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병초
아주 오랜 옛날이었다.
만화방창 호시절이라 그 어디를 가든 산야에는 꽃들이 각가지 색으로 곱디곱게 피어 향기와 미모를 한껏 자랑하고 있었다.
이런 어느 날, 진달래 아가씨는 높은 산을 힘겹게 거슬러 올라 만병초를 찾아갔다.
"여보게 만병초 동생 ! 이제 며칠 뒤 저기 저 산 아래에서 꽃대왕님 뽑기내기를 하는데, 어서 참가할 준비를 하게 !"
"뭐, 꽃대왕 뽑내기를 한다구요?"
오, 이보다 더 좋고 기분나는 일이 어디에 더 있으랴.
그러나 만병초는 자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으뜸으로 아름답다고 여기던 차에 오늘 뭇꽃들과 사람들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진달래 큰누나가 찾아오자 마음 속으로 더욱 우쭐해졌다.
그래서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흥 ! 어디 보라지 내가 없으면 어떻게 꽃대왕을 뽑아내? 아무렴 어림도 없는 일이지."
그는 진달래를 보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감사해요. 내 그 날 꼭 가겠으니 먼저 가세요."
날은 빨리도 흘러 모임의 날이 돌아왔다.
그 날 만병초는 의례 일찍 서둘러 몸단장을 하고 집회장으로 가야했지만 그는 아침 늦게 일어나 천지가의 동쪽 붉은 아침 노을을 보며 중얼거렸다.
"바쁠 게 뭐람. 어쨌든 내가 가지 않으면 그래 저 따위 뭇꽃들이 어떻게 모임을 열어? 하긴 나를 내놓고 그래 어느 누가 꽃 중의 대왕이 되겠어?"
이 때 두견꽃이 재삼 권해서야 만병초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는 마지못해 옷을 주어 입고 천지가에 나가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었다.
그리고 느릿느릿 자기의 몸매무새를 천지물에 비쳐 본 다음 득의양양하게 중얼거렸다.
"오, 참으로 아름다운데 !"
이 때 백두산 단정학이 날아오더니 독촉을 했다.
"만병초야 만병초, 어서 빨리 가거라. 모임이 곧 시작된단다!"
그러나 만병초는 느릿느릿 걸으며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내가 가지 않으면 그들은 꽃대왕을 뽑지 못하니까!"
그런데 그가 천천히 산 아래 모임장소에 이르렀을 때 그는 그만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처럼 많은 고운 꽃들이 진한 향내를 풍기며 모여 있었던 것이다.
이에 만병초는 목청이 터져라 외쳐댔다.
"애들아, 내가왔다. 내가왔어!"
그러나 모임은 이미 제일 마지막 일정 말하자면 꽃대왕 선거를 하고 있었다.
그 때 많은 꽃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두말없이 우리 꽃대왕 진달래 누님을 뽑읍시다."
"좋소! 그는 매우 겸손하고 소박하고 온순하지요."
"어디 그뿐이요! 그는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가지고 있지만 추호도 자만하거나 욕심을 차리지 않으면서 우리의 뭇꽃들과 잘 어울리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