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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리스본 사나이)
2007년 1월 13일 인천을 출발해 프랑크 푸르트를 거쳐 장장 16시간 비행 끝에 포르투갈 리스본에 도착했다. 유럽의 최서쪽, 이베리아 반도의 끝, Praia Nar 호텔을 향해 버스가 달리자 어둠 속에서 갯내음이 바람을 타고 묻어왔다. 차창 밖으로 허옇게 일어나는 파도,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의 애끓는 파두 가락이 파도에 실려 들려오는 듯하다.
1월 14일. 아침이 밝았다. 4시에 일어나, 인자 샘과 함께 해변을 걸었다. 대서양의 물결이 곱게 다듬어놓은 빈 해변을 통째로 즐겨 보고픈 객기가 발동해서일까, 물새 떼들의 종종 걸음은 음악처럼 부드럽게 여흥을 돋우고, 나는 문득 고향에 온 것처럼 가슴에 평화가 깃들었다. 목덜미를 휘감는 부드러운 바람은 잠자는 세포 하나하나를 뛰게 했다. 흰 물살이 모래톱을 어루만지듯 바닷가 산책은 지친 나를 새롭게 일으켜 세웠고, 여행 온 실감과 함께 다시 태어 난 듯한 행복감마저 느끼게 해 주었다. 해변을 따라 붉은 집들이 줄지어 있었다. 눈부시게 흰 담장들은 비키니를 입은 미녀들의 하얀 다리처럼 보기만 해도 시원했다. 도로 밑으로는 굴다리가 있어 주차장과 캠핑장에서 바로 해변으로 나갈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아직 이른 새벽, 청소부가 물로 도로 위 모래를 쓸고 있었다. 우리는 운동화에 묻은 흙먼지 때문에 다른 길로 돌아가려는데 그가 먼저 ‘어이’ 어이‘ 하고 불러 세웠다. 그의 배려로 우리는 그 길을 지날 수 있었다. 눈인사를 건네자 따라오는 미소가 고왔다. 이 아침, 이름 모를 그의 미소가 평생 리스본을 잊지 못하게 할 것 같다.
파티마 성당
마리아가 세 명의 목동 앞에 나타나 로자리오의 기도를 전하였다는 파티마 성당은 과연 세계 3대 성당중 하나답게 아름다웠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자란 측백나무와 포플러 나무가 늘어 선 길을 돌아 계단을 내려가면 올림픽 운동장 같이 넓은 곳으로 들어선다. 일요일, 긴 양초를 든 사람들이 제단 앞에 서서 미사를 보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루웠다. 신자들은 하나같이 무릎바대를 걸치고 무릎걸음을 걸으며 기도문을 외우는 모습이 신앙심의 깊이를 가늠하게 했다.
신트라 왕궁
영국시인 바이런이 ’위대한 에덴‘이라 불렀고,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자연의 보고, 신트라로 이동했다. 해발 500m 산 위에 빽빽이 늘어 선 3천여 종의 나무와 식물들 사이, 동화 속 성 같은 신트라 왕궁의 모습을 드러냈다. 신트라 왕궁은 독일의 ’노이슈바스타인‘성과 쌍벽을 이루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중 하나이며 이슬람, 르네상스, 미뉴엘, 고딕등 각각의 양식을 섞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성이기도 하다. 내부에는 아멜리아 여왕의 방, 터키인의 살롱 등, 각국의 특징을 살린 여러 개의 방과 이국적인 그림이 눈길을 끌었다. 모두 포르투갈 왕조의 전성기를 자랑하는 화려한 방들이었다. 그곳은 포르투갈 왕실의 여름 별장이었지만 원래는 무어인(아랍계 이슬람인)의 요새였고, 세우기는 ’페르낭드2세‘ 가 세웠다. 다양한 건축양식을 도입해 예배실 벽면은 아즈레이식으로 하고, 아라비아 방은 입체 그림을 그려 조각처럼 보이게 한 구석구석이 전부 예술의 극치였다. 예술을 사랑하고 더욱 발전시킨 왕의 섬세함이 오래도록 영원하리라 믿는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리스본 시내에서 멀리 테주강 근처와 대서양까지 볼 수 있다니 확 트인 시야가 마치 내가 하늘 위에 있는듯한 기분이다. 동화에 나옴직한 예쁜 집들과 초콜렛 색 지붕. 주홍빛 성벽, 채색된 작은 기차로를 따라 구불구불한 샛길을 오르다보면 나무하나 풀 한 포기에도 정성을 쏟은 흔적을 볼 수 있다.
백조의 성
북쪽 또 하나의 궁전, 백조의 성은 14세기말 ’조한 1세‘가 세웠다. 원래 무어인의 궁전 자리에 여름 궁전을 세운 것인데, 흰색 기둥 탑이 높이 솟아있어 ’백조의 성‘으로 불린다. 백조의 방은 27세에 결혼하는 공주의 행복을 빌기 위해 왕이 27마리의 백조로 천장을 장식했다. ’까치의 방‘은 166명의 시녀 수만큼 까치를 새겼고, 그 잎에는 ’악의는 절대 없음‘이란 글귀를 물려 놓았는데, 왕이 시녀와 입을 맞추다 들켜 그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새겨 넣은 것이라고 한다.
150년에 걸쳐 세워졌다. ’엔리코와 바스코다가마’가 인도양을 발견하고 세계 일주를 기념하기 위해 세웠단다. 미뉴엘1세 때 시작하여 백년간 건축했으며 바다를 연상시켜 ‘대양의 건축물’이라 부른다. 1705년 리스본 대지진때 1/3이 파괴되었다. 화려하고 독특하고 아름답다. 25개 기둥은 꽃을 피운 듯 섬세하고 상아기둥이 특징인데 해양에 관련된 모티브로 만든 55개의 정사각형 회랑에는 동양의 특산물을 회화적으로 표현 정교하게 새겨 놓았다.
까보 따로까의 노란 선인장
유라시아의 최서단 까보따로까, 포르투갈의 대시인 ’카몽에스‘도 ’이곳에서 육지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 되는구나‘ 라고 읊었다. 노란 선인장 꽃들이 햇빛에 반짝이고 강한 대서양 바람이 몸을 통째로 휘감았다. 절벽 끝, 그 아름다움과 푸른 싱싱함은 우리를 압도했다. 거대한 유럽 최서단에 도착했다는 증명서를 발급받으면 드디어 이곳이 땅 끝임을 실감하게 된다. 깍아 지른 절벽의 높이는 140m로 웅대한 자연의 파노라마를 선사한다. 악마의 입처럼 세찬 대서양의 파도를 보고 있노라면 저 바다 끝까지 가보고 싶다는 충동이 인다. 등대 위에 설치된 십자가는 신대륙을 향한 유럽인의 모험심을 보여 주는 듯하다. 미지의 먼 곳을 탐험했던 포르투갈인, 여유와 낭만이 떠나지 않는 곳, 세계를 향한 그들의 열망은 지금 대륙의 서남쪽에 이렇듯 웅크리고 있는 것일까, 파두의 노랫가락처럼 긴 여운이 가슴에 남는다. 또 다시 뱃고동처럼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을 안고 스페인의 ’세비아‘로 이동한다.
세비아, 카르멘과 조반니
세비야에는 지금도 ’카르멘‘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가씨들이 많이 있다. 이곳은 옛날 이슬람교도와 그리스도교의 공방전이 무수히 벌어졌던 곳으로 역사적으로도 상당히 유명한 곳이다. 또 비제의 ’카르멘(한국인이 사랑하는 오페라,1순위) ‘ 모차르트의’돈 죠반니(그가 사랑한 여자들, 이태리 640명,독일231명, 프랑스100명, 터키91명, 스페인1003명=2065명)‘ 롯시니의 ’세빌라의 이발사‘ 등 유명한 오페라의 무대로도 유명하다. ’카르멘에선 스페인 아가씨의 아름다움을 3백(얼굴색, 속살, 손가락)과 3흑( 머리, 눈썹, 유두) 로 나누어 칭송하고 있다.
해질녁이 아름다운 도시 세비야, 올리브 밭을 따라 시내에 들어서면 황금 문화의 젓줄인 ‘과달키비르’ 강가가 보이는데, 거기가 바로 고대의 도시가 세워졌던 곳이다. 시내 한가운데 강이 흐르고, 이베리아 반도의 항구의 옛이름인 ‘히스팔라스’ 기원전 207년에 로마의 침입을 받았는데, 그 영향이 7세기까지 이어졌고, 다시 1248년까지 무어인의 지배를 받다가 17세기에 이르러 예술의 전성기를 이뤘다. 이때 화가‘ 벨라스케즈’가 활동하였는데 돈후앙(스페인어로 돈후앙,이태리는 돈죠반니)의 출생지임은 물론 ‘투우’와 ‘플라밍고’의 고장으로도 알려져 있다. 가로수 길을 따라 늘어선 주홍빛 등을 켠 듯 빛을 발하는 탐스러운 오랜지는 관상용이라 먹을 수 없단다.
황금의 탑은 강가에 있었다. 1221년부터 2년 동안 적을 막기 위해 세운 탑은 12각형 모양으로 마지막 방어벽이었다. 돔을 덮은 황금 타일이 햇빛을 받아 황금빛을 발하므로 ‘황금의 탑’이러 불렀지만, 지금은 해군 박물관이 되어 회색빛으로 쓸쓸하게 서 있다. 1492년 이사벨라 여왕이 이슬람을 완전히 몰아내고, 컬럼버스가 신대륙으로부터 수많은 황금을 가져다 쌓은 탑이라니,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든다.
스페인 광장은 각종 CF와 영화의 배경이 된 곳이다. ‘아니발 곤잘레스’ 작품인 광장은 아름드리 사이프러스 나무가 하늘을 향 해 쭉쭉 뻗어 있으며, 2개의 높은 탑이 있어, 문을 들어서는 순간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 시원스런 모습이었다. 우아하고 기품 있는 건물은 도리아식(그리스 미술양식중 하나=파르테논신전)기둥으로 만들었고, 난간 역시 고즈넉한 분위기를 냈다. 건축물 하나하나가 예술품이었고, 거기엔 스페인의 유명한 인물들 조각이 있었다. 건물을 다 둘러보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는데,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온통 비둘기 똥이었다. 세비야 인들의 문화 집합소라 불릴만하다.
황금의 탑은 강가에 있었다. 1221년부터 2년 동안 적을 막기 위해 세운 탑은 12각형 모양으로 마지막 방어벽이었다. 돔을 덮은 황금 타일이 햇빛을 받아 황금빛을 발하므로 ‘황금의 탑’이러 불렀지만, 지금은 해군 박물관이 되어 회색빛으로 쓸쓸하게 서 있다. 1492년 이사벨라 여왕이 이슬람을 완전히 몰아내고, 컬럼버스가 신대륙으로부터 수많은 황금을 가져다 쌓은 탑이라니,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든다.
스페인 광장은 각종 CF와 영화의 배경이 된 곳이다. ‘아니발 곤잘레스’ 작품인 광장은 아름드리 사이프러스 나무가 하늘을 향 해 쭉쭉 뻗어 있으며, 2개의 높은 탑이 있어, 문을 들어서는 순간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 시원스런 모습이었다. 우아하고 기품 있는 건물은 도리아식(그리스 미술양식중 하나=파르테논신전)기둥으로 만들었고, 난간 역시 고즈넉한 분위기를 냈다. 건축물 하나하나가 예술품이었고, 거기엔 스페인의 유명한 인물들 조각이 있었다. 건물을 다 둘러보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는데,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온통 비둘기 똥이었다. 세비야 인들의 문화 집합소라 불릴만하다.
황금의 탑은 강가에 있었다. 1221년부터 2년 동안 적을 막기 위해 세운 탑은 12각형 모양으로 마지막 방어벽이었다. 돔을 덮은 황금 타일이 햇빛을 받아 황금빛을 발하므로 ‘황금의 탑’이러 불렀지만, 지금은 해군 박물관이 되어 회색빛으로 쓸쓸하게 서 있다. 1492년 이사벨라 여왕이 이슬람을 완전히 몰아내고, 컬럼버스가 신대륙으로부터 수많은 황금을 가져다 쌓은 탑이라니,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든다.
스페인 광장은 각종 CF와 영화의 배경이 된 곳이다. ‘아니발 곤잘레스’ 작품인 광장은 아름드리 사이프러스 나무가 하늘을 향 해 쭉쭉 뻗어 있으며, 2개의 높은 탑이 있어, 문을 들어서는 순간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 시원스런 모습이었다. 우아하고 기품 있는 건물은 도리아식(그리스 미술양식중 하나=파르테논신전)기둥으로 만들었고, 난간 역시 고즈넉한 분위기를 냈다. 건축물 하나하나가 예술품이었고, 거기엔 스페인의 유명한 인물들 조각이 있었다. 건물을 다 둘러보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는데,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온통 비둘기 똥이었다. 세비야 인들의 문화 집합소라 불릴만하다.
세비야 대성당은 바티칸의 ‘베드로’ 영국의 ‘세인트 폴’ 다음으로 큰 세계 3대 성당 중 하나이다. 또 세비야 성당은 세비야 인의 자부심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건물로 기네스북에도 올라있다. 이슬람을 몰아낸 후 카톨릭의 우수성을 나타내기 위해 이슬람 사원 위에 125년에 걸쳐 지었다고 한다. 높은 아취형 기둥은 천장의 돌 무게를 분산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이 공법은 세비야 성당에서 처음으로 시도 되었다. 5개의 본당과 25개의 소성당이 있고, 15세기 스테인글라스와 파이프 오르간, 고딕 장식들로 인해 실낸는 화려함을 발한다. 미사 집전실 뒷벽에는 예수의 생애를 조각으로 새겨놓은 황금 병풍막이 설치되어 있다. 이는 글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란다. 벽에는 세비야의 수호 성녀 ‘루피나와 후아나’가 대성당을 지키고 있다. 옛사람들의 신앙심이 하늘을 감동시키고 남았으리라, 그들이 바친 정성이 수세기가 지나도록 고스란히 남아 먼 이국땅에서 온 나에게도 감동과 사랑을 선사한다. 중앙에는 국민 영웅인 ‘컬럼버스’의 묘가 있고, 벽에는 고야(옷을 입은 마야), 벨라스케즈(시녀들), 엘 그레코(오르기스 백작의 매장)의 그림들이 걸려 있는데 벽장식이 매우 아름다운 게 특징이다.
옛 유태인 거리인 ‘산타크루즈’거리도 재미있다. 온통 하얀색으로 , 발코니에는 색색의 꽃들이 반기고, 화려한 문 장식은 서로서로 뽐내는 듯하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햇빛을 차단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설계한 것이란다. 그 골목길 한ㅉ뽁에서 어느 이름 없는 거리의 악사를 만났다. 그가 연주하는 음악이 가슴을 덮혀 온다. 거리 어디를 잡아도 사진감이다. 아취형 문 뒤에서 반가운 이가 금방 튀어 나올 것 같다. 레이스 커텐이 하늘거리는 방에는 누가 살까?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투우의 옛 고장-론다
1월 18일, 우리는 스페인 최대의 휴양지인 ‘코스타 델 솔’을 감상하며 ‘타리파’로 이동 중에 ‘론다’에 들렀다. 절벽 위의 집들은 겹겹이 둘러쳐진 산에 안겨 있었고, 하늘 가득 흩뿌려진 구름들이 보였다. 론다는 하나의 섬으로 여겨졌다. 천길 절벽위의 집들은 저녁 빛을 받아 더욱 화사한 모습이었다. 짙은 사이프러스 나무가 흰 벽과 강한 대조를 이루고, 주위는 온통 초록의 밀밭들로 찬란하게 이어졌다. 누가 저 절벽위에 돌다리를 걸쳐 놓았을까, 저리도 예쁜 집들을 지었을까, 볼수록 위대하다란 생각뿐이다.
‘마에스트란사’는 투우장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가장 오래된 투우장이다. 입장료를 내고 텅 빈 투우장 마당에 섰다. 열광적인 사람들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피를 뚝뚝 흘리는 소와 의기양양한 투우사의 높이 치켜 든 팔이 보이는 듯하다. 이 나라에서 유명한 투우사는 영웅과 다름없다.
‘투우와 플라밍고‘는 스페인 사람들의 열정 그 자체다. 투우를 통해 종교와 문화, 스포츠를 동시에 부활시킨 것이다. 처음에 투우는 신에게 바치는 제사였다. 5월 15일, 투우는 절정을 이룬다. 투우사가 되는 길은 굉장히 힘들고, 최고 수준의 투우사가 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단다. 붉은 천(3kg)은 ’카포테‘ 라고 하며, 팔과 엉덩이를 이용하여 춤을 추듯 해야 한다. 칼은 ’물레타‘ 라고 하여 소의 등에 칼을 꽂는 순간을 ’진실의 순간‘이라 한다. 창은 ’반데라야‘라고 하는데 소의 등 정확한 부위에 꽂아야 한다. “재능은 성공의 열쇠지만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열정이다”. 나는 이곳에서 투우사의 긍지를 되새김해 본다. 소는 스페인의 상징적인 동물로 투우장에 들어오기 전 엄청난 보호를 받고 자란단다. ’론다‘를 뒤로 하고 ’타리파‘로 가는 길은 대관령 같은 고개를 넘고 또 넘는다. 휘감아 돌 때마다 멀미가 난다. 어둠이 서서히 내려앉고 저녁놀은 붉다 못해 피멍이 들었다. 하얀 집, 진녹색의 나무들, 맑고 푸른 하늘, 플라밍고 춤을 추는 무희의 붉은 치맛자락, 투우사의 붉은 카포네, 아! 이곳에는 모든 색이 다 있다. 꿈 속 같은 해안지대 별장의 하루 숙박비는 12만원이란다. 언덕위에는 무수한 풍력발전기가 축제를 위해 장식된 바람개비 깃대처럼 돌고돈다. 녹색 위의 흰 바람개비는 무척이나 이색적이다. ’타리파‘는 방어용 건물로 성벽이 바다 쪽을 향해 세워졌다. 이것 또한 세월의 흔적을 안고 빛바랜 모습이었다. 스페인의 집들은 붉은 지붕에 흰 벽이 대부분 이다. 저 멀리 보이는 바다는 ’지브랄타 해협, 그 건너가 아프리카 대륙, 그리고 아프리카 ‘탕헤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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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자세한 설명과 곁들인 그림 감동입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