群山 (군산)
군산시(群山市 沃溝郡, 1995. 1. 1. 통합)
전라북도 서북단에 위치하며 북에는 금강(錦江-401㎞), 남에는 만경강(萬頃江-93㎞) 두 강의 줄기 따라 비옥한 삼각주를 형성하고 서해에 돌출한 반도형 지형으로 많은 섬들이 산재해 있고 고군산군도가 그 대표적이다.
전북 4개 해안시군 중 가장 많은 연안도서지역을 가진 항구도시이며 해안도시이다.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을 마주보는 군산은 서쪽은 바다로 트이고 동과 남으로는 만경강을 넘어 온통 호남평야로 이어지는 까닭에 예전부터 호남평야 쌀의 집산지이자 출입구였다.
일제 강점기에 쌀 때문에 개항되어 지금의 무역항으로 성장되었을 만큼 쌀과 관계가 많다.
1899년 5월 1일 군산은 부산, 원산, 제물포, 경흥, 목포, 진남포에 이어 일곱 번째로 개항 되었으며 옥구군에 딸린 조그만 포구였던 군산은 호남 곡창의 쌀을 일본으로 실어내 가는 거점이자 한편으로는 일본 공업 제품의 유입구로서 조선에 대한 일제의 이중 수탈 창구가 되면서부터 급속히 도시로 성장하였다. 군산 들판에는 농장이 들어서고 군산과 전주 사이에는 쌀을 실어 나르기 위한 신작로가 뚫렸다. 전국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벚꽃길로 유명한 번영로는 바로 그 전주-군산간 수탈의 길이었다. 1910년 군산은 옥구에서 분리되었다가 1995년에 다시 합쳐져서 지금은 옛 옥구까지 통틀어 군산시로 불리고 있다.
돌이켜보면 일본이 호남평야 쌀을 넘본 것은 근세의 일만은 아니었다. 일찍이 고려 때부터 세금으로 거둔 쌀을 개경으로 실어가기 위한 조창이 이곳에 두어졌고, 그 쌀을 탐낸 왜구는 수시로 약탈을 일삼았으며 고려말 우왕 6년(1380)에 최무선이 우리나라 해전사상 최초로 화약과 화통을 써서 왜구의 배 500척을 무찔렀던 진포해전이 바로 이곳에서 있었던 일로, 진포는 군산항의 고려때 이름이다. 퇴로를 잃고 육지로 떠돌며 노략질을 계속하던 왜구는 지금의 남원 황산전투에서 이성계에게 대패하여 소멸하고 만다.
당시 지금의 군산은 진포였으며, 현재 선유도에 병선이 정박된 軍陣, 群山鎭이 있어 群山島라고 불렀는데 群山鎭을 진포로 옮기면서 群山이란 이름을 가져가니 애초의 群山鎭이 있던 섬은 옛군산, 즉 古群山이 된 것이다.
개항전부터 전라북도의 땅을 야금야금 먹어 들어오던 일본인들은 군산을 쌀 수탈의 창구로 개항한 후에 항만을 대폭 늘렸다. 그리고 구한국 정부를 강압하여 호남평야의 중심 전주와 군산을 곧장 연결하는 전군도로를 내고(1908년) 호남선(1912년)과 군산선(1912년)을 놓아 더 많은 쌀을 쉽게 빼앗아갔다. 1908년에 옥구지방에는 이미 200여군데의 일본인 농장이 있어 부근 농민들을 소작인으로 부리고 있었으며, 식민지 시대에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간 물자 가운데 95%가 쌀이었다고 한다. 그때의 흔적이 남아 지금도 군데군데 일본식 집들이 남아있다.
김·만평야
우리나라는 전 국토의 70%가 산이다. 어디를 가도 산이 가로 막는다.
그러나 전북 김제·만경의 너른 들 김만평야에서는 만경창파 푸른들, 지평선을 볼 수 있다.
북쪽으로는 군산과 경계를 이룬 만경강이,남쪽으로는 부안과 만나는 동진강 사이에 펼쳐진 광활한 김만펑야(김제·만경평야)는 전체 면적의 절반이 논으로 우리나라 쌀의 40분의 1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7천4백 여 만 평의 논에서 생산되는 쌀은 연간 12만7천여 톤으로, 가마니로 따지면 1백76만8천 가마나 된다.
여기에 지금은 군산~부안을 연결하는 33.9 Km 세계최장의 방조제로 새만금이 탄생하였다.
만경평야의 "만"자와 김제평야의 "금"자에 새롭게 확장한다는 뜻의 "새"자를 덧붙인 말로 오래전부터 옥토로 유명한 만경·김제평야와 같은 옥토를 새로 일구어내겠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렇게 비옥하고 기름진 땅은 혹심한 수탈의 땅이기도 하였으니 일제 강점기 때 이곳의 쌀을 일본으로 실어내기 위하여 군산항이 개방되게 된 것이다.
全郡街道 (전군가도)
전주와 군산을 거의 굴곡이 없이 직선으로 잇는 46.4Km의 2차선 신작로.
이 길은 일제가 호남 곡창의 쌀을 더 편리하게 퍼 내가기 위해 대한제국 정부를 밀어붙여 1908년 10월에 우리나라 최초의 포장 신작로를 내었다. 그때의 이름이 전군도로인데 해방때까지 이 길은 일본으로 가져갈 쌀을 군산항으로 실어 나르는 ‘수탈의 길’이었다. 1977년 4차선으로 확장한 후 ‘번영로’라고 이름이 바뀌었다.
군산의 근대문화유산
지난 2월 16일에 군산의 근대문화유산 답사를 다녀왔다.
인천에 비하여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적었는지? 아니면 문화재 보존에 조치가 늦었는지?
우리가 갔을때 일부는 아직도 한참 공사중에 있었으며 개방하지 않는 곳도 많았다.
그래도 오랫만에 찾아간 군산은 근대문화유산만으로도 충분히 찾아간 이유가 될만큼 볼만했다.
우리가 찾아 본 근대문화유산은
임피역사, 발산리 구 일본인 농장 창고, 이영춘 가옥, 구암교회,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부잔교(뜬다리), 구 군산세관 본관, 구 일본 18은행 군산지점, 신흥동 일본식 가옥, 구 군산부윤(시장) 관사, 구 군산시 3청사, 동국사, 해망굴등이었으며
서울까지 소문남 빵집, 이성당을 들려 그 유명한(?) 야채빵과 팥빵을 사먹었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지만 골목처럼 좁은 길에 기차가 다녀 유명해진 경암동 기차마을도 둘러보았다.
위 문화유산들은 다행이도 군산시가지에 서로 가까이 모여 있어서 쉽게 둘러볼수 있었다.
<군산지역 근대문화유산 지도... 1, 3번은 군산답사 지역내에 위치한 문화재이기에 함께 둘러보았다.>
< 계 속 >
ㅇ 내나라 문화유산 답사회 : http://cafe.daum.net/sm-academy
ㅇ 사랑하는 내인생 : http://cafe.daum.net/people4050