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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리어커로 고속도로 질주한 농부
농사 작업에는 소의 힘을 빌려야 하는 시절이다. 일 잘하는 늙은 소를 기르면 농사 작업은 쉬워도 소득이 별로 없다. 소를 키워 재산을 늘리려면 송아지를 키워 큰 소를 만들어야 소득이 된다. 아저씨는 늘 이런 방법으로 소를 키우지만, 소의 힘이 필요할 때는 우리 누렁이를 이용한다. 그래서 나도 소를 기르는 방법을 바꾸었다. 큰 소를 팔아 송아지 세 마리를 샀다. 겨울 동안 키워 일소를 만들 큰 송아지도 한 마리 같이 마련했다. 큰 송아지는 겨울 동안 열심히 길러 봄에 조련 기술로 일하는 소를 만들어야 한다.
논갈이와 수레로 짐을 옮겨야 하는 일은 소의 힘을 빌려야 한다. 그런데 당장 무거운 짐은 어떻게 운반할 것인가 생각하다가 리어커를 사기로 했다. 소를 효과적으로 다루어야 소의 힘을 제대로 이용할 수가 있다. 소의 조련 기술이 농부에게 꼭 필요하다. 아직 젊은 소를 오른편으로 가자. 혹은 왼편으로 가자. 아니면 그만 서라는 말을 소가 알아듣게 훈련을 시켜야 하는 조련술이다. 이런 작업은 사람과 소가 서로 의사소통이 꼭 필요하다. 이런 조련사 같은 훈련 방법은 서로 소통하는 반복적인 시행으로 완수시키는 일이다.
나는 이런 조련 기술의 경험을 쌓아 완벽하게 다루는 방법을 익혔다. 누가 나에게 가르쳐 주지 않아도 내가 열심히 관찰하고 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까이했다. 외양간에서 말없이 되새김질만 열심인 소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욕구를 느끼고 있는지 알아내야 했다. 소도 목이 마를까 생각하고 밤에 공부하다 물통을 소 앞에 들이밀어 본다. 그때 소가 벌떡 일어서며 물을 벌컥벌컥 시원하게 먹는 것을 보면 몹시 심한 갈증을 참았다는 생각이다. 그때는 소죽물을 사람이 쓰던 그릇 씻은 물로 마련했다. 맹물보다 조금이라도 영양가가 있다는 생각에서다.
짠 음식물 찌꺼기는 영양가 높아도 소가 갈증을 느낀다. 사람의 부주의로 소금기나 간장 물이 일정하지 않고 많이 들어가는 일도 우려되는 바다. 소는 욕구불만 말이 없다. 사람이 목마르면 소도 목마를 때가 있기 마련이다. 소가 물을 외면하면 내가 잘못 읽었다고 생각하면 될 일이다. 소가 밤새도록 목말라 고생하는 일도 사람이 챙겨야 소와 소통이 되는 일이다. 소 길들이기는 이런 정성도 필요하다. 소의 힘에만 의존하다 큰 소를 팔아버리고 어린 소를 기르니 대책이 필요했다. 짐을 옮기려면 지게는 불가항력이고 리어커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리어커 만드는 공장을 알아보니 대구 시내에 있었다. 이곳 시골에서는 소매하는 상회뿐이다. 친구 말을 들으니 대구 공장에 가면 리어커가 반값이라고 정보를 알려 준다. 리어커 판매점에 가서 가격을 알아본 뒤 대구시 북성로에 있는 리어커 만드는 공장에 가서 값을 비교하니 절반 값이 맞는 말이었다. 리어커 소매값을 너무 비싸게 팔고 있었다. 농촌에는 전화도 없던 시절이고 어디든지 직접 가서 알아봐야 했다. 송아지를 사고 남은 돈으로 리어커를 제값으로 구입했다.
공장에서는 내가 보는 눈앞에서 내가 요구하는 형식으로 만들어 주었다. 리어커는 타이어값이 크게 변화가 있었다. 가장 좋은 타이어가 당시 흥아타이어라 한다. 제품 유명세로 일반 타이어의 두 뱃값이다. 조립을 마치고 손으로 끌어보니 멋지다는 기분이다. 이 리어커만 사용하면 아무리 무거운 짐이라도 쉽게 옮길 것만 같았다. 이제 소발이 싣던 짐은 모두 리어커롤 활용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리어커를 정기 화물로 부치면 여러 날이 소요한다고 했다. 또 정기 화물 취급소가 거기서 멀다고 한다. 촌놈이 찾아가기도 곤란한 지경이다.
큰 자형이 경산 진량읍에 살고 있어서 거기까지 내가 끌고 가기로 했다. 대구에서 우리 집까지 거리는 백 리가 넘는 길이다. 가는 길에 제재소에 들러 리어커 거푸집도 맞추어야 한다. 집 근처에는 리어커 거푸집을 만드는 곳도 없어서 리어커에 싣고 가면 일거양득이다. 정기 화물에 부치면 읍내까지 10km 리어커를 찾으러 가는 일도 성가신 일이다. 리어커 값을 치르고 돌아오는 길은 아는 길이라 보행을 결심하고 나섰다.
칠성시장과 신암동을 거쳐 반야월을 지날 무렵 경부고속도로 신설 공사가 한창 완성되고 있었다. 반야월 송정리에 이르니 청천과 진량읍을 잇는 고속도로가 훤하게 펼쳐져 있었다. 이제 마무리 작업으로 조경 작업 등 잔손질하는 중이다. 작업하는 인부에게 진량까지 리어커 끌고 갈 수 있냐고 물었다. 그 작업 인부는 아주 친절하게 금호강만 건너면 진량읍인데 멋지다고 새길로 가라고 안내해 주었다.
내가 보기에도 진량읍까지 훤하게 고속도로가 확 틔어 보였다. 개통을 임박해서 고속도로는 작업 차량만 왕래하지, 텅 빈 길이나 다름없다. 청천과 하양읍을 돌아서 가면 두 배도 넘는 길을 쉽게 갈 수가 있었다. 청천과 하양을 거치지 않고 바로 금호강을 건너면 경산 진량읍이다. 다행히도 금호강 건너 진량읍 부근 고속도로가 작업 구간이 다른 지역보다 빨랐다. 고속도로 노면은 완성되고 부수 작업만 마무리 단계로 보였다. 인부들의 간섭도 없이 순조롭게 누님 댁에 도착했다.
새 고속도로에 새 리어커를 몰고 가는 농부의 기분이 하늘을 날 것만 같았다. 리어커를 직접 몰고 오길 잘했다고 신바람 났다. 당시는 일반도로도 시내에는 리어커 몰고 다니던 시절이다. 거리 행상들이 큰길에도 리어커로 떠돌이 장사하던 시절이다. 금호강 긴 다리를 건너며 고속도로 개통은 내가 최초로 한다고 자부심도 일었다. 농부 최초의 리어커로 고속도로를 활주한 기록이다.
하양읍 청천리가 아닌 송정리에서 경산시 진량읍 소재지는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다. 새로 만든 고속도로 아스팔트 포장 위에 리어커를 끌며 걸으니 이렇게 편한 걸음일 수도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자형 집에 도착하니 누님과 함께 놀라움과 반가움이 어우러져 반긴다. 하룻밤 신세 지기 반가웠고, 안성맞춤이었다.
이튿날 자고 일어나기 바쁘게 다시 리어커를 몰고 집으로 향했다. 우리 집까지 거리는 50리가 넘었다. 대구 북성로 공장에서 우리 집까지 절반을 온 셈이다. 나는 100리를 걸어도 아무런 걱정 없다. 산에 뗄 나무 실으러 다니며 단련된 다리로 걷는 일은 자신이 있었다. 그래도 누님과 자형 덕분에 절반만 걷고 하룻밤 쉬었다가 걸으니 훨씬 수월하다. 오다가 재제소에 들러 리어커 거푸집을 사서 싣고 20리 길은 비포장 자갈길을 걸었다. 아스팔트 포장길은 한 손으로 리어커를 밀고 왔지만, 이제 그럴 수는 없었다.
소가 달구지 끌 듯이 두 손으로 잡고 허리에 힘을 보태 끌어가야 했다. 자갈길에서 차를 만나면 옆으로 비켜 주면서 걸으려니 귀찮기도 하다. 청송 가는 이 도로는 언제 포장이 될 것인가 백년하청인 듯싶은 생각이다. 그래도 리어커에 싣지 않으면 거푸집을 등에 지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 희망이 부푼다. 이제 자갈길도 이 리어커로 모든 짐을 쉽게 나를 수 있다는 희망이다. 소바리로 싣던 나무도 리어커로 운반하고 농작물도 모두 리어커를 사용하니 편리하기 이를 데 없다.
농사일에 욕심을 부리니 몸이 피곤을 이기기 어려워졌다. 허리 통증도 생기고 과로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일이 소의 힘을 이용하기로 했다. 쟁기질할 때 소목에 멍에를 이용하는 것을 멍에 줄 그대로 쟁기에서 뗐다. 이 멍에 줄을 45cm 되는 버징게라는 나무 버팀목 그대로 리어커 손잡이에 걸면 소가 끌어주어 오르막도 아주 편했다. 쟁기 대신 리어커를 연결하는 방법이다. 쟁기질할 때는 도로 쟁기에 걸면 된다. 버팀목에 꼬챙이를 묶어도 되지만 줄을 리어커에 묶으면 사고 때를 생각해야 한다. 멍에 줄을 고정하여 만일에 소가 놀라 뛰면 사고를 예방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그냥 버팀목으로만 걸면 되고 유사시 벗겨버리면 쉽도록 활용된다. 이 방법은 내가 고안해 낸 효율적인 안전장치가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브레이커가 없는 리어커로 소가 놀라 달리기라도 하면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 후 아니나 다를까, 짐을 옮기는 작업하는 중 소가 놀라서 뛰는 바람에 내가 크게 다칠 위험한 일이 있었다. 짐승은 겁이 많아 잘 놀라는 심성이다. 코뚜레 줄로 당기고 있지만, 새끼로 된 줄이 끊어져서 큰일 날뻔했다. 그대로 리어커를 끌고 내달렸다면 내 두 다리는 몽땅 부러질 경황이었다. 리어커 사이에 있는 내 몸은 급히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버팀목 버징게를 얼른 벗겨버리니 소만 멍에 걸고 달아나니 리어커는 그 자리에 얌전히 섰다. 깜짝 놀랄 순간을 맞은 사고다. 이런 예측이 없었다면 큰 화를 면하기 어려웠을 아찔한 느낌에 몸서리치게 놀랐다. 장애자 될뻔한 화를 벗어난 기지로 살아온 몸이다.
리어커 덕택에 소를 세 마리 키우니 천석꾼도 소 한 마리가 반 살림이란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한마디로 말해서 소규모 축산업의 시작이다. 소 한 마리 키워서 팔면 농사지을 땅을 제법 매입할 수가 있다. 소가 질매로 할 일을 리어커가 대신해 내니 작업의 능률도 올라가고 시간도 절약이다. 농사일시키기 위해 돈 안 되는 늙은 소를 구태여 기르게 될 손해는 겪지 않아야 했다. 이를 힌트로 이제 송아지 세 마리 키우는 재미는 축산업의 시작인 셈이다.
송아지가 어른 소가 되면 또 농사지을 땅이 생기는 것이다. 해마다 재산 불어나는 소리가 엄청나게 들리는 듯 자신감이 생긴다. 어린 소는 풀만 열심히 베어다 먹이면 잘 크는 짐승이다. 풀베기는 부지런히 움직이면 얼마든지 리어커로 실어 온다. 주위에 풀이 귀하면 리어커를 몰고 먼 거리 가서 채취해 오는 일이 편리하다. 사람들이 모여 살지 않은 곳에 가면 풀은 얼마든지 베어올 수가 있었다. 그냥 망태기로 베는 일은 어렵지만, 리어커를 이용하면 멀리 다녀올 수도 있었다.
농사도 중요하지만, 밤마다 공부도 계속해야 한다. 실내등유 값이 부담되어 호롱불에 의지하다가 이제 호야라는 큰 등을 사용하니 공부하기도 좋아졌다. 전기가 없는 곳이라 호롱불은 너무 어두웠다. 낮에는 농사일과 땔나무 하는 일이 너무 바빴고, 밤에는 강의록 공부가 밀렸다. 호롱불에 책을 읽다가 지쳐서 잠이 오면 밖에 나가 찬물로 세수하는 방법이 유일하다. 찬물 세수 덕택으로 정신이 말끔해진다.
잠을 깨워가며 호롱불 공부로 학업에 열중하는 나날이다. 한국의 찰스 디킨스가 되겠다고 벼르며 문학 공부도 열중했다. 조윤제 박사님께 편지를 써서 질문하기도 하니 농촌의 무명 청년에게 답 편지를 주시는 정성이 놀라웠고 감사했다. 시인 박제삼 선생님의 격려 편지도 받아보며 도움이 컸다. 문학 공부를 계속하려니 힘이 들어도 멈출 수가 없었다. 월간 현대문학과 시문학지도 매월 받아 열심히 읽었다.
학교도 다니지 못하는 주제에 무모하게 작가 시인이 되겠다고 하니 감히 오르지 못할 나무 쳐다도 보지도 말라는 옛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조연현 현대문학 주간이 쓴 글에 문학작품을 응모하면서 손가락 한 마디를 잘라 동봉해서 보내온 응모자도 있다는 글을 읽었다. 남의 일 같지 않은 실감 나는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기도 했다. 이런 어려움을 맞을 때마다 아버지를 비명에 가시게 한 그놈을 반드시 요절내야 한다는 마음은 더욱 굳어졌다. 그놈 아니었으면 나도 엄연히 대학교도 다녔을 것이다. 그렇게도 하고 싶은 공부도 마음껏 했을 일이 아니던가 말이다. 언젠가는 내가 아버지 원수를 꼭 갚고야 말 것이라고 원망과 탄식이 가슴 깊이 쌓인다. (계속)

첫댓글 [새 고속도로에 새 리어커를 몰고 가는 농부의 기분이 하늘을 날 것만 같았다.]
말끔한 새 아스팔트 위, 오늘 새로 산 리어커를 신나게
끌고가는 농부가 그려집니다. 계절은 가을, 어떤 맑은 날이었나요?
소와 동거하는 농부의 일상도 흥미롭습니다.
대글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