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깻잎 투쟁기: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한 1500일
우춘희 지음, 교양인 2022
‘불법 체류자’에서 ‘미등록 이주민’으로
‘미등록 이주민’이라는 이름
한국 정부는 그동안 외국인 등록을 하지 않거나 초과 체류하는 이주민을 단속과 추방의 대상으로 보고 ‘불법 체류자’라 지칭했다. 여기서 ‘불법 체류’란 무슨 의미일까? 정부 문서에서 ‘불법 체류’에 관한 정확한 정의를 찾기는 어렵다. 다만 출입국 관리법 제17조에 ‘외국인의 체류 및 활동범위’를 규정하는데, ‘불법 체류’는 이 조항을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법무부에서 매년 <출입국·외국인 정책 통계연보>를 발간해 여기에 ‘불법 체류자’와 ‘출입국 사범’을 포함한 통계를 발표하지만 정확한 개념 정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통계청에서는 ‘불법 체류 외국인’을 “체류 외국인 중 체류 기간 연장 허가 등을 받지 않고 체류 기간이 초과된 외국인”으로 정의하고 이와 관련된 지표를 발표한다. 종합하면 법무부와 통계청에서는 ‘불법 체류’를 체류 기간이 지났는데도 출국하지 않고 머무는 상태로 규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유엔, 국제노동기구, 국제이주기구, 유럽연합 등 국제 사회에서는 초과 체류한 이주민을 ‘불법 체류자’라 부르는 것은, 그들을 ‘불법’적인 존재로 낙인찍어 혐오를 조장하기에 ‘미등록’ ‘비정규’ 같은 중립적인 용어를 써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되어 왔다. 초과 체류의 문제는 행정 절차 위반이지 형사상 범죄가 아니기 때문에, 체류 문제가 적발되면 정부가 정한 절차에 따라 조치를 취하면 된다. 교통 법규를 위반한 운전자에게 ‘불법 운전자’라고 하지 않듯이, 초과 체류한 이주민에게 ‘불법 체류자’라고 할 필요가 없다. 국내 인권·이주단체에서도 사람의 존재 자체가 ‘불법’일 수 없기 때문에 ‘불법 체류자’ 대신 ‘미등록 이주민’ ‘미등록 노동자’라는 표현을 권고했다. 그러나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이런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다 코로나19가 많은 것을 바꾸어놓았다. 감염병은 성별, 국적, 인종, 체류 자격을 가리지 않았다. 한국 사회에서 없는 존재로 취급받던 사람들이 감염병 관리 대상으로 떠오른 것이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점점 많아지던 2020년 3월, 초과 체류자들은 마스크를 구입할 수 없었다. 당시 정부는 출생 연도에 따라 공적마스크 5부제를 시행했는데, 내국인과 마찬가지로 외국인도 신분증(외국인등록증과 건강보험증)을 들고 약국에 가면 구입할 수 있었지만, 초과 체류자들은 신분증이 없거나 만료되었기 때문에 구입이 불가능했다. 이들의 감염 가능성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정부는 2020년 4월 20일 한 달이나 지난 시점에 초과 체류자들도 마스크를 구입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여기에 더해 2020년 4월 29일, 당시 정세균 국무총리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미등록 외국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국가 기관에서 멸칭에 가까운 ‘불법 체류자’라는 용어 대신에 처음으로 ‘미등록’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미등록 이주민들이 ‘불법 체류자’라는 인식에 갇혀 사회로부터 숨어버릴 경우 감염병 확산 상황 속에서 사회 전체가 감염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 약 38만여 명의 미등록 외국인들이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 하지만 이들을 불법 체류자로 내몰고 단속할 경우에는 깊숙하게 숨기 때문에 오히려 사각지대가 더 커질 우려가 있다. …… 출입국 관리보다는 방역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고 감염을 예방하고 확진자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도록 의료 접근성을 확대하는 것에 중점이 주어져야 한다.”
정부는 미등록 이주민도 코로나19 감염이 의심되면 공공보건의료기관에서 무료로 검사받을 수 있고 확진될 경우에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했다. 법무부에서는 담당 공무원이 이들의 체류 자격과 신상 정보를 안다고 하더라도 출입국·외국인관서에 통보할 의무가 면제된다고 발표했다. 이 통보 의무 면제는 코로나19로 인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2012년 개정된 출입국관리법 제84조에 이미 명시되어 있다. 공무원이 미등록 체류자를 발견할 경우 지방출입국·외국인관서의 장에게 알려야 하지만, “공무원이 통보로 인하여 그 직무 수행 본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의무가 면제된다. 최홍조 건양대 교수는 2021년 4월에 열린 ‘긴급 점검! 코로나19와 인종 차별 토론회’에서 통보 의무 면제가 아니라 통보 ‘금지’를 해야 한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까지 이주민들이 그 법이 있는지도 모르고 10년 넘게 살아 왔죠. 그래도 감사하죠. (통보 의무 면제에 대해) 열심히 홍보를 하시고, 여러 언어로 번역해서 제시하는 것도 고맙죠. …… 하지만 반성하셔야죠.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지금도 ‘통보 의무 면제’를 하지 않았겠죠. 덧붙여 통보 의무 면제가 아니라 금지를 해야 합니다. 저는 이거는 고려해 보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등록 이주민이 코로나19 검사나 백신을 접종하기 위해 보건소와 병원에 방문할 경우, 공무원들이 이들의 미등록 체류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통보 의무가 ‘면제’되기 때문에 통보할 필요가 없지만 통보를 할 수도 있다. 반면 통보를 ‘금지’하게 되면 미등록 이주민은 신고당할 걱정 없이 의료 기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에 함께 대처하기 위해서 국경 안에 누가 사는지, 지역 사회와 마을 안에 누가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생각한다. ‘불법 체류자’라고 혐오와 낙인의 대상이자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이제 ‘미등록 체류자’로 지역 사회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미등록 체류자, 미등록 이주민이 안전할 때, 다른 사회 구성원 또한 안전할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로부터 우리 사회는 미등록 이주민을 사회 구성원으로 포용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미등록 이주민은 한국 사회에서 깊숙이 자리를 잡고 살고 있다. 소도시, 공업 도시, 농촌에 가면 많은 미등록 노동자들을 볼 수 있다. 2020년 기준 약 39만 명이 우리 사회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 있는 사람들이 편히 살아갈 수 있도록 경로를 마련해주는 것은 어떨까? 미등록 이주민들에게 당장 국적을 취득할 자격을 주자는 것이 아니다. 이미 한국 사회에 살아가고 있으니 구성원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이들에게 최소한의 법적 보호 장치라도 마련해주자는 말이다.
여전한 불심 검문
2012년 4월, 쏘리야(가명, 40대) 씨는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왔다. 그가 처음 일한 곳은 충주의 한 채소 농장이었다. 근로계약서에는 하루 8시간 일을 한다고 적혀 있었지만 매일 새벽 6시부터 오후 7시까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12시간 일해야 했다. 사업주는 계약서에 적힌 105만 원(2012년 최저 시급 4,580원)을 주지도 않았다. 하루 12시간을 일하고 한 달에 두 번 쉬면서, 그가 받은 월급은 87만 원이었다. 쏘리아 씨는 그중 5만 원만 생활비로 쓰고 나머지는 가족에게 보냈다. 어머니는 딸이 부쳐준 돈을 받기 위해서 자신의 이름으로 된 통장을 처음으로 만들었다.
쏘리아 씨는 자신이 월급을 너무 적게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노동청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담당 공무원은 사업주와 화해하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지구인의 정류장’이라는 단체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도와준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그는 김이찬 감독에게 도움을 받았고, 또 자신뿐만 아니라 많은 캄보디아 노동자들이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도 알게 되었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2013년 쏘리아 씨를 포함한 캄보디아 노동자들과 ‘지구인의 정류장’이 힘을 모아 ‘크메르노동권협회’를 만들었다. 쏘리아씨는 사람들의 적극적인 지지로 회장을 맡았다. 그는 농장에서 일을 하면서 동시에 다른 노동자들의 임금 체불 문제를 돕고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을 알리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2017년 쏘리아 씨는 유학(D-4) 비자로 다시 한국 땅을 밟았다. 그에게는 한국어를 배우면서 노동자들을 돕겠다는 꿈이 있었다. 이주노동자들에게서 임금 체불 문제로 전화를 받으면 어떻게 증거를 모으고,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알려주었고, 특히 힘내라고 북돋아주었다. 그해 12월 세계이주노동자의 날을 기념해 열린 ‘이주노동자대회’에서는 사업주의 임금 체불과 비닐하우스에 살면서 한 사람당 월세를 25만~30만 원씩 내는 상황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쏘리아 씨는 또 ‘크메르노동권협회’에서 운영하는 여성 쉼터를 관리하면서 집이 없는 여성 노동자들이 머물 수 있게 했다. 캄보디아 명절이 되면 이주노동자들과 같이 장을 봐서 요리도 척척 해냈다. 그는 낯선 땅에서 외롭게 일하는 캄보디아 이주민들에게 일종의 울타리 같은 존재였다.
그러던 중 2019년 비자 만료를 앞두고 경제적인 문제로 쏘리아 씨는 초과 체류를 결심했다. 경상도의 식당에서 강원도 채소 농장까지, 쏘리아 씨는 여러 지역에서 일자리가 필요하면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으면서까지 열심히 일을 해 가족들에게 돈을 보냈다.
2020년 11월, 쏘리아 씨를 다시 만난 곳은 경기도 화성의 외국인보호소였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기에 그는 경기도의 한 공장에서 마스크 만드는 일을 했다. 평소보다 작업이 일찍 끝나서 공장 사람들과 같이 시장에 가려고 버스를 탔다. 정류장에 내렸을 때 단속반의 불심 검문에 걸렸고 그대로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되었다. 코로나19로 각국이 국경을 봉쇄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동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등록 이주민을 쫓아내기 위한 불심 검문은 그대로였다. ‘불법 체류자’에서 ‘미등록 외국인’으로 말은 바뀌었지만 현장에서 여전히 이들은 내 쫓아야 할 대상이었다.
나는 소식을 듣고 바로 화성으로 달려갔다. 면회 신청 후 소지품을 맡기고 배정받은 작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정면에 두꺼운 유리판이 있었고 오른쪽에는 하얀색 인터폰이 있었다. 쏘리아 씨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위아래 연한 녹색 옷을 입고 있었고, 등 뒤에는 ‘외국인보호소’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파란색 덴탈마스크 뒤로 얼핏 보이는 쏘리아 씨의 얼굴이 많이 피곤해 보였고 어깨가 축 쳐져 있었다. 허용된 면회 시간은 20분이었다. 쏘리아 씨는 인터폰을 들고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하다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마스크 공장에 불법 사람도 많고 합법 사람도 있어요. 한국 사람들이 공장에서 일하기 싫어해서 우리 외국 사람이 가서 일을 해요. 우리 월급 조금 받고 일해요. 내가 하고 싶은 건 돈을 벌어서 한 달에 5백 달러(약 55만 원)를 캄보디아 가족에게 보내는 거예요. 그게 전부예요.”
쏘리아 씨에게 남은 선택지는 본국에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결국 한 달 뒤 그는 캄보디아로 떠났다.
외국인 전수 검사라는 차별
경기도는 2021년 3월 8일부터 22일까지 15일간 도내 외국인 고용 사업주와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실시하는 행정 명령을 내렸다. 검사는 무료로 진행되며 미등록 이주민도 진단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단속을 비롯한 어떠한 불이익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도 2021년 3월 17일부터 31일까지 15일간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외국인 노동자 진단 검사 행정 명령을 내렸다. 사업주, 외국인 노동자, 미등록 이주민이 검사 대상에 포함되었다. 행정 명령에 따르지 않을 경우 2백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낼 수도 있고, 코로나19에 감염되면 방역 비용에 대해 구상권이 청구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어 인천시, 강원도, 전라남도, 경상북도 등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전수 검사 행정 명령을 발표했다.
‘외국인 노동자 코로나19 전수 검사’는 즉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2021년 3월 19일,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은 “외국인 노동자 대상 코로나19 전수 검사‘ 행정 명령을 철회하고, 인권의 원칙에 기반한 방역 정책을 수립하라”라는 공동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는 지방자치단체의 행정 명령이 이주노동자 혐오와 인종 차별에 기인한 것이라고 비판하며, 정부가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주거 환경을 개선해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 코로나19 전파를 막아야 함에도, 이런 필요성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모든 외국인 노동자‘가 일괄적으로 검사를 받도록 한 행정 명령은 마치 바이러스 확산과 증가세가 외국인 노동자에게 있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서울시 인권위원회의 입장도 비판적이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외국인 노동자 진단 검사 행정 명령 조치는 외국인 노동자를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한 것으로 ,노동자의 국적 여하에 관계없이 비차별적인 내용으로 수정·변경하고 향후 이와 같은 차별 및 인권 침해가 재발하지 않도록 조치할 것을 권고”했다. 사이먼 스미스 주한 영국 대사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영국 대사관은 이런 조치가 불공정하고 반비례적이며,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한국 정부와 서울시, 경기도에 분명히 전달”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국적으로 따지면 한국에서 코로나19에 가장 많이 걸리는 집단은 한국인이다. 한국인의 수가 가장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국인을 대상으로 삼아 전수 검사를 실시하지는 않는다. 어떤 합리적인 이유도 없이 ‘외국인 노동자’라는 특정 집단을 지목하고 모두 강제로 검사받게 하는 것은 국적을 이유로 한 명백한 차별 행위이다. 코로나19 감염은 국적, 인종, 성별 등에 따라 거의 차이가 없음이 과학적으로 명백해지고 있다.이주민이 코로나19에 걸리는 것은 그들이 ‘외국인 노동자’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생활하는 숙소가 열악하고 밀집되거나 밀폐되어 있기 때문이다. 노동 환경이나 생활 환경의 개선을 도모하지 않은 채 단순히 국적을 기준으로 일괄적으로 검사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불법인 사람은 없다”
2021년 2월, 질병관리청은 건강보험에 가입한 ‘장기 체류’외국인은 내국인과 동일하게 백신 접종을 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에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단기 체류 외국인, 미등록 이주민, 난민 신청자는 백신 접종 대상자에서 제외된다는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결국 두 달 뒤 2021년 4월 6일,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은 체류 자격에 상관없이 전체 이주민에게 백신 접종을 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2021년 6월 21일, 이주인권단체들은 ‘코로나19 이주민 백신접종에 대한 이주인권단체 공동 의견서’를 내고 백신 접종에서 나타나는 이주민 차별 정책을 비판하며 시정을 촉구했다. 공동 의견서에는 다양한 언어로 백신 접종에 대한 안내가 제공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이주민의 백신 접종을 돕는 현장 담당자가 필요하며, 접근이 어려운 도서 지역에는 이동 서비스를 도입하고, 미등록 이주민을 위해 지원 단체와 연계해 대리 예약 같은 방법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나 질병관리청은 한국어와 영어로만 정보를 제공해 많은 이주민이 언어 장벽으로 인해 코로나19와 관련된 정보를 얻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반면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한국어를 포함해 65개 언어로 코로나19 백신 관련 정보를 제공해 다양한 민족의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심지어 한 활동가는 코로나19에 걸린 뒤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후유증과 관련된 정보를 얻기 위해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한국어로 된 홈페이지를 찾아봤다고 했다. 실제로 홈페이지에는 코로나19 감염 검사, 증상 발현, 백신 접종 등 다양한 관련 정보가 한국어로 자세히 나와 있다. 이렇게 국가별 언어로 정보를 제공한다면 감염병에 관한 괜한 오해와 두려움을 낮출 수 있을 것이다.
몽골 출신 여성 노동자 졸자야(가명, 40대) 씨를 처음 만난 곳은 인력사무소 앞이었다. 머리는 언더컷에 아래에는 스크래치를 냈고 위에는 금발로 염색되어 있었다. 키도 훤칠했고 덩치도 있었다. 인터뷰에 응한 졸자야 씨는 현재 미등록 체류로 인력사무소를 통해 일자리를 소개받으며, 마늘, 양파, 사과, 딸기부터 가구 공장, 육류 포장 작업, 식당 일, 모텔 청소까지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라고 했다. 그는 휴대폰으로 ‘얀센백신 접종자 대상 추가 접종 안내’문자가 온 것을 보여주며 말했다.
“내가 불법 체류 상태라서 특별히 건강에 신경 써야 해요. 코로나 걸리면 일을 못 하고 돈을 못 벌어요. 우리는 불법이라서 아프면 병원에 가기 어려워요. 아프면 안 돼요. ……
우리가 코로나 걸리면 한국 사람도 걸릴 수 있으니까 우리는 백신을 다 맞아요. 그런데 백신 맞으러 가서 경찰에 잡히면 다른 사람들이 안 가요. 일단 백신 접종은 해야 해요. 그리고 단속은 나중에 해야 해요. 사람들이 잡히면 SNS에 올리기 때문에 백신 접종하러 안 가요. 외국인이 코로나 걸리면 한국 사람도 걸리잖아요. 그거 위해서도 잡기는 나중에 해야 해요.“
한 연구에서도 단속과 추방을 걱정하는 미등록 이주민이 정부 정책을 신뢰하고 백신 접종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심리적 장애물을 없애고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감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법무부도 백신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 다음과 같이 홍보했다. “외국인이 안심하고 코로나19 검사 및 백신 접종을 받을 수 있도록 단속 및 출국 조치 등을 하지 않습니다. 불법 체류 외국인의 어떠한 정보도 출입국관서에 통보되지 않습니다. 안심하고 코로나19 검사 및 백신 접종을 받으세요.” 외국인등록번호가 없는 사람은 보건소에 가서 여권을 제시하고 임시 관리 번호를 받은 후 그 번호로 백신 접종 예약이 가능했다.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은 체류 지위와 상관없이 사회 전체 구성원이 안전할 때야 비로소 나도 안전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우리는 마스크 구매, 전수 검사, 치료, 백신 접종과 관련된 이슈를 통해 ‘불법’이건 ‘합법’이건 한국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이들에 대한 배제는 우리 사회 전체의 건강을 저해한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배웠다.
사실 어떤 이주민도 ‘불법 체류’를 원하지 않는다. 인간 자체가 ‘불법’일 수도 없으며 존재 자체가 ‘불법’이 될 수도 없다. ‘불법인 사람은 없다(No one is illegal).“ 우리는 이 구호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221~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