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암선생유적지>
민담으로 먼저 만난 격암을 이곳에서 실존인물로 만난다. 이인으로서의 기행이 다양하게 회자되는데 이곳 기념관에서는 엄숙한 유학자로 만나니 유교적 측면에서 다시 바라본다. 불영사와의 인연도 많은 인물이어서 지역 인물로서의 새로운 모습도 만난다.
1. 관람지 대강
명칭 : 격암선생 유적지
위치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누금길 14-13 / 수곡리 392번
관람일 : 2024.8.16.
입장료 : 없음
주차비 : 없음
2. 둘러보기
1) 格庵 남사고 일화
더운 여름날, 남사고가 불영사 입구에서 외장사를 만나 외를 하나 달라고 하자 주지 않았다. 그럼 외씨 하나는 줄 수 있겠냐 하자 외장사는 그걸 못 주겠냐며 선뜻 주었다. 남사고가 외씨를 받아 던지니 그 자리에서 외넝쿨이 돋아나오고 금방 열매가 열렸다. 탐스럽게 익은 외를 따서 지나던 불영사 스님에게도 주고, 외장사에게도 주고, 자신도 따서 맛있게 먹었다. 외를 다 먹고 더위가 가시자 도포를 날리며 떠나가는 남사고를 바라보던 외장사가 일어서며 외보따리를 추스리는데, 팔려고 담아온 외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금방 세 사람이 먹은 외는 바로 외장사의 외.
명풍수인 남사고에게는 ‘9천10장(九遷十葬)’의 고사도 있다. ‘남사고가 아버지 묘를 아홉 번 이장하여 10번 장사 지냈다’는 고사다. 남사고가 하루는 달빛을 받으며 산길을 걷다가 아홉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놓고 다투는 구룡쟁주(九龍爭珠)의 명당(明堂) 형국을 발견하였다. 천하의 명당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부친의 묘소를 밤새 옮겨와 이장을 마쳤다. 아홉 번째 이장을 하고 열 번의 장례를 지낸 것이었다.
이장을 마치고 날이 새어 다시 보니 새로 쓴 묘 자리가 '구룡쟁주(九龍爭珠)'가 아니라 '구사쟁와(九蛇爭蛙)'의 형국이었다. 즉 아홉 용이 여의주를 다투는 명당이 아니라 아홉 마리 뱀이 개구리를 다투는 형국이었던 것. 중도 제머리 못 깎는다는 말.
2)
남사고는 울진 수곡리 출신이다. 유적지는 2007년 생가터에 지은 것으로 재동서원, 수남정사, 사당, 기념관, 생가 등이 들어서 있다.
생가와 기념관은 2014년 8월에 완공했다. 기념관은 2017년 3월 28일(화)에 개관하였다. 격암기념관에는 남사고의 영정을 비롯해, 남사고의 일생에 대한 연표와 생애 연출, 격암유록 등 격암과 관련된 고서적을 복제 전시하고, 천문기구 혼천의 축소모형, 격암을 소재로 한 소설 등 현대서적도 전시되어 있다.
3)남사고(南師古, 1509~1571) 소개
호는 격암(格庵)
일찍이 이인(異人)을 만나 공부하다가 진결(眞訣)을 얻어 비술(祕術)에 정통하게 되었고 앞일을 정확하게 예언하기도 하였다. 명종 말기에 이미 1575년(선조 8)의 동서분당(東西分黨)을 예언하였고, 임진년(1592)에 백마를 탄 사람이 남쪽으로부터 나라를 침범하리라 하였는데 왜장 가토(加藤淸正)가 백마를 타고 쳐들어왔다.
자신의 생사문제까지 예언하였던 그는 풍수지리에 많은 일화를 남겨 그의 이름으로 된 도참서(圖讖書)인 『남사고비결(南師古祕訣)』과 『남격암십승지론(南格庵十勝地論)』이 『정감록(鄭鑑錄)』에 전한다. 그러나 이 저술들이 남사고가 직접 저술한 것인지 아니면 위탁되어 후대에 쓰인 것인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전자에서는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한산한수(漢山漢水)가 다골다탄(多骨多灘)하여 골육상잔의 화가 많을 것을 말하는 등, 각종 재난을 예언하였다. 후자에서는 정감록사상의 특징인 십승지지, 이른바 재난이 일어날 때 피신처인 열 군데의 보길지(保吉地)를 구체적으로 예언, 기술하였다.
죽은 뒤 1709년(숙종 35)에 울진의 향사(鄕祠)에 배향되었으며, 편저에 『선택기요(選擇紀要)』가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전재)
재동서원
수남정사
울진 유교문화의 표상이라니 조금 생소하다. 민간에 알려지기로는 기인, 이인, 풍수의 이미지가 더 강해서다.
사당
남사고 생가. 물론 복원이다. 기념관과 한 울 안에 있다.
남사고 생가
홍살문 옆으로 치솟은 금강송. 기품과 위용이 가히 궁궐목으로 쓰일 만하다. 금강송은 봉화 춘양에 가면 춘양목으로 이름을 바꾼다.
하늘까지 닿은 금강송의 위세
3. 관람 후
1) 인근 풍광
논의 벼가 파랗다. 초록의 물결이 너무 아름다워 한 폭의 작품같다.
2) 성유굴 원경
유적지 진입로 다리 위, 산 자락 아래 길게 동굴 입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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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도선 스님과 남사고
남도 영암 월출산 도갑사
도선 스님방
경상도 울진에서 온 남사고란 사내
도선 스님과 벌써 여러 날 다투고 있네
여차하면
서로 주먹다짐이라도 할 것 같네
당대발복인가 후대발복인가
집터인가 묘터인가
절집 풍속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인지
도갑사 절집 식구들 도선 스님과 남사고에 대해
모두 난감해하고 있네
그런데 새로 가게를 내고 싶은데 어디에다 내면 좋겠느냐
땅을 사 두고 싶은데 어디가 좋겠느냐
아파트를 사 두고 싶은데 지금 사두면 괜찮겠느냐
주식 투자 종목 대박 터질 것만 꼭꼭 집어줄 수 없겠느냐
도선 스님의 한 말씀에 목을 맨 사람들도
도갑사 절 마당에 벌써 여러 날째 잔뜩 진을 치고 있네
이들은 도선 스님과 남사고의 다툼이 여러 날 이어지자
이제는 더 못 참겠다며
남사고를 도선 스님 방에서 어서 끌어내고
도선 스님은 우리를 만나 달라
그렇지 않으면 자기들이 도선 스님방에 쳐들어가 남사고를 끌어내겠다고
모두 주먹을 불끈 쥐고 두 팔을 쳐들며 한목소리로 외치고 있네
<<한국신명나라>> 윤동재 몽유기행시에서 2021.1.27
이들은 모두 그렇다 치고
남사고도 남사고지만
도선 스님 저자에서나 할 소리를 하필이면 늘상 절집에서 해
이 야단이냐고 이 야단법석이냐고
도갑사 절집 식구들 이러다가 절집에서 큰 싸움 나겠다며
이젠 더 못 참겠다고 날을 세우고 있네
<<한국신명나라>> 윤동재 몽유기행시에서 <도선 스님과 남사고> 마지막 연 2021.1.27.
기억나는 시입니다. 도선과 남사고의 교류 비유, 남사고의 고장에 와서 보니 더 재미있습니다. 좋은 시, 덕분에 다시 봅니다. 다시 일러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