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목과 같은 믿음
(신 10:1-5)
1.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처음과 같은 두 돌판을 다듬어 가지고 산에 올라 내게로 나아오고 또 나무궤 하나를 만들라
2. 네가 깨뜨린 처음 판에 쓴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너는 그것을 그 궤에 넣으라 하시기로
3. 내가 조각목으로 궤를 만들고 처음 것과 같은 돌판 둘을 다듬어 손에 들고 산에 오르매
4. 여호와께서 그 총회 날에 산 위 불 가운데에서 너희에게 이르신 십계명을 처음과 같이 그 판에 쓰시고 그것을 내게 주시기로
5. 내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와서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그 판을 내가 만든 궤에 넣었더니 지금까지 있느니라
이 시간에 “조각목과 같은 믿음”이라는 제목입니다. 성경에서 흔히 나무가 사람을 비유하는데 자주 쓰였습니다. 여러분이 나무라면 어떤 나무가 되고 싶습니까? 삿 9장에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가시나무가 나오는데 이 중에 어떤 나무가 되고 싶습니까? 아마도 가시나무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조각목이라는 가시나무 이야기입니다.
본문은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모세가 조각목으로 궤를 만들고 그 안에 십계명 돌판을 넣었다는 내용입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조각목이 참으로 귀히 쓰였습니다. 당시 우주에서 가장 귀한 물건을 대라면 법궤일 텐데 조각목으로 법궤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조각목으로 만들고 순금으로 쌌습니다. 엄청난 영광입니다.
법궤만이 아니라 성막에서 아주 귀한 떡상(25:23), 분향단(30:1) 등 성전 안에 있는 기구들과 성전 밖에 있던 번제단(27:1)과 그들을 운반할 때 쓰는 채나 널판(26:15)과 띠(26:26), 기둥(26:32)들도 역시 조각목으로 만들었습니다. 출애굽기와 신명기에서만 해도 조각목이 성막과 연관 지어 27번이나 나옵니다. 우리도 조각목 같은 믿음을 가질 때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그렇게 귀히 쓰입니다.
조각목과 같은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1. 자기 부족을 아는 믿음입니다.
조각목은 나무로서 너무나 부족한 나무입니다. 개역성경에 조각목을 싯딤나무라고 했는데 히브리어의 ‘시팀’은 대부분의 영어 성경에서 '아카시아 나무'(acacia wood)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아카시아보다 훨씬 볼품 없는 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커봐야 3m내외로서 가지가 밑동부터 여러 갈레 갈라져 올라와 목재로 사용할 수 없는데다가 잔가지가 많이 뻗어있으며, 가지에 10-15cm의 크고 날카롭고 가시가 많고, 잎은 작아 땔감으로밖에는 사용할 수 없는 나무입니다. 작아서 도저히 성막의 목재가 될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 수백 년 특별히 키운 나무가 있었나 봅니다.
이런 나무로 하나님의 성막에 쓰일 성구를 만들었다는 것은 먼저 고운 모양도 없고 풍체도 없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속죄의 제물로 오신 초림의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이처럼 자기 부족을 알아야 하나님이 귀히 쓰십니다. 출4:13에 모세도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진실로 자기 부족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랬기에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했고 그랬기에 쓰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도 처음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모세가 자신을 공주의 아들이라는 쟁쟁한 권력과 부귀와 영화와 애굽의 모든 학술을 통달한 지식가로 여길 때는 쓰시지 않았습니다. 서열로서는 왕이 될 몸이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힘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도우려다가 라이벌에게 약점을 보여 사고만 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40년간의 연단 속에서 자기 무능을 철저히 깨닫고 기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자기 부족을 알고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귀한 사람입니다.
2. 하나님을 깊이 만난 믿음입니다.
조각목인 싯딤나무는 아주 뿌리를 깊게 내리는 나무입니다. 시내 광야에서 볼 수 있는 나무는 종려나무와 에셀나무와 싯딤나무였는데 종려나무와 에셀나무는 오아시스에서나 자라고 흔하지 않은데 싯딤나무는 워낙 강해서 지금도 광야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물이 없어도 자라는 강한 나무입니다.
조각목이 이런 척박한 땅에서 자랄 수 있는 이유는 그 뿌리를 땅 속으로 깊이 내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각목은 지상의 건조함과 모래바람 등 혹독한 시련에 굴하지 않고 가뭄이 오면 올수록 더욱 뿌리를 깊이 내려 위기를 극복하는 나무입니다. 그래서 뿌리가 수십 미터에서 수백 미터까지 뻗어 내려간다고 합니다.
우리 믿음이 그래야 합니다. 골2:6-7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그랬습니다. 날이 가물수록 지하수의 수위가 낮아집니다. 이처럼 지금의 신앙생활로 시험을 이길 수 없다면 더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더 많이 성경 보고 더 많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믿음이 성령의 생수에 닿도록 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쓰신 것은 예수를 깊이 만났기 때문입니다. 욥도 동방의 의인 말을 들었지만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고 갑절의 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핍박 속에서 기도하다가 성령을 크게 받았습니다. 세상에 가장 귀한 사람은 성령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받은 사람은 함부로 건들지 못합니다. 그들은 뿌리를 하나님께 깊이 내렸기 때문입니다.
3. 인내가 있는 믿음입니다.
성경에 조각목은 칼로 조각하는 彫刻木이 아니라 皂角木(검을조, 뿔각, 나무목)입니다. 검은 뿔 같은 나무입니다. 물소뿔처럼 강한 나무입니다. 조각목은 싸리나무처럼 빗자루나 화목으로 쓸만큼 크지도 않고 쓸모도 없지만 오랜 세월 광야에서 연단을 받다보니 목질이 단단하여 변형되지 않는 나무라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 믿음도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고난이 와도 변하지 않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계속하는 믿음입니다. 다니엘처럼 사자굴에 던져진다 해도 감사와 기도를 쉬지 않는 믿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처럼 용광로에 들어간다 해도 변하지 않고 절개를 지킨 믿음, 죽으면 죽으리라 왕 앞에 나아갔던 에스더와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히10:38에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이 믿음이 그냥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나를 위한 십자가 사랑을 깨달을 때 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를 배반하지 않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축복하고 기도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이 귀합니다. 이 기본이 잘되어야 합니다.
고전13:4-7에 “사랑은 -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했습니다. 벧전2:19에도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 답다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랑의 힘입니다. 그러나 나를 위한 믿음이라면 어려우면 현실과 타협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살든지 죽든지 주를 위한 믿음으로 변화되시기 바랍니다. 조각목처럼 강인하고 단단한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4. 마지막으로 겸손한 믿음입니다.
출37:15에 "또 조각목으로 상 멜 채를 만들어 금으로 쌌으며" 비천한 조각목이었지만 금으로 온전히 감추었습니다. 조각목이 나타나면 안 됩니다. 이처럼 나는 십자가에서 다 사라지고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영광만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늘 엎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죽어지지 그렇지 않으면 죽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간증이 있습니다. “내가 성취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하나님께 구했더니 겸손히 순종하는 법을 배우도록 연약함을 주셨다. 내가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건강을 하나님께 구했더니 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라고 병을 주셨다. 내가 행복해지도록 부를 간구했더니 지혜로워질 수 있도록 가난을 주셨다.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듣고 싶어 성공을 구했더니 하나님의 필요를 느낄 수 있게 실패를 주셨다. 삶을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달라고 기도 했더니 그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삶 그 자체를 선물로 주셨다. 구한 것 어느 하나도 주시지 않았지만 내 소원 모두를 들어 주셨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는 삶이었지만 진작 표현하지 못한 기도는 모두 들어주셨다. 나는 가장 많은 복을 받은 사람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하나님을 구하고 예수를 구하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 성령을 구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조각목과 같이 가장 부족한 모습으로 세상에 오셔서 가장 위대한 일을 이루신 우리 주님처럼 가장 부족하지만 하나님께 귀히 여기심을 받는 믿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모두 조각목과 같이 자기 부족을 알고 날마다 기도하며, 더 깊이 기도함으로 성령의 은혜 가운데 살고, 아버지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하며 고난도 기뻐하고, 나는 사라지고 예수만 나타나는 하나님께서 가장 귀히 여기실 복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