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도영 편히 잠들다
< 구미호 식당 / 박현숙/ 특별한 서재>
발 제 김 두 연 2021.12.23
‘구미호 식당’이라 해서 근래 드라마 주인공까지 꿰찬 매력적인 ‘구미호’가 운영하는 식당인가 했더니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스쿠터 사고로 갑작스럽게 죽게 된 열다섯 살 왕도영과 같은 동네 비슷한 시간대에 죽게 된 아저씨(이민석 셰프)가 함께 열게 된 식당이 ‘구미호 식당’이다. 망각의 강을 건너기 전 중간계에서 서호를 만나 식지 않는 피 한 모금과 사십구일을 맞바꾸기로 하고 이승으로 돌아온다. 단, 나이와 성별과 성격은 그대로 갖고, 생전의 얼굴과 다른 모습으로, 사십구일 동안 머무르는 장소 밖으로 나가면 뼈를 깎고 살을 도려내는 고통을 느낄 것이라는 주의 사항을 얻고서 말이다.
사는 게 늘 벅차고 힘들었기에 죽음에 대해 아쉬움도 안타까움도 없다는 도영은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다. 한파가 몰아치던 겨울, 10살 아이가 맞아 죽는 게 나을까 얼어 죽는 게 나을까 고민하다 추위를 피해 사나운 뒷집 개가 내어준 개집에서 잠을 청했다는 이야기에서 소름이 돋았다. 이 두려움을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했을 아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이지만 태어난 것 자체로 부정당하며 살아온 탓에 죽음조차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나는 왕도영으로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내 삶을 사랑해본 적이 었었다. 단 하루도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날을 기다려본 적이 없었다. 왕도영으로 사는게 늘 벅차고 힘들었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 내게 주어진 모른 것을 놓아버렸다. P159
도영은 구미호 식당의 알바를 하겠다고 찾아온 뜻밖의 인물, 바로 이복형제인 형 왕도수와 재회를 하게 된다. 세상에서 제일 끔찍한 형에다 돈이 목적인 양아치라 생각했던 형이 어째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인지, 우연히 손님으로 찾아온 수찬을 통해 자신이 죽고 난 뒤에 수찬이 느꼈을 감정까지 알게 된다. 늘 남보다도 못한 가족이라 믿었던 형과 할머니의 진심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자신이 죽게 된 것은 수찬 때문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진다. 도영은 살아 있을 때 미처 알지 못했던 것과 가져보지 못한 감정들로 인해 점점 후회를 하기 시작한다.
수찬이랑 친하게 지내볼걸. 같이 학교에도 가고 같이 놀고, 수찬이가 배달할 때 따라다니기도 하고, 수찬이가 맞을 때 말려주기도 하면서. 그렇게 친하게 지내볼걸. 그랬다면 수찬이와 나는 진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을 거다. 그러지 못한 게 후회가 되었다. 나는 해봤자 소용없는 일들을 한참 동안 생각했다. /p135
오늘 할머니에 대해 알았던 것을 예전에 미리 알았더라면 내 생활은 많이 달라졌을 거다. 그날 밤, 할머니가 나를 찾아다녔다는 사실만 알았더라도 할머니에 대한 미움은 조금 가벼웠을 거다. 내 체중보다 더 무거운 덩어리가 되지는 않았을 거다. 그 무거운 덩어리를 가슴에 넣고 다니느라 버거워하며 에너지를 다 쓰지도 않았을 거다. /p187
사실 책을 읽는 동안 여러 가지로 불편했다. 청소년 소설에 아저씨(이민석 셰프)의 그릇된 사랑? 집착과 폭력이 주된 스토리로 다루어졌다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데이트 폭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그 범죄가 가볍게 보일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발제에서 언급하지 않았다. 도영이 가족으로부터 당한 폭력도 간과할 수 없는 범죄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오해라고 감정적으로 다루어진 것에 화가 나기도 했다. 도영이 형과 할머니에게 벽을 세우고 제대로 보지 않은 것에 후회하는 모습에서 과연 저 나이에 표현하지 않는 진심을 알아차릴 아이가 몇이나 될까 싶다.
<구미호 식당>은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의 진심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사랑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진지한 물음을 던진다. “만약 말이에요. 아저씨와 내가 죽기 전으로 돌아간다고 쳐요. 누군가 ‘일주일 후에 당신이 죽습니다’ 이러고 알려준다면 아저씨는 일주일 동안 뭘 하겠어요?” 소설 속에서 도영이 아저씨에게 건네고 있는 이 질문은 곧 독자인 우리가 스스로에게 물어볼 질문이기도 하다.
“모든 생명이 있는 것은 생명을 얻는 출발점에 섰을 때 죽음이라는 것도 함께 얻어. 더불어 행복과 불행이라는 것도 같이 얻지. 살아가며 행복과 불행, 둘 중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오로지 자신들의 몫이야. 제대로 살면 행복하지. 제대로 산다는 것은 후회하지 않는 삶이지.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처럼 마음을 열고 살면 그런 삶을 살 수 있어.” / p228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것처럼, 오늘의 시간과 사랑하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길.... 2022년에는 조금 더 사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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