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풀이 춤
벌써 30년도 넘은 일이 어제처럼 기억된다.
살구꽃 복사꽃이 만발한 ‘수렛골’의 아침은 그날도 언제나처럼 평화로웠었다. 그러나 고모님의 이야기를 듣고 전날 밤을 하얗게 밝힌 순영에게는 평화가 깨졌다. 온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듯 휘청거렸고 머릿속은 온통 거미줄처럼 엉겨갔었다.
그 무렵 자기도 모르게 자꾸 어머니에게 반항했다. 아버지한테 쩔쩔매며 주눅 들어 사는 모습도 보기 싫었고. 걸핏하면 내 팔자라며 한숨짓는 모습도 보기 싫었다. 그래서 어머니한테 함부로 대했던 게 사실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사춘기였던 것 같다.
집안일 돕는 순천 아주머니가 무심코 뱉은 말, “어머니한테 그러면 못 써. 내 배 아파 낳은 자식도 그렇게는 못 길러. 그 은공 다 갚으려면 죽을 때까지 갚아도 모자라지.”
순천 아주머니는 그 말을 해 놓고 갑자기 자기 입을 손으로 막으며 후다닥 뒷걸음쳐 우물가로 가 버렸다. 순영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아주머니를 쫓아갔었다.
“무슨 말이에요? 그럼 내가 우리 엄마 배 아파 낳은 자식이 아니란 말이에요?”
“아냐. 아냐. 내가 실수했어. 안들은 걸로 해. 난 정말 몰라.”
아주머니는 큰일이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발발 떨며 두 손을 모아 싹싹 빌었다.
순영은 며칠을 궁금증에 시달리다가 이웃 마을 늙으신 고모님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들었다.
“그래. 이제 너도 열여섯이 되었으니 알 건 알아야지. 네 엄마가 결혼하고 10년이 되어도 아이를 못 가졌다. 그래서 네 엄마가 아범에게 건넛마을 가난한 여자를 대 준 거야. 아들이라도 하나 얻어 볼까 기대를 했던 것인데 네가 나왔지. 처음 약속대로 그 여자는 아홉 달 젖만 먹이고 내보냈지. 마침 혼자 된 불쌍한 아저씨가 있어, 전답 사주고 짝지어 보냈다. 저 섬진강 너머에서 그런대로 잘 산다더라. 너는 어멈한테 효도해야 한다. 동네 사람이 다 감탄했던 지극정성을 너한테 어찌 다 말로 하겠니. 네가 자라면서 병치레가 많았지 않냐. 그때마다 네 어멈이 등에 업고 다니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어 살려내곤 했지. 그리 알고 효도해라.”
그때의 충격을 어찌 말로 표현하랴.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다음 날 새벽 마을 뒷산에 올라 멀리 바라보이는 섬진강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저 하늘 아래 살고 있다는 생모는 어떤 사람일까. 얼마나 가난한 집 딸이었기에 씨받이 노릇을 했단 말인가. 또 아버지는 무언가! 자식이 없으면 어때서 아내가 다른 여자를 대 준다고 그 여자를 넙죽 받아들였단 말인가. 남자란 여자의 마음을 그렇게도 모르는 바보들인가.
비밀을 알고 난 뒤, 순영은 삶이 편치 않았었다. 생모에 대한 궁금증과 측은지심. 또 양모에 대한 측은지심도 만만치 않았다. 평생 자식 못 낳고 남편한테 주눅 들어 살면서 나 하나에 희망을 걸고 고이 길러준 어머니. 다른 집은 딸자식 초등학교만 졸업시켜 부엌일도 시키고, 밭일도 시키는데, 나는 십리 길 고개 넘어 중학교도 나오고, 다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걸핏하면 반항하고 불만했으니 어머니 마음이 오죽 아팠으랴.
비밀을 간직한다는 것은 너무나 괴로웠다. 늙으신 고모님마저 돌아가신 후로는 더욱 가슴이 무거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순영은 어머니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마음과는 달리, 자기도 모르게 어긋난 행동을 하며 어머니를 괴롭혔고 전에 없이 아버지에게도 반항하기 시작했다.
순영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부모를 떠날 것을 결심했다. 마침 친구 중에 상경을 꿈꾸는 아이가 있어 의기투합했었다. 신문에 난 광고 덕분에 어렵지 않게 화장품 회사에 취직했다. 아무것도 생각지 말자고 고개를 흔들며 열심히 돈을 벌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아이를 잉태하고 입덧으로 괴로워하면서부터 줄곧 따라다니는 생모에의 그리움! 배가 불러오고, 걷기도 힘들어지고, 잠도 제대로 못 자며 씩씩거릴 때마다 아, 누구일까. 나를 잉태하고 이렇게 고생한 그분은 누구일까. 더구나 아이를 낳아 젖 먹이면서 제대로 잠도 못 잘 때, 더욱 생모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아이가 자라 육아에 전념하게 되자 다시 양모에 대한 생각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안 먹겠다는 음식을 따라다니며 먹이고, 어쩌다 아파 열이 펄펄 날 때면 밤잠을 설치기 일쑤고, 학부형이 되자 더욱 도움의 손길이 필요했다. 어머니로서 해야 할 일이 이렇게 많은가. 우리 어머니는 시골에서 농사까지 지으며 이걸 다 해내셨구나!
순영은 두 어머니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자꾸 쌓여갔다. 더불어 늘 가슴 한구석이 짓눌린 듯 아팠다. 생모를 찾아 효도하고 싶으나 공연히 양모에게 미안했고, 양모를 모셔다 효도하고 싶으나 공연히 생모에게 미안했다. 이래저래 시골집에도 자주 가기 싫었다.
어느덧 순영의 나이 마흔다섯.
친구 따라 살풀이 공연장 구경을 간 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쁜 운을 풀기 위해 굿판을 벌였는데 그곳에서 무당이 즉흥적으로 나쁜 기운, 즉 살을 푸는 춤을 추었다고 한다. 수건을 들고 추었기에 처음엔 ‘수건 춤’이라고 했는데, 춤꾼 한성준이 1903년 극장 공연에서 ‘살풀이’라는 말을 쓰고부터 ‘살풀이춤’이 되었다고 한다. 춤꾼은 고운 쪽 머리에 비녀를 꽂고, 하얀 치마저고리를 입고, 하얀 수건을 들고, 음악에 맞추어 정열적으로 춤을 춘다. 그러다 보면 켜켜이 쌓였던 한과 슬픔을 다 풀어내어 환희의 세계로 승화된다는 것이다.
순영은 살풀이춤에 대한 해설을 들으면서 호기심으로 눈이 반짝거렸다. 이윽고 춤사위가 벌어졌다. 가슴을 후벼 파는 음악, 흰 치마저고리, 흰 수건, 빠른 몸놀림. 순영은 숨을 죽이며 빨려들었다. 아, 저거야말로 나 한 사람을 위해 마련된 춤이구나. 순영은 자기도 모르게 무대 위에 선 춤꾼과 자기를 동일시했다. 자기가 객석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고 있는 것이었다.
이윽고 춤사위가 멈췄다. 아, 살 것 같다. 살 것 같다. 이제 살 것 같다.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듯. 순영은 긴 숨을 몰아 내쉬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이 세상 누군들 한이 없으랴. 친구는 어머니를 일찍 잃어 늘 쓸쓸하다는데 나는 어머니를 두 분이나 두고도 왜 슬퍼하는가. 이번 주말에는 시골집에 들러 늙으신 어머니께 위로를 드리고 아버지를 졸라 생모의 거처를 알아내리라.’ **
안영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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