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대군과 밭 전(田) 자 이야기
수양대군이 계유정난(癸酉靖亂)을 도모하던 당시 한양에서 가장 유명하던 파자 술사로 홍무광(洪武光)이란 맹인이 있었다.
그는 밥상 넓이 정도의 나무판에 부드러운 흙을 담아 점을 보러 온 손님이 마음 내키는 대로 글자를 쓰면 손으로 더듬어 읽고 길흉을 예언하였다.
수양대군은 거사(擧事) 전에 일의 성사 여부를 알기 위해 거리에서 파자 술을 하고 있던 홍 술사를 찾았다.
"점을 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오?"
"거기 앞에 흙판에다 아무 글자나 생각나는 대로 쓰십시오"
수양대군이 전(田) 자를 썼다.
홍무광이 더듬더듬 손으로 글자를 읽고 나서,
"전(田) 자를 쓰셨군요.
쌍일이 병립(雙日竝立- 하늘에 태양 두 개가 나란히 떴으니) 하니 역적지사사(逆賊之事) 로소이다"
수양대군은 짐짓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 때문에 점을 치는지 말하지도 않았는데, 거사 계획을 안다는 듯이 얘기하니 말이다.
수양은 시치미를 떼고,"에이, 여보쇼, 무슨 험한 말을 그리하는가? 아무래도 잘못 안 것 같으니 다시 한번 해봅시다"
수양대군은 전(田) 자를 다시 한번 썼다.
"또 전(田) 자를 쓰셨군요. 사방이 개구(開口)이니, 여론이 두렵습니다"
전(田)은 입 구(口)가 넷이니 나이 어린 조카를 내치고 왕위를 찬탈하면 민심을 얻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그제야 수양은 홈 무광의 두 손을 꼭 붙잡고서, "그래, 이 사람아 그러니 어떻게 하면 내가 성공할 수 있겠나?"
"말 그대로이지요"
"아니, 말 그대로라니...?"
"좌벌우벌(左伐右伐;田 자에서 왼쪽과 오른쪽 벽을 떼어내면 王 자가 된다) 하면 군왕이 되지 않겠습니까?"
수양대군은 이 말을 듣고 당시 영의정이던 황보인(黃甫仁)과 좌의정이던 김종서(金宗瑞)를 제거할 결심을 했다고 한다.
거사 당일 수양은 최후의 결심을 굳히기 위해 다시 한번 홍무광을 찾았다.
당시 홍무광은 평소 그가 손님을 받던 거리에 없었기 때문에 하는 수없이 수양대군은 수소문하여 그의 집까지 찾아갔다.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햇볕을 쬐며 무슨 생각인가를 골똘히 하고 있던 그의 앞으로 다가간 수양대군은,
"이 사람아 ~ 날세, 일전에 전(田)을 쓰고 묻던 사람인데 아무래도 앞일이 궁금해서 한 번 더 물으러 왔네"
"예. 지금은 흙 판도 없으니 마당에 아무 막대기나 주워 들고 이 앞에다 써 보시지요"
수양대군은 일(一) 자를 썼다.
글자를 더듬어 읽은 홍무광은,
"흙 토(土)에 加 1획 하면 임금 王이 되니, 필시 제왕이 되실 것입니다“
하면서 벌떡 일어나 수양대군에게 큰 절을 하여 임금을 대하는 예를 갖추었다고 한다.
이에 수양대군은 만족했다.
집으로 들아간 수양은 자신의 심복인 권람(權擥)을 불러서, "자네는 지금 홍무광의 집으로 가게. 거기 가면 대문 앞에 그가 앉아 있을 테니 점을 보러 왔다고 하고 한 일(一) 자를 하나 쓰게. 반드시 한 일(一) 자여야 하네"
그리하여 권람은 수양대군이 시키는 대로 홍문관에게 가서 한일(一) 자를 쓰며 자신의 운명을 물어보았다.
"오늘은 한 일자를 쓰는 손님이 두 명째 오셨습니다“
"손님이 쓰신 일(一) 자는 생자종획이요, 사자시획(生字終劃 死字始劃 ; 즉 산다는 글자 生의 마지막 획이요, 죽는다는 글자 死의 첫 회)이니 당신을 낳으신 분이 돌아가시겠습니다"
권람은 깜짝 놀라 황급히 고항으로 내려가 보았으나,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하직한 후였다.
상(喪)을 \치르느라 권람은 다음날의 거사 (계유정난)에는 참여하지 못했다고 전하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