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7일(목), 흐리다가 맑은 날씨다. 아침 6시, 숙소에서 아침을 들고 마지막 출발장소인 삼가면사무소로 향하였다. 전날 저녁에 합류한 부산 소목회의 박홍규 회장과 그의 친구가 합류하여 일행은 15명. 소재지에 들어서니 이순신 백의종군로 대행군을 축하하는 백학산성보존회 명의의 환영 플래카드가 걸려 있고 면사무소 앞에는 이순신 백의종군 행로지라는 비석에 1597년 6월 2일과 3일 초계로 향하던 중 이곳에 유숙하며 원균의 참패에 따른 대책수립에 골몰하였다고 적혀 있다. 박충제 삼가면장이 일행을 맞고 합천군청 하규하 문화체육과장 등이 찾아와 인사를 나눈다.

삼가면사무소를 출발하면서 파이팅!
오전 7시, 삼가면사무소를 출발하여 율곡 쪽으로 향하였다. 걸으면서 박충제 면장이 면의 개황을 설명한다. 삼가면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소 사육지로 작은 면소재지에 쇠고기를 주재료로 하는 음식점이 여럿, 년 간 매출 70억이 넘는 업소도 있다고 말한다. 인구는 만 명을 넘은 적도 있으나 지금은 3천여 명, 시설원예를 하는 농가들이 많다는 내용이다.
삼가면 소재지를 벗어나 한 시간여 걸으니 평구삼거리에 이른다. 10분 쯤 걸어 쌍백면 사무소, 잠시 휴식한 후 내쳐 걷는다. 일정이 빠듯하여 휴식시간을 줄이기로. 길고 완만한 고갯길(아등재)을 넘어 내리막길에 접어드니 촌로 한 분이 일행을 맞는다. 율곡에 거주하는 향토사학자 이강중(21세기이순신연구회 합천지회장)씨, 그의 안내로 대양면사무소에 도착하니 주찬식 면장과 심경섭 노인회장 등이 일행을 따뜻하게 맞아준다. 시원한 음료를 들며 잠시 환담, 대양면은 160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조용한 농촌지역이라고 김정애 부면장이 일러준다. 합천은 면적이 넓은 군, 전날 가회면에서 삼가에 이르는 10여km의 도로에 상점 하나 찾을 수 없는 한적한 길이었는데 오늘도 조용한 농촌 모습이 계속 이어진다.
한국체육진흥회 세종지부 회원 다섯 명이 대양면사무소에서 합류, 일행을 대표하여 이충재 전 행정중심복합청장이 뜻깊은 행사의 마지막 일정에 함께하여 기쁘다고 인사한다. 잠시 후 대구에서 해군장교 출신의 최성준 씨와 또 다른 한 분, 연이어 서울에서 내려온 김태형 체육진흥회 사무총장 등 10여 명이 합류하니 대열이 크게 늘어난다. 새로 합류한 회원들과 환담하며 열심히 걸어 정양로터리에 이르니 12시가 가깝다. 로터리의 합천곰탕 식당에서 점심, 부산의 박홍규 소목회장이 일행 모두의 밥값을 치른다. 의사인 박 회장은 한일친선교류와 의료봉사에도 열정을 쏟는 동호인, 지난 봄 제6회 조선통신사 걷기 때도 부산에서 일행을 초대하여 저녁대접을 한 바 있다. 배려에 감사.
12시 40분, 오후 걷기에 나선다. 오전에는 흐리더니 오후 들어 햇볕이 따갑다. 로터리 벗어나니 강폭이 넓은 황강 변을 지나 30여분 걸으니 율곡면에 접어든다. 농공단지가 들어선 들판이 넓고 적벽처럼 깎아지른 산세가 운치 있는 길, 문림교 건너 면사무소를 지나 충무공의 합천 체류거점인 모여곡(毛女谷, 음기가 성한 지세라는 이강중 향토사학자의 설명)마을로 들어선다.
입구에 ‘환영, 백의종군 순례단’이라 쓴 플래카드가 일행을 반긴다. 모여곡 마을(40여호 거주)회관에 이르니 오후 2시 반, 팔순의 이종규 선생(이순신을 배우는 사람들의 멤버)을 비롯하여 여성들이 대부분인 마을주민들이 박수를 치며 일행을 맞는다. 낡고 관리가 허술한 충무공의 거처 이여해가를 돌아본 후 따뜻한 커피와 시원한 영양음료를 대접하는 주민들과 기념촬영. 이 자리에서 배준태 단장은 누구나 다녀가야 할 백의종군 길의 거점인 것을 강조하며 만세삼창을 선도하였다.
율곡마을의 간절한 소망, 이곳이 충무공의 합천 체류와 이후의 수군재건모색의 거점인데 이웃면 초계가 충무공 선양사업의 중심으로 인식되는 것을 바로 잡아달라는 것이다. 이강중 향토사학자와 이종규 선생이 이를 입증하고 주장하는 여러 자료를 건네며 안타까움을 호소한다.

모여곡(율곡)에 도착하여 주민들과 함께
최종목적지는 초계, 오후 2시 50분에 모여곡을 출발하여 초계로 향한다. 24번 국도 따라 큰 고개 넘으니 초계면, 고개 아래 중리마을회관에서 마지막 휴식을 취하며 행렬을 정비한다. ‘이순신 백의종군 이음 도보 대행군’의 대원들이 앞에 서고 합류회원들이 뒤를 따라 초계면소재지에 들어서니 오후 4시 10분, 총 675km의 대정정의 마무리에 이른다.
면사무소에 도착하니 도열해 있던 해군군악대의 팡파레가 울려 퍼진다. 면장을 비롯한 주민들이 박수로 환영, 곧이어 도착행사를 가졌다.
배준태 단장의 도착인사, ‘24일간 충청, 전라, 경남 돌아 670여 km의 이순신 백의종군 이음 도보 대행군을 무사히 마쳤음을 보고한다. 해군과 충무정밀 등 후원기관, 성원해준 관계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어려서부터 들은 충무공의 행적을 60년 지나 더듬는 발길이 뜻깊다. 부뚜막의 소금도 입에 넣어야 짜다는 말처럼 이제 그 길 개척하여 이었으니 수백, 수만의 열매 맺기 바란다.’

백의종군길 대행군 무사히 마쳤음을 보고하는 배준태 단장
이어서 백의종군 일행 8명(선상규, 배준태, 홍순언, 강호갑, 김태호, 고양문, 김월호, 정상희)에게 완보증을 수여한 후 먼 길 걸어 초계에 이른 일행의 장거를 축하하고 이 행보가 살아 꿈틀대는 역사이기 바란다는 면장의 인사가 이어졌다. 그는 이순신 장군의 어머니가 초계 변 씨 임을 일깨며 전쟁 중 문안 온 장군에게 나라의 치욕을 씻는 것이 중요하니 어서 돌아가라고 말한 일화를 소개하기도.
선상규 한국체육진흥회장은 연주를 위해 특별히 와준 해국군악대와 환영해준 인사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이번 백의종군길의 이음이 역사 정신, 생명 이음의 씨앗으로 더 큰 열매 맺을 것을 다짐하였다. 행군 도중 친절하게 지역을 안내해준 아산의 박승훈 백의종군보존회장과 남원의 조용섭 지리산권 마실 대표가 이곳까지 와서 마무리행사를 지켜보아 감사하다.
오후 4시 50분, 서둘러 행사를 마치고 서울에서 온 대절버스에 올랐다. 세종지부와 부산에서 온 이들은 각기 타고 온 차량으로 돌아가고, 나와 대구에서 온 두 분은 정양로터리에서 내리고 나머지(23명)는 서울행이다. 일행들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고 최성준 씨의 승용차에 올라 대구로 향하였다. 서울 들러 광주 가기보다 대구가 가까운 편, 아내가 대구에서 맞아준다.
24일의 고된 일정을 무사히 마친 일행 모두 수고하였다. 행사를 주관한 선상규 한국체육진흥회장과 배준태 단장이 코스를 개척하느라 애썼고 홍순언, 강호갑 대원은 걷는 내내 스티커와 리본을 붙이느라 고생하였다. 김월호 이사는 차량으로 행군에 차질이 없도록 지원해 주고 정상희 대원이 어플 확인과 세탁으로 열심히 봉사하였다. 고양문 대원은 원숙한 행보와 해박한 정보로 한 몫, 나는 불편한 컨디션에 참가기 적느라 나름 힘썼다. 8명의 대원 중 70세 이상이 4명이고 60대 후반 2명 등 대부분 노장들인데도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과 체력으로 모두 무사완주, 파이팅!

백의종군길 675km를 무사히 완주한 대원들
* 9월 8일 오전, 고속버스 편으로 대구를 출발하여 광주로 향하였다. 한 시간 반 지나 지리산 휴게소에서 중간, 휴게, 여러 날 힘들게 걸었던 지리산 주변을 단숨에 달리는 기분이 묘하다. 집에 도착하여 대원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전하였다. ‘어려운 행사 성공적으로 치르느라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도와주신 덕분에 완주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저는 대구에서 1박하고 방금 광주에 도착하였습니다. 더욱 건강하고 밝은 날 되시기를 빕니다.’ 선상규 회장의 답글, '피로가 빨리 회복되기를 빕니다. 백의종군길을 개척한 선구자임을 자부하면서 더 좋은 백의종군길이 될 수 있도록 계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저녁시간, 케이블 TV에서 이순신 장군이 전란 중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약샘의 물로 병을 다스렸다는 내용을 소개하며 난중일기의 기록을 인용하기도 한다. 이순신 백의종군 행로에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열악한 숙소에서 유숙했다는 기록을 살폈던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동병상련의 느낌을 체험하게 함인가, 대행군 중 늑골부상과 기관지염으로 다른 걷기 때보다 편치 않은 상태가 지속되었다. 이를 견디고 끝까지 완주할 수 있어 뿌듯하다. 남은 때도 그러하기를.
걷기 중 격려의 메시지를 준 신향순 님이 걷기를 마치자 다음과 같은 글을 보내왔다.
‘교수님,
축하드린다는 표현보다는 장하시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전 구간을 완보하신 여덟 분 모두 참으로 장하십니다.
한여름 무더위 속이었던 터라 있을 수 있는 후유증 잘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하기야 언제나 밝고 맑은데다 뛰어난 지혜를 가지신 혜경 님이 함께 하시니 후유증이 언감생심일 것입니다.
순천향대학교에 '이순신연구소'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함은 잊었지만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해군대령으로 예편한 분이 그 연구소 소장이십니다. 그 분으로부터 TV를 통해 '충무공 이순신' 강의를 세 번쯤 들은 일이 있습니다. 그에 의하면 지는 싸움은 절대 하지 않았던 이순신 장군은 '이순신생태계'를 완벽하게 갖추고 싸움을 시작하는 그 시대의 유일한 영웅이었다고 합니다. 지위고하를 따지지 않는 주변의 튼튼한 人的구성과, 한산도에 진영을 둠으로써 일본군의 길목을 막고 전라도의 기름진 농토에서 풍부한 식량을 준비할 수 있었던 것 등... 치밀하게 싸움에 대비하는 그 모든 것을 이순신 연구소장은 '이순신생태계'라고 표현한다고 했습니다.
앞으로도 늘 건강하셔서 한국의 건강한 장래가 보장될 수 있는 튼튼한 생태계의 일원으로 계셔주십시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