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놀이터 / 박미숙
난 물을 무서워한다. 어릴 때 광안리 바닷가에서 튜브(tube)를 몇 번 탄 것 말고는 물에서 놀아본 적이 없다. 체육 교사였던 남편은 모든 운동을 다 잘한다. 결혼 준비하면서 자기가 가르쳐 주겠다고 하여 꽤 비싼 수영복을 샀다. 그런데 물에 머리를 넣는 것이 두려워서 수영할 수가 없었다. 몇 번을 알려 줘도 안 되니 그도 나도 포기했다. 모든 운동에 젬병이라 이것 역시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수영복은 대여섯 번도 입지 못한 채, 시간이 많이 지나니 삭아서 버렸다.
그런데 남편이 수영장을 같이 가자고 한다. 그가 수영하는 시간에 난 서천 변을 산책했는데, 물속에서 걸으면 더 좋으니 자꾸 한 번만 가보자고 한다. 무릎이 많이 부드러워졌으며, 끝나고 샤워하고 나올 때의 상쾌함이 너무 좋단다. 아빠보다 더 수영을 좋아하는 작은딸이 한술 더 뜬다. 광양수영장 시설은 전국 최고라면서.
사실, 남편과 난 취향이 많이 달라서 여가 시간을 같이 보내는 적이 잘 없다. 산책을 자주 하는 나와 달리 오래 걷지 못한다. 무릎 관절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책 읽는 것보다 집에서 스포츠 중계 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술 마시며 얘기하는 것을 즐기지만 소주 한 병으로 만족하지 못하니, 그만 마시라고 자꾸 말리게 된다. 부부가 함께 산책하거나 같은 취미를 즐기는 모습을 보며 부러워한 적이 많다.
같이 하는 즐거움을 느껴보고 싶어 수영복을 샀다. 젊었을 때의 날씬한 몸매는 온데간데없이 두리뭉실해진 몸을 최대한 가려줄 수 있는 것으로 골랐다. 추운 겨울날에 물이 차지 않을까 싶어 발을 담그는 게 조심스러웠다. 생각보다 괜찮았다. 그런데 물이 고개까지나 와서 물속에서 걷는 것도 만만하지 않았다. 가운데쯤 오니까 물 높이가 낮아졌다. 자유 수영 레인(lane)의 끄트머리에서 열심히 운동하는 할머니가 보인다. 빨간 두건을 쓰고 혼자서 물속에서 계속 뛰고 있다. 인사를 건네며 왜 이렇게 열심히 뛰시냐고, 땅에서 걷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물어봤다. 무릎이 아파서 오래 걸을 수가 없는데 여기서는 아무리 걷고 뛰어도 괜찮다, 당뇨가 있어서 살도 찌면 안 되는데 이렇게 하니 몸무게도 그대로라며 10년 넘게 수영장을 이용하면서 건강을 지켰다고 한다. 그다지 나이가 많아 보이지 않았는데 일흔아홉 살이라고 하면서, 수영은 못하지만 아쿠아로빅(aquarobics:물속에서 경쾌한 음악에 맞추어 몸을 움직이는 체조)을 하고 있다고 내게도 해 보라고 권하신다. 너무 정정하셨다.
아쿠아로빅은 낮에 한 시간만 강습이 있다. 2월, 마침 방학 기간이라 등록할 수 있었다. 수영복에 빨간 망사 모자를 쓰고 물에서 신는 신발을 신어야 한다. 첫 수업 날, 깜짝 놀랄 일이 여러 번 있었다. 다섯 레인을 가득 채운 빨간 모자 쓴 분들의 나이가 대부분 60~80대였다. 회원이 100명이나 되는 데 보통 80명 이상 수업에 참여한다. 음악에 맞추어 물속에서 흥겹게 흔들면서 하하 호호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둘이, 혹은 팀별로 손잡고 동작할 때는 더욱 즐거워하는 모습이 우리 반 꼬맹이들과 똑같다. 50분 수업이 끝나면 벌써 시간이 다 되었냐며 아쉬워한다. 지친 흔적이라곤 전혀 없다. 계단을 이용하지 않고 125cm나 되는 물에서 훌쩍 뛰어올라 밖으로 나간다. 영하 10도까지 내려간 날에도즐겁게 운동하는 모습을 보며, 저렇게 다들 건강을 챙기며 살고 있는데 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지내온 시간이 부끄러워졌다.
물속에서 하는 댄스는 라인댄스(line dance)보다 더 수월하다. 부력으로 몸이 물에 아주 잘 뜬다. 점프하면 50cm도 넘게 쑥쑥 올라간다. 겨드랑이까지 물에 잠겨 있어서 동작이 틀려도 표시 나지 않는다. 라인댄스 시간에 나만 잘 따라 하지 못한다는 자격지심을 여기서는 느끼지 않아도 된다. 또, 머리는 물속에 넣지 않아도 되니 물에 대한 공포가 있거나 허리, 무릎 아픈 사람들도 쉽게 배울 수 있다. 이런 점들이 어르신들이 아쿠아로빅을 좋아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물에서 노는 게 재미있어졌다. 강습 시간이 끝나고도 걷고 뛰는 빨간 모자 무리에 나도 합류했다. 풀쩍풀쩍 뛰어오르다가, 벽을 붙잡고 다리 찢기도 했다가, 물속에서 뜬 상태로 허벅지 아래서 두 손을 잡았다가.... 수영도 배워볼까 싶어 물속에 머리를 한번 넣어봤지만 그건 아직 어렵다. 강습이 없는 날에는 남편과 함께 저녁에 왔다. 물속에서 한 시간 운동하는 것이 전속력으로 달리기를 10분 한 것과 맞먹는다고 한다. 근력과 심폐력, 유연성이 좋아진다고 하는데 수영장 다닌 기간이 길지 않아 효과를 느껴보지는 못했지만 끝나고 나면 확실히 상쾌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남편이 그렇게 권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2월 마지막 강습 날, 아쿠아로빅을 권해 주신 분께 여름 방학 때 다시 오겠다고 인사를 드렸다. “퇴직 후에는 광양수영장에다 건강을 맡겨버려.”라고 하시며 웃는다.
작년에 글쓰기 수업을 시작하면서 틈만 나면 도서관에서 놀던 나에게 또 다른 놀이터가 생겼다. 수영장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있으니, 퇴근길에 언제든 갈 수 있다. 새로운 일에 쉽사리 도전하지 못하는 성격이지만 물에서 노는 시간이 많아지면 수영을 배워보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도서관과 수영장, 놀이터가 두 개나 생겨서 즐겁다. 마음과 함께 몸도 챙기는 한 해를 보내리라.
첫댓글 지인이 두 명이나 여기 다닌답니다. 주소를 옮겨서라도 다니고 싶다고 자랑하는 이야기 여러 번 들었지요. 새 놀이터 저도 가보고 싶어집니다.
실제로 순천에 사시는 분들이 수영장 등록 때문에 주소 옮겼다는 얘기 저도 들었습니다. 1일 자유입장권도 있으니 한번 방문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의사들이 한결같이 건강을 위해 권하는 두 가지가 있지요.
바로 걷기와 수영이랍니다.
도서관과 수영장 좋은 놀이터군요. 수영장이 하루 일과의 동선안에 있다는게 부럽습니다.
그렇지요. 저도 그 좋은 수영장이 불과 집과 10분 거리에 그것도 출퇴근 길에 있어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조용히 책 읽으며 산책하실 거 같은데... 운동도 열심히 하시는군요. 새 놀이터에서 더 건강해지시길요.
고맙습니다. 나이는 들어가는데 건강에 무심했던 것 같아 이제부터 신경 쓰려구요.
선생님, 반갑습니다. 정말 부러워요. 저도 놀이터가 있는데, 가게랍니다. 일하는 가게지요.하하
살아가면서 놀이터가 있다는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두개나 가진 선생님,정말 멋지십니다.
선생님.
광양에 계시니까 선생님께서도 이 놀이터를 이용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아침 일찍 문을 열거든요.
@박미숙 네,
그래야겠어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