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주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니까 내가 아는 사람들 상당수에게 ‘아마추어 영화 비평가’라고 불린다. 사실, 꽤 평범한 영화도 너무 섬세하게 분석해 식구들 또는 친구들에게 짜증나게 하지 않을까 걱정할 때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은 꼽을 수 없도록 너무 많은데,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아마 ‘블레이드 러너’ 시리즈를 선택하겠다. 내 생각에는 1982년에 개봉된 ‘블레이드 러너 2019’와 2017년에 개봉된 ‘블레이드 러너 2049’으로 이루어진 이 시리즈의 장점은 밑도 끝도 없이 철학적으로 분석될 수 있는 성질이다. 이 철학적인 분석이 밑도 끝도 없는 이유들 중의 하나는 이 영화들에서 서로를 반대하는 다수의 관점을 뒷받침하기 가능한 증거를 찾을 수 있는 것인데, 이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한 토론은 쉽게 말싸움이 되어갈 수 있다.
그러니까 조심해야 한다. 말싸움이 될 때가 많은 이 영화들에 대한 하나의 토론 주제는 주인공이 로봇이냐 인간이냐는 질문이다. 주인공이 로봇이라는 주장 또는 주인공이 인간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가능한 증거가 다 있고, 내 생각에는 이 질문 자체가 이 질문의 대답보다 더 중요한데, 아마 참고할 만한 하나의 것은 첫 번째의 영화의 원자료이던 소설책의 지은이다.
필립 딕 소설가가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라는 제목의 소설책을 작성했고 이 소설책은 ‘블레이드 러너 2019’의 원자료가 되었는데, 필립 딕에 대해 기억날 만한 것은 그가 편집증에 시달려서 입원한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영화의 원자료가 되어온 그의 소설들 중에서는 어떤 편집적인 망상을 중점으로 둔 것이 많은 것 같다.
‘블레이드 러너 2019’의 경우에는 영화는 소설책의 줄거리를 부분적으로만 따르는데, 소설책의 어느 한 분절에 주인공이 자신이 로봇이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하고, 이 소설에 등장하는 로봇들이 인공적인 기억을 갖기 때문에, 주인공은 자신의 기억이 인공적인지 천연적인지 알 수 없다. 독자도 주인공의 기억이 인공적인지 천연적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주인공이 로봇이 아니라 인간이라고는 확실히 말할 수 없다.
나는 소설가가 편집증에 시달리지 않았으면 이런 주인공을 상상할 수 있었는가 궁금하다. 게다가, 우리는 이런 소설책을 읽어서 편집증에 시달리는 사람의 머릿속을 어느 정도로 이해하기로 되어 있는 것 같으니까, 주인공이 로봇이냐 인간이냐는 질문을 대답하지 못하기로도 되어 있는 것 같다.
첫댓글 모르던 영화였는데 보고싶네요.
평범한 영화도 섬세하게 분석하시는 이면지님의 영화소개 시리즈를 계속 보고 싶네요.
인간보다 인간다움을 실현했던 안드로이드였지요. 주인공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