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라인드>를 보고
송하연
영화 <블라인드>는 눈이 보이지 않는 남자와 볼품없는 외모를 가진 여자의 사랑 이야기다. 루벤은 시각장애인으로, 후천적으로 시각을 잃은 후 성격이 난폭하게 변했다. 마리는 그런 루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기 위해 고용된 여자다. 백색증을 가진 그녀는 거울을 보는 족족 천으로 덮어버릴 만큼 외모에 대한 시선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외모에 대한 거북한 평가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루벤의 시야가 오히려 편했기에, 루벤이 날뛰든 말든 언제나 커튼을 활짝 열고서 책을 읽는다.
한 대 치면 뺨 세 대로 돌려주는 강적을 만난 루벤은 결국 마리와 책 읽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시간은 그에게 새로운 세상을 선물한다. 어느새 이야기를 듣는 루벤의 방에는 새하얀 눈발이 날리고 정원에 목을 쭉 뺀 기린이 거닌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계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것들을 창조해 내던 루벤은 문득 아름다운 목소리의 주인이 궁금해진다. 그녀의 얼굴, 나이, 머리색, 눈동자…. 이야기를 들으며 꿈꾸듯이, 순수한 호감을 드러내는 루벤을 보며 잠시 굳던 마리는 자기도 모르게 거짓을 말한다.
잠깐 둘러댄 거짓말은 순식간에 모습을 갖추어 마리를 스물한 살(읽고 있던 페이지 수)의 붉은색 긴 머리를 가진 ‘아주 사랑스러운 여자’로 만들었다. 루벤의 손끝에서 그녀의 흉터는 얼음꽃이 되고, 박해받는 알비노 여자는 아름다운 연인으로 변한다.
순수한 사랑의 나날은 루벤의 눈을 치료할 수 있다는 소식을 기점으로 위기를 맞는다. 마리는 루벤의 곁에 있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해보았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금 세상의 벽과 마주해야 했다. 이게 눈먼 사랑이라도 되는 것 같아요? 사람들 앞에 설 용기도 없으면서 루벤은 어떻게 보시려고요?
시력이 돌아왔건만, 루벤은 눈을 감았을 때에야 꿈에 그리던 마리를 찾아낼 수 있었다.
처음 마리를 두 눈으로 보았을 때 저도 모르게 흡 숨을 들이마시던 루벤은 눈앞의 여자가 자신의 마리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스스럼없이 돌아가자고 말한다. 몇 번이고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루벤이 눈을 뜬 이상 마리는 그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떠나기 전 마리가 남긴 편지는 아주 멀리 돌아 수신인에게 도착한다. ‘진실한 사랑은 눈을 멀게 하지. 그 사랑은 영원해.’ 마리가 떠난 이유가 자신을 보게 될까 두려웠음을 알게 된 루벤은 고드름을 들고 기꺼이 보이지 않는 세계로 돌아가 마리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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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사랑’은 마리의 거울처럼 줄곧 베일로 덮어놓았던 금단의 영역이었다. 사랑에 관심을 갖는 게 방탕함을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졌고, 사랑을 위해 무언가를 감내하는 것이 손해처럼 느껴져서 날을 세웠다. 그러한 생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내가 마리를 기다리며 눈을 찌르는 루벤의 모습을 보자니 너무 당혹스러웠다. 처음에는 외모도 한 사람을 이루는 정체성 중 하나가 아닌가 싶어 루벤이 다시 앞을 보지 못하게 된 일이 의도적으로 눈을 돌리는 것처럼 느껴져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영화가 전하려는 말이 ‘진정한 사랑은 외면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봐야 한다’는 것인가 싶어 더 그랬다. 나는 그 말이 못생겼든 어떻든 이미 이렇게 생겼고 이제 이게 내 정체성인데 굳이 너는 마음이 예쁘니 괜찮다며 사면해 주는 것처럼 재수 없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내 안에도 마리가 있기에 마리처럼 루벤과 영화를 계속 의심했던 것 같다. 상상 속의 아름답던 소녀 마리가 삼사십 대의 볼품없는 외모를 가진 여자로 나타났는데 아무것도 묻지 않고 기꺼이 포용하다니, 저런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싶었다. 영화에 대한 치열한 감정 공방이 오가던 중, 정지우 작가의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책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흔히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할 때, 그 사람의 외모, 직업 등의 특성들을 열거하곤 하고, 그것들을 사랑의 표현이자 사랑하는 이유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런 대상의 속성에 머무르는 것은 어찌 보면 사랑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사랑은 나와 세계의 관계를 회복하고 사랑을 재확인하며, 세계를 다시 만들고 구축하는 일이다. 그렇게 사랑하는 자는 세계 속에 들어선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되면서, 비로소 이 세계를 다시 구성한다. 당신을 사랑한 이 바닷가는 내가 홀로 경험한 바닷가와 다르다. 사랑하면서 우리는 세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하고, 기억하고, 저장한다. 대상에 고착된 사랑을 넘어서면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세계를 창조할 가능성이 생긴다. 그 세계에서는 모든 것에 대한 의미가 새로이 부여된다.’
정지우 작가는 ‘사랑한다는 건 어느 정도 자기를 뒤흔들 각오를 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루벤은 자신의 범주가 부서지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랑했던 것 같다. 또, 영화 <블라인드>를 보며 사람은 외모, 나이, 직업 등 어느 하나에 고정되는 존재가 아니고, 사랑을 통해 온갖 자아를 부여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두가 못생겼다며 멸시하는 마리가 루벤에게는 아름다운 여자가 되는 것처럼. 사람에게는 누구나 마리처럼 덮어버리고 싶은 추한 면이 있을 텐데, 이건 정말 위안이 되는 일이다. 무엇보다 발제문으로 머리를 싸매면서 내가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혀있었는지 알게 되어 괴로우면서도 기뻤다. 내가 만들어낸 이 견고한 범주를 어떻게 깨부술 수 있을지는 조금 더 궁리해 봐야겠다.
첫댓글 사랑하게 되면 콩깍지가 씌인다는 말처럼, 사랑하게 되면 상대방의 단점은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된다. 루벤은 보지 못하는 한겹의 장애물을 뛰어 넘어 사랑의 감정이 생겼다. 하지만 마리는 자신의 단점을 사랑으로 승화하지 못했다. 가슴아픈일이다. 수업시간 또 다른 나눔이 기대됩니다. 발제문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