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그는 벤치에 앉아서도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을 찾았다. “벤치에 앉아있어도 제가 먼저 나서서 좀 재미있게, 신나게 분위기를 이끌려고 했어요. 제가 좀 시끌시끌한 편이죠. (웃음)” 김현수는 작년 부상 후 ‘몸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 이전에는 티배팅 위주로 운동을 했다면, 이제는 기초체력을 위한 웨이트도 열심이다. “웨이트를 정말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 건 작년이 처음이에요.”웨이트를 열심히 하다 보니 몸에 골격도 잡혔다. 골격이 잡혀 어깨가 넓어지면서 ‘살이 찐 게 아니냐.’라는 말도 들었지만, 사실 군살이 빠지고 근육량은 늘면서 오히려 8kg이나 줄었다.
가장 기억나는 경기는 ‘두산의 경기’
‘김현수’하면 베이징 올림픽 때를 빼놓을 수 없다. 청소년 국가대표 이후 처음 ‘대표’가 되어 나간 경기였다. “대표가 돼서 나가는 건 항상 재밌고 흥미롭죠. 저는 대한민국 대표팀에 합류한 것 자체가 기분이 좋았어요.” 형들 잘 따르고 뒷바라지만 잘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건너간 베이징. 하지만 그곳에서 김현수의 타격감은 물 만난 고기처럼 굉장했다. “예기치 않게 좋은 성적을 내서 사실 기분이 좋았죠.” 당시 조금 부진했던 이승엽 선수가 김현수에게 ‘어떻게 하면 그렇게 잘 칠 수 있냐.’라고 물어볼 정도였다. “에이 근데 그건 농담으로 말씀하신 거예요. 그때 제가 워낙 감이 좋아서 장난으로 말씀하신 거고요. 정말 대선배님이시잖아요. 당연히 제가 배울 점이 훨씬 많죠. 그때 결국 이승엽 선배님께서 중요할 때 한 방 크게 쳐주셨잖아요.”
김현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를 물었다. 그는 베이징 올림픽이나 WBC같은 국제대회보다는, ‘두산의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2008년 한국시리즈 5차전, 9회말 1사 만루 상황이었다. 타석에는 김현수. 보는 이의 관심은 두산의 젊은 타격왕 김현수에게 쏠렸다. 지난 3차전 9회 말 때와 똑같은 상황, 3차전 때 김현수는 병살타를 쳤다. ‘이번 기회는 꼭...’ 하지만 결과는 병살타, 눈물이 쏟아졌다. “2008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 끝내기 병살타를 쳤는데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어요. 3차전에도 병살타로 끝냈는데, 5차전도 그렇게 될 줄 몰랐어요. 너무 아쉬워서 기억에 많이 남아요.” 사실 김현수는 주자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타율 차이가 크다. 올 시즌만 해도, 주자가 없을 때 0.268의 타율을 기록했지만, 주자만 있으면 0.411로 타율이 껑충 뛴다. 특히 그의 진루타율은 0.583으로 8개 구단 선수 중 단연 톱이다. 기회에 강한 그가, 2008년 두 번의 기회를 놓친 것이 아쉬울 만하다.
실력정체? NO 문제는 홈런!
김현수에게 올해는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시즌’이다. “올해가 가장 못하는 시즌 아닌가 생각하지만, 가장 배운 게 많은 시즌인 것 같아요. 스스로 깨달은 게 많은데, 다시는 올해와 같은 실수들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죠.” 사실 팬들 사이에서 ‘김현수의 실력이 정체된 게 아니냐.’라는 말이 돌고 있을 정도로, 그에게 올해는 혹독하다. 하지만 그의 기록을 잘 살펴보면, 그 전과 비교해 안타 수에는 별 차이가 없다. 문제는 ‘홈런’이다. 김현수 본인도 “중심 타자로서 홈런이 중요한데, 홈런 수가 줄었어요. 사실 안타 수는 별 차이 없거든요.”라고 말할 정도다. 개인적으로 슬러거가 되고 싶다는 김현수. 팀을 위해서, 본인의 발전을 위해서도 홈런을 많이 치고 싶다고 말했다. “제 최종 목표가 ‘홈런왕’, ‘타점왕’이에요. 일단은 한 시즌에 홈런 30개를 치는 게 중요하죠. 타점은 할 수 있을 때까지 해보고 싶어요.”
올해 그의 홈런이 준 데에는 ‘홈런 취소’도 한 몫 했다. 홈런을 친 후 비가 와서 경기가 우천 취소되면, 자연히 그 경기의 홈런도 취소된다. 비와의 악연일까, 다른 선수들에 비해 김현수 선수는 유난히 홈런 취소가 많았다. 2009년, SK와의 플레이오프 5차전 때 처음으로 경기가 우천 취소돼 홈런이 취소됐다는 김현수. 선취점을 내고 경기가 취소되었는데, 더군다나 다음날 경기에서 SK에 패해 한국시리즈 진출이 좌절됐다. “겉으로는 웃으면서 ‘괜찮아요. 내일 또 치면 되죠!’ 했는데, 방에 들어가서는 ‘아.... 이게 뭐지... 아...’ 계속 이렇게 한숨만 쉬었죠. (웃음) 과연 내일 또 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근데 제 운이 거기까지고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언젠가 바람이 많이 부는 날 하늘의 도움으로 홈런을 칠 날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두산 베어스는 내 운명
김현수는 유난히 형들을 잘 따른다. 장난도 많이 치고, 분위기를 즐겁게 유도하는 두산 베어스의 분위기 메이커다. 그에게는 ‘종박빠’라는 별명이 있다. 이종욱 선수를 유난히 잘 따른다고 해서 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그에게 팀 내에서 존경하는 선수를 물었다. 잠시 고민하자 옆에 있던 최준석 선수가 “존경하는 선수? 너 없잖아~!”라며 장난을 쳤다. 그러자 김현수는 “아 네 없어요. (웃음) 없다고 하네요.”라며 장난기 넘치는 표정으로 재치 있게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제가 형들 다 좋아해요. 잘 따르고요.”라고 말하며 두산 베어스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지난 호 ‘DUGOUT STORY’에서는 두산의 노경은 선수를 인터뷰했다. 그중 ‘두산이 상대팀이라면 가장 상대하기 싫은 선수는?’이라는 질문에 노경은 선수는 김현수를 지목했다. 마찬가지로 김현수에게 ‘두산이 상대팀이라면 가장 상대하기 싫은 투수’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혜천이 형이요.”라며 말을 이어나갔다. “뭐 일단 무섭고요. (웃음) 공을 어디로 던질지 모르겠고 투구 폼도 무섭고요. (웃음) 공도 좋고요. 캠프 가서 연습할 때 많이 쳐봤는데 혜천이 형 공은 무조건 삼진이에요. (웃음)” 형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김현수는 연신 함박웃음을 지었다.
김현수는 국내 타자로서 메이저리그 진출에 가장 가까운 선수로 주목받고 있다. 메이저리그 경기를 잘 챙겨보는 선수로도 유명하고, 실제 그는 메이저리그 LA 에인절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알버트 푸홀스’를 가장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해외진출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아직 욕심 전혀 없어요. 제 실력이 많이 부족하니까요. 지금 해외진출 하면 망신만 당하고 오지 않을까요? (웃음)”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본인에게는 두산이 우선이고, 두산 베어스에서 더 열심히 하고 싶다는 그, 그는 뼛속까지 두산 베어스 선수다.
그는 두산 베어스의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매일 그에게 홍삼을 전해주는 팬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일부 팬들에게 ‘예전에 비해 건방진 것 아니냐.’라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김현수 역시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저는 똑같이 행동했다고 생각하는데, 각자 받아들이는 입장이 다른 거니까요.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안티도 팬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항상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하면 나중에 좋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수의 팬들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인터뷰의 마지막, 그는 팬들에게 한마디를 남기고 그라운드로 향했다. “제가 생각하기에 두산 베어스의 팬들이 가장 매너도 좋고 선수들을 가장 생각하는 팬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정말 감사하고요. 저희도 항상 1등을 하면 좋겠지만, 뜻대로 되지가 않더라고요. 조금 더 믿고 지켜봐주시면 끝까지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김현수의 좌우명이다. 남의 시선, 남의 말에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본인의 길에만 집중하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다. 올해 팀의 3번타자 자리를 꾸준히 지키고있는 김현수. 언론과 일부 팬들의 가시 돋친 말에 부담이 될 법도 하지만, 신경 쓰지 않고 팀에 도움이 되는 일만 하겠다고 말했다. 겉으로 드러난 기록을 놓고 보면 그는 ‘좋은 타자’다. 하지만 팀을 위한 마음과 끊임없이 본인을 담금질 하는 그는 ‘훌륭한 타자’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이래 김현수는 국가대표팀 붙박이 외야수이자 중심타자 중 한 명으로 차출되고 있다. 그리고 지난 5년 간 세 번의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리그가 자랑하는 좌타자 중 한 명으로 자리를 굳혔다. 잠깐 못 치고 찬스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풀 죽었던 김현수는 이제 없다. 대신 중심타자답게 자신있는 스윙으로 투수를 위협하는. 마음가짐 자체부터 확실하게 성숙해진 김현수가 있다.
현재 두산베어스는 포스트시즌 진출 확정을 한 상태로 집중력에 능한 김현수의 활약을 기대하고있다.
[현재시즌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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