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책 ‘안녕하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게다가 나의 퇴직 후 장래 희망은 동네서점 주인이 되는 것이다.
책 한 권으로 서점에 대한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떠오른다.
진월동에 서점이 있었던가?
내 기억에는 기찻길 옆에 서점이 하나 있었고 나중에 육교가 들어선 후 육교 옆에 서점이 하나 더 들어선 걸로 기억한다.
기찻길 옆 서점은 나의 유년 시절을, 육교 옆 서점은 나의 청소년 시절을 함께 하였다.
육교 옆 서점은 후에 이야기 하련다.
진월동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대성여중고가 자리해 있어서인지 매일 아침 여학생들은 진월동 금당산을 향해 올라가고 오후에는 내려온다.
그 시작점인 기찻길 옆에 중고등 학생들을 위한 참고서를 주로 파는 서점이 있었다.
서점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끔 엄마가 책 구경시켜준다고 데리고 갔던 기억이 난다.
서점에 들어서면 종이 냄새가 난다.
글을 쓰는 지금도 잠시 눈을 감고 가만히 그 장면을 떠올린다.
그러면 기분 좋은 그 종이 냄새가 난다.
엄마 손을 잡고 들어서던 그 서점의 냄새가...
내 기억이 맞다면 서점에서 내 생애 처음으로 산 책은 ‘교실 밖의 수학 시리즈 1’ (김용운 저. 1992.) 이었다.
인터넷(다음 검색)으로 잠시 찾아보니 사진은 없고 간단하게 제목과 지은이, 발행 연도만 기록되어 있다.
지은이는 2020년도에 돌아가셨다.
책날개 소개에서 본 그 젊은 날의 저자(수학과 교수) 사진과 책 표지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 시절 그 꼬마는 프로필의 사진을 보면서
‘이런 책을 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얼마나 멋지고 훌륭한 대단한 사람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이 글을 준비하며 찾아본 인터넷에 올라온 프로필 사진을 보니 세월이 많이 지난 노교수님의 사진만 검색될 뿐이다.
그 어린 시절, 꼬마 아이가 지금 어느새 그 책의 힘 덕분인지 수학 교사가 되어 있으니 말이다.
세월이 참...
엄마의 선견지명 덕분인지 그 책 한 권 덕분인지 난 의도치 않게 전라북도의 어느 중학교 수학 교사로 재직 중이다.
어린 시절 책에서 보았던 그 저자의 사진 밑에 쓰인 ‘수학자’라는 글자는 나의 가슴을 뛰게 했다.
‘도대체 수학자는 뭐 하는 사람일까?’라는 호기심에 책을 읽으며, 수학이라는 학문에 관심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학생들과 아침 독서시간에 성독(소리 내어 읽기)하고 있는 책은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다.
여기서는 박사(수학자)와 그 박사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어린 소년 루트가 등장한다.
박사는 루트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낸다.
어린 소년 루트는 박사와의 시간 덕에 역시 행복하게 자라 건강한 어른이 된다.
박사의 영향인지 루트는 나중에 중학교 수학 선생님이 된다.
마치 나처럼...
나에게 그런 박사가 있다고 한다면 아마도 내가 처음 만난 책의 저자 ‘김용운’님이 아닐까 싶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를 박사님이겠지만, 책 한 권으로 인해 나는 어느 수학자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책의 내용보다는 그 책을 쓴 사람으로부터...
수학자는 어떤 공부를 하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여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 다른 공부는 잘 하지 않아도 수학 공부는 열심히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 좋은 공부의 시작을 선물한 나의 첫 기찻길 옆 서점.
요즘엔 경제 논리로 인해 동네 서점들이 하나둘씩 없어지고 있다.
책 ‘안녕하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읽으며 이를 공감했고 이런 현실이 참 안타까웠다.
서점에 갔다가 생각지도 못한 책을 산 경험을 한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관심 있는 주제가 정해져 있었는데 막상 정반대의 책을 산 적도 있을 것이고, 특별하게 관심이 가는 주제가 따로 없었지만, 그냥 손길이 가서 책을 집어 든 적도 있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동네 서점에 가서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시간 가는 줄도 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한참 책을 읽었다.
그 시절 기찻길 옆 동네 서점이 있었기에 간직하고 싶은 행복하고 소중한 추억이 남아있고.
이렇게 그 추억을 떠올리며 글도 쓸 수 있으며, 지금의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다.
동네 서점은 참 소중하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요즘 삶이 지치고 쉼이 필요하면(특히 시험기간 오후) 난 동네 책방에 간다.
나만의 케렌시아(스페인어 'Querencia'는 피난처, 안식처, 귀소본능을 뜻한다.)는 동네 책방이다.
가서 책 한 권 골라 따뜻한 커피 한잔에 하루 종일 책을 읽으며 여러 생각들을 하면서 쉰다.
이 시간이 너무 좋다.
나중에 정년퇴직하면 동네 책방을 할 거다.
아내에게도 공언했다.
허락했다.
하란다.
물론 경제적으로 이해타산이 맞지는 않겠지만 나 스스로는 행복할 것 같다.
그때는 생활비도 적게 들테니 돈 이런 거 따지지 않고 그냥 나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아내랑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고 싶다.
누군가에게 케렌시아를 제공하는 것을 낙으로 삼으며...
그래서 지금부터 나는 커피에, 아내는 제빵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나에게 동네 책방은 그런 곳이다.
행복이 피어나는 공간.
이런 동네 책방이 마구 생겨났으면 좋겠다.
아니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돈이 많으면 참 좋겠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동네 책방 대차게 후원하고 싶다.
동네 책방은 누군가의 소중한 추억이다.
그 추억으로 아이는 훌륭한 어른으로 자라난다.
#나의진월동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