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무쇼 지음,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감염병』 , 사람과 나무사이, 2021.
= 패혈증이란 병원균이 혈액으로 들어가 온몸을 도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몸 안의 혈액이 페스트균에 오염되면 온몸에 검푸른 반점이 생겨 이내 사망에 이르기 때문에 페스트를 ‘흑사병’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 인류가 최초로 페스트에 감염되기 시작한 데에는 농경과 더불어 시작된 집단생활의 영향이 있었고, 곡물을 주로 먹는 쥐와 접촉할 기회가 늘어나면서 감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추정합니다. 또한 농법이 개발되어 농업인구가 늘었고, 늘어난 인구가 도시로 모이게 되어 확산되었습니다.
- 1096년에 시작된 제1차 십자군 원정은 페스트의 새로운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을 이슬람세력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탈환하고자 연이어 공격하면서, 전쟁터에서 돌아온 병사들의 짐과 옷가지에 인간과 살던 곰쥐와 페스트균이 섞여 들어와 서유럽에 또다시 페스트가 창궐하게 되었습니다.
- 칭기즈칸이 세운 몽골제국은 동쪽 끝 몽골초원에서 시작해 급속히 대제국으로 성장해서 광대한 통상로를 완성해 동서 무역에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몽골제국의 통상망은 십자군 원정을 계기로 발달한 서유럽과 중동을 잇는 지중해 상인의 통상망과 하나로 이어졌지만, 한편 14세기에 발생한 전염병확산의 도구가 되기도 했습니다.
= 페스트는 유럽 근대화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전체 인구의 4분의 1에서 3분의 1에 달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상황이 정보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이것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으로 이어졌고, 손으로 쓰다가 출판을 하므로 성경이 대폭 보급되었고, 성경보급은 마틴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나도록 하였습니다.
-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를 중심으로 일어난 문예 부흥 운동이 레오나르도 다빈치 · 미켈란젤로 · 라파엘로 등 천재 예술가를 탄생시키며 문화 · 예술을 꽃피운 르네상스도과 영국 등 유럽 국가들에게 엄청난 경제적 부를 안겨준 산업혁명도 일어나도록 하였습니다.
‘을의 반란’이 전개되어 농민, 장인, 상인 등 생산을 담당하는 서민의 인건비 상승과 지위 향상이 이루어지고, 하인에게만 의존하던 계급은 능력이 없어서 사실상 지위를 잃게 되어 대변혁이 이루어졌습니다.
- 페스트 팬데믹이 종교개혁을 촉발한 이유는 조금 더 말씀드리면 감염병의 고통속에 사람들의 신앙심을 자극해 귀족과 민중이 구름떼처럼 교회로 몰려들게 했지만, 패스트 재앙이 계속되자 카톨릭교회에 대한 믿음이 잃어갔습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역병은 타락한 교회에 대한 심판이라는 교리가 퍼지면서 기독교 본연의 금욕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시작되었고, 결정적으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교황 레오 10세의 면죄부 판매 등이 도화선이 되어 일어난 혁명운동이었으며 근대화의 또 하나의 굵직한 물줄기를 형성했습니다.
- 페스트가 지나간 후 유럽에서는 ‘왕도 귀족도 농민도 죽음 앞에 평등하다’라는 생각이 들불처럼 번져 나갔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사람들은 왕이나 귀족 같은 고귀한 신분의 사람도 농민이나 상인처럼 신분이 낮거나 가난한 사람도 언젠가는 똑같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인간임을 깨달았습니다. 이 시대에 그런 인식을 오롯이 반영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라틴어 문구가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 18세기 중반 이후 유럽에서 페스트 팬데믹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는데 철저한 검역과 격리, 기후 변화, 페스트균의 변이로 약해진 독성 등의 이유를 주요 원인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19세기 중반에 들어서서 근대적 위생개념과 기술이 보급되며 유럽 각지에서 상하수도가 정비되었고 일조권과 환기에 신경을 쓴 널찍한 도로를 갖춘 도시 계획이 추진되며 예전처럼 질병이 활개치기 어려운 환경이 갖춰졌습니다.
= 세계대전의 향방을 두 번이나 바꾼 말라리아 [참고자료]
- 말라리아는 열대지역에서 흔히 발병되는 질병 중 하나로 일본군은 열대 질병과 감염병에 만반의 대비 태세를 갖춘 미군과 달리 일본군의 준비는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837년 중일전쟁이 시작된 후 1945년 종전에 이르기까지 일본군의 총사망자 수는 무려 230만 명에 달했다. 충격적이게도 그중 절반 정도가 직접적 전투로 인해서가 아닌 전쟁터에서 얻은 질병으로 사망하거나 식량 부족으로 굶어죽었고, 말라리아 환자가 15.9퍼센트로 가장 많았다.
- 말라리아는 모기에 물려 인체에 병원체가 들어와 감염되는 질병이다. 일 년 내내 모기가 기승을 부리는 열대지역에서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만성적으로 발생하는 감염병이기도 하다. 중국 전선에서도 일본 육군 전사자 중 말라리아 환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10퍼센트로, 14퍼센트인 결핵의 뒤를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 기나나무 껍질로 만드는 말라리아 특효약 퀴닌은 19세기에 일본에 보급되었다. 전쟁이 한창일 때 일본은 대만과 인도네시아 자바섬에서 기나나무를 재배해 퀴닌 정제 생산을 시도했으나 전쟁이 끝날 무렵 미국이 제해권을 장악하며 퀴닌을 비롯한 약품 운송로가 끊겼다.
- 반면 미국은 무기와 탄약뿐 아니라 의약품도 넉넉히 배급했고 부상병을 신속하게 야전병원으로 이송하는 체제를 갖추었다. 또 말라리아 같은 열대성 감염병의 매개체인 모기 퇴치에도 꾸준히 인력과 자원을 투입할 정도로 만반의 태세를 마련하며 일본군의 숨통을 조였다.
- 인도네시아 자바섬은 세계 최대 퀴닌 산지로 거듭났다. 1860년대 이후의 일로, 자바섬을 지배하던 네덜란드는 퀴닌 이권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연합국의 주요 멤버국인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은 독점적으로 네덜란드령 자바에서 생산된 퀴닌을 공급받기 시작했다. 반면 연합국과 적대 관계인 추축국의 일원인 독일은 대대적 경제 봉쇄로 퀴닌을 입수하는 일이 매우 어려워졌다.
- 퀴닌을 구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던 독일은 포기하지 않고 퀴닌과 같은 효과를 내는 약품 개발에 착수했다. 그렇지 않아도 퀴닌은 값이 비싼 데다 구토와 발진 등의 부작용도 있어 여러 나라에서 그 대체품이 될 만한 약품을 인공적으로 합성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세계대전으로 퀴닌 수요가 크게 증가하며 각국 연구진은 속도전에 돌입했다.
- 아프리카대륙에서 열대열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에서는 모기의 말라리아 전파력이 매우 높아 유아기에 말라리아에 감염되어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대신 일단 면역이 생기면 성인이 되어 말라리아에 걸려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게 된다. 이러한 ‘획득 면역’ 상태를 중시해 이 지역에서는 세계보건기구의 말라리아 근절 계획이 시행되지 않았다.
- 세계보건기구는 말라리아를 결핵, 에이즈와 함께 ‘3대 감염병’으로 규정하고 예방과 치료에 매진하고 있다. 전 세계 말라리아 감염자는 연간 3억~5억 명이며 그중 90퍼센트 이상이 아프리카 대륙 남부에서 나온다. 아프리카대륙의 여러 나라에서는 정부의 공중위생 지출의 40퍼센트를 말라리아 대책에 할당하고 있다. 그 탓에 빈곤 가정의 감염자는 치료비 부담에 더해 교육과 취업 기회를 잃는다. 그래서 말라리아가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경제성장을 1.3퍼센트 뒤처지게 만든다는 보고도 있다.
- 이러한 상황에서 말라리아를 전파하는 모기에게서 사람을 지키는 효과적인 도구 ‘모기장’에 관심이 집중되어 실내를 덮어서 고대 이집트와 지중해 연안, 중국 등지에서 사용되었다. 2015년 기준으로 사하라 사막 이남에서 말라리아 감염 위험성이 있는 지역의 53퍼센트 정도가 모기장을 사용한다.
- 파나마 운하 건설지 주변에서는 날마다 황열병 환자가 발생했다. 1905년, 고거스는 모기 서식지가 될 만한 덤불을 모두 찾아내어 소각하고 물웅덩이에 기름을 뿌려 장구벌레 서식을 방지하며 장구벌레 알을 모아 폐기처분하는 등 모기 씨까지 말린다는 각오로 철저하게 박멸했다.
- 결과 작업 인부의 감염 수가 줄어들어 건설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파나마 운하가 완공되었다. 인간이 열대성 감염병과 맞대결하여 거둔 승리가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항로로 무역망을 발전시킨 것이다. 파나마 운하 개통으로 자신감을 얻은 인류는 모기를 박멸하면 황열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이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