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_6_17-음운의 변동--수업기록.hwp
6교시와 문법
2019.06.17. ‘음운의 변동’을 배우며
이지우 /광동고등학교 1학년 1반 24번
오뉴월의 오후다웠다. 비가 되기 전의 습기가 교실을 메웠다. 나는 오늘처럼 끈적거리는 날씨를 싫어한다. 다만 인위적인 건조함도 싫어한다. 그렇기에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켠대도 별로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창밖을 보니 하늘은 회색도 청색도 아닌 채, 어중간한 상태였다. 햇살도 뜨거운지 따스한지 모를 온도로 내리쬐고 있었다.
나는 그런 날씨를 무시하고 수업을 준비했다. 얼마안가 6교시 종이 쳤고, 국어 수업시간이 됐다. 걷는 소리, 말하는 소리, 웃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이내 적막 속에 앞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국어선생님이었다.
국어 선생님은 수업 시작 전에, 복습도 할 겸 질문을 하신다. 지난 시간에 집중하지 않았던 친구들은 난처할 일이다. 나 역시 안심할 처지가 아니었다. 교실에는 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유감스럽게도 첫 타자는 나였다.
첫 타자로서 받은 질문은 간단했다. 답이 ‘음운’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차례가 지날수록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처진 날씨와는 달리 교실에는 활기가 맴돌았다. 한 친구가 답을 맞추지 못하자 다들 나서서 도와줬다. 그런 풍습은 우리 반의 불문율이다. 그 모습이 품앗이 같기도 해서 재밌다.
본격적인 수업을 시작했다. 오늘 배운 것은 ‘음운의 변동’ 단원의 구개음화와 여러 가지 문법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배운 문법이지만 쉽지 않다. 내용이 복잡하고 많다. 때로는 바다처럼 범람하며 폭풍처럼 휘몰아친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말 그대로다. 외워야할 것들이 ‘범람하듯이’ 또는 ‘휘몰아치듯이’ 다가왔다.
먼저 구개음화를 배웠다. 해돋이는 ‘해도지’라 발음된다. ‘ㄷ’에는 ‘ㅣ’가 내포되어 있어 형식형태소와 만났을 때 ‘지’라고 발음된 것이다. 같은 원리로 ‘밭이랑 논이랑 뭘 가질래?’와 같은 문장에선 ‘밭이랑’이 ‘바치랑’으로 발음된다고 한다. 다만 하나의 단어로 쓰이는 ‘밭이랑’엔 구개음화가 적용되지 않는다. 이는 ‘밭이랑’의 이가 형식형태소가 아님에 기인한다. 그런 어려운 내용을 배우면서, 아이들은 서서히 혼란에 빠졌다. 나 또한 문법 단원이 시험범위에 들어간다는 사실이 절망스러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국어를 좋아한 것은 언어의 정서를 배우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언어의 정서는, 문법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기틀이 다져지지 않은 언어는 불안정하다. 모든 감정과 묘사를 담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싫을지라도 문법을 배우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나는 받아들이고 공부하기로 했다.
오늘 일은 수업일지로 써야했다. 그러므로 수업 도중에 틈틈이 수업 내용을 공책에 썼다. 그리고 다른 디테일들도 적어놓았다. (그러나 갖고 오지 않았다. 통탄스럽다.) 수업은 진행되어 선어말 어미, 파생어, 문장성분 등을 설명하고 계셨다. 관형사와 형용사의 차이가 살짝 헷갈리는 듯했다. 선생님이 주시는 예시들로 더듬더듬 이해를 해갔다. 친구들도 예시를 옮겨 적으며 앓듯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도 선생님의 설명과 학생들의 이해, 상호간의 피나는 노력 끝에 수업종이 쳤다. 어려웠지만 얻은 것은 분명 있었다. 머릿속에 그 체계들이 실체화되어가는 느낌이었다. 내가 교사가 돼도 저럴 수 있을까. 잠시 의구심을 가졌다.
수업종이 쳤고, 선생님이 오늘은 여기까지라 말하셨다. 하지만 그럼에도 수업은 끝나지 않았다. 선생님께 질문을 여쭈러 온 학생들이 줄을 이뤘기 때문이다. 이는 도장을 받기 위한 행위일 때도 있다. 하지만 오늘은 학구적인 자세로서 질문을 하러갔다. 나는 어근과 어간의 차이를 몰랐다. 그랬기에 선생님께 여쭈어 보았고, 어느 정도 이해가 된 것 같다.
선생님이 나가신 후에도 우리들은 한동안 국어 얘기를 했다. 접사니 어미니, 부족한 지식이지만 서로 협력해가며 토론했다. 해결되지 않아 후에 여쭈어 봐야할 문제도 있었다. 그렇게 얻은 지식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좋은 일이다. 많은 물음이 오간 끝에야 비로소 쉬는 시간이 되었다.
창밖은 바람조차 불지 않았는지 여전히 똑같았다. 돌로 된 창틀에, 햇살이 부딪혀 난반사되었다. 나는 쉬고 싶었다. 많은 집중력을 소모했고, 성취감 있는 피로로 노곤해졌다. 그러나 교실에 앉아있기엔 좀이 쑤셨다. 더욱이 저런 햇살을 보자니 형광등 빛은 맞기 싫어져, 복도로라도 나가고자했다. 카디건을 챙기고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오늘의 6교시도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