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를 다녀와서
이인옥
아직 이른, 봄을 기대하며 경주로 달렸다.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에서 먼저 반겨주는 것은 회색모자 두껍게 눌러쓴 한옥들이다. 정겨움과 따스함이 느껴지는 교촌마을에서 먹는 한정식이 떫은 입안을 달콤 쌉싸름하게 감싸며 왕성한 식욕을 자극한다. 친절이 더해진 맛있는 밥상을 물리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서서히 봄이 오기 시작하는지 매화나무에 꽃봉오리가 수줍게 앉아 있다.
이 마을에는 한옥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먼 옛날 삶들이 나타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한옥 민박집에서 꿈을 꾸며 곤한 잠을 잔 후 찾아 나선 남산이 눈앞에 서 있다. 입구부터 소나무가 솔숲을 이루며 빽빽하게 줄지어 있다. 푸른 기상이 느껴지고 선혈들의 정신이 우뚝 서 있는 기분이다. 신라 제8대 아달라왕. 제53대 신덕왕. 제54대 경명왕의 무덤이 한곳에 모여 있어 삼능이라 불리는 곳, 커다란 묘 3기가 나란히 누워있다. 이 커다란 3개의 능을 빙 둘러 싼 노송이 허리 굽혀 서 있다. 기다랗게 뻗은 가지들은 마치 왕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신하가 서 있는 모습 같기도 하고, 굳건히 나라를 지키는 고마운 군인들이 도열 해있는 모습 같기도 하다.
아름드리 소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는 쌓였던 피로를 말끔하게 씻어준다. 말로만 들었던 남산이 참 아름답게 느껴진다. 결코 떠나고 싶지 않은 오랫동안 머물고픈 솔숲이 참 인상적이다. 거북이 등 같은 나무의 무늬가 세월의 깊이를 말해주고 있다. 경주에서 조용조용히 그러나 뭔지 모를 강한 힘이 신라의 기상과 찬란함을 전해주듯, 바람결에 수많은 역사이야기가 스쳐간다.
솔숲은 언제 보아도 기분이 좋다. 잠시 머물러 있어도 충분한 휴식을 얻을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깊은 소나무 향도 참 인상적이다. 오래전부터 언젠가는 경주 남산의 소나무를 만나고 싶었는데 이번 여행에서 만나고, 느끼고, 향기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헉헉대며 남산을 탐방하고 내려와 유명한 경주 빵을 먹었다. 너무 달지도 않고 부드럽게 맛있다. 경주여행을 마치고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세종시로 달려와 인상 깊었던 경주를 스케치 한다. 언젠가 다시 계절이 바뀐 남산에 가보리라는 기대를 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