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교의 뿌리 장각과 장릉
장각
장각은 그가 창시한 태평도 교단의 세력이 커지자 무장봉기를 일으켜 말기증상에 허덕이는 한 나라를 단번에 뒤엎고 그가 설파해온 태평한 세상을 세울 결심을 굳혔다.
부정과 부패가 없고 각자가 자기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세상이 그가 주장하는 태평한 세상을 위하여.....
수십만이나 되는 장각의 무리는 大才, 小方이라는 크고작은 군단을 조직하여 중원각지의 성과 관아를 일시에 습격했다.
그들은 자기네 표시로 머리에 노랑 수건을 둘렀으므로 관에선 그들을 황건적으로 불렀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관청이나 민가의 벽에 "甲子"란 두글자를 쓰면서 이런 구호를 외쳤다.
<푸른 하늘은 이미 죽었으니
누런 하늘을 세워야 한다.
만물 一新의 해인 甲子년엔
천하가 크게 길할 것이다">
청천 (푸른하늘)은 한나라를 가르키고 황천(누런하늘)은 태평도가 다스리는 천하를 가르킨 말이다.
장각 3형제가 그들의 무리를 이끌고 동란을 일으킨 해인 후한의 中平원년이 바로 甲子년이다.
그들은 때마침 돌아온 간지의 첫머리인 甲子의 해를 골라 거사의 햇불을 올렸던 것이다
그러나 그 구호는 헛탕이 되고 말았다.
민중의 호응을 얻어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갔던 태평도 교단의 무장 투쟁은 그해안에 관군에 의해 진압되고 장각마져 수많은 교도들과 함께 죽음으로써 실패로 끝났기 때문이다.
그 후로도 황건의 잔당은 여러해동안 여기저기서 소요를 일으켰으나 그건 전화를 휩쓸고간 뒤의 여진과도 같은 것이였다.
장각의 실패원인은 큰 일을 성취하려면 천시와 지리와 인화를 갖추어져 있어야 하는데
그는 인화라할 민심의 호응만 믿고 일을 서둘렀기 때문이다.
천시는 아직 무르익지 않았는데 甲子란 해에 주술적 의미를 부여 하느라고 스스로를 속인 꼴이 되었고 이른바 사면수적 지지인 허허벌판의 중원에서 싸우다보니 전세가 불리할때 물러나 숨을곳이 없는 형편이라 지리을 얻은것도 아니였다.
허나 불리를 무릅쓰면서까지 목숨을 건 결단을 내렸다는 데서 그의 비장함을 엿볼 수 있다.
장릉
오두미교를 창시한 장릉은 촉땅 곡명산에 들어가 득도한 후에 포교를 시작했다.
그의 가르침을 받으려고 入道한 사람은 쌀 다섯말을 출현해야 했기 때문에 오두미도(五斗米道)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허나 그 가르침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은 그를 미적(米敵)이라고 불렀다.
귀도(귀신+鬼道)란 이름으로 불렸던 오두미도는 그의 손자인 장로가 크게 발전시켰다.
교조라할 祖父(조부)의 도통을 이어받은 그는 자기를 사군(師君)으로 부르게 하고새로 입도한 자를 귀졸 이라고 불렀다.
그 위엔 제주(祭酒)란 직책을 두어 일정한 수의 귀졸(鬼卒)을 관리하게 하고 제주들은 그 윗 계급인 치두대제주로 하여금 거느리게 했다.
그 가르침은 한마디로 誠과 信으로 사물을 대하라는 것이였으므로 사기 곧 거짓과 속임수는 단연코 용납하지 않는다
병에 걸린사람은 주문(呪文)과 영험이 있는 물로 치료했는데 먼저 병자에게 그가 지은 죄를 고백하여 용서받도록 했다.
그래야만 신앙이 더욱 깊어져 병을 이기는 힘이 생긴다 보았기 때문이다.
또 도로를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의사(義舍)을 짓고 그 안에 쌀과 고기 따위를 비치하여 행인들이 배를 채울 수 있는 적당량만을 가져가게 했다.
지나치게 많아 가져가는 것은 죄를 짖는 일이고 지은 죄는 고백해야 했기 때문에 모두가 그 약속을 잘 지켰다.
범법자는 세차례까지 용서하고 그래도 법을 지키지 않으면 처벌했다.
장로가 수장이 되어 다스린 한중 땅은 독립국가나 다름 없었으나 그는 관사를 두지 않고 祭酒 들에게 행정을 맡겼다.
敎義(교의)에 따라 사람들을 선도하는 책임을 진 제주가 행정을 겸무하다 보니 일의 처리가 공평무사해서 민중은 안심하고 살 수 있었다.
당시의 후한 조정은 장로를 제어할 힘이 없었으므로 그의 종교 공동체는 30년 이상이나 융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나라의 승상(丞相)이 된 조조가 중원의 군웅을 평정하고 난 후에 그 여세를 몰아 한중으로 쳐들어 오자 그에 대항할 만한 군사력을 갖지 못한 장로는 조조에게 항복하고 말있다.
그 뿌리와 교의을 오두미도와 공유한 태평도는 교주인 장각이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탄압을 받아 그 명백을 이어 나가지 못했으나 체제속으로 편입된 오두미도는 그 교의에불로장생의 신선(神仙)사상을 추가하여 도교로 변용했다.
도교(道敎)에서 제 1대 천사 (天師)로 추앙받는 장도릉(張道陵)은 바로 장릉인데 후세에 와서 그의 이름에 "道" 字를 추가한 것은 그가 실질적인 도교의 창시자 라는 것을 나타내고자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