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노동자, 교사의 설 자리가 없다 / 양선례
꽃다운 나이의 젊은 교사가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했다. 다른 곳도 아닌 학교라서, 더 반향이 크다. 우리나라 최고의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졸업생 수보다 임용되는 교사 수가 현저히 적은 역대급 경쟁률의 임용고시를 통과하여 교단에 선 지 이제 2년 차. 꿈꾸었던 교단에서 채 열매 맺지도 못하고 저버렸다.
그녀가 죽음으로 남기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도 교육청 누리집 팝업창에 추모 글이 게시되고, 지역 곳곳에 분향소가 마련되었다. 서울의 해당 학교 교문 앞에는 전국 각지에서 보낸 근조 화환이 수백 미터 이어졌다. 담벼락을 따라 선배나 동료 교사가 쓴 추모 손편지가 빼곡하다. 웬만해서는 잘 움직이지 않는 교사를 행동하게 한 힘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언제라도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운이 좋아서 나는 잠시 비껴갔지만 결코 남 일이 아니라는 공감대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교직 35년 차이다. 내 주변의 많은 지인이 명예퇴직으로 오래 몸담아 온 교단을 떠났다. 아이의 정리 습관을 들이려고 한 교육적인 행동을 학부모가 아동 학대로 몰아서, 1년 내내 문제 행동을 일삼은 아이를 보다 못해 병원 진료를 권했으나 오히려 교사가 무능한 것 아니냐며 항의하는 학부모 요구가 버거워서(아이는 결국 에이비에이치디(ADHD) 판정을 받았다.) 등 그 이유도 가지가지다. 또 다른 지인은 그런 아이를 1년 담임한 이듬해, 버스만 타면 숨이 쉬어지지 않는 ‘공황 장애’가 왔다.
수업을 방해하고, 질서를 깨는 아이를 제어할 방법이 현재로서는 없다. 그 아이를 나무라고 야단치면 ‘정서 학대’이다. 정당한 교육적 행위조차 상대방이 그렇게 느끼면 학대가 된다. 그런 아이를 교실 뒤에 세워 두거나 밖으로 내보내면 수업권 침해란다.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아이를 나무라니 “그러면 선생님을 아동학대로 신고할 거예요.”라며 당당하게 휴대폰을 집어 드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도 주변에서 보았다. 어느새 ‘을’이 된 교사의 현재 모습이다.
‘교육은 교사의 질을 넘어설 수 없다.’는 말은 교사의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 주지만 교권이 붕괴된 교실에서 그 역량을 얼마나 자신 있게 발휘할지는 미지수이다. 이대로는 더 이상 안 된다. 그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작은 변화라도 있어야 한다. 교사의 손발을 꽁꽁 묶어 둔 상황에서 질 높은 교육을 기대하기 어렵다. ‘감정 노동자’ 교사의 설 자리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 젊음이 아깝다. 유족에게 깊은 위로를 보내며, 젊은 교사의 명복을 빈다.
첫댓글 정말 안타까운 일이 자꾸 생기네요. 공감합니다.(조미숙)
교권이 무너진 학교 상황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계속 개인의 일로 놔두다 보니 이런 불행한 일이 벌어지는 데까지 온 것 같아요. 선생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박선애)
이제라도 바로 잡을 수 있도록 여러가지 제도가 고쳐지고 법이 개정되어야합니다.
(백현)
마음이 아픕니다.
교권과 공권력을 존중하면 좀 더 나은 사회가 될 것 같은데, 갈수록 그 힘을 무시하니 안타깝습니다. 중2병 걸린 딸도 보기 힘든데, 그런 애들 20~30명을 하루 종일 데리고 있는 선생님은 얼마나 힘들까요?
마음이 아픕니다. 2
이번 기회에 교권과 인권이 함께 바로 설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교육 현장이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을까요. 안타깝습니다.
여러 직업중에 저는 '선생님'을 최고라고 여겼는데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접하고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교사의 역량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교육 현장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음이 먹먹해서 목이 뜨거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