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이민 2기 419. 탈출하듯 (2)
2020.03.20
공항 내에서도 티케팅을 하기 전에 너무도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므로 크리스티나가 싸 준 샌드위치라도 좀 먹어 볼 생각으로 어깨에 멨던 가방을 열었다. 물이라도 한 병 샀으면 좋겠는데 어느 한 곳, 문을 연 곳도 없고, 겨우 얻은 자리나마 고마워서 그냥 먹어야겠다.
그런데 막상 샌드위치가 없다. 치즈 두 개랑 삶은 계란 두 개, 샌드위치를 몽땅 테이블에 놓고 그만 깜박 잊고 그냥 왔나보다.
허탈해서 앉아 있는데 여기저기 줄을 선다.
제주항공, 아시아나 항공, 대한한공만 비행기가 있다고 전광판에 떠 있고 나머지 모든 비행기는 다 캔슬이란다.
얼른 일어나 대한항공을 찾아서 짧은 줄을 서는데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내게 묻는다. "Are you morning calm?"
'......? morning? 아침에 가느냐는 뜻인가?' 나는 대답했다. " 노우, 일레븐 퉨티 에어플레인"
"모닝 캄?" 그가 또 묻는다. "일레븐 퉨티" 나는 똑 같은 대답을 반복한다.
"Economic?" 그가 다시 묻는다. 내가 그렇다고 하니까 "Over there" 긴 줄을 가리킨다.
그제야 알아듣고 나는 웃으며 "Long line?" 하고 물어본다. 그도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morning calm은 비지니스나 특별좌석인가 보다. 내 영어가 짧으니 참!
그로부터 그 긴 줄은 내 뒤로도 그만큼 늘어났고 좀체로 줄어들지 않았다. 창구도 여러 개 있지만 어떤 창구는 손님 한 팀이 줄곧 물고 늘어지고 나머지도 너무너무 일처리가 늦다.
세 시간을 그러고 서 있다가 겨우 좀 앞쪽으로 나갔다 싶은데 갑자기 내 머릿속에 불이 켜진다. "여보, 내 크로스백 어디 있어요?"
그러고 보니 여권과 휴대폰만 넣은 작은 주머니 가방은 목에 걸려 있는데, 그리고 부쳐야 하는 큰 가방과 기내 가방은 잘 있는데 내 보라섹 크로스백이 내 어깨에 없다. 샌드위치 먹으려고 내려서 열었었는데.
"나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지? 내 가방은 어떻게 된 거야?" 죠셉도 당황한 표정이다.
"거기 뭐가 들었어?" 뭐가 들었는지 머릿속이 하얗다. "거기,...뻥튀기 과자랑.....," "빨리 찾아봐. 아까 앉았던 자리에 가 봐."
벌써 세 시간째 불평을 하며 이러고 서 있었는데 그게 과연 잘 있을까? 우리가 앉았던 자리로 걸어가는데 이미 나는 절망감에 캄캄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앉아 있는 사이에 보라색 내 가방이 의자를 지키고 있다.
아무렇지도 않은듯이 그걸 들고 돌아서는데 안도감으로 마구마구 행복해진다. "뭐가 들었어? 그 속에."
그제야 다 생각이 난다. 미처 못 낸 골프장 연회비, 몇 달치 생활비, 그 전 같으면 집에 깊이 두고 왔을 현금. 페소며 달러를 모두 그 속에 넣었다. 아마 우리 돈으로 치자면 4백만원쯤은 될 듯하다. 그리고 신용카드며, 보안카드, 귀중품들... 나는 왜 그 와중에 뻥튀기 과자만 생각이 났을까? 흐흐흐.
티케팅이 늦어지자 거듭 사과 방송이 나오고 비행기는 한 시간 이상 딜레이된다.
배는 고프고 지쳐가는데 나는 그래도 큰일 날 뻔 했다는 안도감에 오히려 모든 게 감사하고 밝은 얼굴로 기다린다.
첫댓글 그야말로 앗찔!
항상 아찔아찔 스릴 만점! 잼나네요 한편의 단편소설? 연재소설 같기도 하고요
수필은 뭐이고
소설은 뭐이고
그
유명한
"소설 쓰시네"
여행을 하다보면
업은 어기 3년찾는다는 생갇 들지라 ..
전쟁터같던 코비드에 고생하셨네요 ….
수십년을 외국에 삺아도 원주민 상담객/공무원/관련자/사무원 ….들은
사투리쓰는 이민저들에게 얼굴색 부터 달라지지요…..
평생 부로큰 잉글리쉬로 얼게 모르게 차별 받지라 ….더욱이
한국이 의사가 비행기 기내에서 무식한 승무원 한테 부당한
탑승퇴출 명령의 갑질 차별을 받고 …..
고소해서 할공사로 부터 톡톡히 보성을 받어 냈지라….
미국 판사들. 괜 찬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