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이야기 3
우리 민족은 닭을 신성시했다
우리나라 고대 신화에서 닭은 좋은 소식을 전하는 메신저였다.
서기 65년에 신라 탈해왕은 금성(金城, 지금의 경주) 서쪽 숲에서 닭 울음소리를 듣고 신하를 보내 살펴보게 했다.
숲에는 빛이 비치고 자줏빛 구름이 하늘에서 땅에 뻗쳤는데, 나뭇가지에 금궤가 걸려 있고 나무 아래서는 흰 닭이 울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탈해왕이 직접 가서 궤를 열어 보니 용모가 아름다운 사내아이가 나왔다.
이때부터 이 숲을 계림(鷄林)이라 부르며 국호로 삼고, 아이는 금궤에서 나왔다고 해서 성을 김 씨로 했다. 경주 김 씨 시조인 김알지의 탄생 신화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부인인 알영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나던 날 알영이라는 우물에서 닭 모양의 용이 나타나 왼쪽 갈비에서 여자아이가 태어났는데, 자태와 얼굴이 유달리 고왔으나 입술이 닭의 부리와 같았다.
월성 북천에 가서 목욕시키니 그 부리가 빠졌다는 것이다.
알영은 백성에게 농사와 누에치기를 가르쳤는데 신라인들은 그를 땅의 신이자 곡식의 신으로 숭배했다고 한다.
고구려의 무용총 천장에는 닭 한 쌍의 그림이 있고, 천마총에서는 달걀 껍데기, 신라의 고분에서는 닭 뼈가 발견된 것을 보면 삼국시대에 닭은 숭배의 대상이자 부활의 상징이었던 것으로도 보인다.
정재서 교수는 “봉황은 원래 야생 닭의 모습에서 출발하는 상상 속 새”라며 “동이족이 새를 숭배하고, 시조 탄생 신화에 닭이 등장하는 것에서 우리 민족이 닭을 신성시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축귀ㆍ벽사, 입신출세의 상징
중국 한나라의 ‘시경’ 해설서인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따르면 닭은 다섯 가지 덕(德)을 지녔다.
“머리에 붉은 관을 쓰고 있어 문채(文彩)가 나고, 다리에는 긴 뒷 발톱과 날카로운 발톱을 지녀 무(武)을 겸비했고, 강한 적을 앞에 두고도 감히 싸움을 벌이니 용기가 있고, 먹이를 얻으면 ‘꼬꼬’ 하면서 서로에게 고하니 인의(仁義)가 있으며, 날이 샘을 고하여 해시계와 같으니 믿음을 지킨다”고 했다.
선조들은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거나 귀신을 쫓는 벽사·축귀 의식에서 닭 그림이나 닭 피 등을 사용했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새해를 맞은 가정에서는 닭ㆍ호랑이ㆍ용 그림을 벽에 붙여 액이 사라지길 빌었다고 한다.
또 설날이나 보름날 첫닭이 우는 횟수를 세어 10회 이상이면 풍년, 그 미만이면 흉년이 든다고 믿었다.
닭 그림은 입신출세와 부귀공명을 상징하기도 한다.
조선 시대에 학문과 벼슬에 뜻을 둔 사람은 서재에 닭 그림을 걸어두고 공부를 했다.
닭의 볏 모양이 벼슬을 상징하는 관(冠)을 쓴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닭과 맨드라미가 함께 있는 그림은 최고의 입신출세를 의미하고, 닭과 모란이 함께 있는 그림은 부귀공명을 나타낸다.
닭 그림은 다산을 기원하는 것으로도 사용됐다.
조선 후기 화가 변상벽의 ‘암탉과 병아리’ 그림을 보면 어미 닭과 병아리 십여 마리가 함께 나오는데, 이는 자손의 번창을 뜻한다.
최고의 길지 나타내는 닭 모양 땅
이성계가 도읍을 정하기 위해 무학대사와 지금의 계룡시 남선면 일대에 이르렀을 때 무학은 산 형국이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ㆍ금계가 알을 품는 형국)이자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ㆍ용이 날아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을 이룬 명산이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계룡산은 바로 계(鷄)와 용(龍)을 합쳐서 만든 이름이다.
전북 장수군 장수읍의 고산지대인 용계리(龍鷄里)에도 이성계와 닭에 얽힌 이야기가 전한다.
이성계는 왜적을 물리치러 가는 길에 하룻밤을 보내며 첫 닭이 울면 출발하자고 했는데 한밤중에 닭이 우는 것이었다.
이상했지만 장병들을 깨워 출발시켰고 결국 전북 남원에서 왜구를 맞닥뜨려 싸워 대승을 거뒀다. 이후 마을 이름은 용계리로 불리게 됐다.
금계포란형의 땅은 금계가 알을 품은 모양으로, 권력이나 관운이 따르는 최고의 길지로 꼽힌다.
이런 연유로 전국에는 닭실, 달개, 달기, 닭메, 달섬처럼 지명에 ‘닭’이름이 붙은 것이 적지 않다. 경북 봉화의 닭실마을도 대표적인 금계포란형이다.
"닭대가리라고?…억울하닭!"
‘닭대가리’의 사전적 의미는 “기억력이 좋지 못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다.
한때 TV 개그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에서는 깜빡깜빡하는 닭 캐릭터를 등장시켜 큰 웃음을 주기도 했다. 닭은 정말 머리가 나쁜걸까.
영어로 ‘닭’(chicken)은 어리석은 겁쟁이를 뜻한다.
치킨게임(chicken game)이란 용어도 있다.
1950년대 미국 갱들 사이에서 유행한 게임으로 차를 타고 도로 양쪽 끝에서 서로를 향해 마주 달리다가 겁을 먹고 먼저 운전대를 꺾는 사람이 겁쟁이로 여겨진다.
“너 죽고 나 죽자”하는 이판사판 게임이다.
양쪽 모두가 포기하지 않으면 가장 나쁜 결과가 초래되는 상황이다.
어리석지만 이런 게임은 현실에서 빈번하다.
그러나 각종 연구에 따르면 닭은 꽤 똑똑한 동물이다.
호주 맥쿼리대학에서 동물의 의사소통과 인지를 연구하는 캐롤린 스미스 연구원과 미국의 과학 저자인 새러 질린스키는 2014년 미국 과학 월간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2월호에 ‘똑똑한 새’(Brainy Bird)라는 글을 실었다.
여기에서 똑똑한 새는 바로 닭을 말한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닭은 각기 다른 상황에서 24개의 다른 울음소리를 낸다.
먹을 것이 있다거나 위협적인 동물이 주변에 있는 상황 등을 이해하고 다른 닭에게 소리로 정보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경북 의성에는 ‘열계전’이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수탉 한 마리와 암탉 세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웃집 수탉이 공격해 이 집 수탉이 죽었다.
이후 암탉 두 마리는 이웃집 수탉과 함께 살았지만 나머지 한 마리는 이웃집 수탉을 보면 늘 피해 다녔다.
이 암탉은 죽은 수탉과의 사이에서 생긴 알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병아리가 깨어나고 성장한 어느 날 암탉과 새끼들은 이웃집으로 날아가 수탉의 목을 쪼아 죽였다.
암탉은 돌아오다 문 앞에서 죽고, 새끼들도 어미가 죽은 것을 보더니 모두 문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
닭도 짝과의 의리를 지키고, 아비의 원수를 갚는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다.
하늘 향해 울어 천지개벽 알린 닭
살아있는 우리 창세신화
이제 하늘과 땅이 갈라지니,
하늘로 이제는 위로
천황(天皇)닭이 목을 들어 울고,
지황(地皇)닭은 날개를 들어 울고,
인황(人皇)닭은 이제 꼬꼬 꼬끼오 꼭꼭.
먼동 금동 대명천지(大明天地)로 밝아가니
동으로 잇몸을 드러내고, 서로는 먹이 들이고
동서남북으로 다 좌우팔방 날개를 드니
이젠 동성 개문(開門) 열렸으니 참 밝아지네.
이젠 해가 둘이 딱 떠오르고,
달이 둘이 떠올랐지.
제주설화집성 <천지개벽이야기>
위의 이야기는 제주도에 전해지는 무속신화 중 하나로 하늘과 땅이 딱 붙어 아무 것도 없이 조용하기만 하던 세상이 열리는 모습, 즉 창세를 노래하는 <천지개벽이야기>의 일부이다.
우리나라 창세신화, 특히 천지창조는 『조선신가유편(朝鮮神歌遺篇)』에 수록되어 있는 함경북도 함흥의 <창세가>, 제주도 큰 굿의 초감제 <베포도업침>, <천지왕본풀이>와 함흥의 <셍굿>, 오산의 <시루말> 등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으며, 설문대할망의 제주 탄생설화, 마고할미의 한반도 창조설화도 들 수 있다.
제우스와 헤라클레스로 대표되는 그리스 신화, 오딘과 토르를 세계에 알린 북유럽 신화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에게 우리나라에도 창세신화가 있다고 하면 “그래?”하면서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다.
설문대할망과 마고할미는 알고 있으면서, 그 이야기가 창세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기도 한다.
아쉽게도 이 사실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그만큼 우리 고유의 문화인 설화가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고, 지금도 무관심 속에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스토리텔링과 문화콘텐츠의 다양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지금부터라도 우리 설화를 재탄생시키고, 보다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로 활성화시켜서 세계신화 반열에 올려놓아야만 한다.
우리 세상이 왜 이승과 저승, 하늘과 지하로 구분되는지 알게 되고, 제우스와 오딘에 맞먹는 천지왕이 우리에게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신화 속의 위대한 짐승 ‘닭’
<천지개벽이야기>를 비롯하여 세상이 처음 열리던 시기의 창세신화를 살펴보면 아주 재미있는 주인공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닭’이다.
세상이 열리는 순간 천황닭은 목을 들고, 지황닭은 날개를 들고, 인황닭은 ‘꼬끼오’라는 소리로 세상이 열린 것을 알리고, 천-지-인을 하나로 이은 천황닭과 지황닭, 인황닭이 동서남북으로 날갯짓을 하자 비로소 세상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수많은 신화가 사라진 지금도 굳건히 전승되고 있는 십이지(十二支) 중에서 10번째 동물이 되어, 어둠이 걷히고 새벽을 알리는 상서로운 길조가 되었다.
우리 신화 속에서 이토록 위대한 존재로 두각을 내밀었던 닭의 모습은 십이지처럼 아직도 우리 주위에서 많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
유교에서도 닭은 다섯 가지 덕을 가진 동물로 칭송했다.
아름답게 솟은 닭 벼슬(冠)은 문(文), 날카로운 발톱은 무(武), 적을 앞에 두고 용감히 싸우는 것은 용(勇), 먹이를 보고 무리를 불러 나누는 것은 인(仁), 때를 맞추어 울어 새벽을 알리는 것은 신(信)이라 했다.
십이지 중 유일한 조류로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매개체이자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존재로 여겨서 상여에 ‘꼭두닭’을 올렸다.
종묘제례에서 술잔으로 쓰이는 제기(祭器)로 ‘계이(鷄彛)’가 있다.
잔의 겉면에 닭이 새겨져 있는데, 여기에는 이승과 저승을 잇는 존재를 통해서 조상신의 도움으로 천하가 편안하기를 염원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