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사로운 겨울 햇빛과 견딜만한 냉기를 품은 바람이 적절하게 섞인 기분좋은 날씨입니다. 속속 도착하는 교육생들의 얼굴에 번지는 반가운 미소도 날씨만큼이나 온화·쾌청입니다. 벌써 5강째, 이제 얼굴도 익숙하고 친해졌나봅니다. 삼삼오오 모여 풍성한 이야기가 오고갑니다. 이즈음 되면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먹거리 나눔. 오늘의 먹거리는 호두과자입니다. 언제나 멋진 선글래스에 전문 산악인차림으로 참석하는 46기 김주용님이 식기 전에 먹으라며 ‘오는 길에 주은 듯’ 무심하게 건넨, 따뜻한 호두과자 한 알에 동지애가 입안부터 온몸으로 번져갑니다.
오늘은 오랫만에 너른 장소에서 전체가 체조로 몸을 풀어봅니다. 숙련된 조교의 구령에 따라 손발을 흔들고, 눈감고 한 발로 중심잡기하고, 여기 저기 비틀비틀, 웃음도 터지고 마음도 같이 풀립니다. 담당 강사님이 조원을 불러 모으고 적당한 곳에서 수업이 시작됩니다. 오늘도 새로운 강사님과의 만남입니다. 넌지시 엿보니 어떤 조는 차례로 자기 소개부터 시작하고, 그 옆의 조는 “겨울눈이 이렇게 붙어 있는 것을 섭합상이라고 하며… ” 어이쿠~! 어렵습니다. 또 다른 조에 가봅니다. 강사님이 노박덩굴과의 열매 모양을 설명하며 “사수성이란 … ” 하며 복습을 겸한 간단한 이론 설명을 이어갑니다. 여기도 학구적입니다. 하지만 강사님들의 이론 설명은 그날 관찰 수종의 특징 중 하나란 걸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먼저 탐사길에 나선 조를 부지런히 따라가 봅니다. 데크를 따라 5분여 지났을까, 키작은나무 앞에 섭니다. “이 나무는 우리가 관찰했던 나무인데 무슨 나무일까요? ” 현장 시험입니다. 낮이 익고 알듯 알듯 한데 나무 이름이 팍 떠오르지 않습니다. “마주나기이며 어린가지는 녹색이고, 입자국이 하얗고… ” 힌트가 주어집니다. 누군가의 입에서 참빗살나무가 나옵니다. 빙고!! 맞았습니다. 왜, 노박덩굴과의 4수성 열매를 설명했는지 비로소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강사님은 수업 중간 중간 수시로 즉석 퀴즈를 냅니다. 맨눈에 어부바, 가지가 벗겨지고..., 쪽동백은 워낙 특징이 뚜렸해서인지 바로 정답이 나옵니다. 좀 어려운 듯 한 나무를 맞출 때면 우와~! 하는 탄성과 박수가 상으로 주어집니다.
드디어 첫 관찰수종입니다. 팽나무와 늘 비교되는 풍게나무입니다. 겨울눈이 찌질해보입니다. 홀쭉하고 누가 떼어놓기라도 할까봐 가지에 착 달라 붙어 있습니다. 강사님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팽나무의 겨울눈은 풍게나무에 비해 다소 통통하고 가지와 벌어져 있으며 털이 있다” 놓칠새라 바삐 기록해둡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다른 나무, 얼핏보면 가지에 겨울눈이 붙어 있는 모양새가 좀 전에 봤던 풍게나무의 겨울눈과 분위기가 비슷합니다. 가지에 세로로 피목이 있고 겨울눈이 검은색을 띄고 관다발 자국은 1개로 두툼한게 차이가 있습니다. 고욤나무입니다. 같은 듯 다른 듯 애써 차이를 기억하려는 중 누군가가 고욤에 얽힌 추억을 이야기 합니다. 추억에 추억이 더해지고 감나무까지 이어지며 머뭇거린 사이 뒤따라 온 팀이 외칩니다. “방, 빼주세요~!”
퉁~ 탁! 퉁~탁! 눈녹은 테크길을 혹 미끄러질까봐 힘찬 발걸음으로 내딛습니다. 저 앞 하늘을 가로지른 굵은 나무 기둥 세 개를 지나 수상한 나무와 마주칩니다. 쓰~윽 봐도 지금까지 봐왔던 나무와 사뭇 달라보입니다. 가시도 있고 가지 마디마다 혹이 있는 듯 지저분하게 뭉쳐 있습니다. 겨울눈이라고 합니다. 누군가 “겨울눈이 한보따리”라고 말합니다. 적절한 비유로 공감이 갑니다. 경침인 가시는 가시에 가시가 나고 또 가시가 자라 가시투성이닌데 동그랗지 않고 약간 납작한 느낌이 듭니다. 이리 저리 만져보며 느낌을 새겨둡니다. 가시부터 눈, 잎자국까지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잊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겨울눈 뭉치를 들여다 봅니다.
워낙 강렬한 나무를 본 후유증일까요? 다음에 만난 떨기나무들이 어쩐지 보잘 것 없어 보입니다. 빈 열매꼬투리가 달려 있고 가로덧눈으로 인해 가지가 어지럽게 뻗어 있어 지저분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병꽃나무입니다. 이런 생각도 잠깐, 루페를 들이대면 눈앞의 겨울눈에 집중하게 됩니다. 가지에 털이 있는지를 잘 살펴보라 합니다. 병꽃나무는 어린가지에 세로로 털이 있으며, 털없는 붉은병꽃과의 동정 포인트라고 합니다.
돌이켜보니 초입에서 관찰했던 개암나무와 참개암나무의 동정 포인트도 수꽃 자루의 길고 짧음과 함께 어떤 어린 가지에 난 털의 모양이었다는 사실이 떠오릅니다. 병꽃나무 바로 옆의 작살나무도 중요한 동정 기준의 하나가 겨울눈에 난 별모양의 털과 잔가지에 있는 털입니다. 다음에 만난 당단풍나무도 겨울눈에 난 털의 유무로 단풍나무와 다름을 구분합니다. 오늘은 그야말로 ‘털’ 특집인가 봅니다. 두 세종일 때만 해도 털의 유무와 모양이 머릿속에 착착 저장되었는데 계속 털이 이어지니 머리 속이 ‘털 털’ 흔들립니다. 속도 모르고 강사님은 당단풍의 당이 당나라 당인지 설탕 당인지 찾아보라며 숙제까지 내줍니다. 숙제검사는 안하겠지요~
이번에 만난 나무는 조경용으로 심은 것이 확실해보이기는 하지만 쭉쭉 뻗은 수관이 시원한 목련과의 튤립나무입니다. 우리나라에 조경, 관상용으로 들어온 사연을 지니고 있는 이 나무는 키가 크고 자연낙지로 인해 웬만해선 어린가지 관찰이 쉽지 않습니다. 다행히 유목과 맹아지가 있어 튤립나무 겨울눈을 직관하는 기회를 갖습니다. 겨울눈도 눈이지만 숲해설 업계에서 ‘CCTV’라 불리는 선명한 지피융기선이 더욱 인상적입니다.
튤립나무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또 새로운 나무와 만납니다. 가지마다 세로로 칼주름 잡은 듯 개성 뚜렸한 잎을 나란히 달고 있는 까치박달입니다. 뾰족한 겨울눈, 가지에 달린 갈색 잎이 황금깃발을 매단 승리의 창같습니다. 확실하게 기억해둡니다.
튤립나무의 겨울눈과 지피융기선(왼쪽)/ 까치박달나무의 겨울눈과 나무껍질(오른쪽)
어느새 숲 속 응달을 벗어나 햇빛드는 양지길로 들어섰습니다. 편평한 장소에 자리잡고 간식을 먹기로 합니다. 번거로운 아이젠을 풀고 빡세게 굴렸던 눈과 손, 특히 머리에 잠시 휴식을 줍니다. 인심이 넘쳐 납니다. 본인 것만 가져오는 게 아니라 예닐곱에 달하는 조원 몫까지 두루두루 챙겨온 탓에 먹거리가 풍성합니다. 가져온 것을 모두 나눔하면 목표달성! 배낭도 가벼워지고, 성공입니다. 누군가 “난 지난 번에 싸온 간식을 아예 꺼내지도 못했다니까요!”라며 푸념을 털어놓습니다.
달콤한 휴식은 지났습니다. 다시 수업 진행을 위해 짐을 꾸립니다. 자리를 정리하는데 입벌린 밤송이가 여기저기 보입니다. 밤나무 아래에서 쉬었는데, 남은 관찰 수종에 밤나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잽싸게 어린가지를 찾아내 관찰합니다. 겨울눈보다 가지마다 곳곳에 불룩하게 자리잡고 있는 밤나무혹벌충영이 더 강력한 잔상을 남깁니다.
그리 머지 않은 곳에서 찾은 붉나무와 헛개나무에 남은 열정을 쏟아냅니다. 이름만큼이나 특이한 성격과 모양을 지닌 붉나무 겨울눈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고 이미지를 머리속에 남깁니다. 열매에 소금성분이 있어 소금 귀하던 옛날 목염이라하여 귀한 대접을 받았고, 적응력과 생존능력이 강해 고속도로 절개지 등에 특공부대처럼 파견, 식재되었던 쓸모있는 나무라는 사실도 이제 알았습니다. 붉나무의 단풍이 그토록 붉은 이유를 어렴풋이 알듯도 합니다. 다른 이유로 익숙한, 이제는 숲에서는 보기 힘든 헛개나무와의 만남을 끝으로 수업은 마쳤습니다. 내려가는 발걸음이 절로 가벼워집니다.
좀비 눈사람의 작별인사를 뒤로하고, 와~우! 얼마나 갔을까요? 편한 발걸음에 제동이 걸립니다.
“잠깐! 여기, 보고 갈께요. 저기 말라죽은 가지 좀 꺽어주시겠어요. 속이 비어 있지요. 오동나무 랍니다.”
끝났다 싶었는데 또 “자. 여기로 모여보세요. 이 나무는 잣나무인데, 쭈~욱 자라다 저 위에서 가지가 둘로 갈라졌지요? 잣나무의 특징입니다. 왜 둘로 갈라졌냐고 물으신다면 ... ” 열정 넘치는 어느 강사님의 선행학습(?) 현장입니다.
이후로도 겨울숲바라보기 현장수업의 열정은 좀처럼 식지 않습니다. 강사님들은 원점회귀 지점까지 수시로 쪽지시험치르듯 툭툭 질문을 던집니다. 멈칫거림의 시간이 길고 짧을뿐 점차 정답 확률이 높아집니다. 슬슬 하산할 때가 가까워지는건가요? 아! 오대산, 선자령이 아직 남아 있지요. 놀자도 있고, 날자도 있고요. 하산은 잠시 보류입니다.
그나저나 오늘 뒷풀이 음식은 왜 이렇게 맛있는건데요?
첫댓글 너무 훌륭하신 글에 감탄하며 참여하지 못한 아쉬움과 함께 따뜻하고 정겨운 글에 존경을 한없이 바칩니다~~^^
호두과자로 시작하여 맛난 음식으로 마무리..아주 좋습니다.
사진 중 특수효과?를 쓰셨어요?
아주 재밌는데요.ㅎ
알자반 선생님들의 뜨거운 열정이 보입니다.
현장 사진이 살아있어 그곳에서 보는 듯 합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글과 사진에 감탄할 따름입니다.
산신령같으신 김선생님의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