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댁
지은이:벌마로(김윤식)
옥주친구들과의 추억을 뒤로하고 일상으로 돌아온 영우에게 반가운 전화가 걸려왔다. 기대했던 대로 병휘오빠의 전화다. 병휘오빠가 이번주 토요일 휴가를 받아서 영우를 보려고 부천으로 온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병휘오빠가 횡계로 전출을 간 후 거의 두 달 만에 만나게 되는 거다. 한동안 만날 수 없는 현실에 답답함을 견뎌야 했던 영우가 보고 싶은 병휘오빠를 만날 생각에 기분이 들뜬 상태로
하루하루가 싱글벙글 신나고 즐겁다.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데이트, 오늘 병휘오빠가 부천으로 오는 토요일이다. 영우는 옷장 문을 열고 이옷저옷 입어본다. 마치 오늘 처음으로 맞선을 보러 나가는
기분이다. 옷장에 걸려 있는 여름옷 중에서 가장 아끼고 맘에 드는 은회색 정장을 꺼내 입었다. 블라우스는 분홍색 줄무늬의 민소매 스타일로 맞춰 입었다. 오랜만에 동네 미용실을 들렀다. 미용실 언니의 눈에 영우의 옷차림새가 평범해 보이지 않았는지 한마디 한다.
“영우 씨 오늘 좋은 일이 있나 보네, 애인 만나러 가는 사람처럼 옷차림이 화사하고 예뻐 보여,,,”
“,,,,,,,,,,”
“영우 씨는 항상 환해서 보는 사람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
영우는 가볍게 웃음으로 넘기고 머리를 예쁘게 만져 달라고 부탁한다. 부천 지리를 잘 모르는 병휘오빠를 배려해서 약속장소는 부천역 출구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시간 보다 조금 일찍 부천역에 도착한 영우는 전철이 도착하고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올 때마다 눈을 크게 뜨고 병휘오빠를 기다렸다. 두 번의 전철이
지나고 세 번째 전철이 도착했다. 많은 무리속에 병휘오빠가 보였다. 옷은 일반복으로 갈아입었지만 군용 배낭을 메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 틈에서도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큰소리로
“오빠”하고 불렀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영우를 쳐다본다.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의식한 병휘가 영우에게 다가오며 작은 소리로 속삭인다.
“나도 영우 보는 순간 큰소리로 부를뻔 했어”
병휘오빠는 휴가 첫날부터 대구의 본가로 가지 않고 곧바로 영우에게 달려온 모양이다. 병휘오빠는 영우를 보자마자 계획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송도에 사는 큰누나네 집에 가자고 했다. 영우가 살짝 고민을 하는 듯 하다가 이내 그러자고 했다. 지난번에 송도유원지로 놀러 갔을 때 누나네가 송도에 살고 있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때는 관심 있게 기억하지 않았는데, 오늘 누나네 집에 가자고 하는 말에 조금은 긴장이 됐다. 그나마 정장을 차려입고 나온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시댁 식구한테 선보이는 느낌이랄까. 어찌 됐든 마음이 편치는 못해도, 영우의 성격이 원래가 긍정적이라 대답을 했을 뿐이다.
누나네는 송도의 샘똘이라는 마을에 살고 있었다. 그곳 마을은 새롭게 현대식 주택이 있는 반면 아직도 허름한 옛날 갯벌마을의 분위기가 풍기는 집들도 많았다.
오래된 집 앞마당에는 조개껍질이 쌓여있던 흔적이 남아있고 양철지붕이나 슬레이트 지붕도 옛날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누나네 집은 새로 지은 벽돌집인
데 지붕은 기와를 올렸고 앞마당에 벽돌로 낮은 담을 둘러 세웠지만 대문은 없었다.
안마당으로 들어서자 빨래를 하려고 다라이에 물을 퍼 담던 누나가 별안간 찾아온 두 사람을 놀란 눈으로 번갈아 쳐다보았다.
“안녕하세요”
병휘의 누나는 영우의 인사에도 아랑곳없이 굳은 표정으로 영우를 빤히 쳐다보았다.
“누나! 나 오산에서 강원도로 전출 갔어, 급하게 가느라고 누나한테 연락도 못해서 이렇게 온 거야”
“,,,,,,”
“누나! 내 말 듣고 있어?”
병휘의 채근에 그제서야 누나는 물 묻은 손을 옷에 문지르며 급하게 물었다.
“응! 그 일은 엄마한테 들어서 알고 있었어. 그런데 이 처녀는 누구니”
병휘의 누나는 오로지 영우에게만 관심이 있는 듯 보였다.
“손님이 왔는데 이렇게 세워만 놓을 거야”
병휘의 불만스런 투정에 누나는 황망하게 집안으로 들어서며 두 사람을 안으로
불러들였다. 방안에서는 바다냄새가 났고, 방금 바다를 다녀온 듯, 방바닥에는 개흙 묻은 옷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누나가 민망한 듯 급하게 옷을 걷어냈다.
원래 누나네는 송도유원지 정문 앞에서 숙박업을 하는데, 요사이 바다에서 가무락 실한 것이 잡힌다고 해서 매형이 바다를 다녀오셨다고 한다. 방금 바다에 다녀와서 옷을 갈아입고 곧바로 여관으로 나가셨다고 한다.
이곳은 유원지에 놀러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여관에 손님이 제법 많이 오신다고
했다. 덕분에 누나네 살림살이는 넉넉한 편이다.
누나는 여기 송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박이 매형하고 오랜 연애 끝에 결혼을 했다고 하는데, 매형이 성실하고 야무져서 이곳의 다른 집보다 잘 사는 편이다. 처음에 대구 본가에서는 조개나 잡아서 먹고사는 남자한테 시집가서 어떻게 먹고
살려고 그러는냐며 반대를 했지만 누나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누나가 부엌에 들어가서 급하게 조개 무침을 만들어 오셨다. 처음 먹어보는 맛인데 한 점을 먹어본 다음부터는 저절로 입안에 침이 고였다. 고추장에 버무린 쫄깃한 조개 한 사발에 식초의 강한 신맛이 어우러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맛을 만들어 냈다. 그 맛이 먹으면 먹을수록 중독성이 강해서 조개무침 한 사발을 영우혼자 다 먹은 것 같다. 영우가 너무 맛있게 먹고 있어서 병휘와 누나는
처음 몇 점 집어 먹다가 그만 수저를 놓았다. 그리고 영우의 먹는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영우가 그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정신없이 먹다가 그릇을 비우고 난 후에야 혼자 다 먹은 것을 알았다. 스무 살 어린 영우가 입 안 가득 음식을 머금은 채 꼭 다문 입을 오물거리는 모습은 다람쥐가 입 안 가득 도토리를 물고 오물거리는 모습을 연상하게 하였고 불그레한 뺨은 그렇지 않아도 통통한 볼 살이 입안에 음식이 가득 차서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누나의 눈에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엽고 예쁘게 보여서 그만 넋을 놓고 보고만 있었던 거였다.
영우는 민망함에 병휘의 얼굴만 쳐다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입김을 ‘후’하고 내 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누나가 활짝 웃으면서 물을 가져오셨다. 물을 마시고 난 영우가 그제서야 밝은 표정으로 맛있게 잘 먹었다고 인사를
드렸다.
“잘 먹었습니다. 제가 점심을 못 먹어서,,,”
그 말에 누나가 병휘를 보며 나무랐다.
“너는 이렇게 예쁜 애인하고 같이 다니면서 밥도 안 먹이고 데리고 다녔냐. 못난 놈아”
“아니! 만나자마자 누나네로 바로 온 거야. 부천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거리도 멀고 급하게 오느라고 그랬지 뭐,,,”
“어쩜 저렇게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음식을 맛있게 먹는 걸 보니 집안은 잘되겠네, 그래 병휘! 너는 어떻게 된 거냐, 대구 부모님은 알고 계셔?”
“뭘?”
“너네 이렇게 연애하는 거 말이야”
“연애는 무슨 연애 그냥 아는 사이야”
“그냥 아는 사인데 누나네는 왜 데려왔어”
“누나네 오면 안돼? 그럼 그냥 갈까?”
“이그 저 승질머리 알았어, 알았으니까 작은방에 가서 쉬고 있어, 조금 있으면 매형 오실 거니까 매형 오시면 저녁 먹자”
“저기! 저는 조개를 너무 많이 먹어서 저녁은 안 먹어도 돼요. 그리고 조금 있다가 갈 거예요”
“그냥 가면 어떻게 해 저녁은 먹고 가야지, 그리고 이렇게 참한 처녀를 매형한테도 보여줘야지 안 그렇니, 병휘야?”
중간에서 눈치만 살피던 병휘가 영우를 보면서 한마디 했다.
“그렇게 하자 영우야! 매형한테 인사도 드리고 저녁 먹고 천천히 생각하자 나도
매형 본 지 오래됐는데, 누나네 와서 매형얼굴도 못 보고 그냥 갈 수는 없잖아”
영우가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누나가 한번 더 진심을 보였다.
“휴일이라 애들도 할머니네 가서 허전하던 참인데, 저녁 먹고 천천히 가요”
누나의 권유를 더 이상 뿌리칠 수는 없다고 판단한 영우가 대답 없이 병휘를 보며 표정으로 동의했다.
매형이 전화를 받고 부리나케 달려왔다. 그리고 식구들은 영우를 위한 저녁준비로 부산하게 움직였다. 바닷가 마을답게 생선과 조개 요리로 한상을 차린 밥상이
영우의 식욕을 자극했다. 조금 전 조개를 한 사발 다 먹고 또 저녁밥까지 먹은
영우는 긴장이 풀어지고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저녁을 먹고 난 네 식구가 마루에 빙 둘러앉았다. 밥을 먹는 동안에 매형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던 영우가 조심스럽게 매형의 얼굴을 마주했다. 바닷사람이라
그런지 얼굴은 햇빛에 검게 탔지만 선한 인상이 좋아 보였다. 하지만 생활력은
오히려 누나가 더 강해 보였다.
영우가 무슨 생각을 하던 상관없이 누나부부는 영우의 신상에 관해서 하나씩 심문하기 시작했다.
이름은, 나이는, 어디 사는지, 가족관계는, 등등 이 정도는 통과의례라고 생각하고 침착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문제는 다음부터였다. 우리 병휘는 어디서 어떻게
만났느냐, 결혼생각은 있는거냐, 군인월급이 많지 않을 텐데 괜찮겠느냐, 영우네
부모님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등 보통의 어른들이 궁금해 하는 남녀사이의 결혼
전제조건에 관해서 꼼꼼하게 물어보셨다.
영우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말씀드렸다.
“저도 병휘오빠를 사랑하고 있지만 제 나이가 이제 스무 살 밖에 안 돼서 아직까지 결혼은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저는 늦게 결혼할 거예요. 저희 부모님도 제가 일찍 결혼하는 걸 원하지 않으시고요.”
영우의 대답을 들은 누나가 조금은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영우에게 말했다.
“우리 병휘도 아직 결혼할 나이는 아니지 뭐, 내가 보기에 두 사람 너무 좋아보인다. 좋은 사이로 만나요! 그러다 때가 되면 결혼도 하게 되고 그런거지 뭐 않 그러니 병휘야,,,”
누나는 영우의 속마음을 떠보겠다는 심산인 듯 의도적으로 영우와 병휘에게 번갈아 시선을 보내며 부드러운 어조로 읖조리고 있다.
“누나 이제 그만해! 영우 고문하는 거야?”
병휘가 누나의 말에 제동을 걸었고 병휘의 말에 매형이 거들었다.
“그래 여보! 그만 물어보고 우리 다른 얘기하자. 내가 이곳 송도의 역사에 대해서
얘기해 줄게”
매형이 누나의 질문을 제지하고 나서야 화제를 다른 방향으로 돌릴 수 있었다.
그날 밤 영우는 집에 돌아가려는 것을 포기하고 밤새 이야기꽃을 피웠다. 대화의
많은 부분은 매형이 주도했고 다른 사람은 주로 듣는 편이었다.
병휘의 매형은 전쟁둥이로 태어났단다. 매형이 세상에 나오면서 처음으로 접했던
인천의 모습은 귀를 때리는 폭음과 공중을 날아다니는 포탄이었다. 매형이 태어나고 한 살도 안 돼서 한국전쟁이 터지고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육지의 북한군과 바다에서의 미국군함이 서로 총과 대포를 마주 보고 쏴대는 바람에 육지의 모든 생물은 거의 전멸하고 바다의 물고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송도섬 전체가 초토화 되었으며 기르던 황소가 배에서 쏘는 함포에 맞아서 두 동강이 나버렸다. 커다란 바위가 포탄에 맞아서 산산이 부서졌고 대부분의 가옥은 부서져서 폐허가 됐다. 피난을 떠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다행히 매형네 식구들은 한 사람도 죽지 않고 살았다. 매형네 가족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북한군이 파놓은 방공호에 몸을 숨겨서 살 수가 있었다고 한다.
송도라는 이름이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처음에는 섬이었다고 한다. 바닷물이 빠지면서 육지와 연결이 됐고 인천상륙 작전 때는 최대의 격전지가 됬었다. 전쟁
당시에 얼마나 많은 총탄을 퍼부었으면 전쟁이 끝난 후에 이곳 갯벌마을의 사람들은 바다에서 조개를 잡는 대신 총알을 주어서 생계를 이어갔다고 한다. 전쟁통에 바다의 생물이 거의 죽어서 잡을 조개도 없었겠지만 조개를 잡아서 파는 것보다 총알을 주워서 파는 게 훨씬 수익이 좋았다. 그렇게 이곳 사람들은 총알만 주워서 팔아도 먹고 살 수가 있었는데 거의 20년을 조개 대신 총알을 주웠다.
그사이 바다의 생태계는 되살아났고 총알을 모두 주어서 없어졌을 쯤에는 바다의
조개종류가 다른 바다의 보통크기 조개보다 월등이 컸다. 가무락이 어른주먹 크기만 했고 유원지 수문 앞 물길에는 문어만한 낙지가 살았으며 어른 팔뚝만 한 망둥어가 잡혔다. 전쟁의 여파는 바다의 생태계만 바꾸어 놓은 것은 아니었다.
마을사람들은 여기저기 널려있는 포탄잔해를 주어서 고철로 팔기도 했는데, 불발탄을 잘못 다루다 손목을 잃거나 한쪽 눈을 잃는 경우도 있었단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평소에도 송도 앞바다에 늘상 군함이 떠있었고 밤에는 시시때때로 조명탄을 쏘아 올려서 밤하늘을 대낮처럼 밝혔다. 이곳 사람들은 밤에 조명탄이 떨어진 곳을 눈여겨 보았다가 낮에 찾아가 주워서 팔기도 했는데, 귀한
금속 재질이라서 짭짤한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군함에서 미군들이 먹다 남은 간식거리를 바다에 버려지는 경우가 제법 많이 있었는데 그중에는 비스킷부터 분유 코코아 땅콩잼 각종통조림 커피 콜라 사이다 등등 다양하게 물에 떠다녔고 갯벌에 널려 있었다. 아이들은 이것을 줍거나 건져서 먹었다. 물론 어른들도 눈에 보이면 주워다가 먹었다.
코미디언 서영춘이 유행시킨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곱뿌가 없으면 못 마셔요 품빠라품빠 품빠파’ 이 구절은 실제 이곳 송도에서 있었던 사실을 코미디 소재로 삼았던 거다.
미군들이 먹고 버린 통조림 깡통이 흔해서 이곳 아이들은 버려진 통조림 깡통을
활용해서 겨울철 불놀이 깡통으로 이용하거나 구슬 담는 통으로 쓰기도 했다.
송도유원지는 전쟁이 끝나고 처음에 미군의 미사일 부대가 주둔했던 장소인데,
미군부대가 가까운 산으로 이전하면서 일반인이 사용하는 유원지로 탈바꿈된 곳이다. 미군들이 영내에 설치했던 미니골프 시설이나 보트시설, 물놀이장, 대관람차들을 일반인이 이용하게 되면서 선진 오락문물을 접하는 기회를 갖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여름철에는 수도권에서 많은 피서객들이 오다 보니 유명 연예인들의 공연장소로도 사용했다. 덕분에 이곳 마을 사람들은 인기 연예인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어서 문화 예술적 감각이 남들보다 앞섰다고 한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매형의 어린 시절 가족들은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꿀꿀이죽을
싸게 사 먹을 수 있어서 영양 면에서는 부족하지 않았지만 초등학교에만 가면 전쟁고아들이 너무 많아서 출석률이 저조하다 보니 아무래도 공부에는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이날 영우는 매형으로부터 인천의 역사와 생활상을 움직이는 파노라마를 보는 것처럼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금녕에는 하시는 사업 번창하시길 그리고 풍밀 하세요
네 고맙습니다 님께서도 봉우들이 많이 불어나서 기쁨가득한 한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