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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th. Nov.(토) 1978
극장가려다 실패. ‘富士’란 일본 음식점에서 꼬지요리. 물오징어회 그리고 메밀국수를 먹다. 모처럼 입안이 개운하다. 밤중에 C/E. 2/E의 싸움사건이 터지다. 목과 얼굴에 상처가 나고 입술이 터져 피가 말라 붙었다. C/E가 먼저 내방에 왔다. 술내가 확 풍긴다. 평소 2/E에 대한 잘못을 털어놓고 자신이 얻어 맞았단다. 의외다. 그 사람이 먼저 C/E를 칠 사람이 아닌데 -. 뒤에 가보니 그게 아니다. 기관부 전부가 쑤셔논 벌집이다. 하나 자는 사람이 없다. 새벽2시가 넘었다. 겨우 말려 재웠더니 또 분탕이다.
C/E를 피해 2등항해사 방에서 자는 2기사를 찾아 죽이니 살리느니 야단이다. 제정신이 아니다. 선내 일본인만 없어도 가만 안 두던가 한바탕 작대기를 휘둘러 박살을 내고 싶다. 뭣인가 계기가 된 것 같다 전환점으로 삼자.
2/E의 말에 의하며 밖에서 마신 술이 근인이고 원인은 다른데 있다. 짐작이 간다. 진급시켜 줬는데 한잔 사지도 않고 용돈도 주지 않는다고 평소 공개적으로 비난해 왔는데 그것이 쌓인 것 같단다. 그럴테지 -. 냉동사, 3/E 우거지 상이 되었다. 방을 바꿔 달라기까진 한다. 아무리 따져봐도 기관장의 책임이고 실책이다. 이놈의 영감쟁이! 그냥 둬라 어차피 곪은 상처는 터지 마련이니 미리 손을 대 덧나는 것보다 저절로 터지도록 두어라. C/O. 1/E 불러 날이 새기까지 더 이상 동요가 없도록 했으나 고요할 리가 없다. 아무턴 더 이상 사고만 없게 해라. 잠을 설쳤다. 어찌보면 정신이 돈 사람 같고 어찌보면 멀쩡한 놈 같고 -. 꼭 C/S가 술먹은 꼴과 같다. 어떻게 해서 면장을 따고 기관장이 됐는지? 분명히 대한민국이 살기 좋은 나라다. 오히려 이렇게 빌빌대며 싸움 뒷치닥거리나 하고 앉은 내가 멍텅구릴 수 밖에 없다. 저런걸 보면 나도 좋아하는 술이 구역질 날 만큼 추해진다. 어릴쩍 가끔 영감님이 술 한잔 하시고 늦게 오셔서 잠자는 우리를 깨우고 엄마를 못살게 굴고 뭔가 졸라데는 것을 본적은 있다. 그 땐 우리 자신이 술이란 것을 몰랐다. 막상 내가 술을 마시고 취하고 토하고 주눅이 들고 -. 하하 이런것이구나! 그래서 마시는 구나! 이놈의 술값 모으면 뭣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뜬히 또 한잔 걸칠 수 있는 묘미를 터득했고, 또 실상 즐겨 마시기도 하지만 저런 씨부럴 놈들의 더러운 꼴을 보면 사람보다 술의 체면에 손상이 갈 만큼 벨이 뒤틀린다. 제 친구 만나 제가 마셨으면 제가 돈 낼 일이고 돈 없으면 그만둘 일이지 왜 같이 간 옆에 놈 잡고 애를 먹이고 덮어씌우려고 하는가 말이다.
오늘부터 기관부가 쉰다. Tube가 도착치 않아서다. 7-8일간 수고들 했으니 나가서 오입도 하고 한 잔 하는 것도 좋다. 해야지. 그간 쌓였던 스트레스도 풀고 코(?)도 풀고-. 그런데 세상모르는 통에 어물전 망신을 꼴뚜기가 시킨 셈이 됐다.
하필 오늘밤엔 石川도 배에서 잔다. 분명히 본사에 얘기가 들어갈 것이고 ‘죠센징’의 소리들이 오갈 것이다. 그만한 나이면 역사적인 설음을 몸으로 겪었을 텐데.
좌우지간 사람은 대가리에 뭔가 들어 차거나 가슴속에 뭣이 좀 묵직하게 차 있어야 한다. 똥이 들어있어도 들어 있는 만큼의 무게 값이라도 할 수 있으면 되는데 그 값도 못하니 어쩔것인가?
13th. Nov(일)
배 전체가 초상집이다. 엊저녁, 아니 오늘 새벽 C/E의 사건 때문이다. 만약 밑의 어느 놈이 그 지랄했다면 뭇매를 맞아도 직사게 맞았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 배 선원들이 사람이야 좋은 편이긴 하다. 그래도 윗사람이라고 눈치를 보는 것 보면-. 石川와 함께 일찍 나가다. 직접 협동저온으로 전화하겠단다. 일요일이나 Mavacasa들려보다. 역시 아무도 없다. 쉬는 날은 철저히도 지킨다. 11시 바로 귀선. C/E 아직도 안 들어 왔단다. 8시 통선으로 그 주제에 산 Camera 바꾸러 간다고 갔단다. C/O, 1/E 등이 들고 나선다. ‘이를 수가 있는냐’다. 기관부 전체가 작당해서 그만둘 기세다. 결국 몰아내자는 심산이다. 2/E는 눈덩이가 시퍼런체 왔다. 지초지종을 얘기한다. 거기서 보고 있었던 제3자의 보고도 들었다. 마찬가지다.
‘이래서 어찌 아랫사람 다스리겠습니까?’ 그래 그 말도 맞다. 거기서도 묘한 심리적 갈등을 느낀다. 저들 자신의 일은 생각지 않고 윗사람의 잘못은 물고 늘어지려는 -. 다소 과장된 표현도 있다. ‘내가 보긴 아직 술이 덜 깼다. 완전히 깰 때까지 두고 보자’. 그의 입에서, 그의 태도가 어찌 나올 것인가? 가 중요하다고 본다.
1/E “이래서는 지금 한창 기관부 작업중인데 통솔 못합니다.” 맞다 그 말도-. “그러나 어쩼던 당신네 최고 책임자 아니요. 1차적으로는 Part에서 해결해라.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내가 처리하겠오.” 골치 아프게 됐다.
오후 1시통선으로 Kano Reefer와 73동방호 두 선장 그리고 정남기 기관장이 오다. 시부럴 하필 이판에 오다니 -. 또 그놈의 Condenser 때문이다. 마지막 판이다 그도-. 그냥 출항시키려 하니 C/E가 못 가겠단다. Canpex에서는 C/E를 갈아치우겠단다. 노 선장도 골치께나 아프겠군. ‘그렇다고 내 모가지까지 가져 갈라오.’ 허 선장도 실상 보기가 딱하다. 그러나 여긴 분명히 바다 위가 아니고 엄연히 항구에 입항중이며 대리점이 있고 Owner가 있고 용선자가 있는데 왜 그쪽을 통해 숨통을 트지 않고 날 붙들고 이러요? K/R 기관장 자기 배, 자기 동료 안전만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럼 나도 내 기관장, 기관사도, 내 목숨도 생각해야 않겠소? 도대체가 대화가 안 되는데 미칠지경이다. “그러지 말고 출항하소. Lagos에서 예까지 왔는데 영국까지 못 가겠오, 날씨야 다소 나쁘지만 총총히 항구 있겠다. 그도 Spain, France, 영국 다 좋은 해양국이고 우방국아니요? 연안에 딱 붙어 가다가 여차하면 전보치고 들어가면 되지”. “그래 볼까?” 한다. “더구나 그 상태를 자기들이 보장한다는 데야 오직 좋소, 우리 안전을 유지하면서 가면 되는거지”. 개떡도 경험도 실력도 없이 굴러다 기어 나와서 저런 고생 사서하는 것이다. 제 고생이야 제가 하는 것이지만 남한테 피해는 안 줘야지. 그래도 어느 놈이 선주인지 모르나 50여일이나 달아매도 가만있어 주는 것이 고맙지 않는가.
청바지, 판타롱 바지에 넓적한 가죽 허리띠 하나 사다. 막상 바지들이 낡았고 또 애껴봐야 엉뚱한데 마치 홍수난 뒤 강물 줄 듯 줄어지기만하니 그저 먹고 입는 데나 써보자. 청바지는 좀 점잖치는 못하나 우리들의 눈이고 감각이지 이쪽 지방에서야 자연스럽고 편하고 질기고 안성마춤이다. 허리와 엉덩이가 착 달라 붙으니 마치 뭔가 뒤를 받쳐 주는 것 같아 안전한 느낌도 든다. 머 머리마져 상고머리로 깎았으니 노 선장 말마따나 여남은 살은 더 젊어 보이기도 하리다. 구두도 다 됐고 겨울잠바도 하나 있어야겠는데-. 빌어묵을 사자. 이럴 때 안 사고 안 입으면 언제 입어보기나 하겠는가.
14. Nov.(월)
협동저온(주)과는 전화연결이 안되고 도쿠마루에서 Telex오다. Madrid발 IB635편으로 13:00발. 14:45시 Las도착이란다. 오늘부터 Strick도 해체됐단다. 오늘은 안 되나 내일 아침 첫 통선편으로 찾아 보내겠단다. 여전히 C/E는 굴 속의 겨울 곰처럼 방에 쳐박혀 꼼짝도 안는다. 밥도 안 먹는단다. 벼룩이도 낯짝이 있지. 안 먹는 것은 제 사정이고 -. 선원들은 계속 술렁이는 모양. C/O가 한 번 슬쩍 절충해 보니 오히려 싸움이 될뻔했단다. 자기 잘못이 없다고 우기더란다. 짐작이 간다. 그것이 억지라는 것을 그도 잘 알면서 그런다는 것을 -. 마치 어린애가 동생을 봤을 때 일부러 오줌을 싸고 주의를 끌려는 심정이렸다. 기관부는? ‘아무래도 그냥 두고 가던지, 보내든지 ...’ ‘알았오, 더 이상 불상사는 없도록 -.’ C/O와 1/E에게 부탁했다. ‘오늘밤엔 나도 나가서 한잔해야 겠오’. 石川, 菅原와 어울리다. 이 사람들은 모르는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지 도무지 입을 안 연다. 좋다 그냥 두고 술이나 먹고 외입이나 하고 가자. 하기사 이놈들이 훨씬 더 계집을 밝힌다. 그 사이 石川는 현지처를 만들었고 菅原녀석도 단골로 정해두고 매일 밤 풀바구니에 쥐새끼 들락거리듯 한 모양이다. 흠뻑 취하고 싶었다. 누군가와 마음을 터놓고 밤새껏 주억거리고 시부려도 보고 싶었다. 그러나 마실수록 취기가 없어진다. 반면에 그 허전한 빈자루 같은 마음만에 커져갈 뿐이다. 무엇 때문일까? 외국땅, 그리고 남의 재산인 한 척의 배, 또 수십명의 가족을 거느린 부하 선원을 책임지고 있다는 그놈의 자리가 언제 어디서나 전신을 아니 머리속, 마음속까지 압박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그것은 단지 배안에 갇혀 있을 때만 요구되고 필요한 것이어야만 하는데도 실정을 그렇지 못한데 또한 신경질이 난다. 발바리가 뒷다리로만 서서 재주부리는 듯한 어색한 점잖음, 대변보러 화장실 가는 걸음걸이에도 어젓한 권위가 있어야만하고 그것이 실상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 곧 현실이다.
내가 나를 잃고 제3자로 만들어가야 하는 이 모순된 생활을 용케도 견뎌나가는 것은 결코 내 의지가 아니다. 그저 시간에 떠밀리고 일에 쫒겨 달아나고 있을 뿐이다. 사장이 있던 말던 종료시간에 되면 핸드백을 들고 발딱 일어나서 퇴근하는 CANPEX의 뚱뚱이 그래머 아가씨의 당당한 모습. 대통령 앞에서도 턱을 괴고 누워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서양 어린이들의 천진함. 선장이야 뭐라던 부자지가 툭 불거진 삼각팬티 하나만 걸치고 온 배를 휘젓고 다니는 그 France 선원들의 자유스러운 분위기! 그러면 과연 그들의 세계는 질서가 없는 것일까? 천만이다. 겉이 없고 속 알맹이가 차돌같이 야물게 영글어 있는 질서가 살아있다. 겉이 번지르하게 마치 빈깡통 지붕에 페인트칠한 판자집처럼 화려한 뒷면에는 뱀의 혓바닥 같이 날름거리는 모순과 비웃음이 활개를 치는 우리네 사회와는 무엇인가 근본적인 차이가 있으리라.
Jokey Bar의 약간은 복스럽게 생긴 남미 베네쥬엘라 아가씨, 마치 구멍 뚫은 자루 같은 옷 속에 팬티도 부라자도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의 탄복! 그래서 한끝 부풀었던 말초신경이 거금 5,000peseta란 말에 두 번째 놀람으로 사그러지고, ‘씨팔 이게 날로 뭘로 보고 -’하는 오기에 한 번더 치렁거리다가도 그 값에 3,000pst만 더 보태면 멋진 가죽옷 한 벌 살수 있다는 계산에 깎아 주려는 유혹도 툭툭 털고 있어섰던 그 후련함도 결국은 공허한 마음을 메꾸어 주지는 않았다. 비어진 마음은 마음 아닌 다른 것으로서는 채울 수 없다는 것이 정영 진실인가 보기도 했다. 문삼택 국장, 어제 아침 식전부터 개 뭐하는 것 본 것 처럼 싱글거리며 자고 들어오더니 오늘저녁은 물젖은 종이모양 축처져 St. Catalina공원에 앉아있다. “와 가뿌맀오?” “어이 시불럴 스트라이크가 오늘까지 한다더만 오늘 아침 비행기로 가뿌렸다카요.” 닭쫒던 개꼴이다. 지난 토요일 저녁 용케도 서독에서 간호원한다는 한국 아가씨를 하나 주운 모양인데. 가끔 서독에서 Las로 금요일쯤 와서 일요일 돌아가는 코스로 관광을 온단다. 그들도 뭔가를 찾아오는가 보다. Las는 한국 사람이 많아 가장 놀기 좋은 곳으로 그네들 사회에서도 알려져 있다고 얼핏 들은 적이 있다. 마침 그 아가씨가 공항 스트라이크로 못 가고 돈 떨어진 판에 문삼택이를 만나 하룻밤 신세를 진 모양이었다. 도처에 유청산이라더니 복 있는 년은 넘어져도 가지밭에 넘어진다더니 -.
15. Nov. (화)
아침부터 대리점에서 좀 심통을 부렸다. 분명히 어제 오후 도착한다는 telex가 있었고 기편까지 나왔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았단다. 담당계원 그 놈! 인물이야 미끔하게 잘 생겼고 덩치도 좋은데다 가슴백이에 털도 수북이 돋아 마누라가 꽤나 신경쓰이게 할만한데 통 영어가 안 통한다. 따지고 드니 저도 답답한가 보긴하다. 곁의 복스럽게 생긴 양복 걸친 Mr. Hoje가 일러준다. 자기들이 책임을 진 이상 계속 알아보고 있으며 공항에 연락도 하고 있으며, 그것은 당연한 저들의 임무이고 또한 선장의 입장도 이해는 하지만 분명히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은 확실한데 지난 3일간의 스트라이크가 결정적인 원인이랬다. 너무 성내지 말고 기다려 보잔다. 하기야 나도 미안하긴 하다. 저들이야 도착 후의 책임이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을 어쩔 수는 없겠지. 동경의 Owner에게 전문기안 중인데 찾는다. 막 도착했다고 공항에서 전화 있단다. 12:30시다. 내일 아침엔 틀림없이 보내겠단다. 그럼 나도 일찍 나오겠오. 성내서 미안하오. 악수 한 번씩 나누고 나오다.
C/E 부르다. 먼저 찾아 오도록 기다릴 시간이 없다. 내일부터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되기 전에 우선 어색한 분위기부터 바꾸어야 된다.
어린애 같은 엉뚱한 소리만 한다. ‘그러지 말고 뚝 잘라서 얘기 합시다. 2/E 보낼라요, 당신 갈라요? 뭐니 뭐니 해도 당신 잘못 아니요?’ 수긍을 한다. ‘그러면 됐오. 내일이라도 적어도 Saloon Class들 한테 부르든가 개인적으로 사과를 하시오. 전체적으로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 다시 한 번 다짐을 두지만-. 그러나 저러나 이젠 그도 갈 때까지 간 것이다. 더 갈 데도 없다. C/S와 꼭 같은 처지가 된 것이다.
얼마남지 않는 동안의 유종의 미를 약속해본다. 믿지는 않지만 -. 그렇다고 명색이 C/E인데 전원 앞에서 공개사과 시키는 것도 문제다. 그냥 보내버리는 게 낫지. 여하튼 남은 기간 동안 무사히 끌어가기만 하자. 그러면 된다.
신동아 10월호의 ‘금융전쟁’. 역시 돈이란 것이 인생의 목표 그 자체는 아니지만 수단으로 치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위력을 가진 것이다.
“금융가 예금 전장에서 승리하는 길은 대외적인 친분관계, 뛰는 발자국, 쏟는 구슬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얽히고 설킨 현행 복잡한 금융제도 아래서 그 제도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머리를 쓰는 일이다. 누가 먼저 이 제도의 헛점을 이용하는가가 바로 예금전쟁 승리자의 모멘트가 되기도 한다.”
“다른 은행으로 가는 것을 막으려면 무슨 수를 못쓰겠습니까. 적어도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라면 우리는 아무 일이라도 해야 합니다. 경쟁은 우선 이기고 봐야죠.”
결국 얼마만큼의 돈이 있으면 돈이 저절로 불어나고 또 불려지도록 만들어 주는 사람들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 얼마만큼이 문제가 된다. 1천만원이라면 거의 재벌이라 생각했던 것이 불과 몇 년전의 일이었다. 물가는 산토끼 포수에 쫒기듯 튀는데 돈의 가치는 폭포수 물 떨어지듯 뒤지기만 하고, 그 사이에서 수입은 이리 치이고 저리 받히기만 한다. 세상 모든 생활의 영위가 곧 금전의 쟁취를 위한 무서운 투쟁들이 아닐까? 어쨌던 있어야 하고 가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설치고 뛰고 닥달하여 움켜쥐고 놓지 말아야 하는 것이 너 나 없이, 지구상 어디 없이 볼 수 있는 삶의 참 모습이다. 집에 다시 편지 띄우다.
16th. Nov(수)
10시경 St. Catalina 통선장에서 기다리다. 절룸발이 운전사 혼자서 Crane 달린 트럭에 6상자나 싣고 왔다. 통선사에서는 미리 연락을 받았다면 기다린다. 절뚝거리는 운전수 영감과 스페인 사람치고는 너무 덩치가 작은 통선 선장영감님에게 맡겨 둘 수 없어 같이 거들었다. 11:30시 본선에 운반, 겨우 올렸다. 예상외로 Pipe에 녹이 쓸었다. 3일 날 일본에서 발송했다는 것인데 도중에 비를 만난 흔적은 없으나 온도의 변화에 따른 습기의 자연발생에 의한 것 같다. 전원을 동원, 녹부터 닦고 쓸 것, 못 쓸 것을 가려냈다. 해걸음까지 모두 완결, 기관실에 운반을 마쳤다. 오늘밤부터 갑판부와 합동으로 철야 작업키로 하다. 22일까지 완료, 출항예정으로 잡고 일단 본사에 전화를 하다.
집 나선지 8개월만에 아내의 목소리를 들었다. 西村씨의 집에서 부탁을 했다. 石川씨의 일본 전화가 의외로 빨리 나오는데 용기를 냈었는데 근 1시간을 기다렸다. 상냥하던 시니무라씨의 마누라도 들어간 후 취소하고 나오려는데 연결이 된다. 아침 출근시간인 모양이다. 기관지염을 앓았단다. 어제가 내 생일이었음도 알린다. 비록 힘없는 목소리였지만 변함없는 그 당신의 목소리다. 울컥 뜨거운 침 한 덩이가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고생이 많으리라. 어쩌다 기관지염을 앓았을까? 전번에 집수리 후 편두선이 부었다더니 그게 아니었나 보다. 무리였겠지. 모든 생활의 짜증스러움이 ‘내뺄라카다가 말았다’는 한마디에 집약이 된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그래도 한마디쯤은 ‘수고한다.’는 소리가 듣고 싶었는데 -. 그래 그만한 게 다행이다. 내빼지 않고 있어준 것만 해도 고맙다. 어차피 불그져버린 내 인생인데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 모든 것을 달관하고 살자. 마누라한테마져 존경은 커녕 기본적인 욕망도 채워주지 못한다고 티방을 받고 사는 주제에 뭣을 더 크게 높게 바라보고 살 것인가? 하나를 위해서 열을 참던, 열을 위해 하나를 버리던 그 속속들이 깊은 뜻은 고사하고 늘 그렇고 그런 정도밖에 인정받지 못하니 구태여 그럴 필요조차 없지 않은가. 그의 말이 맞다. 제 집구석하나 못 거느리면서 남의 집구석까지 넘겨다 볼 수 있을 건가. 내 생일이 어제였든가? 개밥에 도토리처럼 있으나 마나 한 것, 생각이라도 해주니 고마운 일이다. 만 서른 일곱 해를 넘긴 셈이다. 거지반 반을 넘어선 것이 아닌가? 단 하루라도 남은 내일이 지나간 수십년 보다 중요하다고 철학자들이 말하지만 그것은 삶의 가치 기준을 두기에 따라 딸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내 하나로 인하여 여럿을 괴롭힐 줄 알았더라면 아예 혼자 살았다가 가버리는 것이 얼마나 道가 통한 삶이겠는가. 그러나 이미 뿌려졌고 싹을 틔운 내 씨앗은 내가 거두어 들여야 한다. 그걸 위해 내 땀이 필요하고 내 모든 것이 소모됨으로서 더욱 건실하고 튼튼한 결실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죽으라 할 수밖에 없다. 욕을 먹어도 내가 먹어야 하고 칭찬을 들어도 내가 들을 뿐, 그 어느 무엇도 내 삶은 결코 남의 것이 될 수 없는 법이니까. 자정이 넘은 1시 30분 임시 통선으로 石川씨와 함께 귀선하다.
17th. Nov(목)
Canpex에 들리다. 의외로 Mr. Tikam이 와있다. 22일 출항하기 위한 세부 계획을 마련, Agent와 타합 후 알리러 갔었는데 그는 19일쯤 출항할 수 없겠느냐 한다. Loading Port가 바뀐다. Spain 본토의 서북부 Vigo, 그리고 영국의 Plymouth, Milford Haven 등 3항구란다. 급유만 빨리 해주면 19일 출항 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하다.
K/Reefer가 골치 아픈 모양. 그래도 나는 좋단다. 연말경 Hiroshimamaru를 살 작정인데 좀 더 있어줄 수 없겠는냐는 제의다. 돈만 많이 준다면 -. 또 그 놈 특유의 야릇한 웃음이 돈다. ‘사실 당신만큼 이 주위의 사정을 잘 아는 선장도 없다.’고 한다. ‘주위의 사정을 잘 알아서가 아니고 이 부근의 업계 관행이 잘못되어 그렇소’. 수긍을 한다. 한국선원이 좋다고 하면서도 K/Reefer Capt.에 대해 묻는다. 대답하기 곤난하다. ‘사람이 나쁜 게 아니고 배가 너무 낡지 않았오?’ ‘당신 배가 더 오래됐는데-.’ 그야 그렇다. 출항시 선용금 $2,000 지급요청하다. 매선할 모양이다. 골치 아프겠군. Mr. Tikam 자신이 사면 문제가 또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예의 Greece인의 명의로 한다면 문제가 된다. 또 일년을 더 해달라고 하겠지. 德丸측의 정확한 얘긴 들어보지 못했지만 -. 어쨌던 이번에는 면허시험을 위한 4년을 채우고 가야겠기는 한데-. 집안일, 내 자신으로 봐서는 자신이 서지 않는다. 배를 그만두는 한이 있어도 가야 마땅할 것 같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이기는 1년을 더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더 이상 아내의 협조를 구할 면목이 없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끌어 가버리면 더욱 큰 과오를 범하게 될런지도 모른다. 건강도 문제다. 근래 가끔 느끼는 피곤함, 그리고 식은땀, 불면 증 등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아직은 뚜렷한 증세가 보이지는 않는 한 자신을 잃지 않고 있다. 1년을 더 늦추는 문제 때문에 아내로부터 받아야 할 정신적 부담. 그리고 무능하고 바보스럽다는 소린 정말 듣기가 싫다. 그가 보긴 그렇게 밖에 보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그렇지 않다. 내 귀한 젊음이, 정성이 송두리 체 투자된 지금이다. 아직 확고한 자세를 갖추지 못하고 있기는 하나 어느 정도의 결실은 보아왔고 또 되어가고 있다. 숱한 수모도 겪었고 정신적 육체적 고역도, 사실상 위험도 부딪고 지냈다. 지난 10년간 그 만한 대가를 얻었다고는 생각지 않으나 이대로 저버릴 수가 없는 강한 인력은 단순한 보수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집념이라면 이런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욕망이 있는 한 만족한 현재는 없다고 했고 또 막상 갈구하던 것이 성취되었을 때 가져오는 허무감이 오히려 강하다고 하지만 그 분명한 한 단계 한 단계의 성취감이 주는 보람도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젊음과 열성과 땀이 주어졌다면 값진 투자임을 분명한 것이 아닌가? 한편으로 보면 현실적으로 개뿔도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는 놈이 맨 몸뚱이 하나로 벌어먹고 살기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박탈당하는 대가치고는 만족할 수는 없으나 그것이 엄연한 우리의 현실이며, 오히려 그 욕구를 희생하고 도구 삼음으로서 만족하려는 군상들이 많아져 가고 있는 것이 오늘인 것이다.
동방호 정 기관장을 다시 만나다. 모처럼 뜨근한 사우나 목욕탕에서 시원히 땀을 빼다. 체중은 73Kg 그대로다. 대아 정 사장에게 속현을 권하는 편지를 띄우다. 도리에 어긋나지는 않는지? 지난날의 내 경험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 같아 쓰긴 했으나 다소 미안하고 불안한 점도 없지 않다만 어차피 안부편지라도 내야 하는데-. 집에도 다시 써 보낸다.
1977. Nov. 18(금)
의외로 일의 진척이 빠르다. 19일 출항이 충분하겠다. 본사에도 Telex를 넣다. 선용금 $3,000의 긴급수배를 겸해서-. 대리점에 연락 PM5시에 접안키로 하고 Bunkering도 오늘하기로 했다. 밤 11:30시에 겨우 접안, 밤새워 Ammonia Charge하다. 냉동사와 石川씨가 수고 많았다. 급유도, 주부식도 내일 사입, 선용금도 내일, 출항도 오후 5시로 확정했다. 싸늘한 밤바람이 속살까지 와 닿는다. 밤늦게 온 Pilot영감님, Beautiful Night! 란다. 사실은 그렇다. 아름다운 밤이다.
‘그러나 영감님! 내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밝은 달빛, 고요한 바다, 한 점 티없이 맑은 하늘에 간간히 반짝이는 별빛, 그리고 찬란하게 명멸하는 저 땅위의 불빛들! 초겨울 방안에서 놀다 잠간 오줌누러 나왔을 때 쳐다보곤 했던 어릴 적의 밤하늘이 떠오른다. 잎이 진 감나무 끝에 한 두 개 낙엽이 남은 대신, Main Mast의 가는 철주와 깃줄들이 어지럽지 않게 질서정연하게 매달린 것이 더욱 차갑게 보인다. 이것이 내 삶의 현장이 아니고 직업이 아니라면 얼마나 아름답게 느껴질 것인가. 일교차가 심한 것이 선내 감기환자를 속출시키고 있다. 여기 출항하면 곧장 북으로 올라갈텐데 계절이 날마다 달라질게다. 더 이상 악화되지 않아야 할텐데-.
‘휘청거리는 오후’ 하권을 마져 읽다. 전권에서 가졌단 기대가 무척 어긋나고 있지만 딸을 가진 허성 씨가 겪는 암사돈의 비애 같은 것이 어느 만큼의 시실인가는 실감이 없으나 의분이 솟기도 한다. 기어이 아들을 두서넛 낳아 길러 볼까 부다. 빈손을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하지만 그 빈 손마저 제대로 갖고 가지 못하는 허성씨의 심정이 곧 세상의 공통된 것일 게다. 어떠한 수모도 고통도 죽음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마지막 순간의 반짝이는 그 의식은 곧 인간 본연의 자세고 욕망이리라.
19th. Nov(토) 1977
Mavacasa들리다. Loading Port(적하항)가 변경되었고, 아직 Canpex로부터 오늘 출항예정임을 연락 받지 못한 모양이다. 오후5시 출항한다니 그제서야 바쁘다. 전화통이 불이 나고 야단이다. 적하항이 다시 변경. Vigo가 아니고 조금 위인 St. Eugenia de Riveira(에우게니아 데 리베이라)란다. 애써 찾은 Chart를 다시 뒤져야 한다. 저들도 급한가 차를 태워 바로 해운국 수로과에 안내, 필요한 것을 직접 골라 가져가란다.
그간 보름동안 애 많이 먹였다. 그래도 안항을 빌어주고 다정하게 악수도 나눠준다. ‘다시 한 번 만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오’ Mr. Luis의 점잖은 인사말이 고맙다. 동경에서는 Cash도 수배했단다. Canpex에서 준댔다. Canpex에서 그놈의 $ 때문에 두 시간을 기다렸다. 기어이 구하지 못하고 Pesta만 받았다. Mr. Parso가 영국에서 주기로 하고-. Mr.Tikam 잘 부탁하잔다. ‘열심히 해봅시다. 당신 좋고 나 좋으면 되니까’
$100를 주고 가죽 윗도리 하나 사다. 과분하지만 마음내킨 김에 사다. 아내의 선물을 아직 아무것도 마련치 못했다. 가책을 느낀다. 성의가 모자라서가 아니다. 아무래도 마음에 차지 않는다.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 직접 데리고 나서서 갖고 싶은걸 직접 골라 잡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고 합당한 방법이리라. 그런 기회가 올런가? 구두는 사지 않았다. 앞축이 터졌으나 말끔히 닦고 보니 아직 더 신을 수 있을 것 같다. 좀 더 버텨보자. 그리 신고 나설 일도 없는데 -.
17:00정각. All Line Let go하다. 출항 직전 石川씨 때문에 잠시 기다렸다. 일부러 전화를 했고, 곧 달려왔다. 연이틀 밤샘을 해서 깜박 잠이 들었다고 변명삼아 사과하는 데는 모든 오해가 풀린다. 아무도 없는 토요일 오후, 오직 石川씨와 西村씨 그리고 그의 3살난 딸아이가 부두 끝에서 손을 흔들어 준다. 의외의 순항, 잔잔한 해상. 상현을 지난 달빛이 잔파도에 곱게 부서진다. 애당초 계획과는 너무도 먼 정박기간이었다. 개인적으로도 계획한 섬의 일주, 이웃 Tenerefe섬의 3700m 산정까지 올라 가보려던 생각은 아예 생각조차 못하고 말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소설책이외는 읽은 책도 별로 없다. 아무 탈없이 잘 보낸 것만으로 위안을 삼기에는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는 기간이다. Laspalmas! 또다시 들릴 기회가 있을 것이다. 돈 앗기기 좋은 곳이지만 있으면 그런대로 정이 들것도 같은 곳이다. 저녁 Saloon Class 회의에서 임동길 기관장 공개 사과했다. 힘없는 목소리, 모두가 닦달하는 데는 그도 어쩔 수 없다. 고갤 숙일 뿐이다. 이후로 다시 이러한 사고가 발생할 경우에는 직위여하를 막론하고 엄중 문책할 것을 서로 다짐했으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각 개인의 정신적인 자세다. 남은 3개월 반이 쉬이 갈 수 있을 것이다. 지난 3월, 후덥지근한 열기 속에서 Lagos 공항에 내린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8개월을 보냈다. 과연 무엇을 하며 보낸 날들이었나?
모처럼 상치쌈이 나왔다. 한 여름 손수 아침저녁 물주고 기른, 잎사귀에 거뭇거뭇한 점이 넙적넙적하게 퍼져 있고 씹으면 시큼한 맛이 있던 그 옛날의 상치와는 우선 보기부터 다르다. 천연의 물이 없어 돈 주고 사온 물로 길렀기에 상치값이 아니고 물값이라 했다. 투박한 건강미가 없고 연약하고 파리한 잎사귀가 그저 맹물 맛이다. 그러나 신선한 푸성귀라 모두들 정신없이 밀어 넣는다. 눈알에 흰창이 그득하고 양볼이 불룩하게 수셔 넣어 밥알이 입에서 밀려 나오는 것을 소매 걷은 양손으로 꾸역꾸역 도로 밀어 넣으며 으쓱 으쓱 씹던 그 맛이 그립다. 아득하다. 한소쿠리 씻어 학교로 보내주던 할머니의 최고의 작품이었다. 시원한 동치미의 맛이 날 계절이 익어간다. 구수한 된장찌개, 콩나물 비빔밥, 싱싱한 김장 김치, 추어탕, 보신탕, 얼큰한 김치찌개, 솎은 배추나물, 언제 다시 먹어 볼 수 있으려나? 군침만 돈다.
20th. Nov(일)
일요일, 그야말로 일요일이다. 깊은 수렁에 빠진다. 모두가 녹초가 되었다. 굵직한 うねり(우네리 : Swell)가 요람 같이 기분 좋게 흔들어준다. 그간 철야 작업에 고단들 했을 테지만 반드시 일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입항 했다가 출항하면 고단하다. 그만큼 육상이 심신의 긴장을 강요하는 지도 모른다. 어쩌면 땅이, 그리고 땅위의 모든 것이 생소해져 가는 것은 아닌지. 서글프고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굳건하게 여문 땅보다도 쉴 새 없이 움직이고 흔들리는 배가 더 위험하다고들 세상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데 반해 육상에서 받은 긴장이 배에서 쉽게 풀려 진다는 것도 그저 단순한 습관에서 오는 것이라 보긴 너무나 자신들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오후에 비가 온다. 저기압이 긴 꼬리 같은 전선이라도 걸렸나? 알싸한 한기가 실내를 감돌고 소름이 돋게 한다. 띵하게 두통도 있다. 긴 정박 후에 오는 일종의 멀미현상이다. 힘없는 아내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눅눅한 습기와는 대조적으로 가늘고 맑게 흐르는 경음악! ‘선창’과 ‘나그네 설음’이 실감나게 들린다.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을려고 왔던가..’ 그러나 울지도 웃지도 못할 지금이다.
22nd. Nov(화)
어제 저녁부터 해상이 악화, 계속 심한 Pitching을 한다. Las에서 滿載해주기로한 급유가 단가가 비싸드는 이유로 겨우 200톤밖에 싣지 못했다. 차츰 날씨가 차워져 간다. 난방이 안 되는 선내가 설렁하기 마치 겨울 골목 같다. 내복을 꺼내 입는다. 심한 수격작용 때문에 역시 지그재그 항해를 한다. 오후 3시경 Portugal의 Lisbon 앞 해상 10마일을 두고 항과. 저녁 무렵 북위39도선을 넘어서다. 23일 08시의 ETA가 무려 10시간 가량 늦어진다. 북대서양에서 확장되는 1034mb의 고기압 영향인가 보다. 세찬 풍속, 맑은 바람, 싸늘한 달빛, 흰 꼬리를 계속 물고 어지는 파도가 칼날처럼 날카로워 보인다. 급강하는 기온 탓인가 한기가 계속 들고 미열, 두통이 멎지를 않는다. 식욕이 씁쓰럼해지기도 하고 -. ‘밀어 닥치는 파도에 강한 투지를 느낀다’는 것은 말라 비틀어진 거짓말이다. 애간장만 태우고 잠만 못 자게 할 뿐이다. 한 번쯤의 시달림이 있어야 하고 또 있다고 각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조금만 계속하면 간사한 마음의 한 쪽 구석에서는 짜증부터 낸다.
77년 7월 15일부터 발효한 새로운 ‘海上衝突豫防規則’을 읽다. 두어번 훑어 내 것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洪盛源씨의 소설 ‘주말여행’을 읽었으나 ‘언어의 곡예를 싫어한다’는 작가의 뜻과는 달리 내게는 전부가 얄궂은 언어의 곡예일 뿐이다.
23rd. Nov(수)
해가 질무렵 Santa Eugenia Riveera Bay에 진입하다. 부근의 많은 암초들이 있었다. Radar의 작은 Range에 오차가 있어 신경을 쓰이게 한다. 조용한 포구, 하루 일을 마친 수십 척의 발동 어선들이 귀소를 한다. ‘Cherry Island’호(사쿠라지마)에서 VHF로 부른다. 곧 Pilot가 가니 좀 기다리란다. 이 항구에는 Pilot가 한 명뿐. 사쿠라지마호가 출항중이란다.
18:30시 투묘. 곧 이어 기다리던 Spain선적의 Maypesca호가 본선의 좌현에 접선, 내일 아침 8시부터 작업키로 한단다. 그런데 상대선과 Hatch길이가 맞지 않아 계획과는 달리 No.1.과 3번부터 적재키로 하다.
600톤이라 했던 Cargo도 480톤뿐이란다. 어쩌면 토요일쯤 다시 닻을 감아 올릴 것도 같다. 고기압 다음에 접근해 오는 저기압이 염려스럽다. 어서 빨리 가는 것이 이로울 것도 같다. 불과 만 4일간의 항해였는데 또 아득해 온다. 도데체가 지나간 것은 어제이든 1년 전이든 10년 전이든 아득히 먼 일로만 여겨져 버린다. 그래서 유행가에서 ‘세월이 약’이라고 했던가?
잠자리가 너무 춥다. 썰렁한 실내 공기와 함께 속이 떨려올 정도다. 여기서 이러면 영국에서는 정말 어쩔것인가 모르겠다. 유독 내 침실이 더한 것 같다. 뚝 떨어져 높게 위치한 데다 사방의 철판으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뜨끈한 방바닥의 푹신한 이불속, 그 보다도 더욱 따스한 아내의 손길과 살결이 있었지. 바깥에 아무리 차겁고 매서운 겨울바람이 밤새 불고 창문을 비집고 들며 문풍지를 울려도 세상 무엇이라도 녹이고 말 뜨거움이 용솟음쳐 나오기도 했지. 아침에 이불을 떨치고 요를 갤 때 시큼하게 한뭉텅이 코를 채우던 누린내가 그립다. 그것은 곧 마음의 고향 냄새다. 청솔가지, 보리짚, 마른 솔잎 때로는 톱밥으로 불매를 불어가며 저녁내 땐 군불에 의해서 달구어진 온돌. 첫추위가 닥쳐오는 이즈음 그 온돌은 몸뿐만이 아니고 마음을 녹여주고 감싸주는 실질적인 고향과 같은 것이 아니든가. 투박하고 두껍던 흙벽돌 대신에 얇삭한 시멘트 불록으로 쌓은 벽이고 호롱불 대신 밝은 형광등, 그리고 할머니와 손자들의 옛 이야기 사이에 놓여진 화롯불 대신에 석유 스토브가 있고 아궁이까지 밀어 넣는 짚단 대신에 밤새도록 열기를 뿜어주는 편리한 연탄이 있으며, 구수한 옛적의 이야기 대신에 온갖 재주를 다 피우는 TV가 다정한 대화마져 앗아가기는 하지만 한 가정의 안방, 그것은 언제나 영원한 안식처요 생활의 근본적인 터전이다. 아무리 움츠리고 더듬어 보아야 내 몸뚱아리 뿐이고 딱딱한 침상벽 뿐이다. 그저 눈만 감으면 한없는 공상에 나래를 펴고 먼 내 집으로 나른다. 제기랄, 정말로 제기랄이다. 이게 뭐람, 싸늘한 바깥 날씨보담 내 마음부터가 을씨년스럽고 추워간다. 박목월씨의 ‘육영수여사’를 읽기 시작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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