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진교회 신년 부흥집회 “부활의 주님으로 은혜의 세계를 열어라”를 7회에 걸쳐 보내드립니다.
-오늘의 말씀-
어둠의 판도라를 열지 말라
01/23월(月)사 14:12-15 /창 2:16-18, 3:9-19
신앙은 영적으로 보면 흑암의 세계와 은혜의 세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흑암의 세계는 죄악, 저주, 율법의 세계로 어둠과 저주의 세계입니다. 은혜의 세계는 의(義)와 축복의 세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은혜의 세계에 거하기 원하는데 왜 흑암의 세계가 존재하는가? 그 이유는 사람들이 부패해서 어둠의 문을 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관리하지 못해 썩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고 은혜 받아 어둠의 세계에서 나와야 합니다.
‘유토피아’는 아담과 하와의 거주지로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곳입니다. 그곳에는 생명나무와 선악과가 있습니다. 생명나무가 있으면 다 있는 것입니다. 선악과에 손대지 않아도 충분히 살 수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선악과에 손대지 말라고 하셨는데 아담과 하와가 어둠의 판도라 상자(선악과)에 손을 대면서부터 인생이 뒤바뀌게 되었습니다. 열지 말아야 할 상자를 열게 되면서 불행(어둠)이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이제판도라 상자(어둠)를 닫고 은혜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판도라의 상자’는 그리스 신화입니다. 기원전 8-9C 제우스는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에게 여자를 만들라고 했고, 판도라라는 여자가 탄생하였습니다. 제우스는 판도라의 탄생을 축하하며 절대로 열지 말라는 경고를 하며 상자를 주었습니다. 판도라는 신 프로메테우스의 동생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지만, 어느 날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결국 상자를 열게 됩니다. 그 상자 안에는 온갖 욕심, 질투, 시기, 각종 질병 등이 담겨 있었고, 상자를 여는 순간 세상 곳곳으로 퍼져갔습니다. 평화롭던 세상이 금세 험악해 졌습니다. 판도라는 깜짝 놀라 급하게 상자를 닫았지만 상자 안의 나쁜 것들은 이미 전부 빠져나온 뒤였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있었던 희망은 빠져나가지 않아서, 사람들은 상자에서 빠져나온 악들이 자신을 괴롭혀도 희망만은 절대 잃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선악과에 손을 대지 않아도 생명나무만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도록 만드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6-17) 선악과를 따 먹으면 반드시 죽는 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욕심으로 경고를 무시하여 벌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여자에게는 해산의 고통과 남편의 다스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창 3:16)
남자에게 주는 고통은 땅의 저주로 말미암아 환경의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땀을 흘려 고생하여 먹고 살도록 한 것입니다. 가시덤불과 엉겅퀴는 직장에서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고통입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 3:17),
그리고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19절)
판도라는 어둠의 문입니다. 선악과를 먹음으로 받게 되는 저주는 루시엘이 하나님과 같아지려다 땅으로 떨어진 것과 같은 성향입니다. 하나님과 같아지기 위함입니다.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사 14:14) 선악과를 따먹는 순간 판도라 상자가 열리게 됩니다. 판도라 상자를 여는 것은 하나님과 같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
피조물인 종이 하나님처럼 되려고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은 내가 주인이 되어 내 마음대로 살려고 하기 때문에 어둠이 들어온 것입니다.
인간은 높아지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이 주인 되면 망하는 길입니다. 부활의 주님이 주인으로 오실 때 판도라 상자가 닫힙니다. 지옥의 어둠을 막아야 합니다. 내가 열심히 봉사하고, 열심히 예배드리고, 열심히 전도했으니 하나님이 나를 복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기복주의입니다.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열심히 했다면 그것도 주님이 하신 것입니다. 내가 하려는 것이 어둠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내 위치에서 갑 질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주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구원 받았다는 것에 대해 예수가 주인으로 오셨다. 피조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거꾸러지는 것은 순간입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사울입니다. 사울은 왕이 되기 전에는 참으로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왕이 되면서 교만해 진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이 주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은 전리품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죽이라고 하셨는데 자기 생각대로 좋은 것들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살려두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주인이 아니라고 여길 때 하나님은 그를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삼상 15:17)그런 그가 왕이 된 후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백성들을 두려워했습니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삼상 15:24)사울이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도 왕을 버리셨습니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삼상 15:23) 내 뜻대로 살지 말고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셨습니다. 여호와를 목자로 모시고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주인이 있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1-3)
구약 사사기는 흑암의 시기입니다. 흑암의 판도라가 열릴 때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 아닌 자기 뜻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주님이 없으면 자기 소견대로 삽니다. 이것이 가장 큰 어둠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 노릇하므로 판도라 상자가 열린 것입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 목자가 없으면 판도라의 문을 열게 됩니다.
보이는 세계에 붙들리면 판도라 상자를 열게 됩니다.
인간은 기도하지 않으면 보이는 것에 붙들리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교제를 한 것이 아니라 뱀(사단)과 교제를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보이는 것에 붙들리지 않으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 3:6) 기도한다는 것은 보이는 세계에서 벗어나 영적 세계에 붙들리는 것입니다. 영적 세계를 체험하면 보이는 것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롯과 아브라함은 서로 헤어지면서 선택을 하게 됩니다. 롯은 눈에 보이는 소돔, 고모라를 선택했습니다. 그곳은 멸망, 음란의 땅입니다. 그는 보이는 세계에 붙들린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기도 하므로 영적 세계를 본 것입니다.
롯이 떠난 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비록 눈에 보이는 환경은 척박한 땅이었지만 아브라함은 그곳에서 우물을 파는 곳마다 샘이 터졌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곳이 축복의 땅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영적 사이클이 높아집니다. 이때는 하나님의 음성보다 세상의 소리가 더 잘 들립니다. 기도할 때 사이클이 낮아져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게 됩니다. 기도하던 사람이 기도를 쉬면 보이는 것에 붙들리게 됩니다.
다윗은 기도의 사람이었고, 늘 하나님을 목자로 삼고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그런 그가 통일왕국 이후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목욕하는 밧세바가 보인 것입니다. 그가 밧세바를 탐한 것은 판도라 상자를 연 것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연약합니다. 주님을 벗어나면 그 누구도 어둠에 속게 됩니다. 그 결과 자식이 죽고, 왕권을 빼앗기고, 자식이 반역을 하고, 자식이 어머니를 강간하는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삼손은 나실인으로 하나님의 시청각도구로 거룩히 구별된 자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나실인을 통해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붙들려 살 때는 힘이 넘쳐 블레셋 사람 천명을 죽일 만큼 힘이 세었습니다. 그러나 들릴라에게 속아 판도라 상자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붙들어 주셔야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판도라 상자를 열지 않으려면 주님 앞에 더 가까이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낯을 피하거나 교회를 멀리하면 판도라 상자가 열리게 됩니다. 판도라 상자가 열리면 집안에 어려운 일들이 많이 생깁니다. 아무리 시험에 들어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멀리하지 말고, 오히려 더 가까이 나와야 어둠이 물러가고 은혜의 세계가 열리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 3:9-10)
만일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 회개하고 용서를 구했다면 그들에게 다른 길이 열렸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을 피해 숨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요나입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였는데 불순종하여 다시스로 갔습니다. 하나님을 피한 자의 결과는 엄청난 고통입니다.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욘 1:3)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는 순간 판도라 상자가 열리게 됩니다. 다시스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 배에 있는 물건을 다 버리고, 제비뽑기에 당첨되어 바다에 던져집니다.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비로소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피하면 계속 판도라 상자가 열립니다. 주님 가까이 나가 마음을 주님께 열어야 판도라 상자가 닫히고 은혜의 세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판도라가 열린 것을 막는 법>
어둠의 문을 닫으려면 부활의 주님을 모셔야 합니다.
부활의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나의 주인이십니다. 주님은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십니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롬 14:9)
어둠의 문을 닫으려면 성령으로 거듭나 영의 눈이 떠져야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성령이 오시면 말씀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말씀이 들리면서 영안이 열리게 됩니다. 여기에 온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 3:6)
어둠의 문을 닫으려면 십자가 체험을 해야 합니다.
자아가 십자가에서 죽는 체험이 일어나야 합니다. 자아가 죽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은 것입니다. 바울은 성령의 매임을 받아 죽는 것을 알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매일의 삶의 환경에서 내가 죽어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어둠의 문을 닫으려면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의 삶은 주님을 대신하는 삶입니다. 주님의 나라가 나를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이루시는 것입니다. 내가 반응에서 죽을 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그의 의가 드러나게 됩니다.
어둠의 문을 닫으려면 영의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영의 인도함을 받게 되면 잃어버린 것들이 회복이 됩니다. 병든 사람은 건강해지고, 지옥에 갈 사람은 천국에 가고 미움은 사랑으로 가난은 부유함으로 회복이 됩니다.
And...
우리는 스스로 살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 혹은 사단의 지배를 받고 살게 됩니다. 그런데 사단의 미혹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도저히 분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어둠인지도 모른 채, 본인은 가장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해 달라는 기도는 꼭 필요합니다. 성령이 깨닫게 해 주셔야 잘못된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어둠과 빛이 공존하고 있지만 어느 편을 선택하는가? 그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그러나 선택에 대한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기도할 때만 영적 감각이 있어 어둠과 빛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사람과의 사이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논리적으로 볼 때 내 생각이 옳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더 힘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그 사람을 피해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부흥집회를 통해 하나님께서 저의 모습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어떤 환경(비록 내 생각이 옳다 할지라도)에서도 반응하지 않아야 하는데 제가 반응을 했기 때문에 계속 어둠을 허용한 것입니다. 처음 부딪혔을 때 만일 반응하지 않았다면 거기에서 끝났을 일을 계속해서 반응을 하다 보니 자꾸만 부딪쳐 진 것입니다. 주님 앞에 철저히 회개 하고 나니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아주 크게 부딪치는 일에 대해서는 긴장을 하며 사단의 역사, 그리고 하나님의 테스트라는 것을 분별하게 되지만 아주 작은 문제에서는 민감하지 않으면 대부분 깨닫지 못하고 감정으로 대립하게 됩니다. 아주 작은 어둠이 마음에 들어오는 것을 그냥 내버려 두면 어느새 마음 가득 어둠이 채워지게 됩니다. 그래서 작은 어둠이 들어오는 틈을 막아야 합니다.
판도라 상자는 뚜껑을 여는 순간 온갖 죄악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우리의 마음에 어둠의 틈을 주는 순간 미움, 시기, 원망, 불평 등이 쏟아집니다. 그래서 은혜의 세계가 닫히는 것입니다. 날마다 자신의 마음을 지킬 때 우리 인생은 축복의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내 삶에 어떤 문제가 다가오든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라 비록 내게 나쁜 환경일지라도 그 환경이 내게 꼭 필요한 환경이며, 그 환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작은 어둠을 허용하지 마시고 과감히 십자가에 넘기시기 바랍니다. 마음의 평안을 얻을 때 하늘의 천사가 돕는 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복잡한 곳에서 식사를 한 후 등에 매고 다니던 백팩을 앉은 자리에 두고 나왔습니다. 한 참을 걷다 등이 가벼운 것을 깨달았고 가방을 두고 온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가방 안에는 여러 개의 신용카드가 있어 순간 머리가 복잡해 졌습니다. 그러나 요즘 매 순간 주님과 교제를 하고 있었기에 기도하며 그곳에 전화를 하였습니다. 조금 후 가방이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다는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며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며 절대로 나 자신을 못 믿는다는 고백과 함께 한 편으로는 주님께 맡겨진 인생은 철저히 보호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신뢰하는 사람에게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심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건일지라도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치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서 간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기도와 찬미를 드렸듯이 우리 또한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와 찬양을 하게 될 것입니다. 어둠의 판도라 상자를 열지 말고 은혜의 세계로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