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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랑♡
성경: 고린도전서 13장 4절~13절
찬송: 263, 272, 314, 249
설교: 이 경준 목사님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전서13: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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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는 성령강림 주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강림으로 인하여 여러 가지 성령 은사가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4절을 보면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글은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첫 번째 서신 내용으로 고린도 교인들이 성령의 은사에 너무 치우친 나머지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신 목적을 알지 못하고, 은사에 차별을 두거나 무질서하게 행하여 그것을 바로잡기 위함이었습니다. 더러는 자기가 받은 은사를 자랑하며, 받지 못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파벌을 조성하여 교회 분란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그에 더하여 거룩해야 할 성도들이 세속화되어 갔으며 사랑의 공동체라고는 볼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의 내용을 보면서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교훈을 삼았으면 합니다.
오늘 본문을 사랑의 장이라고도 합니다. 너무 유명한 말씀인지라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암송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품고 베풀어야 할 하나님의 사랑, 곧 하나님의 성품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1서 4장 7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보내졌던 첫 번째 편지 내용은 대부분 신앙적 교훈과 권면의 말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고린도라는 지방은 헬라 시대에 항구 도시였기 때문에 상업적으로 매우 발달해 있었고 물질이 풍부한 곳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수많은 우상을 섬기는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곳에 고린도 교회가 있었기 때문에 고린도 교인들은 타락한 세상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연고로 고린도 교회는 그 당시 여러 지방의 교회 중에서 가장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교회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서신 내용에는 성도 간에 소송 문제도 있었고, 독신생활과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와 성만찬과 성도의 죽음과 부활 등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날 우리가 궁금하게 여기는 문제들에 답이 될만한 기록도 많이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대해서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에 기록된 모든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고 그 당시 고린도 교회가 처해있었던 상황을 유추해 보아야 바울이 고린도에 편지를 보내게 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고린도는 해상 교통과 무역 중심지였기 때문에, 안전한 항해를 기원하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상을 총집결시켜 놓은 우상의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그곳에는 아프로디테(Aph rodite)라는 여신을 섬기는 신전도 있었는데 이 여신은 우리가 아는 비너스(Venus)라는 이름의 에로스 신상과 동일 것입니다.
아프로디테는 그리스 신화의 신이었지만,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한 후에 '베누스'라는 이름으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 신전에는 여사제(창녀)들이 있어서 온갖 음행이 자행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성적으로 문란한 도시였기 때문에 교회가 거룩함을 이어가기가 매우 힘들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학문적으로는 헬레니즘 사상이 퍼져있었고, 그 외에도 유대주의와 또 다른 학파를 추구하는 파벌들이 난무하여서 고린도에 거주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여러 사상으로 혼합된 정신을 가졌습니다.
고린도 교회 내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영지주의 사상이 교회에 침투되어 분란을 일으켰었습니다. 예언이나, 계시, 방언, 병 고침과 황홀경(Extasis)에 빠지는 경험을 하는 것이 성경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영지주의자들에 의해서 교회가 분리되기도 하였습니다. 고대 근동지방(Near East region)에서는 병 고치는 사람,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 요술을 하는 사람, 예언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그들을 동경하며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신의 아들이라고 하며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복음 사역을 시작할 때, 사람들은 예수님을 나사렛에서 활동하는 요술쟁이의 하나라고 보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으로 오신 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도 정말 육체가 못 박힌 것이 아니라 가상으로 못 박힌 것이었고, 예수님의 죽음도 부활도 부인하였던 자들이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이렇게 혼란한 가운데에서 은사에 치우친 신앙을 가졌던 것입니다.
분쟁도 자주 일어났었는데, 그 분쟁은 서로 파벌로 이어져서 베르도파, 요한파, 바울파, 바나바파, 예수파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시비하고 비판하였습니다. 복음을 전해 주었던 바울까지 비난하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고린도 교인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바울서신 중에는 은사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데, 특이한 것은 바울서신보다 후에 써진 것으로 알려진 복음서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에는 은사에 대한 말이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비추어 볼 때 바울이 목회를 하였던 여러 교회와 고린도 교회는 예수님의 사도들이 주축이 되었던 유대주의적인 그리스도인들, 곧 예루살렘을 주축으로 하는 교회들과는 복음적인 면에서는 일치하지 않았던 바도 있었고 대립하였던 모습도 있었던 것이 확실합니다.
사도바울을 주축으로 하는 그리스도인들 속에는 영지주의를 표방하는 세력들이 상당하였다는 것이 정확한 학설입니다. 그들은 은사와 황홀경(Extasis)에 빠지는 것이 신앙생활의 최고점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였는지 예수님의 출생과 성장 과정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었던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쓴 많은 서신중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주목하여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서 사도바울도 영지주의자라고는 생각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의 서신 들 중에서 오해받을만한 소지가 많이 있기는 합니다.
사도바울은 은사에 치우쳐있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다양한 은사들은 택함을 받은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나타나게 되는 선물일 뿐이지 그 자체가 복음의 본질은 아니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 1절에는 방언에 대하여 먼저 이야기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여러 나라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하는 능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이 하는 것은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와 다를 바가 없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2절에는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라고 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예언하는 은사가 있어서 하늘의 비밀을 아는 능력이 있을지라도 정작 사랑으로 행하여지지 않으면 그것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파벌로 찢어진, 고린도 교회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었습니다. 하나 된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이루려고 하는데, 설혹 성령의 은사일지라도 방해가 되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시끄러운 현상일 뿐이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참으로 교회 공동체는 사랑으로 뭉쳐진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향하여 자랑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뿐입니다. 사랑이 없이 나타나는 은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씀은 오늘날 우리들의 교회를 향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수십만이 모여지는 교회들도 여럿 있어서 사회에도 모범이 될만한 일들을 보여주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런 교회부터 시작해서 여러 교회에서 문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다툼과 분쟁이 일어났었고, 목회자들이 교회 재정을 횡령하고, 불륜을 맺으며 온갖 파렴치한 행동을 저지르기도 했었습니다. 그들은 선교를 목적으로 시작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도적이요 강도였으며, 소리 내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였던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어야 하고 그 사랑이 목적이어야 합니다. 사랑의 반대되는 말은 미움이 아니라 욕심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욕심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들이 모여진 교회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에 기초하지 않은 교회는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단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랍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진 자는 온유해야만 하고, 시기하지도 않아야 한답니다. 그 사랑은 자랑하거나 교만하게 굴지도 않습니다. 다만 진리와 함께 기뻐할 뿐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모든 것을 믿음 속에서 바라며 견딘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것들이 사랑의 속성입니다. 자기를 희생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셨던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이기도 한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5절에도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너희 사랑을 더하라.”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라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워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성도가 됩시다. 때가 악하여질수록 더욱 그리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과 은혜가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본문에서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린도전서13:8~13)고 합니다.
오늘날의 교회와 같이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었던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주 안에서 아비와 같은 사랑의 마음으로 훈계하는 사도바울의 서신을 통하여 육신을 입고 있음으로 인하여 범하게 되는 많은 죄들을 우리는 다시 한번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 생각해보게 됩니다.
주님! 우리가 연약한 육신을 입고 생각으로 눈과 입과 귀와 손과 발 우리 몸으로 지었던 모든 죄를 주님 앞에 내려놓고 이 시간 회개합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머리에 가시 면류관 쓰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시며 징계를 받으시므로 주를 믿는 자마다 우리가 죄사함을 받아 나음을 받고 평화를 얻음을 믿고, 그 대속의 은총을 믿고 의지합니다.
주여!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받아주소서! 죄로 죽었던 우리를 주 은혜로 다시 살아나게 하셨으니 바라옵기는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시사 은총 베푸소서!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올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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