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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수행의 요점1
7. 수행의 요점2
8. 수행의 요점3
6. 수행의 요점1
이제는 대충 알았을 겁니다. 그런데 아직 뚜렷하게 어떻게 하는지를 잘 모를겁니다.
오늘부터 조금 더 세밀하게 수행하는 방법들에 대한 얘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수행할 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최고 많이 틀리는 게 뭐냐면 말하는 것, 말하는 것!
일단 수행을 한다고 마음을 먹으면 무조건 침묵을 지켜야 됩니다. 무조건! 말을 하고 싶은 욕망이 일어나든 아니면 할 대상이 생기든 그것에 관계하지 말고 무조건 침묵을 지키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되도록이면 말을 해야 되는 상황이 되더라도 한번 듣기만 해보십시오. 내가 얼마나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를 알 수가 있을 겁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수행을 해야 되기 때문에 수행을 언제든지 한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가장 주안점을 두어야 되는 게 인제는 말을 하지 않겠다. 침묵하겠다 하는 겁니다.
부처님은 딱 두 가지만 얘기했습니다.
침묵하는 거하고, 수행하는 것 두 가지만 하라고 그랬습니다. 살아가는 것에서! 말을 할 때 내가 알아차리면서 말을 하는 수행이 되지 않을 거 같으면 아예 침묵한다고 생각을 해보십시오. 입술이 달싹달싹하면서 말하는 것이 고요하고 평화롭고 높낮이가 없이 일상적인 말을 할 수가 있고, 내가 뭘 말하는지 앞뒤 조리가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고, 알아차릴 수 있을 것 같으면, 말을 해도 괜찮고 그 말을 하는 것을 알아차리면 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무조건 침묵을 하도록 하십시오.
그다음 두 번째 주의해야 할 게 뭐냐면, 번잡스럽게 만들지 않도록 하십시오.
생활이 굉장히 번잡하거든요.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한번 여러분들의 경우를 잘 보십시오. 굉장히 번잡합니다. 그래서 번잡한 것들을 적어도 거의 대부분을 줄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게 줄여도 크게 뭐 불편하고 하는 건 없습니다. 사실은 보면 쓸데없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집에서도 가만히 앉아있으면 될 걸 갖다가 괜히 왔다갔다 하고 또 텔레비전 틀어갖고 보다가 안 그러면 책을 뒤적뒤적 해보다가, 그렇다고 텔레비전을 잘 보는 것도 아니고, 책도 잘 기억나는 것도 아닌데 그냥 그러고 있는 거라. 그런 것들을 다 줄이라는 거라.
다 줄이고 시간이 나면 무조건 앉아서 좌선할려고 하든지 경행을 할려고 하든지 이렇게 자꾸 마음을 먹어 보십시오. 생활패턴을 대폭 줄이도록 한번 해보십시오.
여기서 최고 조심해야 되는 게 뭐냐면 옛날에는 텔레비전을 잘 안 볼 때는 책을 보지 말라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책보다 텔레비전을 보지 말라 그럽니다. 여러분에게 별로 도움되는 거 없습니다. 연속극 보면서 껄껄거려봐야 별 도움이 안 됩니다. 사람들하고 만나서 얘기할 때나 필요할까, 사람들하고 만나도 앞으로는 얘기도 안 하고 듣고만 있어야 되는데 그럼 뭐 하러 그거 보면서 껄껄거려싸?
그런 것들을, TV보고 책보고 하는 것들을 없애버리도록 해보십시요. 없애버리고 그 시간만큼은 적어도 내가 내 자신한테 투자한다 생각을 하고 수행시간을 늘리도록 하십시오. 이 두 가지만 지키면 하루에 수행시간이 적어도 몇 시간씩은 늘어날 겁니다.
늘어나고 나면 맨 처음 해야 되는 게 뭐냐 하면 좌선입니다. 좌선이 그냥 앉은뱅이 도 닦는 것처럼 보이죠? 그게 절대 아닙니다.
좌선이라는 것은 가장 적극적인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항상 움직이고 생각하고 그렇게 살다가 '앉아라' 그러면 뭐 때문에 그러느냐는 거라. 뭐 때문에 앉아야 되느냐는 거라. 앉아서 가만히 자기 자신을 보면 온갖 것들이 일어납니다. 느낌도 일어나고, 생각도 일어나고, 망상도 일어나고, 졸리기도 하고, 하기 싫다는 생각도 일어나고, 누구 또 의심하는 것도 일어나고, 갖가지가 일어납니다. 수행을 하면 나타난다 하는 거하고 꼭 마찬가집니다. 한번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있어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것들이 일어나는지.
마음은 잠시 잠깐이라도 한곳에 머물러 있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그 대상을 찾아서 끊임없이 헤매니까 그런 것들이 일어나는 거라.
살아가는 얼마나 적극적인 방법입니까? 앉아있으면 그거 다 할 수 있는데, 다 관찰할 수 있고, 다 다스려나갈 수 있는데 얼마나 좋은 조건들이라. 그래서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자기 마음만 들여다볼 것 같으면, 내가 뭘 잘하고 내가 뭘 못하는지, 내 약점이 뭔지 하는 것이 여지없이 그냥 드러나져 버립니다. 그래서 수행하는데 좌선이 그마만큼 중요한 몫을 차지합니다. 이렇게 앉아서 수행하는데,
앉아서 수행하는 방법에 대한 것을 간추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앉아서 자기 자신의 몸을 관찰할 때는 처음부터 과하게 관찰할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처음부터 '일어남' '사라짐' '일어남' '사라짐' 하면서 관찰하면 당연히 마음은 튕겨나갑니다. 길들여지지 않고 온순해지지 않은 마음은 당연히 다른 쪽으로 튕겨져나갑니다.
그래서 몸을 처음에 알아차릴 때는 가볍게 알아차릴려고 해야 됩니다. 친한 친구를 볼 것 같으면 그렇게 많이 친한 친구가 아니면 그냥 가볍게 서로 반갑다고 인사할 정도입니다. 뭐 부둥켜안고 한다든지 아니면 멀찍이 서서 한다든지 하지 않고 그냥 가볍게 악수 정도 한다 하는 생각으로 하면 됩니다.
대상을 만났을 때 처음에는 가볍게 그 대상을 지켜보겠다 하는 마음을 먹어야 되는 것이지, 그 대상을 움켜잡을려고 할 거 같으면 '아이고! 요놈 내가 한번 해보겠다' 할 거 같으면 당연히 빠져나가버립니다. 대상이!
'뚫어지게 관찰하겠다' 하는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 마음은 이미 산란해져 버립니다. 산란해져버려서 꼭 손바닥에 잡힌 미꾸라지가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음은 그렇게 요동치게 돼있습니다. 그럴 때는 '아! 내가 처음부터 너무 과하게 노력을 기울여서 대상을 움켜잡으려고 하는구나' 하고 알아차리도록 해야 됩니다.
알아차리는 것도 적당한 힘이 있어야 되고, 집중하는 것도 적당한 힘이 있어야 되고, 노력하는 것도 적절한 힘의 균형이 이루어져야 만이 제대로 대상을 관찰하면서 수행을 해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려고 할 거 같으면 눈으로 대상을 보더라도 눈으로 대상을 본다고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마음으로 대상을 느끼려고 해야 됩니다. 배를 관찰한다 하더라도 눈을 배에 가져가가지고 관찰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눈으로 이 호흡이라는 대상을 보려고 하지 말고 마음으로 이 대상을 그냥 편안하게 느낀다 하고 마음을 먹어야 됩니다. 어떤 대상이든지 마음으로 느끼려고 해야 되는 것이지 눈이나 귀나 코나 이런 것으로써 보고 듣고 냄새 맡으려고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래서 일단은 마음으로 느껴야 되겠다 하고 작정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눈으로 보든지 코로 냄새 맡든지 할 거 같으면 머리도 아프고 무거워집니다. 마음이! 절대 마음을 무겁게 만들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또 그렇게 눈이나 귀나 이런 것으로 할려고 할 거 같으면 욕심이 생깁니다. 취할려고 합니다. 집착하게끔 됩니다. 그래서 탐심이 일어날 것 같으면 몸은 항상 긴장되게 돼있습니다. 마음이 긴장돼버리면 때문에 당연히 몸도 긴장하게 됩니다.
몸이라는 것은 마음에 반응을 줄 수 있는 것은 몇 가지가 안 됩니다. 배고플 때 '내 배고프다' 하고 마음한테 신호를 보내는 거, 하품하는 거 이런 거 몇 가지 외에는 몸이 마음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은 없습니다. 대부분 몸이 긴장해 있는 것은 마음이 긴장해 있기 때문에 몸이 긴장해 있는 겁니다. 절대 몸을 긴장시키도록 만들면 안 됩니다.
그래서 맨 처음 수행을 시작할 때 우선 마음의 상태를 잘 관찰해야 됩니다.
마음이 가장 편안하게 그냥 잘 모르는 사람 대하듯이 대상을 대하도록 만들어야 됩니다. 마음이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가 하는 걸 잘 관찰을 하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몸이나 마음의 긴장을 최대한 풀고 만약에 긴장이 돼있으면 긴장을 최대한 풀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내 마음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어떤 상태에 있는가? 하는 것을 잘 관찰하도록 해보십시오.
이때 이런 것들을 관찰하는데 마음을 직접적으로 관찰을 하려면 잘 안됩니다. 아까 얘기했지만 마음의 긴장으로 인해서 마음이 긴장한다고 그랬습니다. 몸이 긴장 안 해 있으면 마음도 긴장 안 해 있는 겁니다.
몸의 상태를 하나씩 관찰을 한번 해보십시오.
눈꺼풀이 긴장돼있는가, 입술이 긴장돼있는가, 그다음에 어깨가 긴장돼있는가, 손가락이 긴장이 돼서 뻣뻣해져 있는가, 이런 몇 가지만 차례차례 관찰을 하다 보면 긴장돼있는 부분은 스스로가 풀립니다. 풀어버릴 거 같으면 마음도 자연스럽게 긴장돼있는 것들이 풀려나갑니다.
그렇게 긴장된 마음을 다 풀고 나서는 처음에는 그냥 몸의 상태만 쭉 관찰을 해보십시오. 그렇게 눈꺼풀부터 해서, 입술, 어깨, 손, 특히 어깨하고 손이 많이 긴장이 됩니다.
그런 것들을 잘 관찰해서 몸이 긴장되지 않은 상태로 만들고 나서, 그러고 나서는 호흡을 알아차리도록 해야 됩니다.
호흡은 알아차리는 포인트들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보통 코끝, 그다음에 가슴 부위, 그다음에 명치, 그다음에 배, 조금 더 나아가면 어깨 끝, 손끝, 그다음에 전면이 있습니다. 전면은 몸 밖입니다. 몸 밖에서 마음으로써 관찰을 해야 됩니다. 이렇게 전면의 호흡을 관찰을 하고 이렇게 합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포인트들이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코끝을 관찰하라, 어떤 사람들은 배를 관찰하라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마음을 관찰하는 수행을 많이 하고 많이 가르치는 사람들은 되도록이면 배 아니면 가슴을 관찰하라고 그럽니다. 왜 그러냐면 마음을 관찰하는 것은 느낌을 관찰하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들! 그러면 느낌들은 어디를 관찰해야 됩니까? 느낌들은 가슴을 관찰해야 됩니다. 그럴 경우에는 가슴을 관찰하라는 곳이 많고 안 그러면 배를 관찰하라 그렇게 얘기합니다.
몸에 대한 관찰을 많이 가르치는 곳에서는 코끝을 관찰하라 하고 합니다.
그다음에 법에 대해서 관찰하는 것들 또 마음에 대해서 관찰하는 것들이 많은 부류들은 전면을 관찰하라고 합니다. 몸의 전면을! 그거는 어느 정도 사마디가 형성되지 않으면 하기 힘든 형태들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한번 보십시오. 여러분들 코끝이든 가슴이든 아니면 명치든 배든 아니면 손끝이든 어깨 끝이든 다 호흡이 있습니다. 손끝이나 어깨 끝에는 호흡이 없을 거 같죠? 호흡이 다 있습니다. 손끝에는 호흡에 따라서 이 맥박 뛰는 것들이 느껴집니다.
이렇게 포인트가 많은 이유는 뭐냐면 호흡을 관찰하는 주대상을 두는 것은 다른 대상이 없을 때 마음이 벗어나지 않게끔 알아차림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앉아서 이 호흡만 관찰하고 있으라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앉아있을 때는 호흡이 항상 움직이는 대상이기 때문에 항상 움직이는 대상이니까 「주대상」이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런데 알아차림으로 봤을 때는 이것이 '주대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알아차리는 것은 여러 가지 일어나는 현상들이 '주대상' 입니다. 그 대상들이 없을 때 돌아오는 곳이 호흡입니다. 알아차림으로 봤을 때는 절대 주대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코끝이든 배든 어느 곳이든 한군데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십시오.
주의해야 될 것은 호흡을 따라간다고 코끝부터 해가지고 가슴으로 해가지고 배까지 다 따라갔다가 또 따라나오고 이렇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포인트는 항상 한 대상, 한 점입니다. 한 점만 가지고 하십시요! 코끝을 하든 배를 하든 꼭 마찬가지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래서 항상 코끝이든 배든 하나를 정하면 그것이 잘 안 된다고 하더라도 바꾸려고 하지 마십시오.
가끔씩 수행자들이 그럽니다. 호흡을 할 때 들이쉬는 호흡은 배를 관찰하고, 내쉬는 호흡에는 코를 관찰한다고 그럽니다. 배가 불러오는 것은 금방 알 수가 있는데 꺼지는 것은 잘 모르니까, 어떻게 코끝에서는 보면 들이쉬는 숨보다 내쉬는 숨이 텁텁한 느낌이 있으니까 관찰하기가 용이하거든. 그러다보니까 내쉴 때는 코끝을 관찰하고 들이쉴 때는 배를 관찰한다고. 굉장히 위험합니다. 마음이 굉장히 산란하게 만들어져버리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절대 그렇게 하지 말고 하나의 대상만 관찰한다 하는 생각을 가져야 됩니다.
그렇게 하나의 포인트를 딱 잡았다 싶으면,
이제는 그 대상에 마음을 싣는 방법입니다.
마음은 그 대상이 있어도 마음을 툭 실어버리면 안 됩니다. 절대 그렇게 했을 경우에는 어긋나버립니다.
그냥 그대로 알아차리려고 하는 생각이나 명칭을 붙이려고 하는 생각조차도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숨이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것을 갖다가 알겠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먼저 몸의 상태를 관찰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마음이 평온해지고 나면, 인제는 주대상이 만약에 배의 한 지점이다 할 거 같으면 이제는 '내가 배의 한 지점을 주대상으로 관찰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일으키고 나서는, 몸의 상태를 관찰해야 됩니다. 몸의 상태를!
머리끝부터 시작해서 발끝까지 하나씩 하나씩 몸의 상태를 천천히 천천히 자기가 관찰을 해보도록 하십시오.
머리부터 이마, 눈꺼풀, 입술, 오른쪽 어깨, 왼쪽 어깨, 가슴, 손이 닿아있는 거, 배, 엉덩이, 오른발, 왼발 이렇게 차례대로 한번 알아차려 보십시오.
그것이 있다는 것만 알아차리도록 하십시오.
그것을 깊이 있게 그게 무슨 현상이 일어나는가 하고 알려고도 하지 마십시오. 머리하면 머리를 눈으로 보려고 하지 말고 가슴으로 느끼도록 하십시오.
눈꺼풀도 꼭 마찬가지 가슴으로 눈꺼풀을 느끼도록만 하십시오.
물론 눈꺼풀이나 입술이나 손 그다음에 엉덩이 등은 닿아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느낌이 일어나집니다. 그때는 느낌을 살포시 알아차리는 것도 괜찮습니다. 어쨌든 마음으로 몸 전체를 가만히 주시한다고 생각을 해야지, 뭐 어떤 것을 특별히 알아차리려고 하지 말고 그냥 몸 전체를 가만히 주시한다 하는 생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몇 번 주시를 하다 보면 몸의 어느 부위에 움직임이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틀림없이 몸은 가만히 정지해 있는데도 몸의 어딘가가 움직입니다. 그 움직이는 것이 바로 '호흡'입니다. 어깨에서도 나타나기도 하고 손끝에서도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만히 그 호흡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현상을 지켜보도록만 하십시오.
그렇게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가슴에 많으면 가슴에다가 살포시 마음을 갖다가 댄다 생각을 해야 되고, 배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그런 느낌이 많이 일어나면 배에다가 살포시 마음을 갖다 놓는다고 생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꼭 나비가 꽃나무에 가서 살포시 내려앉듯이, 꽃나무를 절대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살포시 내려앉듯이 그렇게 마음을 그 대상에다가 접근을 하도록 그렇게 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할 때는 호흡은 절대 자연스러워야 되지 인위적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현재는 명칭조차도 붙이지 말고 그냥 자연스럽게 그 대상에다가 마음을 내려놓는다 하고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이렇게 관찰을 해나가는 것이 대상에 마음을 일치시켜나가는 방법입니다.
그렇게 관찰을 해나가다 마음이 대상을 벗어난다고 생각이 들 때는, 그때부터는 인제는 호흡의 길을 알기 때문에 명칭을 부여해줘도 됩니다. 그
렇지 않고 명칭이 없이 배를 관찰한다 할 때 배가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들이 관찰이 돼 나가진다고 할 거 같으면 그냥 그대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명칭 없이 관찰을 하면 됩니다.
그렇게 관찰을 하다가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고 나서 다시 일어나기 전에 멈추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정도가 되면 그때는 인제는 노력의 힘을 조금 더 실어준다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그래서 무겁고 가볍고, 딱딱하고 부드럽고, 뜨겁고 하는 것들, 그리고 호흡이 짧은지 긴지 느린지, 미세한지 빠른지 하는 것들을 차례차례로, 알아나가는 대로 알아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호흡 하나에도 알아차리는 것이 너무나 많아집니다.
알아차리는 것이 많아지면 마음은 대상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배를 관찰하는 것은 마음이 대상을 벗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하나의 대상을 잡는 것이고, 명칭을 붙이는 것도 대상을 벗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명칭을 붙이는 것입니다.
대상을 벗어날 때가 되면 명칭을 붙이도록 하고,
또 대상을 벗어날 때가 되면 호흡에서 다른 대상을 찾도록 해야 됩니다.
그 대상으로부터 마음이 벗어나지 않는다 할 것 같으면 그냥 그 대상을 그대로 관찰을 해나가면 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기본적인 방법입니다.
그리해도 또 잘 못하겠다. 좀 헤매는 부분이 있다 할 거 같으면, 호흡을 알아차리기 어려울 때는,
호흡이라는 것은 간단한 겁니다. 숨이 코끝을 통해서 들이쉬어지면 들이쉬어지는 것이 마지막까지 머무는 곳이 어딥니까? 가슴 부위까지 밖에는 못 머뭅니다. 횡격막 이하로는 호흡이 절대 내려가지지를 않습니다. 그런데도 배는 불러와지거든요. 그거는 왜 그렇습니까? 호흡으로 인해서 횡격막이 수축 팽창되기 때문에 수축 팽창으로 인해서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겁니다. 그거는 공기의 요소가 배를 불러오게 하고 꺼지게 하게끔 하는 겁니다.
그런데도 호흡을 관찰하기가 힘들다 할 거 같으면, 앉아있는 상태에서 몸을 그냥 관찰하도록 하면 됩니다.
몸이 앉아있고 닿아있고 하는 상태를 관찰을 하도록 해보십시오. '앉음' 하면서, 이때는 호흡하고는 전혀 관계없습니다. 호흡을 관찰하면 안 됩니다. 호흡을 어떻게 쉬고 있고 하는 것은 전혀 염두에 두지 말고 처음에는 앉아있는 모습 자체를 관찰하도록 해보십시오.
앉아있고 그다음에 닿아있는 부분을 관찰하도록, 그래서 입술 끝이 닿아있고, 손이 닿아있고, 엉덩이가 닿아있고 이렇게 크게 세 부분 정도로 나눠서 닿아있는 것을 관찰을 해보십시오.
'앉음' 하면서 앉아있는 상태를 관찰하고, '닿음' 하면서 입술이 닿아있는 것을 관찰을 하고,
그다음에 '앉음' 하면서 앉아있는 상태를 관찰하고, '닿음' 하면서 손이 닿아있는 것을 관찰을 하고,
그다음에 다시 '앉음' 하면서 앉아있는 상태를 관찰하고, '닿음' 하면서 엉덩이가 바닥에 닿아있는 것을 관찰을 하고,
이렇게 '앉음'과 '닿음'을 하면서 몸이 자연스럽게 되도록 만들어줍니다.
그렇게 하다가 보면 자기도 모르게 호흡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보입니다. 꼭 앉음 닿음만 하지 말고 내 이 호흡도 봐주시오 하듯이 벌떡벌떡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때 '앉음' '닿음'을 놓아버리고 호흡을 자연스럽게 관찰을 해버리면 됩니다.
그렇게 해도 호흡을 관찰하기가 힘들다 그럴 때는 이제는 인위적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럴 때는 호흡을 조금 편안한 상태에서 크게 심호흡을 쑤욱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이렇게 한 서너번 정도만 그렇게 하도록 해보십시오. 그러면 몸의 긴장도 쭉 풀리고 호흡이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들도 알아차리기가 쉬워집니다.
호흡을 인위적으로 하면 미세한 움직임을 붙잡을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호흡의 인위적인 것들은 호흡이 있다는 사실만 알고 나면, 인위적인 것들은 즉각 중단을 하고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그다음에 또 할 수 있는 방법이 뭐냐 하면 손바닥을 배에다 딱 갖다 댑니다. 그렇게 하면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호흡에 마음을 일치시켜 주는 방법에는 이렇게 여러 가지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한 가지 조심해야 될 것이 뭐냐 하면 호흡을 관찰하고 있는데 잘 관찰하고 있는데, 갑자기 호흡을 관찰하기가 힘이 든다 이럴 때가 있습니다. 호흡이 사라져서 힘드는 건지 아니면 대상을 놓쳐버리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잘 관찰을 해야 됩니다.
마음이 대상을 관찰하는데 집중력이 굉장히 강해져서 호흡을 알아차리기가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대상을 놓친 것이 아니고! 그렇게 어려울 때가 있는데 이때 대상을 놓친 것으로 잘못 알고 대상을 바꿔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거는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대상을 놓쳤을 때는 마음이 방황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이 이쪽저쪽으로 자주 이동하는 것을 내가 알게 됩니다. 그럴 때는 내가 대상을 놓쳤다고 생각을 해서 호흡을 다시 찾으려고 여러 가지 방법들을 동원해야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집중력이 커져서 알아차리는 힘이 굉장히 강화됐을 때 호흡을 알아차리기 힘들 때는 그런 상태가 있다는 것만 알고 그 대신에 대상을 놓쳤기 때문에 '앎' '앎' '앎' 하면서 '앎'이라고 하는 것에다 마음을 일치시켜주어서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으로 해줘야 됩니다. 그러다 보면 다시 호흡으로 돌아가기가 수월해집니다.
집중력과 알아차림의 힘이 강해졌을 때 대상을 놓쳐버리는 경우하고, 그렇지 않고 아예 호흡이라는 대상을 놓쳐버렸을 경우하고는 착각을 해버리면 안됩니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해야 되고,
또 수행하다가 주의해야 될 것들이 뭐냐 하면, 앉아서 수행하다 보면 지루한 느낌들도 들고, 답답한 느낌들도 들고 그렇게 합니다.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오히려 사대요소를 관찰하기가 가장 수월한 때입니다.
'답답하다'하고 할 때는 딱딱하고 하는 땅의 요소가 호흡을 하면서도 드러나는 때입니다. 그럴 때는 가슴의 현상들을 관찰을 하다 보면 무거운 느낌들이 굉장히 많이 일어납니다. '아! 이것이 실재하는 현상이구나' 하는 것들을 알아차리기가 굉장히 용이합니다. 그뿐 아니라 여러 가지 지루한 느낌들이나 이런 느낌들이 일어날 때 '아! 내가 참 좋은 대상을 만났구나' 하는 생각으로써 그것을 자연스럽게 관찰해야 되지 그것을 싫어해서 벗어나려고 해버리면 안 됩니다.
수행은 절대 좋고 싫은 것에 끄달려들어가 버리면 안 됩니다. 그러면 거기서 수행은 중단이 돼버립니다.
그래서 그것이 '하나의 대상이구나' 하고 생각을 해야 되고,
또 두 번째 주의해야 될 것은 뭐냐 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든 '이게 뭣 때문에 일어나지?' 하고 알려고들 합니다. 여러분들도 잘 알지만 알려고 해서 좋은 것이 있고, 그냥 모른채 하고 넘어가서 좋은 것이 있습니다.
수행에서는 원인을 알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원인은 여러분들이 알려고 해서 알아지는 것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알아차림 하다가 보면 드러나지는 것들입니다. 드러나지지 않는 원인을 일부러 알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왜 이렇게 답답하지?' '왜 이렇게 수행이 안 되지?' '호흡이 어디 갔을까?' '뭣 때문에 이 호흡이 안 될까? 이런 생각 자체도 일으키지 말도록 해야 됩니다.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현재의 상태의 마음만 관찰을 해버리면 됩니다. 그래서 그 원인은 알아차림의 결과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느낌이다 하는 사실을 알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어떤 느낌도 변화되어 나갑니다. 변하지 않는 느낌은 없습니다.
통증이 일어나든 가려움이 일어나든 그 느낌들은 변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이해를 하도록 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려움이나 통증이 일어날 것 같으면 괴로움으로 바뀌어버립니다. 괴로움으로 바뀌어버리면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나기 때문에 통증이나 가려움을 벗어나려고 하기 때문에 긁적긁적 긁어버리고 다리를 쫙 펴버리고 이렇게 하게 됩니다.
즐겁거나 괴로운 느낌에 휘말려 들어가서는 절대 안 됩니다. 이것 자체 가렵거나 아프거나 하는 것도 변하는 속성을 지닌 것이라고 알고 이것도 좋은 대상일뿐이다 하고 생각하고, 그냥 자연스럽게 마음으로 느끼고 알아차리려고만 해보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그것은 반드시 알아차려집니다.
다리가 아파서 풀려고 할 것 같으면 이미 내가 싫어하는 마음들로 인해서 화가 일어난 상태가 돼버립니다. 수행을 하면서 화나 욕망들을 키워주는 결과가 될 수가 있으니까 그렇게 하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 주의해야 될 것은 수행할 때 무슨 특별한 것을 얻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무슨 천안통을 얻는다든지 신통력을 얻는다든지 아니면 내가 이 몸에 병이 있으니까 이 병을 고쳐보겠다고 하든지 이런 생각 자체를 아예 하지 마십시오. 해버리면 그때부터 수행은 안 됩니다.
설혹 몸에 무슨 병이 있다 하더라도 병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대상입니다. 그 대상을 그냥 자연스럽게 관찰해버리면 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그 결과물로써 병이 나아버립니다.
원인을 알려고 해서 알아지는 것이 아니고 알아차림 하다 보면 원인이 자연스럽게 드러나지는 거하고 마찬가지입니다. 결과를 바라고 수행을 해서는 안 됩니다. '수행은 지금 즉시 여기서 하는 것이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노력해주시기 바랍니다.
결국은 수행 중에 일어나는 어떠한 대상이라고 하더라도 싸우려고 하지 마라. 싸워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냥 받아들이십시오. 그 대상 자체를! 그렇게 그 대상을 받아들여서 흥분하지도 말고 또 소심하지도 말고 그러니까 탐진치에 빠지지 않도록 해서 그냥 그 대상을 알아차릴려고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이렇게 수행을 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수행하는 방법입니다.
오늘은 호흡을 관찰하는, 호흡을 알아차리는 방법에 대한 것들을 했습니다. 다음 시간에 조금 더 수행법에 대한 것들을 하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7. 수행의 요점2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호흡이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수행을 할 때 앉아서 좌선을 할 때는 먼저 마음의 상태를 잘 관찰을 해서 마음이 어떤 상태에 있는가 하는 걸 잘 알아차려야 됩니다.
그러고 나서 호흡이 편안하다고 느끼는 한 장소를 발견을 해내야 됩니다.
그러고 그다음에 그 호흡과 함께 머무르기 위해서 끊임없이 훈련을 해야 됩니다.
마음은 자꾸 벗어날려고 할 겁니다. 벗어나면 벗어나는 대로 다시 호흡으로 끄집어들이고, 벗어나면 끄집어들이고 해서 호흡과 마음이 함께 머무르는 훈련을 자꾸 해야 됩니다.
이렇게 알아차림이 일관성이 있게 되어나가면 호흡에 힘을 실어주게 됩니다.
그래서 단지 숨이 들어올 때 숨이 들어오는 것을 알아차릴 수가 있고, 숨이 나갈 때 숨이 내쉬는 것을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숨을 느끼고, 그것을 보는 것을 알아차리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위빳사나라고 하는 것은 '지금 하는 순간순간을 완전하게 알아차려서 집중한다' 라는 그런 실천법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더라도 지금 여기서 그 대상을 알아차린다'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려면 먼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객관적으로 잘 보고 잘 알아차리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수행의 시작은 이렇게 시작이 되어나가집니다.
인위적으로, 주관적으로 하지 말고 아주 객관적으로, 죽은 사람이 위에서 자기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이, 그렇게 자기 자신을 멀찍이서 바라본다고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바라보더라도 지금 하고 있는 순간순간을 완전하게 알아차려서 그것에 집중하겠다 하는 생각으로써 수행하는 것이 위빳사나 입니다.
두 번째로 해야 되는 것이 뭐냐면 위빳사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머릿속에 들어있던 여러 가지 잡동사니들을 정리를 해야 됩니다.
집에 들어갔을 때 방이 깨끗해서 마음이 포근하고 안정이 될려고 할 거 같으면 방안에 있는 잡동사니들을 정리를 하고 청소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머릿속에 있는 잡동사니라고 하는 것들은 '아! 내가 이 수행으로써 이 병을 고쳐보겠다. 아니면 어떤 신비한 체험을 하고 싶다. 이렇게 되고 싶다. 저렇게 되고 싶다. 아니면 나에게 이런 능력이 있고 싶다. 얻고 싶다.' 이런 여러 가지 것들을 얘기합니다.
그러한 잡동사니를 정리를 하도록 하고, 희망이나 기원하는 것들, 기대하는 것들, 그런 것들을 일단은 접어두고, 자유롭고 부드러운 마음, 꼭 아이들이 어릴 때 순진하게 뛰어노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시작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마음속에 있는 잡동사니들을 정리를 해야 됩니다. 정리가 안 될 때는 그 잡동사니는 '내가 지금 수행하는데 아무런 이익을 가져오지 못한다. 잡동사니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수행과 그리고 실제 생활하는 것과 관계가 없다.'하고 부드럽게 생각을 해버리고 놓아버리도록 해보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것도 하나의 대상이다 생각하고 그것 자체를 주관적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바라보도록 그렇게 하도록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로 중심을 두어야 될 것이 뭐냐면 자신의 세계, 이 몸과 마음이라는 것에 철저하게 돌아와야 됩니다.
위빳사나 수행은 언제 어느 때라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하는 동작, 행위들, 감정들을 알아차리는 것, 이렇게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철저하게 알아차리도록 해야 됩니다. 만약에 자기 자신, 주최자가 있다고 할 거 같으면, 자기 자신의 주재자로 있을 수 있는 것이 위빳사나를 실천하고 있을 때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나'라고 하는 것도 모르면서 다른 것들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관찰하도록 해야 됩니다.
다른 사람이나 외부에서 오는 반응들, 행동들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인해서 슬퍼지거나 어두워지거나 이렇게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아이들은 그러한 것들에 영향을 받지 않고 성장해 나갑니다. 여러분들도 그와 같이 돼야 됩니다. 칭찬받으려고, 깍아내린다고 해서 그것에 또 감정의 물결을 일으키지 않아야 됩니다. 항상 침착한 마음을 유지해서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면 마음도 성장할 뿐아니라 위빳사나가 한층 더 나아가게 됩니다.
이렇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수행하는 세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천천히 하라.
생각하는 것도 천천히 하고, 몸의 동작도 천천히 하라. 모든 것을 내가 알아차릴려고 생각도 하지 말아라.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대로 그냥 그대로 바라보기만 하고 포기를 해버려라. 알 수 있는 것들만 하라. 자기 자신을 가장 정확하게 볼 수 있어야 됩니다. 가능한 한 천천히 움직이고 천천히 수행을 하도록 자꾸 해야 됩니다. 생각도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할려고 해야지, 이것저것 생각을 할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가 끝나면 다음 동작을 하고, 하나가 끝나면 다음 생각을 일으키겠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천천히 하는 것이 기본적인 것들입니다.
두 번째는, 항상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실제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릴려고 해야 됩니다. 생중계해야 된다는 얘기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것, 머릿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 이런 것들을 끊어짐 없이 빈틈없이 알아차리겠다. 그렇게 하면서 잡념들은 사라지고 집중력은 일어나게 됩니다. 살아있다고 하는 것은 지금인 것이지 과거나 미래가 아닙니다. 항상 지금 일어나는 행위들, 몸과 말에 대해서, 몸과 마음에 대해서 알아차릴려고 해야 됩니다. 설혹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해서 '아! 알아차리지 못했다'하고 되돌아갈 필요조차도 없습니다.
그러고는 그렇게 실제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들을 알아차리면서 일어나는 감각의 변화, 느낌의 변화를 감지하도록 해야 됩니다. 손을 들거나, 걷거나, 앉거나, 또 호흡을 들이쉬는 것, 내쉬는 것을 관찰할 때마다 몸의 느낌은 바뀝니다. 마찬가지로 마음에서 일으키는 생각들도 변해가게 돼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아무것도 해석할려고도 하지 말고, 변형시킬려고도 하지 말고 단지 그 변화되는 것, 느낌들을 알도록만 하십시오. 느끼도록만 하십시오.
그래서 부처님은 걸을 때는 걸음을 알아차려라 그러고, 동작할 때는 그 동작을 알아차려라 그러고, 생각이 일어날 때는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려라 하고 그렇게 얘기를 하는 것들입니다. 이렇게 항상 알아차려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에 자기 자신이 실재하는 것들이 무언가 하는 것들을 알게 됩니다.
부처님 당시 때 어느 스님이 나이가 육십이 넘어 될 때까지 쭈욱 바르게 수행하고 살아왔습니다. 이 스님이 열반할 때가 되어서 사람들에게 "아! 내가 열반할 때가 되었으니까 오너라."하고 얘기를 합니다. 그 스님을 시봉하는 제자가 스승님한테 물어봅니다. "큰스님! 큰스님께서는 출세간의 이치를 체득했습니까?"
그 큰스님이 정직하게 얘기합니다. "체득하지 못했다."
"그러면 큰스님! 이제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스님의 열반의 모습을 봅니다. 참 잘 살아오고, 알아차림을 가지고 살아오신 분으로써 존경을 했는데 스님이 다른 사람과 똑같은 뿌툿자나-범부와 같은 모습으로, 츨세간의 도도 얻지 못하고 범부의 삶을 살아가다가 죽음을 맞았다는 사실을 알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지. 내가 수행자이고 수행을 해나가는 사람이면 틀림없이 다른 사람과 달라야 되겠지. 그래 그럴 거 같으면 나에게 시간을 다오. 나는 관세음보살이나 미륵보살이 나의 깨달음을 이루어 줄 거라고 생각을 했다. 그분이 내가 깨달음에 이르도록 만들어 줄 거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내가 지금 깨달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부처님이 나를 깨닫게 할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출세간의 도를 스스로 얻지 못했다."
그러면서 짧은 시간 동안에 출세간의 도, 완전하게 번뇌를 여읜 상태, 열반을 체험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제 스님이 출세간의 도를 얻었다는 소리를 듣고 와서 물어봅니다.
"어떻게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에 그렇게 출세간의 도를 얻게 되었습니까? 참으로 어려운 일을 하셨습니다."
"아니다. 내가 어려운 것은 출세간의 도를 얻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알아차림 없이 살아가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내가 지금 깨달음에 이르렀든 깨달음에 이르지 않았든, 살아가는 것은 알아차리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단지 니가 인식하고 인식하지 않는 것 차이일 뿐이다. 그럴 거 같으면 알아차리면서, 알아차림을 인식하면서 살아가야 되는 것이다."
숨을 멈추지를 못합니다. 우리가 알아차림 없이 살아간다고 생각을 할 수도 없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알지 못하고 행하는 것은 없고, 알지 못하고 이루어지는 것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더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불가사의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힘드는 것은 알아차림 없이 살아간다고 하는 그 자체, 그 말 자체가 불가사의한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와 마찬가지로 인식을 하든 못하든 알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거 같으면 알아차리면서 내가 뭘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면서 살아가는 것이 바른 사람의 길이다 하는 것들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한다는 것은 이렇게 간단하면서도 아주 평범한 진리입니다. 누구든지 실천할 수 있고, 누구든지 행해나갈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이고, 사람이 나아가야 될 길이라는 겁니다. 그것이 부처님이 말한 진리의 길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은 몸을 알아차리면서 관찰을 하고, 느낌에서 일어나는 것은 느낌을 관찰하면서 알아차리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은 마음에서 알아차리면서 관찰하고, 여러 가지 현상들이 일어나는 것은 여러 가지 현상들을 알아차리면서 수행을 하는 것.
이렇게 하므로 해서, 그 실재하는 것들을 알아차리면서 드러나는 특성들이 바로 무상・고・무아라고 하는 세 가지입니다.
내가 마음대로 되고 싶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변화, 머물지 않고 변화해가는 변화를 느끼는 것. 몸의 변화든 마음의 변화든 몸은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하기 힘들지만, 마음의 변화는 얼마든지 우리가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 마음의 변화를 느낀다는 것들이 보편적으로 드러나는 특성들인 무상(aniccā)입니다. 마음이나 몸의 변화에 만족스럽지 못하고 고통스럽다고 느끼는 고(dukkha) 마음대로 되지 않는 그 마음의 변화에 어떤 실체가 없다는 무아(anattā) 이 세 가지가 드러나지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어떤 것에도 걸리지 않고 번뇌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것이 부처님이 설한 가르침이고, 부처님이 설한 실천의 방법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살아가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8. 수행의 요점3
좌선을 할 때 알아차림의 주대상은 배의 '일어남' '사라짐'입니다.
그리고 알아차림이 잘 안될 때는 방황하는 마음이나 망상하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자세의 닿아있는 부분, 접촉 부분을 알아차릴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좌선할 때 알아차림이 잘 될 때는 '일어남' '사라짐' '일어남' '사라짐'만 하면 됩니다. 일어남 사라짐을 하는데 마음이 자꾸 방황하든지 망상한다든지 생각이 자꾸 떠오르든지 해서 대상에 집중하기가 힘들 때는 '앉음' '닿음'을 알아차려야 됩니다. '앉음' '닿음'은 몸의 앉아있는 형태와 닿아있는 상태를 관찰하는 것입니다.
'앉음' '닿음'을 관찰하는 데는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호흡을 알아차리기 어려울 때이기 때문에 호흡의 '일어남' '사라짐'을 대신해서 '앉음' '닿음'을 알아차리는 하나의 방법이 있습니다. 이럴 때는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은 전혀 하지 않고 '앉음' '닿음'만 알아차리도록 해야 됩니다. 그래서 호흡의 '일어남' '사라짐' 대신에 '앉음' '닿음'을 알아차리는 방법입니다.
또 다른 한 방법은 '일어남' '사라짐'을 하고 있는데 '일어남' '사라짐' 다음에, 다시 '일어남'이 일어나기 전에 정지되어 있고 멈추는 간격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면,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앉음'이나 '닿음'을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일어남' '사라짐', '일어남' '사라짐' 이렇게 하는 방법이 하나 있고,
'일어남' '사라짐'이 안 될 때 앉아있는 몸의 상태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앉음' 하면서 관찰을 하고, '닿음' 하면서 몸 중에 닿아있는 부분, 눈꺼풀이나 입술이나 손이나 엉덩이나 무릎이 닿아있는 부분을 관찰하는 방법입니다.
'앉음' '닿음' 하면서 닿음 첫 번째 포인트인 '오른쪽 눈꺼풀'하고 오른쪽 눈꺼풀에서 일어나는 느낌들을 관찰하고, 또 '앉음' 하고 나서 '닿음' 하면서 왼쪽 눈꺼풀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관찰을 하고, 또 '앉음' '닿음' 하면서 입술이 닿아있는 느낌을 관찰하고 이런 식으로 닿아있는 포인트를 짧게는 서너군데부터 길게는 열몇군데까지 늘려나갈 수가 있습니다.
'일어남' '사라짐'을 관찰을 하다 보면 호흡을 알아차린다는 것이 단조롭기 때문에 마음이 싫증을 내서 쉽게 달아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몸에다가 마음을 붙잡아두는 방편으로써 선택하는 것이 '앉음' '닿음'입니다.
또한 '일어남' '사라짐' 관찰이 용이하게 되어나가는 상태에서는 '사라짐' 다음에 '일어남'이 있기 전에 잠깐 멈추는 것이 있다 하는 사실을 알게 될 때 그 '멈춤'을 그냥 놓아버리고 다시 '일어남' '사라짐' 하게 될 거 같으면 대부분이 잠에 떨어지든지 망상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쉬고 있는 틈이 생기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알아차리기 위해서 '일어남' '사라짐' 하고 나서 그 잠깐의 멈춤 동안에 몸의 앉아있는 상태를 관찰할 때는 '앉음' 하면서 관찰하고, 다시 '일어남' '사라짐' 해야 됩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될 거는 '일어남' '사라짐' 다음에 잠깐의 멈춤인데, 아주 빨리 마음이 움직여서 그 멈춤의 상태에서 '앉음'이나 '닿음'을 관찰해야 되는데, 어떤 경우에는 그 쉬는 부분을 관찰을 하지 않고 배가 일어날 때 '앉음' 배가 사라질 때 '닿음' 이렇게 하는 경우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앉음' '닿음'을 할 때는 '앉음' '닿음'만 하도록 해야 되고,
'일어남' '사라짐'을 하다가 '일어남' '사라짐' 다음에 간격이 있는 것을, 멈추는 것을 알지 못했을 때는 그냥 그대로 '일어남' '사라짐'을 해야 되고,
'일어남' '사라짐'을 하다가 '사라짐' 다음에 '일어남'이 있기 전에 잠깐의 멈춤이 있다 하고 알 때만이 '일어남' '사라짐' '앉음'이나, '일어남' '사라짐' '앉음' '닿음'을 하도록 해야 됩니다.
그 간격이 자신에게 길게 느껴질 때는 '앉음' '닿음'을 하도록 하고, 짧게 느껴질 때는 '앉음'이나 '닿음' 한 가지만 하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이것은 마음이 지속적으로 알아차리기 위해서 틈이 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자신이 적절하게 선택해야 되는 방법입니다.
이와 같이 수행을 하다가 '일어남' '사라짐' 하는 주대상 외에 또 알아야 되는 것이 뭐냐 하면 여섯 가지 감각기관에 대해서 알아차림을 해야 됩니다.
'일어남' '사라짐'이라는 명칭을 붙이는 것은 그것이 코끝이든 가슴이든 배든 수행자가 그렇게 명칭을 붙일 때는 원래 호흡이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것들을 명칭을 붙이는 것입니다.
호흡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바람의 작용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입니다. 바람이 들이쉴 때는 배가 불러와지고 코끝에서는 들이쉬는 바람이 있게 되고, '사라짐'이라고 할 때는 바람이 코끝을 통해서 빠져나가고 배가 꺼지고 하는 것들입니다. 이것은 바람의 작용입니다. 그 바람의 작용에 따라서 배의 호흡을 '일어남' '사라짐'이라고 명칭을 붙이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소리가 들릴 때도 '들림' '들림'이라고 명칭을 붙여야 되고, 볼 때도 '봄' '봄'이라고 명칭을 붙여야 되고, 망상을 할 때도 '망상' '망상'이라고 명칭을 붙여야 되고, 걸어갈 때도 '오른발' '왼발'이라고 명칭을 붙여서 하도록 해야 됩니다.
만약에 명칭을 붙이지 않는 수행, 특히 마음에 대한 수행들을 할 경우에는 그냥 호흡을 보고 그다음에 소리가 들리고 말하고 하는 것들을 관찰을 해야 됩니다.
'일어남' '사라짐' '일어남' '사라짐' 이렇게 관찰을 해나가면 몸에서는 쑤심들이나 열기들이나 통증들이 느껴집니다. 그러면 그것을 '쑤심' '쑤심' '통증' '통증' 이렇게 알아차리도록 해야 되고, 망상이나 생각이 일어나면 일어남 사라짐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즉각적으로 '망상' '망상' '생각' '생각'하면서 관찰을 하도록 해야 됩니다.
만약에 통증이 계속돼서 자세를 바꾸고 싶어도 급격하게 자세를 바꾸지 말고 단계적으로 천천히 바꿔야 됩니다. 그 모든 과정을 알아차리도록 해야 됩니다.
먼저 바꿀려는 의도를 알아차리고 나서 '바꾸고자 함' '바꾸고자 함' 하면서 알아차리고, 손을 움직이면 '손을 움직임' '움직임' 하면서 관찰을 하고, 자세를 바꾸면 '자세를 바꿈', 허리를 움직이면 '허리를 움직임', 손을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으면 '손을 제자리에 갖다 놓음' 이렇게 하면서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알아차려나가야 됩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 다시 배의 '일어남' '사라짐'이라는 주대상으로 확실하게 돌아오도록 해야 됩니다.
수행하는 사람은 보이는 대상이나 들리는 소리나 냄새나 맛이나 피부에 느껴지는 감촉이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대상 어느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리도록 해야 됩니다.
왜 이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오는 모든 현상들을 알아차려야 하는가 하면 우리가 수행하고 알아차리는 목적이 이렇게 육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라고 하는 것들을 예방하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위빳사나 수행은 탐·진·치를 제거하는 것들입니다.
탐·진·치는 오온을 쉽게 침범하기 때문에 매순간 알아차림으로써 탐·진·치가 약화되고 제거된다고 분명하게 부처님이 얘길 했습니다. 이들 모든 현상을 알아차리는 것만이 탐·진·치를 예방하고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오온이라고 하는 것은 수행자가 배가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을 알아차릴 때,
배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은 몸의 현상입니다. 색온입니다.
일어나고 사라지고 할 동안에 느껴지는 좋고 싫고 하는 느낌들은 수온입니다.
그리고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상온입니다.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을 알아차릴려고 노력하고 의도를 내는 것들은 행온입니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명확하게 알아차리는 것은 식온입니다.
이렇게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이 다섯 가지가 오온(五蘊)입니다.
걸어갈 때도 왼발 오른발 하고 발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는 것은 물질의 무더기인 색온입니다. 발이 움직일 때 좋거나 싫은 느낌이 들 때는 느낌의 무더기인 수온입니다. 발걸음을 인식하는 것은 상온이고, 그럴려고 노력하는 것은 행온이며, 걷는 것을 명확하게 알아차리는 것은 식온입니다.
이것을 오온(五蘊)이라고 그러고, 거기에 대해서 집착하는 것을 오취온(五取蘊)이라고 얘기합니다.
요약하면 걷는 것은 물질인 몸이고, 걷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비물질인 마음인 것입니다. 실재하는 것은 이렇게 몸과 마음이라는 것뿐입니다.
이렇게 몸과 마음에 대해서 알아차리지 못하면 '내가 가고 있다' '누가 가고 있다'하는 '자아'라는 잘못된 개념을 가지게 돼서 그것에 대해서 집착을 하게 됩니다.
형상을 볼 때도 마찬가집니다. 눈과 밖의 형상이라는 대상은 색온이고, 그러한 대상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느낌은 느낌의 무더기인 수온이고, 그 대상을 지각하는 것은 상온이고, 지각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행온이고, 명확하게 알아차리는 것은 식온입니다.
모든 알아차림은 오온을 알아차리는 것이고, 줄여서 말하면 물질과 마음으로만 구성된 오온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몸과 마음이라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이런 본성을 알아차려야 됩니다.
그래야 만이 나, 여자, 사람이라고 하는 잘못된 관념에 집착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야 만이 탐·진·치라고 하는 것이 육문을 통해서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육문(六門)이라고 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해서 우리는 인식하고, 그 인식으로 인해서 반응들을 하게끔 됩니다. 그래서 육문들을 잘 다스리는 것이 수행의 중요한 부분에 들어가집니다.
문(門, dvāra)이라고 하는 것,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가 육문(六門)입니다.
안, 눈이라고 하는 것으로 사물을 보는 것을 알아차릴 때는, 눈이 있어야 되고, 밖에 보여지는 대상이 있어야 되고, 그것을 볼 수 있는 밝음이라는 빛이 있어야 되고, 그걸 의식을 해야 만이 사물을 볼 수가 있습니다.
소리를 들을 때도 귀가 있어야 되고, 소리가 있어야 되고, 소리와 귀 사이에 장애물이 없어야 됩니다. 파동들이 나에게 미칠 수 있도록 돼야 됩니다. 그리고 마음이라는 의식이 존재해야 됩니다.
맛을 알아차릴 때도 혀가 있어야 되고, 달거나 짜거나 하는 맛이 있어야 되고,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침이라는 것이 있어야 되고, 의식이 있어야 됩니다.
느낌, 감각을 알아차릴 때도 감각을 알아차릴 수 있는 몸의 의식이 있어야 됩니다. 손톱 끝이나 피부나 이런 것이 손상되지 않은 것이 있어야 되고, 그리고 그 대상이 있어야 되고, 실제로 그 대상이 나에게 닿아야 느낌을 알 수가 있고, 의식이 있어야 만이 알게 됩니다.
냄새를 알아차릴 때도 코가 있어야 되고, 냄새가 있어야 되고, 냄새를 운반해주는 공기가 있어야 되고, 의식이 있어야 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 거 같으면 소리가 들리면 수행하는 사람은 그 소리에 집착을 해야 되는 것이 아니고 '들림' '들림' 하면서 알아차려야만 됩니다.
이렇게 알아차려야 만이 탐욕과 분노가 귀를 통해서 들어오지 않습니다. 즐거운 소리를 알아차리지 못하면 그 소리에 대해서 갈망하게 됩니다. 싫은 소리를 하면 분노를 일으키고 배척할려고 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됩니다. 탐욕과 분노는 불선업을 일으키고 바른 행위가 아닙니다. 이런 불선업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라는 것을 수반하여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과보를 가져오는 것들입니다.
눈을 통해서 대상을 볼 때는 똑같이 '봄' '봄' 하면서 알아차리도록 해야지, 아름다운 모습에 대해서 탐욕을 일으키고 추한 모습에 대해서 분노를 일으키지 않아야 됩니다.
코도 마찬가집니다. 냄새를 '냄새' '냄새' 하면서 알아차리지 못하면 좋은 향기는 취하고 악취는 분노를 일으키는 원인이 됩니다.
먹을 때도 꼭 마찬가지로 맛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좋은 것은 더욱더 취할려고 하고 나쁜 것은 배척하고 분노를 일으키게 됩니다.
어떤 것이든 병이 생기고 나서는 치료를 해야 되겠지만 그것을 치료하는 것보다는 예방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탐욕과 분노가 생기고 나서 치료하는 것보다는 생기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 바로 모든 현상들을 알아차리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사물을 볼 때는 '봄' '봄' 하면서 알아차리고, 맛을 볼 때는 '맛을 봄' '맛을 봄' 하면서 알아차리고, 냄새가 맡아질 때는 '냄새맡음' '냄새맡음' 하면서 알아차리고, 이렇게 알아차리지 못할 때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오는 대상들에 대해서 갈애가 생겨서 집착하게 되고, 싫은 대상에 대해서는 분노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보는 대상을 보는 순간에 알아차리면 아무런 느낌이나 갈애가 일어나지 않고 단지 보는 대상으로만 존재한다' 하고 얘기합니다.
소리를 알아차리면 소리라는 대상으로만 존재할 뿐이고, 냄새를 맡으면 냄새라는 대상으로써만 존재할 뿐입니다. 모든 육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현상을 이렇게 알아차리도록 해야 됩니다.
이것이 탐진치가 발생하는 것을 억제하고 방어하는 과정입니다.
부처님 당시 때 뽓틸라 라고 하는 큰 장로 스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뽓틸라에 대해서 부처님은 "뚜쪼 뽓틸라" "골빈 뽓틸라야" 하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골빈 뽓틸라야 이리 오너라. 골빈 뽓틸라야 이것을 하여라."하고 항상 얘기를 했습니다.
뽓틸라 스님이 자신이 생각을 해보니까 자기는 육십이 넘어 되도록, 부처님 말씀인 경전을 오백 명이나 되는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큰 스승인데, 경전을 자기만큼 많이 알고 있는 사람도 없는데, 왜 나보고 골비었다고 부처님이 얘기할까 하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니까 경전을 암송을 하고 가르칠지는 몰라도 그것을 내가 실제로 체험하고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고 깨닫게 됩니다.
경전을 가르치기만 했지, 그리고 배우고 알려고만 했지, 실천하는 데는 등한시 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아! 그래서 부처님이 골빘다고 얘기를 했구나'하는 사실을 알고 그 장소를 떠나서 수행하겠다는 생각으로 떠납니다.
경전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스승이 있고, 또 그런 경전이 있고, 가르치는 사원에만 가면 됩니다. 그런데 위빳사나 수행은 수행을 지도하는 스승이 있고, 그렇게 수행할 수 있는 장소가 있고, 수행하는 방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것들입니다.
뽓틸라 스님은 유명한 수도원으로 가서 그 스님들에게 수행방법을 물어봅니다. 최고 연장자 스님에게 수행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니까, "뽓틸라 스님!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대단히 유명한 스님입니다. 아주 박식하고 제자도 많은 분인데 내가 어찌 당신을 제자로서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하고 사양을 하면서 다음 스님에게 가보십시오 하고 얘기를 합니다. 그다음 스님도 꼭 마찬가지로 그렇게 거절을 합니다. 그렇게 차츰차츰 내려와서 일곱 살이 된 사미에게까지 갑니다.
육십 먹은 뽓틸라 스님이 일곱 살 사미 스님에게 수행방법을 가르쳐주고 자신을 제자로 받아들여 줄 것을 간청을 합니다.
처음에는 사미 스님이 거절을 하지만 자기의 말을 잘 따를 것을 맹세하면 수행방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앞에 있는 연못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올 것을 요구합니다.
뽓틸라 스님은 당연히 연못을 통해서 저쪽으로 갔다가 이쪽으로 옵니다. 가사는 물에 다 젖어버리고 돌아오게 됩니다. 뽓틸라 스님에게 그 어린 사미 스님이 그런 얘기를 합니다. "일 분 전까지 휘황찬란하던 옷이 순식간에 이렇게 진흙탕구덩이가 되어버렸습니다. 마음에 오염물이 붙으면 이렇게 더러워져 버리는 것입니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경전을 아무리 많이 외우고 있더라도 내가 마음에 오염, 탐진치라고 하는 오염물을 제거하지 않으면 마음은 더러워져 버립니다.
그러한 사실을 일깨워 주고 나서 뽓틸라 스님을 데리고 오소리 구멍으로 가서 물어봅니다. 여섯 개의 구멍이 나 있는 오소리 굴을 가리키면서 이 오소리는 들어가는 구멍이 있고 나오는 구멍이 다 다릅니다. 사람들에게 잡히지 않고 다른 동물들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서 여러 가지 굴을 비상탈출로로 그렇게 만들어 둡니다. 이 오소리를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당연히 하나의 구멍을 남겨두고 나머지 구멍을 다 막아버리고 나서 그 하나의 구멍을 통해서 연기를 피울 거 같으면 오소리는 그 매운 연기 때문에 뚫려있는 하나의 구멍으로 나오게 됩니다. 그 하나의 구멍으로 나올 때 그 오소리를 탁 잡으면 됩니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여러분들 수행도 마찬가집니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라고 하는 여섯 가지 문(六門)을 통해서 모든 현상들이 들어오고 나가고 합니다.
수행은 여섯 가지 구멍 중에 다섯 가지는 막아버리고 하나의 구멍을 통해서 알아차리도록 해야 됩니다. 그래서 보는 대상이 있을 때에는 보는 대상만 알아차려야 되는 것이지 들린다든지 생각한다든지 이런 문은 다 막아버리라 하는 것입니다. 들릴 때는 오로지 '들림' '들림'만 알아차리는데 오소리가 나올 때 나오는 즉시 잡아야지 늦게 손을 뻗으면 오소리는 또 도망쳐버립니다. 대상이 일어나는 즉시 알아차리도록 해야 된다 하는 뜻입니다.
생명체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오는 모든 현상을 알아차리더라도 일어나고 들어오는 즉시 알아차리도록 해야 되고, 그렇게 알아차림이라는 것은 하나만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지, 눈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나 귀를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나 두 가지를 동시에 알아차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대상을 놓쳐버리게 됩니다. 구멍을 두 개 뚫어놔 놓고 이쪽저쪽을 보면서 오소리를 잡을려면 반드시 오소리를 놓쳐버리는 거와 마찬가집니다.
이렇게 여러분들이 배운 대로 수행을 해나가면 머지않아서 번뇌를 소멸하고 열반을 성취하게 됩니다. 이것이 부처님이 가르친 수행방법입니다.
내일은 느낌에 대한 관찰에 대한 수행법을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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